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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7화 〉 15. 미남은 덮밥을 좋아해(6) (127/152)

〈 127화 〉 15. 미남은 덮밥을 좋아해(6)

* * *

현수가 떠나고 난 뒤, 화린은 홀로 평평한 돌덩어리에 힘없이 앉아 있었다.

찰랑.

손을 휘적일 때마다 튀어 오르는 맑은 계곡물.

반짝이며 튀어오르는 물방울 너머로 계곡 안에서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허나 그런 광경을 볼수록 화린의 기분은 더욱 우울해져갈 뿐이었다.

”하아…….“

한숨을 푹 쉬는 화린의 머릿속으로 방금 전의 일이 떠올랐다.

‘갑자기 키스는 왜 해 가지고…….’

사실 오빠가 자신의 언니와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것 정도는 어느 정도 의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에게도 어느 정도 기회는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고 있기도 했다.

스스로 나름 괜찮은 얼굴이라 자부하고 있었고, 몸매도 이 정도면 괜찮은 편이라 생각한다.

비교적 남자들이 외모를 안 본다고는 하지만 기왕이면 예쁜 걸 선호할 테고.

조금 돌발적이긴 했지만 키스도 그러한 목적의 일환이었다.

나를 여자로 보지 않는다면 포기하기 전에 한 번 정도는 던져보자.

그럴 요량으로.

”…….“

하지만 막상 언니와 무슨 관계나고 물어봤을 때 오빠가 보여주었던 표정.

그 표정을 보는 순간 화린은 가슴이 바늘로 쿡쿡 찌르는 기분을 받았다.

그 먹먹한 감정 속에서 제대로 대답조차 하지 못하고 당황하는 오빠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왈칵 쏟아내고 말았다.

그리고 화린은 그런 자신이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으으……!”

홱홱 발을 휘젓자 이전보다 많은 물방울이 튀며 화린의 얼굴까지 닿았다.

하지만 이미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화린의 얼굴을 식힐 정도는 되지 못했다.

“거기서 왜 운 거냐고, 병신아……!”

부끄러움을 참지 못한 화린이 고개를 무릎 사이로 파묻었다.

하필이면 왜 오빠 앞에서 그렇게 형편없이 울어버린 걸까.

제대로 자신을 여자로 봐 주기를 원한다면, 그렇게 어린애처럼 굴면 안 되는 거였는데.

찰랑.

담가놓은 발이 점차 차가워지는 것을 느끼며 슬그머니 발을 빼는 화린.

쪼그려 앉아 있던 화린이 고개를 들어 펜션이 있는 곳으로 시선을 던졌다.

‘……늦네.’

오빠가 파스를 가져오겠다고 펜션으로 올라간 지 한 10분.

고작 파스 하나 찾는다고 이렇게 늦게 온다는 건 이상했다.

‘설마 둘이서 나 빼놓고 이상한 짓이라도 하고 있는 건…….’

불안한 생각에 무리해서라도 올라가야 하나 화린이 고민하는 사이.

“화린아!”

목소리에 화린이 고개를 들자 헐레벌떡 내려오는 언니의 모습이 보였다.

그 뒤로 무언가를 든 채 쫄래쫄래 뒤따라오는 오빠까지.

그제서야 화린의 얼굴에 묻어있던 그늘이 아주 조금 걷혀졌다.

“언니.”

“괜찮아?!”

“꺅!”

지척까지 다가와 자신을 와락 껴안은 언니.

화연의 품에 안긴 화린이 슬쩍 뒤로 시선을 돌렸다.

거기에는 현수 오빠가 쓴웃음을 지으며 우리를 바라보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 현수의 모습에 화린이 미처 마주보지 못하고 시선을 돌렸다.

“보자. 얼마나 다친 거야?”

포옹을 끝낸 화연이 걱정스럽다는 듯 물었다.

화를 낼 거라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언니의 표정에는 미안함과 불안한 감정만이 보였을 뿐이었다.

‘평소라면 혼부터 내고 봤을 텐데.’

묘한 기분 속에서 화린이 다시 슬쩍 뒤를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민망하다는 듯 멀거니 서서 볼을 긁적이는 현수의 모습이 보였다,

두 사람의 표정 속에서 읽혀지는 감정을 확인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왠지는 몰라도, 둘 다 자신에게 굉장히 미안해하고 있었다.

‘아, 아니야.’

그것을 깨달은 순간 화린은 얼굴 표정을 쉽사리 숨기기가 힘들었다.

‘설마 나까지 있는데 그럴 리가.’

속으로 불안감이 싹트는 것을 외면한 화린이 애써 언니에게 웃어 보였다.

“호들갑은. 그냥 조금 삔 정도야.”

“너 표정이 안 좋은데? 정말 괜찮아?”

“뭐, 뭔 소리야. 이제 그만해. 언니가 보면 뭐 안다고…….”

“그래도 파스 정도는 붙여줘야지.”

툴툴거리는 자신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싫은 기색 한 번 없이 파스를 붙여주는 언니.

평소와는 다르게 친절한 그녀의 태도에 화린은 속이 타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별 거 아닌 척, 화린이 슬그머니 꺼내고 싶지 않았던 질문을 꺼내들었다.

“뭐 한다고 이렇게 늦었어?”

“어?”

그 순간 화린은 자신의 언니에게서 보여준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누가 봐도 당황함이 역력한 표정이다.

그것을 본 순간 화린은 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설마……. 진짜로 한 거야?

날 이렇게 내버려 두고?

“뭐 한다고 이렇게 늦게 오냐고.”

이제는 싸늘해지는 목소리를 숨기지도 않은 채 대답하는 화린.

그런 화린의 모습에 도리여 화연이 당황한 듯 눈알을 이리저리 굴렸다.

“어, 아, 그게……. 파스 좀 찾는다고.”

“……정말?”

“다, 당연하지. 그리고 텐트도 쳐야 되니까. 그거 좀 준비한다고 그랬어. 그치, 현수야?”

“어? 어어.”

어리숙하기 그지없는 화연의 말투.

그런 언니를 보며 화린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불리하니까 오빠한테 시선 돌리게 하네.’

설마 저러고도 내가 모를 거라 생각한 건가?

언니가 순진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만, 그래도 나를 너무 물로 보는 게 아닌가?

“어, 아무튼 그렇게 크게 다친 건 아닌 모양이니까.”

누가 봐도 티 나게 말을 돌린 화연이 땅에 놓인 텐트를 들고 벌떡 일어났다.

“그래도 너무 무리하진 말고. 알았지?”

“알았어.”

하지만 지금은 모른 척 해 주자.

나도 다 생각이 있어.

오빠를 언니한테 넋 놓고 뺏기진 않을 거야.

“저기, 그럼……. 난 저기서 텐트 치고 있을게!”

살았다는 표정으로 텐트 재료를 들고는 재빨리 멀어져가는 화연.

마치 도망가듯이 사라지는 화연의 모습에 현수가 재빨리 그녀의 뒤를 따르려 했다.

“야, 나도 도와줄…….”

“오빠.”

그 순간 화린이 현수의 팔목을 꽉 붙잡았다.

“오빠는 여기 있어요.”

이글이글 불타는 눈빛으로 화린이 현수를 바라보았다.

***

웃음기 하나 없이 날 바라보는 화린.

그 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저런 건 원래 여자가 하는 거예요. 그냥 앉아 있어요.”

“아니, 그래도.”

“헐. 아픈 사람 두고 그냥 가게요?”

“언젠 별로 안 아프다며…….”

“됐으니까 여기 있어요.”

묘한 박력에 나는 화린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자리에 앉은 채 나는 멀어져가는 화연의 뒷모습을 허망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치사한테 나한테 몰아놓고 도망가기냐?

그냥 여기서 치면 되지 왜 그렇게 멀리까지 가냐고!

자리에 앉은 채 나는 말이 없어진 화린의 눈치를 살폈다.

‘보니까 대충 눈치챈 거 같은데.’

화연이 갑자기 미쳐가지고 내 고추 빨 때부터 이미 싸하긴 했다.

그 놈의 성욕이 뭐라고 진짜.

일단은 어떻게 분위기라도 풀어야 될 거 같은데…….

“어……. 물 좀 가져왔는데. 마실래?”

“됐어요.”

“그, 그래.”

찬바람이 풀풀 부는 화린의 말투에 들었던 보온병을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하긴, 위에서 파스 가져온다고 해 놓고는 10분이 넘게 그 지랄을 해 댔으니.

화린 입장에서는 일단 의심하는 게 당연하겠지.

“…….”

“…….”

말이 없어진 나를 가만히 노려보는 화린.

의심 가득한 그 눈초리에 내 입술은 바짝바짝 말라가기 시작했다.

이, 일단 나라도 목 좀 축이자.

“오빠.”

내가 물을 마시는 사이 화린이 결심한 듯 말문을 열었다.

“언니랑 했어요?”

“풉!”

나는 참지 못하고 마시던 물을 그대로 뿜어 버렸다.

“콜록! 콜록!”

“당황하는 거 보니까 맞네.”

“아니, 케헥! 뭐, 뭔 소리야?!”

“그럼 왜 이렇게 늦었는데요.”

“케흑, 크흠, 아니, 그건…….”

“거짓말 안 해도 돼요.”

사레가 들려 정신없이 기침을 하는 사이에도 상관없다는 듯 화린이 할 말을 이어나갔다.

“어차피 둘 다 사귀는 거 짐작하고 있었으니까.”

방금 전에 들었던 말.

허나 이전의 느낌과는 사뭇 달랐다.

지금 나를 바라보는 화린의 시선은, 이전의 망설이던 모습은 사라진 상태였으니까.

“오빠.”

내게 훌쩍 다가온 화린의 몸이 내 어깨에 닿았다.

곧이어 화린이 자신의 양 손을 슬며시 내 손에 포갰다.

“자꾸 모른 척 하지 마세요.”

뭘 모른 척 한다는 건지 굳이 물을 필요도 없겠지.

이미 화린이 나를 마음에 두고 있다는 것 정도는 진작에 깨닫고 있었으니까.

화연과의 관계를 들킨 건 예상 밖의 일이었지만……. 들키고 나니 차라리 잘 됐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화린은 애가 아닌가.

이런 역전세계로 왔다고 해도 굳이 성인도 아닌 애를 내 마음대로 주무르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건 이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녀의 말대로 내가 모른 척 외면한 이유도 그러한 것에 있었으니까.

“저는……. 사귄대도 상관없어요.”

하지만 그런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화린은 자신의 마음을 내게 가감 없이 고백하고 있었다.

“그래도 전 오빠가 좋으니까요.”

내게는 일견 폭력적으로까지 느껴지는 고백.

허나 어째서일까.

여기서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결국 이어지는 그녀의 말을 잠자코 들어주고 있었다.

“오빠가 언니랑 사귀어도 괜찮……. 아니, 괜찮진 않지만.”

또 한 번 울 것 같은 얼굴을 한 채, 화린이 젖은 눈빛으로 날 애처롭게 올려다보았다.

“물론 오빠 눈에는 제가 어린애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그 말대로 지금껏 화린을 여자로 보려고 한 적은 없었다.

그냥 귀여운 여동생 정도로만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래도 저도 오빠 좋아하는 건 똑같아요.”

촉촉한 눈빛으로 날 바라는 화린의 모습을 본 순간.

나는 그녀를 소녀가 아닌 한 명의 여자로 바라보고 있었다.

“오빠는……. 절 어떻게 생각하세요?”

여기서는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가.

본능대로 대답한다면야 어려울 것 없다.

실제로 지금의 나는 화린을 사랑스럽다고 여기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세상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아무리 정조역전 세계라고 해도 여기도 나름의 법과 규칙이 존재하고, 또 살아있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곳이다.

지금껏 여러 섹파들과 몸을 섞었지만 그녀들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성인이었다.

반면 눈앞의 화린은 미성년자에, 하물며 그 섹파들 중 한 명의 여동생.

지금 당장 생각한다고 해서 쉽사리 대답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화린아.”

생각을 정리한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볼 땐 화린이 너도 충분히 매력이 있다고 생각해.”

“저는 여자로서의 매력을 말하는 거예요.”

“나도 당연히 그런 의미로 말한 거야.”

“그럼 오빠는요?”

“그야 내가 봐도 그렇지.”

“……정말요?”

“당연하지. 안 그러면 너 처음에 번호 준 거 받지도 않았을 거야.”

“변태.”

내 말에 화린이 살풋 웃었다.

“그럼 제가 키스할 때도 그랬어요? 저한테 막 두근거렸어요?”

“그래.”

“그건……. 언니보다도요?”

허나 그 미소도 잠시, 곧바로 화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언니보다 저도……. 매력적이었단 뜻인가요?”

불안함 가득한 화린의 표정을 보며 나는 할 말을 골랐다.

화린은 평소 언니에 대해 묘한 경쟁심과 열등감을 품고 있다.

오랫동안 두 사람을 봐 온지라 그런 화린의 내심을 대충 느끼고 있었다.

여기서는 화린이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얘기를 해 주는 게 중요하겠지.

“이런 말 하면 좀 그렇지만…….”

잠시 고민하던 나는 결국 입을 떼었다.

“솔직히 너도 엄청 사랑스러웠어.”

이 세계로 넘어온 뒤로 그 어떤 여자에게도 해본 적 없는 말.

그것을 한 번도 몸을 섞은 적 없는 화린에게 건네주었다.

내 말에 화린이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저, 정말로요?”

한참을 멍하니 날 보던 화린이 뜨문뜨문 말했다.

“그, 그러면……. 언니보다 더?”

“그런 게 아냐.”

“네?”

“너나 화연이나 다 각자의 매력이 있다는 뜻이야.”

둘 중에 누가 더 낫냐는 건 내게는 대답이 되지 않았다.

사람마다 각자의 성격과 매력이 있는 법이니까.

화연이가 순진한 거 같으면서도 어벙한 매력이 있는 아이라고 한다면, 화린이는 애 답지 않게 꼼꼼하고 톡 쏘는 맛이 있는 아이다.

아, 물론 적어도 섹스 하나 만큼은 화연만한 애가 없긴 하지만.

“…….”

내 말을 머릿속으로 곱씹는지 말이 없어진 화린.

그런 화린을 보며 나는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참고로 니네 언니한테도 이렇게 말한 적은 없지만.”

“네? 무슨 말이요?”

거 참 귀도 밝네.

“그러니까……. 크흠. 사랑스럽다고 한 거.”

으, 내 얼굴이 다 화끈거리네.

처음에도 겨우 말했는데 자꾸 사랑 사랑 거리니까 나까지 부끄러워지잖아.

내 말에 화린의 표정이 희열로 잔뜩 물들기 시작했다.

“오, 오빠도 저를 언니만큼…….”

“그래. 그러니까 너무 언니랑 비교하려고 생각 안 해도 돼. 내가 봐도 화린이 넌 충분히 여자로서 매력적이니까. 내가 볼 때는 너도 너의 여자로서의 매력이 있거든. 하지만.”

거기까지 말한 나는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그거랑 네 마음을 받아주는 거랑은 별개야. 그 정도는 너도 알고 있을 테고.”

“알아요.”

그런 내 단호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화린은 덤덤한 반응이었다.

그런 화린의 반응에 당황한 것은 오히려 나였다.

“오빠라면 그렇게 대답할 줄 알았어요.”

“어? 그러면 어째서 나한테 그런 얘길 하는…….”

“저 이제 고3이에요, 오빠.”

내 말문을 끊은 화린이 슬쩍 자신의 가슴을 바라보았다.

자연스레 내 시선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 화린의 가슴을 향했다.

“몸은 이미 다 컸어요. 어엿한 성인 몸이랑 다를 게 없다고요. 오빠도 그게 꼴린단 얘기잖아요.”

“꼴린다니, 말을 좀…….”

“하지만 오빠가 신경 쓰는 건 그런 게 아니겠죠.”

어깨에 닿았던 몸을 한층 더 밀착시키는 화린.

그리고는 충격적인 선언을 내뱉었다.

“졸업하면 세컨드로 해 줘요.”

“……뭐?”

거기까지 말한 화린이 은근슬쩍 내 손을 자신의 허벅지로 옮겼다.

“아니면 안 참아도 되긴 하는데…….”

허벅지에 댄 상태로 화린이 내 손바닥을 살살 문질렀다.

손바닥 너머로 느껴지는 부드러운 속살.

“어쩔 수 없이 제가 참아야겠죠?”

도발적인 미소를 짓는 화린을 보며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차라리 죽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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