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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화 〉10. 나 홀로 여행(7) (90/152)



〈 90화 〉10. 나 홀로 여행(7)

그 길로 우리는 곧바로 숙소 근처의 편의점으로 향했다.

“계산은 내가 할게.”
“아, 네.”
“크흠……. 라면 고르고 있어봐. 따로 살 게 있어서.”

뭘 따로 산다는 건지는 굳이 묻지 않았다.
아마도 콘돔이나 피임약 같은 것일 테지.

뭐, 사실 내가 사도 상관없긴 하지만……. 나라고 해도 전혀 쑥스럽지 않은 건 아니니까.
이런 부분에서는 확실히 정조가 바뀐 이 세계가 좀 편하긴 하다.

나는 그녀의 배려심을 고맙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애초에 라면도 별 필요는 없긴 한데, 일단 명분이 라면 먹자는 거니 또 무시할 순 없는 노릇.
여기서는 대충 고르는 척이라도 해야겠지.

모른 척 라면을 고른  나는 식품코너에서 왔다 갔다 하는 은지의 등을 탁 쳤다.

“더 살 거 있어요?”
“어?”

목적 없이 서성이던 그녀가 화들짝 놀라 뒤를 바라보았다.
손에 쥔 무언가를 슬쩍 감춘 그녀가 아무렇지 않은 척 입을 열었다.

“아니, 뭐……. 그, 그냥 구경 좀 했어. 라면은 샀고?”
“네.”
“음……. 그래.”

그리 말한 송은지가슬쩍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 그럼 가자.”

당당한 척 날 이끌지만 말도 더듬고 손도 약간 떨리는 게 느껴진다.
피식 웃은 나는 그대로 그녀의 끌림을 받아들였다.

이후 알바가 계산을 하는 동안 우리는 말없이 가만히 계산대 앞에 서 있었다.

삑. 삑.

묘한 침묵 속에서 바코드를 찍는 소리만이 울려퍼졌다.

“…….”

계산 도중에 슬쩍 슬쩍 우리를 보는 알바의 표정이 묘했다,
계산 도중 송은지가 은근슬쩍 들고 있던 콘돔을 내려놓자 알바의 손이 움찔 떨리는  보였다.

참고로 성별은 여자.

대충 머릿속으로 야동 한 편 뚝딱 만들고 있는 거겠지.
이것도  봐도 비디오다.

“……만 팔천 칠백 원입니다.”

그리 말한 알바가 슬쩍 고개를 들어 나와 송은지를 번갈아 보았다.
표정에 부러움이 역력한 기색이다.

“수고하세요.”

반면 송은지는 아무렇지 않은  하면서도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 있었다.
그것도 여전히 내 허리에팔을 감은 채로.

그래, 자랑 좀 하고 싶겠지.

이해는 한다.
이해는 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웃음 참기가 힘드냐.

“후우우…….”

한껏 진지한 송은지의 표정에 심호흡을 하며 겨우 심신을 다스렸다.

“감사합니다…….”

씁쓸한 목소리로 인사를 하는 알바를 뒤로  채 우리는 편의점을 나왔다.

“…….”

호텔로 가는 사이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뭐, 나야 편하게 말해도 별 상관없긴 하지만…….
가끔은 이런 것도 나쁘진 않으니까.

굳이 분위기를 깰 생각은 없기에 그냥 가만히 그녀의 끌림에 맞춰 걸었다.

숙소로 향하는 동안 힐끔힐끔 날 보는 누나의 시선이뜨겁다.

“저기……. 현수야.”

결국 참지 못한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저, 정말 라면만 먹는 건 아니지?”
“풋!”

아, 미치겠네 진짜.
분위기를 잡으려 해도 자꾸 웃기게 만들어.

“푸하하하!”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나이가 스물여덟인데 설마 애인  번 못 사귄 건 아닐 테고.
그런데도 이 정도로 순진한 건가.

이건 나보다 더 심하잖아.

살다 살다 이런 숙맥은 또 처음이다.

“아, 진짜! 웬만하면 참으려 했더니! 큭, 푸하하하!”
“야, 나 진지하거든!”
“흐음, 그러시구나.”

은지와 눈을 맞춘 나는 돌연 웃음기를 싹 거두었다.
화를 내던 은지가 갑자기 돌변한 내 분위기에 순식간에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여자치고는 꽤 큰 키의 그녀지만 180cm를 넘기는 내 키에는 그녀로서도 올려다보는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시선이 아래쪽에 있는 만큼 약간의 위압감은 느껴질 터.

“왜요?”

하지만 하는 짓은 마치 깍쟁이처럼.
슬쩍 무릎을 굽혀 그녀와 눈을 맞춘다.

꿀꺽.

침을 삼키는 소리에 다시   터지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아냈다.

나는 여유로운 미소를 유지한 채 물었다.

“라면 말고 딴 거 먹고 싶어요?”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사실 전 더 먹고 싶은 게 있긴 한데.”

거기까지 말한 내가 입술을  핥았다.

“누나도 그렇죠?”

뭐, 여기서 너무 대놓고 말하면 재미없지.
가끔은 이렇게 분위기 잡아주는 것도 좋다 이 말이야.

내 아찔한 표정 연기에 숨이 멎을 듯한 표정을 짓던 것도 잠시.

“……그래.”

한참을 멍하니 있던 은지가 겨우 정신을 차렸다.

“그, 그럼……. 갈까.”

더듬더듬 입을 열던 것도 찰나.
결연한 표정을 지은 그녀가 다시  옆구리를 확 낚아챘다.

나는 그런은지의 행동이 마치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으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네. 가요.”

씩 웃은 내가 그녀의 끌림에 맞춰 걸었다.
그렇게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이번에는 정말로, 우리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걸었다.


***

“들어오세요.”
“아, 응…….”
“으, 더워. 땀 너무 흘렸네.”
“…….”
“누나도 찝찝하죠? 먼저 씻어요.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아,  괜찮은데…….”
“아니에요. 괜찮으니까 먼저 들어가요. 저는 좀 준비할 게 있어서.”
“주, 준비?”
“벌써 알면 재미없죠.”
“……알았어. 그럼 먼저 씻을게.”
“네. 아, 그리고 안에 세면용품 다 있으니까그냥 그거 쓰시면 돼요. 가운도 두  있으니까그거 입어도 되고요.”
“어, 어어.”

내 마지막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은지가 화장실로 헐레벌떡 들어갔다.
그녀가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물이 쏴아아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제서야 나는 참았던 웃음을 다시  번 터뜨렸다.

“푸하하하!”

아, 진짜 웃음 참는다고 혼났네.

“하아…….”

한참을 웃은 뒤에야 나는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여전히 씻고 있는 그녀를 뒤로  채 나는 베란다 쪽으로 향했다.

“후우.”

방을 나오자 느껴지는 섬 특유의 텁텁함과 6월 말의 더위가 겹친 무더운 공기.
어둠 속에서 저 멀리 보이는 해안가와 도로마다 심어진 야자수, 반짝반짝 빛나는 야경을 나는 가만히바라보았다.

“크으……. 죽이네.”

그리 높은 층도 아닌데 전경이 절경이다.

꽤 비싸서 예약할 때 고민됐었는데 그래도 돈값은 하는군.

“…….”

혼자서 가만히 있다 보니 자연스레 마음이 차분해지는 게 느껴진다.

후덥지근한 공기와 어둑한 배경 속에서 나는 앞으로의 일들을, 그리고 지금껏 이 세계에서 몸을 섞은 여자들을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여전히 누구 하나를 포기할 생각은 안 든다.
그렇다고 함부로 하고 싶지도 않다.

결국 남은 방법은 하나.

“역시하렘뿐인가…….”

머릿속으로 내린 결론은 모두와 사귀는 것뿐이다.
그것도  여자들 모두에게 공인을 받는 형태로.

그것이 지금의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세계에서의 생활이었다.

“쉽진 않겠지.”

허나 내 몸은 하나에 불과하다.
분신술이라도 쓰지 않는  만날 수 있는 여자에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아무리 몸이 튼튼하고 말도 안 되는 정력을 지녔다지만 시간은 유한하다.
결국 만나는 여자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각각의 파트너들과 함께할  있는 시간도 줄어들 것이다.

그렇다면.

“웬만하면  늘리지 말아야겠어.”

이번 여행이 마지막이다.
이번 여행을 끝으로, 섹파를 만드는 건 최대한 지양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계속 날 좋아해주는 여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성의일 테니까.

아, 물론 전부터 눈독을 들인 여자들은 제외다.
어차피 내가 들이댄다고 무조건 날 따라온다는 보장도 없고.

“……하.”

내가 생각해도 터무니없는 생각에 절로 쓴웃음이 지어진다.
진짜 욕심 그득한 소망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처음  세계에서 폭주한 이후, 지금의 나는 멈출 수 없는 8톤 트럭이 되어 있었다.
그저 아직 망가지지 않은 브레이크를 밟으며 최대한 속도를 늦추는 게 고작일 뿐이다.

단순히 이런 세계에 왔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세계는 소설  설정을 따라가고 있기에.
그리고 나는  소설을 본 독자 중 한 명이기에.
무엇보다 원래의 주인공이었던 정기발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기에.

가진 능력이 있는데 썩힐 생각은 없다.
성인군자 마냥 가만히 있고 싶지는 않다.

그러니까 할 수 있는 만큼은 최대한 해보고 싶다.

"뭐, 복잡한 건 이후에 차차 생각하는 걸로 하고."

일단은 이 며칠간 내 나름의 마지막 총각파티를 만끽하도록 하자.

그리 생각하며 나는 몸을 돌렸다.

“아.”

그렇게 베란다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온 순간.
나는 방금 전의 고민을 모두 잊어버리고 말았다.

눈앞에는 마침 타이밍 좋게 샤워를 마치고 나은 송은지의 모습이 보였으니까.

“…….”

나는 멍하니 그런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더운 날씨에도 따뜻한 물로 씻은 듯 길게 젖은 머릿결에서 김이 피어오르고, 두꺼운 가운으로도 미처  가리지 못한 가슴골과 아래로 적나라하게 드러난 탱탱한 양 허벅지는 기름이라도 바른 듯 좌르르 윤기가 흐르고 있었다.

그 모습은 당장이라도 뛰어들고 싶을 정도로 육감적인 모습이었다.

“…….”

뭐, 스튜어디스복 입었을 때도 예상은 했지만…….
이건 진짜 상상 이상인데.

특히 이 세계에서 보기 힘든 ‘여성’스러운 면모라는 점에서더더욱.

“현수야.”

가만히 있는 내 모습에서 뭔가를 느낀 것일까.

나와 눈이 마주친 그녀가 어느새자신감을 되찾은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  씻었는데.”
“…….”
“현수야? 괜찮니?”
“어……. 아, 네. 씻어야죠.”

의아해하는 그녀의 목소리에 나는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당장이라도 안겨들고픈 충동을 억누르며 나는 겨우 걸음을 옮겼다.

“그, 그럼 저도 씻고 올게요.”
“……아니, 안 씻어도 돼.”
“네?”

그 말에 의아해하는 것도 찰나.

화장실로 향하려는 내 앞을 막은 은지가 침대 쪽으로 날 홱 밀쳐냈다.

“우왓!”

뭐라 항변할 틈도 없이 나는 그대로 침대로쓰러졌다.

"얍."

밝게 빛나는 천장의 형광등을 가리듯 은지가 내 위로 올라섰다.

스르륵.

가운이 벗겨지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나신이 드러났다.
거대한 봉우리와는 비교되는 앙증맞은 핑크색 두 꼭지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후후후.”

처음 보여줬던 '여성스러움'은 사라진 지 오래.
부끄러운 기색도 없이 그녀는 날 깔아뭉갠 자세 그대로 미소를 자신만만한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하아…….”

누나의 뜨거운 숨결이 내 귓불을 아찔하게 간지럽혔다.

그와 동시에 아랫도리에서 똑, 하고 떨어지는 투명한 물방울이 느껴졌다.

단순히 씻고 덜 닦은 물이 하필 그쪽에서 떨어졌을 뿐일까.
아니면 그녀의 욕정을 드러내는 끈적한 샘물인 것일까.

“현수야, 나 더 못 참겠어…….”

간드러진 목소리로 그녀가 내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응? 이대로……. 괜찮지?”
“저, 저기요. 누나?”
“후후, 당황했구나? 의외로 귀여운 구석이 있네.”
“그, 일단 저  씻고 싶은데…….”
“난 안 씻는 게  좋은데?”

……이 누나, 생각보다 터프한 면이 있네.

숙소로 오기까진 얌전했던 사람이 갑자기 이렇게 확 변하니 좀 당황스러울 지경이다.

아니, 뭐…….
싫은 건 아니지만…….

“자, 누나가 벗겨줄게.”

어느새 내 옷깃을 쥔 그녀가 능숙하게 상의를 벗겨내기 시작했다.
 복근을 확인한 그녀의 눈빛이 한층 더 탐욕스러워졌다.

“우리 현수, 몸 엄청 좋네?  마음에 드는걸.”
“자, 잠깐만요.”

이대로라면 완전 페이스에 말려들게 생겼다.
가까스로 정신을 유지하며 나는 어떻게든 시간을 끌고자 변명을 짜냈다.

“라, 라면 안 먹어요?”
“아직도 그런 소릴 하는 거야?”
“이, 일단은 라면 먹자고 부른 거잖아요?”
“글쎄. 난 딴   먹고 싶은데.”
“저기, 누나. 마음은 알겠는데 일단 진정하시고…….”
“진정 못하겠는데?”

 순간.
내 젖꼭지를 향해 기습적인 감각이 확 들어왔다.

“허윽!”

검지와 엄지를 이용해 살살 내 것을 돌리기 시작하는 송은지.
환상적인 그녀의 테크닉에 절로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후후.”

그런 내 반응에 한층 더 즐거움을 느낀 것일까.

즐거워하는 웃음소리와 함께 가슴을 자극하는 그녀의 손가락 놀림이 한층  강해졌다.

“여기까지 와서 발뺌하면 안 되지.”
“헉, 누, 누나, 잠깐……. 흐윽!”
“라면보다  맛있는 거 먹게 해 준다며?”

그리 말한 송은지가 문득 고개를 들고는 나와 눈을 맞추었다.

“각오해.”

악마 같은 미소를 짓던 것도 잠시.
그대로  얼굴로 돌진한 그녀가 내 귓불을  깨물었다.

“허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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