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7화 〉9. 비글, 골든 리트리버, 그리고……. 똥개?(2) (77/152)



〈 77화 〉9. 비글, 골든 리트리버, 그리고……. 똥개?(2)

“하아…….”

교무실 내부로 또 다시 한숨 소리가 푹 새어나온다.
숨길 기색도 없는 건지 대놓고  번씩이고 쉬는 한숨 소리에 주변 교사들이 그런 그녀를 힐끔거리며 살폈다.

그리고 또  번 한숨.

“하아아…….”

한숨을 쉬는 주인공을 정체는 바로 주화연.

주변 동료 교사들이 자신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건 진작에 눈치챘다.
허나 그럼에도 화연은 한숨을 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답답한 가슴에 한숨이라도 쉬지 않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하던 일을 벗어던지고 뛰쳐나갈 것만 같았으니까.

“후우우…….”
“저기…….  선생.”

그런 화연을 보다 못한 옆자리의 선생이 슬쩍 운을 띄웠다.

“무슨 일 있어요? 아까부터 왜 그리 한숨을 푹푹 쉬어?”
“아, 아뇨. 아하하.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래요……. 무슨  있으면 얘기해요.”
“아, 네. 죄송합니다.”

기어코 지적을 받은 화연의 고개가 푹 숙여졌다.
신성한 직장에서 이게 대체 무슨 꼴불견이란 말인가.

‘좋아, 집중하자. 집중!’

짝!

스스로의 볼을 가볍게 치며 고개를 흔드는 화연.
그런 화연의행동에 옆자리의 선생이 흠칫 몸을 떨었다.

하지만 그것도 찰나일 뿐.

‘……신경이 쓰이는 걸. 쓰고 싶지 않아도.’

컴퓨터에 집중하던 시선도 결국 얼마 가지 않아 흐트러져 갔다.
결국 화연의 머릿속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오늘이 촬영일이라고 했지.’

김현수.
처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흔들어놓은  남자에게로.

‘어쩌다 내가 그런 남자한테 홀려서…….’

그의 여성 관계가 얼마나 문란한지는 이미 뼈저리게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정말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연은 도저히  남자를 놓을 수가 없었다.

섹스 파트너라는 사실마저 숨기지 않는, 희대의 카사노바라 할지라도.
며칠 전 국내 유명 연예인과 스캔들을 터뜨려버린 이슈메이커임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사귀고 있는 관계도 아닌데도.

화연의 머릿속에는 온통  남자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역시……. 좋아하는 거겠지.’

이성을 좋아한다는 것.
화연으로서는 지금껏 한 번도 겪은  없는 색다른 감정이었다.

하지만 그녀도 스스로의 감정을 모를 만큼의 바보는 아니었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그녀는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상황에 만족하고 적당히 몸만 섞는 관계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그가 그어버린 일말의 선을 넘어버리는 모험을 감수할 것인지.

‘지금의 관계가 싫은 건 아니야. 하지만…….’

사실 화연도 서로의 몸을 탐하면서 가벼운 잡담을 나누는 지금의 관계가 싫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역시 더 친해지고 싶은걸.’

자신이 바라는 건 그 이상.

손을 잡으며 길을 걷는다던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마에 키스를 한다던가, 저녁날 소파에 몸을 기대 영화를 보며 잡담을 나눈다던가 하는, 그야말로 연인들이나 할만한 행위들.
화연은 현수와 그런 관계가 되길 원했다.
단순히 섹스에서 시작해서 섹스로 끝나는, 그저 섹파 관계로 남기에는 아쉬웠다.

그도 그럴 것이, 현수라는 사내는 워낙에 여자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남자였으니까.

‘어떻게 그렇게 여자 마음을 잘 아는 걸까.’

취미도 일반적인 여성들과 통하는 면이 있고, 털털하고, 매사에 간섭하는 면모도 없다.
거기에 남자답지 안헥 야한 짓을 여자 이상으로 좋아하고, 그러면서도 남자다운 얼굴과 꼴리는 몸매를 가지고 있다.
꼭 만화 속에 나오는 아름다운 히로인처럼 느껴질 정도로 현실감이 없는, 그야말로 여성들의 이상을 때려 박은 듯한 남자.
그게 바로 김현수라는 사내였다.

이런 남자에게 매력을 느끼지 않는 여자라면 레즈 혹은 성불구자 정도에 불과할 거다.
그리고 아마 그와 만나고 있는 섹파들도 자신의 기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화연은 생각했다.

‘그렇다면 먼저 깊은 관계가 되어야 해.’

양날의 검.

가장 먼저 선을 넘고 성공해서 가장 깊은 관계가 되든가.
아니면 가장 먼저 깨지고 나가떨어지든가.

사실 한 번 선을 넘었다가 된통 마음고생을 했던 경험이 있던 화연으로서는, 지금껏 조심스러운 태도로 그와의 관계를 유지하고자 했다.

하지만 오늘 티비에 나온 그를 본 순간,  계획을 전면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아닌, 그가 먼저 다가올  있는 여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것도 다른 여자가 아닌, 누구보다 자신을 최우선으로 해서.

‘내가……. 가능할까?’

하지만 지금 현수의 경쟁상대를 떠올리는 순간 기가  죽어버린다.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힘들 텐데.
그 유명한 윤화정과의 스캔들이라니.

반면 자신이야  볼일 없는 고등학교 선생님일 뿐.
믿음직하지못한 외모와 성격에, 돈도 그렇게 잘 버는 것도 아니다.

현수처럼 잘 생긴 남자가 나 같은 평범한 여자와 만날 메리트는 어디에도 없겠지.

‘역시 남자들은 연예인을  좋아하려나……?’

물론 현수가 허영심에 찬 다른 남자들과는 다르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첫 남자지만, 그가 다른 남자들과는 확연히 다른 가치관을 지녔다는 것은 화연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몸은 섞을지언정 마음은 주지 않는다.
그게 바로  남자의 스타일.

그렇다면 분명 다른 여자들에게도 휩쓸리지 않을 터다.
분명히 그럴 것이다.

‘아마 지금쯤이면 윤화정이라는 여자와 말도 많이 섞었겠지? 거기다 분명 현수라면 다른 여자들이 가만히 안 둘 거야. 어쩌면 연인 행세하는 년 하나가 따라가서 귀찮게 굴겠지. 아니,어쩌면이 아니라 확실해. 나조차도 화면에서  현수의실루엣만으로도 머리가 부글부글 끓었는걸? 다른 여자들이라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 자, 잠깐. 설마 귀찮답시고 그 여자랑 같이 놀아나다가  스캔들이 터지기라도 하면……! 그, 그것만은 안 돼!’

하지만, 분명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으으으……!”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생각 속.
주화연은 결국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교감 선생님!  반차 좀 쓰겠습니다!”

***

비글의 신이 강림한 최다슬을 진정시킨 뒤.
멀리서 지켜보는 다슬을 뒤로 한 채, 나는 PD에게 첫 출연에 앞서 간단한 사전 설명을 들었다.

“저기 맞은편에 작가 보이죠? 저기서 신호를 줄  들어가셔야 합니다.”
“아, 네.”
“대본은 읽어 보셨죠?”
“당연히 읽어 봤죠.”
“굳이 대본에 얽매일 필요는 없어요. 대충 그런 흐름이란 것 정도는 알아두면 좋다는 거니까. 그 외에는 자연스럽게 하던 대로하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설명을 들을수록 내가 알던 리얼 버라이어티와는 같은 듯 다른 느낌이다.

하긴 공중파이니 아무리 리얼이니 뭐니 해도 대본 정도는 있겠지.
그래도 막상 당사자로 움직여야 되는 입장이 되니 묘한 기분이다.

“그럼 촬영 들어가겠습니다! 스탠바이……. 큐!”

촬영 시작을 알리는 PD의 신호.
곧이어 큐 사인에 맞춰 촬영이 시작되었다.

화정의 움직임에 맞춰 카메라맨을 비롯한 스태프들도 그녀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참고로  촬영은 평소 화정의 일상을 보여주는 것 중의 하나.
이런 공원에 온 것도 평소 화정의 모습, 즉 바깥에서 종종 운동을 하는 화정의 모습을 찍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저 사람은 운동복도  어울리네.

“우으으응.”

그렇게 화정이 몸만 움직이길 약 5분 여.
화정이 기지개를 켜는 사이 맞은편에 있던 작가가 날 보며 손짓하는 게 보였다.

슬슬  차례인가.

“어, 어이.”

나는 자연스럽게 반말로 인사하며 화정을 불렀다.
일단 우리 사이는 친구 관계라는 설정이니까.

그보다  카메라들…….
어째 진정이  되네.

“어, 왔어?”
“어, 어.”
“왜 말을 더듬어?”

내 반응에 맞춰 화정도 자연스럽게 반말로 응수.
전혀 연기인 티가 나지 않는 모습이다.

반면 나는 촬영이라 그런지 평소와 달리 어색함이 넘쳐난다.
미치겠네.

그런  모습에 화정이 작게 웃었다.

“풋. 뭐야. 어쩐지 평소랑 다르네?”
“그야 뭐……. 주변에 카메라가 이렇게 있으니까.”
“너 그렇게 긴장한 거 처음 봐.”
“티 나?”
“안 나겠어?”

내 말에 화정이 생긋 웃었다.
그러더니 내게 다가온 화정이 작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괜찮아. 그냥 편하게 해. 어차피 다 편집 하니까.”

나를 배려하고 있다는  확연하게 느껴지는 분위기다.
익숙하면서도 부드럽게 조언하는 화정의 말투에 절로 긴장이 풀리는 게 느껴졌다.

저렇게 수많은 카메라와 사람들 앞에서도 저토록 자연스러운 모습이라니.
확실히 프로는 프로구나.

“너무 어색하게 말하지만 않으면 돼. 친구끼리 존댓말하면  이상하니까.”
“알았어.”
“사실 따지고 보면 컨셉상 친구도 아니잖아. 우리 정도면 컨셉이 아니라 진짜 친구 아니야?”

확실히 화정의 말대로다.

우리는 이미 술자리에서 서로의 깊은 속내까지 털어놓고 이번 방송에 나가기까지 한 번의 사건사고를 겪은 바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돈독해지지 않는다는  오히려 더 어색한 거 아닐까.
뭐, 따지고 보면 내가 오빠고 얘가 동생이긴 하지만.

아무튼 그리 생각해보면 오히려 촬영 중인 지금의 말투가 더 자연스러운 모습이긴 할 거다.
내가 최대한 적응하는 수밖에.

“그런데 이런 말까지 다 해도 되는 거냐?”
“괜찮아. 말했다시피  편집하니까. 그냥 편하게 얘기하면 돼.”
“아니, 곤란한 것까지 말하면  되잖아.”
“난 좋은데? 방송 흥행하면 나도 좋고 방송에 도움도 되니까. 오빠가 곤란해지는 게 문제가 될 순 있겠지만.”
“그 무책임한 발언은 뭔데.”
“에이. 이제 와서 발 빼면 안 되지. 계약서에 싸인 다 했으면서.”
“아니, 그거야 그렇다만…….”

촬영이 진행되고 이야기를 나누어감에 따라 화정을 부르는  호칭도 점차 자연스러워졌다.
어느새 내 머릿속에서도 ‘화정 씨’가 아닌 ‘야’라는 호칭이 더 착착 감기고 있었다.

“그럼 시작할까?”
“뭘?”
“뭐긴 뭐야. 오늘 운동하러온 거 아니었어?”

그러고 보니 그랬지.

화정의 말에 나는 이번 촬영이 공원에서 화정과 운동을 하는 컨셉으로 진행된다는 걸 떠올렸다.

참고로 지금 나는 그녀와 운동 외에는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조차모른다.
대본으로 운동하는 화정을 대충 따라하는 역할일 뿐.

“후후, 그럼 간다!”

그러니 이런 식으로 즉흥적으로 진행되는 것도 뭐 어쩌지 못한다는 얘기다.

“레디, 고!”

싱글거리며 웃던 화정이 갑자기 달리기를 시작했다.
아니, 갑자기 뭔데?!

“야! 뭐야?!”
“200미터 달리기! 늦은 사람이 오늘 저녁 쏘기!”
“치사하게 먼저 뛰어놓고는!”
“저기 농구골대까지다! 알았지!”

 말을 아예 듣지도 않고 뛰어나가는 화정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았다.
지금의 나한테 이런 도전을 한다고?

“안 되지!”

피식 웃은 나는 그대로 다리를 놀렸다.

“헉!”

뒤늦게 달리던 내가 화정을 제치는 데에는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지금의 내 육체는 이 세계에서는 살인전차나 다름없는 수준.
남자는 왜소하고 의욕도 적은 편인 데다가, 여자는 신체적으로 남자에게 처질 수밖에 없으니까.

당연히 이런 기본적인 피지컬은 앞설 수밖에 없다 이거지.

“후우.”

그렇게 나는 한참을 앞서 화정이 말한 지점에 도착했다.
그래도 간만에 전력질주 하니까 힘드네.

“하악, 하악…….”

뒤를 돌아보자 화정이 숨을 헐떡이는 게 보였다.
어떻게 잘도 따라잡았네.

“하아, 흐에엑, 힘들어…….뭐 이렇게 잘 뛰어…….”

볼멘소리를 하며 목덜미로 흘러내리는 땀을 닦는 화정.
목선을 타고 흘러내리는 땀방울이 반짝거리며 체육복을 짙게 물들였다.

“오빠 엄청 빠르다……. 후우, 평소에 운동 하나도  할 거 같은데.”
“그거 욕이지?”
“그럼 칭찬이겠어?”
“말 참 예쁘게 하네.”
“아, 맞다. 오빠 그거 나갈 거야.”
“그게 뭔데?”
“이번에 나 스캔들 터졌잖아.”

아니, 잠깐만.
설마 여기서 그런 얘기까지 하는 건가?

“나중에 방송에서는그게 오빠라고 나갈 거야. MC들이랑 얘기하면서.”

지금 발언은 편집해야 되는 거 아닌가?

그녀의 말에 나는 서둘러 멀찍이 있는 PD의 모습을 살폈다.
허나 PD는 문제없다는 듯 계속 하라는 제스처를 취할 뿐이었다.

그런 내 모습에 화정이 의아하다는  나를 바라보았다.

“왜 그래?”
“어……. 괜찮겠냐?”
“뭐가?”
“아니, 괜히 나 때문에 이번에 고생 좀 했잖아. 그런 말까지 하면…….”
“그런 걱정 안 해도 돼. 원래 이런 건 여자가 다 수습하는 거야. 애초에 수습이고 뭐고  것도 없지. 당사자끼리 여기서 이렇게 말하고 있으니까.”

 불안한 심정과 달리 화정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그런 소릴 태연하게 하고 있었다.

괜찮은 거 맞나 이거…….
진짜 친구한테 얘기할 것들을 다 얘기하고 있는데.

“방송으로  보여주는 거야. 우리는 그냥 이렇게 좀 친한 오빠 동생 사이일 뿐입니다, 하고.”
“……그걸로 끝?”
“응. 끝.”

거 참으로 담백하네.
회사에서 대표에게  지랄을 받은 게 허무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래서 우리 그냥 친구 맞지?”
“그렇지.”

 대답에 화정이 미소를 지었다.

“응. 그렇게 말해주면 돼.”

시원섭섭한 듯 묘하게 섭섭한 듯한 표정.
그런화정을 보며 나는 장난기가 발동하는 것을 느꼈다.

어차피 편집한다고 했지.
그렇다면.

“아쉽게 됐네."

나도 장난 좀 쳐 볼까.

"나는 나쁜 기분 아니었는데.”
“……어?”
“솔직히 너도 스캔들 나고 상상 좀 해보지 않았냐? 우리 사귀는 거?”
“어, 그, 그건.”

내 말에 화정이 당황한 건 물론.
심지어 주변에서 우리를 찍고 있던 스태프들마저 술렁이기 시작했다.

흠, 그냥 장난친 건데.
반응이 꽤 재밌네.

”노, 노코멘트.“
”그래?"

촬영 중 처음으로 당황한 모습을 보이는 화정을 보며 나는 미소를 지었다.

"난 상상  해봤는데.“
”……엇.“

내 말에 순간적으로 화정이 벙찐 표정을 지었다.
허나 그것도 잠시.

”아, 진짜!“
”푸하하!“

잔뜩 화가 난 화정의 모습을 보며 나는 크게 웃었다.
얘도 은근히 놀리는 맛이 있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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