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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6화 〉9. 비글, 골든 리트리버, 그리고……. 똥개?(1) (76/152)



〈 76화 〉9. 비글, 골든 리트리버, 그리고……. 똥개?(1)

방송에 출연하기 전까지 나는 화정과의 만남에 제약을 받아야 했다.
아쉽긴 했지만 당사자인 필요한 절차라고 생각했기에 나와 화정도 동의했다.

물론 아예 얼굴도 마주치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었던  아니다.
같은 회사 건물에서 일하는 사이인 이상 마주치지 않을수는 없었으니까.

다만 전처럼 자유롭게 대화할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못할 뿐

“화정 씨 오셨어요.”
“아……!”

내 모습을 확인한 화정이 반색하며 오던 것도 찰나일 뿐.

“안녕……. 하세요.”

보는 눈이 있는 이상 전처럼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눌 수는 없는 노릇.
화정도 그것을 알기에 표정을 관리하며 최대한 사무적으로 내게 인사했다.

허나 그것도 잠시.

“다들 좋은 아침!”

곧이어 주변 사람들에게 빙긋 웃으며 대화를 잇는 화정.

뭐, 현재로서는 대충 이런 느낌이다.
마주쳐도 서로 짤막하게 인사만 하고 마는 정도라 해야 될까.

물론 전혀 대화를  한다는 건 또 아니다.
컴퓨터가 있고 스마트폰이 있는 세상에서 정말 단절된 것 마냥 지낼 필요는 없는 법이니까.

[화정] 드디어 내일이면 방송 출연이네요!
[나]그렇네요
[화정]  땐 잘 부탁드려요~^^
[나] 저야말로잘 부탁드릴게요
[화정] 맡겨주세요ㅋㅋ

이렇게 일을 마치고 나면, 꼭 먼저 화정이 톡으로 먼저 인사를  왔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밝고 친절한 면모는 여전했다.

이후로도 짤막한 잡담을 나눈 뒤, 핸드폰을 협탁에 두었다.

내가 이런 사람과 예능에 출연한다니.
지금 생각해도 신기한 기분이다.

호기롭게 시작하긴 했다만…….

“잘 할 수 있으려나?”


***

시간이 흘러 마침내 촬영 당일날.
이 날, 나는 생각지도 못한 동행인 한 명과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설마 촬영장까지 따라온다고 고집 부릴 줄은 몰랐는데.

“하아…….”

덜컹거리는 지하철 안에서 나도 모르게 한숨을 푹 쉬었다.

“왜요?”

그런  행동에 동행자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달라붙는 스키니 진에 넓직한 오버핏의 하얀색 박스티를 입은 생기발랄한 모습이 참으로 어울리는 모습이긴 하지만…….
이런 미녀가 옆에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로서는 복잡한 심경이었다.

“갑자기 웬 한숨?”
“한숨을 안 쉬게 생겼냐.”

현재 내 모든 근심 걱정의 당사자는 바로 최다슬.

대학생에 알바까지 하고 있으니 이런 대낮에  따라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텐데.
물론 내가 신경 쓸 바는 아니긴 하지만.

“어쩌다 내가 너랑 같이 오게 된 건지 해서 말이다.”
“싫어요?”
“싫고 말고를 떠나서……. 너  바쁘냐?”
“바쁘긴요, 전혀!”

다슬이 기운차게 고개를 홱홱 저었다.

“바빠도 무조건 와야죠!  대단한 슈퍼스타를 볼 수 있는 기회인데!”
“아, 예. 그러세요.”
“물론 다른 이유도 있지만요.”
“다른 이유?”
“오빠가 뭔 짓거릴 하고 있는지도 제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 봐야겠어요.”
“무슨 소리야 대체…….”
“자꾸 그렇게 시치미 떼지 마요.”

기운이 빠진 나와 달리 다슬의 눈빛은 여전히 초롱초롱했다.
아니, 초롱초롱하다기보다는 이글거린다고 해야 되려나.

“방송에 찍힌 거 오빠 맞잖아요. 그런데 왜 자꾸 아닌 척 해요?”
“아니라고도 맞다고도 한  없거든.”
“그게 인정 안 한다는 거잖아요! 대답하긴 곤란하고, 그렇다고 거짓말하긴 싫고. 와, 전 오빠가 이렇게 치사한 사람인 줄 미처 몰랐어요.”
“치사하다니, 도대체 내가 뭘 했다고…….”
“그렇잖아요! 밤에는 그렇게 적극적이면서 괜히 아닌 척 내숭……. 으읍!”
”야, 이 미친……!“

서둘러 다슬의 입을 막은 나는 주변을 홱 살폈다.

이게 지하철에서 돌았나 진짜.
오늘따라 왜 이래?

다행히 소곤거리며 대화한 덕택에 우리의 대화를 들은 사람은 없는 듯했다.
마침 대낮이라 사람도 한적한 것도 있었고.

”휴우…….“

안도의 한숨을 쉬며 나는 다슬의 모습을 살폈다.
 손에 말문이 막힌 다슬이분하다는  날 올려다보고있었다.

”으으읍!“
”제발 공공장소에서는 이러지 말자. 응?“
”으으읍. 으읍.“
”안 한다는 뜻이지? 그렇게 이해해도 되는 거지?“
”읍.“

내 입에 막힌 채 암전히 고개를 끄덕이는 다슬.

후…….
귀여우니까  번 봐 준다.

”푸핫!“

내가 손을 떼자 다슬이 숨을 들이켰다.
다시 말문이 열린다슬이 말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아무튼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래서 제가 이렇게 확인하러 온 거라고요. 아셨어요? 내가 알바까지 하루 쉬고 온  누구 때문인지 이제 알겠냐고요?”
“미안하다고 사과라도 해야 되는 거냐?”
“흥.”

흥이라니…….

진짜 원래 세계에서 삐진 여자애들을 보는 기분이다.
아니, 애초에 남자도 삐지기야 삐지니까 딱히 특별한 건 아닌가?

그보다 벌써부터 이러면 좀 불안해지는데.

“미리 말해두는데.”

나는 토라진 다슬을 향해 경고하듯 쏘아붙였다.

“무슨 여친 마냥 행동하려 들지 마라. 너도 그 정도는 알겠지?”
“안 그럴 거거든요!”
“그래. 안 그래야 할 거다. 안 그러면.”

거기까지 말한 나는 일부러 분위기를 바꾸었다.
진지한 표정으로 돌변한  모습에 다슬이 긴장한 듯 나를 마주보았다.

“뭐…….  안 해도 알겠지.”

선을 넘으면 곧바로 우리와의 관계는 끝이다.
이 부분은 다슬을 비롯한 모든 섹파들에게 미리 견지해둔 부분이기도 하고.

여차하면 정말로 연을 끊는다는  정도는 이해하고 있을 테지.

“크으윽…….”

그렇다고 해도 머리와 가슴은 따로인 거겠지.
납득은 하면서도 분한 표정을 짓는 다슬을 보며 나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나도 이 세계에서 여러모로 사랑받는 존재가 되었구나.

-다음 역은 XX, XX입니다. 내리실 분은 오른쪽…….

오, 벌써 다 왔나.
이러쿵저러쿵 해도 얘랑 같이 오니까 심심할 틈은 없네.

“여기죠?”

문이 열리는 것과 함께 다슬이 내 팔뚝을 꼭 붙잡았다.

방금 전에 여친 행세 하지 말라고 그랬는데…….
뭐, 가슴 감촉이 좋으니까 그냥 이번엔 그냥 모른  하는 걸로.

“빨리 가요, 오빠.”
“알았으니까 그만 잡아당겨.”

팔을 잡아끄는 다슬과 함께 전철에서 내렸다.
나를 꼭 붙잡은 채 다슬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디로 가면되요?”
“여기 역 근처 공원 알지? 거기에서 촬영한다더라.”
“실내가 아니네요?”
“그래. 일단 빨리 가자. 이러다 늦겠다.”

참고로 촬영지는 역에서 거리가 있는 어느 한적한 공원.
즉 야외촬영이다.

공원으로 향하는 사이 다슬이 이런저런 것들을 묻기 시작했다.

“친구 관계니까 자연스럽게 밖에서 만나는 컨셉이라고 했죠?”
“어.”
“아쉽다. 방송국에서 촬영했으면 MC아저씨 얼굴도 봤을 텐데.”
“그랬으면 내가 널 데려올 수도 없었겠지.”
“대본 같은 것도 봤겠네요? 나중에는 연예인 집에 들어가거나 하는 거죠?”
“글쎄다.”

다슬에게 적당히 대꾸하는 한편 머릿속으로는 촬영에 대한 것들을 떠올렸다.

예능에서의  위치는 화정의 친한 이성 친구.
친구같이 친근하게 놀면서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느낌으로 촬영할 예정이라고 한다.
다만 이렇게 본격적인 촬영은 처음인지라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는 나도 정확히 아는 바가 없었다.
다슬에게 말한 대본이라는 것도 정말 기본적인 것만 포함되어 있을 뿐이고.

뭐, 화정의 친구라는 컨셉대로 편하게 하면 되는 거겠지?
관계자가 그 외에 딱히 요구한 것도 없으니까.

“오, 저기 있다.”

공원 중심으로 가자 각종 촬영기재 및 관련 스태프들이 가득 모여 있었다.
그 중 익숙한 PD의 얼굴을확인하고 곧장 그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아, 오셨네요.”

내 인사에 PD를 비롯한 각종 관계자들의 관심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음, 사실 나도 나지만얘도 여전히  팔을 잡고 있는 다슬과의 관계가 궁금한 눈치긴 한데…….
특히 여자 스태프들의 시선이 묘하게 무겁달까…….

“야, 너는 언제까지 붙어 있을 거야.”
“아, 왜요.”
“왜요고 나발이고.”

괜히 꼬투리 잡힐까 싶어 서둘러 손을 털자 입이 쭉 튀어나오는 다슬.
입이 댓발로 나온 다슬을 향해 나는 근처 벤치를 가리켰다.

“너는 저기서 구경하고 있어. 괜히 방해하지 말고.”
“방해 안 한다니까 그러네.”
“빨리.”
“쳇.”

툴툴거리면서도 다슬이  저항 없이 뒤쪽으로 몸을 돌렸다.
시무룩하게 걷는 다슬의 뒷모습을 보며 PD가 물었다.

“저 분은 전에 말한 친구 분이신가요?”
“네. 하도 구경하고싶다고 떼를 써서……. 괜찮을까요?“
“말했다시피 구경하는 정도야 상관없습니다.”

사실 나도 촬영장에 막무가내로 다슬을 데려온  아니었다.
혹시나 싶어서 미리 허락을 받은 상태였으니까.

“야외촬영이라 구경하는 정도는 크게 문제 없을 겁니다. 다만 촬영할 때는 떠들거나 카메라 안에 들어오거나 하면 안 되거든요. 그거만 주의하시면 괜찮습니다.”
“알겠습니다. 미리 일러둘게요.”
“일단 출연자 분들도 다  오셨고 준비도 해야 되니까 대기하고 계시면 됩니다. 준비되면 다시 부르겠습니다.”
“네.”

이후로는 각종 주의사항  대본을 숙지했는지 확인하는 등, 이런저런 일들로 시간을 쏟았다.
그렇게 20분 정도 뒤에야 겨우 촬영지 중심에서 빠져나올  있었다.

촬영하는  준비하는 시간도 생각보다 기네.

나는 저 멀리 벤치에 있는 다슬을 바라보았다.

“푸훗.”

마음에  드는지 여전히 뚱한 다슬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하긴 어지간히도 찬밥 신세긴 했지.

아직은 나도 여유시간이 있으니 조금 풀어줘 볼까.

“심심하지?”

내가 살갑게 다가가자 총총걸음으로 내게 다가오는 다슬.
막상 와 주니까 기뻤는지 표정이 한결 풀어졌다.

“……딱히요.”

꿍한 것처럼 보여도 이미 입가가 씰룩이는  다 보였다.
어울리지도 않게 삐진 척은.

“계속 이런 식일 텐데 괜찮겠어?”
“괜찮아요. 저도 그 정도 눈치는 있어요.”
“그런 거 치곤 기분이 나빠 보이는데?”
“그야 오빠가 팔도 막 내팽개치고 그러니까 그러죠…….”
“처음인데 긴장해서 그랬나봐. 미안.”

살살 풀어주는  말투에 겨우 심술이 풀린 것일까.
뚱하게 날 보던 다슬이 날 보며 피식 웃었다.

“뭐, 됐어요. 애초에 오빠도 오빠지만 여기 오는 이유가 오빠 때문만은 아니니까.”
“엥? 그럼 뭔데?”
“실은 연예인 되는 게  꿈이었거든요.”
“연예인?”

연예인이라니, 이건 또 생각도  했네.

확실히 전에 아이돌 같은 거에 관심이 많아 보이긴 하던데…….
설마 여기까지 따라온 것도 그거 때문이었나?

“그래서 이런 건 한 정도는 보고 싶었어요. 지금이야 학생 신분이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잖아요. 이런 식으로 교류도 생기면 저한테도 좋은 동기가 될 것 같았어요.”
“그랬구나.”

설마 이렇게까지 깊게 고민하고 있었을 줄이야.
솔직히 나한테 질투해서 따라온 거라 어림짐작하고 있었는데.

……어째  혼자 우쭐거린 거 같아서 좀 민망하네.

“아무튼 고마워요. 고집부린 거 들어줘서.”

쑥스러운 미소를 짓는 다슬의 모습에 차갑게 대했던 것이 조금후회됐다.
민망해하는 다슬을 향해 작게 고개를 저었다.

”아냐. 나야말로 미안하게 됐어.”
“괜찮다니까요. 오빠도 정신 없고긴장했을 테니까 이해해요.”
“연예계 쪽에 관심이 많은 건 이전에도 알았는데……. 그래도 설마  정도일 줄은 몰랐네.”
“말했다시피 제 고집일 뿐이니까요. 히히.”

내 말에 혀를 살짝 내밀며 장난스럽게 대꾸하는 다슬.
자꾸 그렇게  거 아닌 것처럼 말하면 내가 더 미안해잖아…….

그런 다슬에게 다시 입을 열려는 순간이었다.

“현수 씨?”

어느새 등 뒤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
고개를 돌리자 화정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 있는 게 보였다.

“아, 오셨…….”
“헐! 대박!”

하지만 내가 인사를 하기도 전에 먼저 선수를 치는 이가 있었으니.

“윤화정! ‘술병만 쌓여’ 20주 연속 음악차트 1위 달성한 그 윤화정 맞죠?!”
“네? 아, 맞긴 맞는데…….”
“엄마야, 언니이! 저 진짜 팬이에요!”

한 살  많으면서 언니는 무슨 언니?
허나 그리 태클  틈조차 없었다.

“진짜, 저 데뷔 전부터 보고 있었어요! 연습생 시절   육성 프로그램 방송 있잖아요! 막 그 재수 없는 프로듀서 새끼 욕하면서, 으, 제발 이 사람은 잘 됐으면……. 그랬는데! 막 뜨니까 제 일처럼 기뻐서!  잘 큰 자식을 떠나보내는 부모의 심정이 이럴까 했다니까요!”
“그, 그랬군요…….”
“그래서 처음에 데뷔하고 바로 앨범도  샀어요! 아, 그리고 또…….”

비글의 재강림.
머릿속으로 그 말이 떠오를 정도였다.

도대체  급격한감정기복은 뭐냐고.

몸까지섞어본 사이인데도 가끔 보이는 이런 감정변화는 지금도 영 적응이안 된단 말이지.

“아, 가, 감사…….”
“맞다, 싸인! 저 싸인 좀  주세요!”
“자, 잠깐, 일단 진정 좀…….”

 봐라.
화정 씨도 얘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지 않은가.

한창 화정을 들들 볶은 다슬이 이번에는 내게로 고개를 홱 돌렸다.

“오빠! 빨리 종이랑 펜!”
“오, 오빠……?”
“어휴…….”

진짜정신을 못 차리네.

한숨을 한  쉰 내가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딱밥을 날렸다.

“아야!”
“윤화정은 반말이고,  년아. 정신 좀 차려라.”
“아, 진짜! 그렇다고 때리고 그래요!”
“평소엔 네가 더 때리거든?”

방금 전까지 미안해한 감정이 절로 쏙 들어가네.

곧바로 입이 댓발로 튀어나온 다슬을 보며 나는 빈 공터로 손가락질했다.

“됐으니까 앉아 있어. 나중에 소개시켜 줄 테니까.”
“씨이……. 내가 더러워서 갑니다. 더러워서!”

다시 화가 난 다슬이 씩씩거리며 벤치로 돌아갔다.

어휴, 스물셋이나 먹었다는 녀석이 하는 짓은 초등학생보다 못한 수준이네.
아니면  정도로 연예인이 좋았던 건가?

“혀, 현수 씨?”

멍하니 있던 화연이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나를 바라보았다.

“저기, 방금 그 분은……?”
“그냥…….”

그런 화연에게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바보입니다. 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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