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8화 〉 15. 미남은 덮밥을 좋아해(7) (128/152)

〈 128화 〉 15. 미남은 덮밥을 좋아해(7)

* * *

고등학생의 성욕이란 정말 어마어마한 법이다.

대부분의 남자라면 성욕으로 인해 학창시절 난감했던 기억이 한두 번 정도는 있을 거다.

예를 들면 수업 시간에 졸다가 선생님의 호명에 벌떡 일어났더니 잔뜩 발기한 상태였다던가.

……그나마 남고라서 다행이지.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아찔한 기억이다.

그래서 내가 갑자기 왜 이런 말을 하냐 하면…….

“오빠…….”

왜긴 왜겠어.

눈앞에 그 발정난 고등학생이 있으니까 그러지.

“안 돼요?”

간절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화린.

그러나 그 애처로워 보이는 표정 너머에는 희미하게 욕정이 비춰지고 있었다.

가까스로 침착함을 가장한 내가 말했다.

“방금 건 못 들은 걸로 할게.”

아무리 그래도 세컨드라는 소릴 자기 입으로 꺼낼 줄이야…….

아직 성인도 안 된 애가 할 말은 아니지 않나?

물론 성인이라고 해도 바람직하단 얘긴 아니지만.

애초에 난 이미 난봉꾼으로 살고 있기도 하고.

‘그래도 역시 이건 아니지.’

다만 난봉꾼으로 살고 있는 내게도 나름의 선은 있다.

아무리 그래도 아직 성인이 아닌 애들은 건드리지 않는 것.

고등학교 3학년이면 이미 발육 훌륭하고! 겉보기에는 성인이나 다를 바 없다는 거!

물론 나도 알지만!

그래도 심리적으로도 그렇고 여러모로 저항감이 들 수밖에 없단 말이지…….

법으로 따져도 왠지 위험한 느낌이 들고.

‘그보다 여기서도 미성년자랑 섹스가 되나?’

법으로 따질 생각을 하니 문득 궁금해진다.

원래 세계에서는 합의 하에서, 최소한의 나이가 차면 ‘일단’ 가능은 했던 거 같은데.

“저는 안 되는 거예요?”

나름 진지한 고민에 빠진 나를 뒤로 한 채 화린이 말했다.

슬픈 기색이 역력한 화린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다시 마음이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아니지, 안 돼.

여기서는 마음을 굳게 먹어야지.

“안 되고 말고의 얘기가 아니잖아.”

“언니는 되면서 저는 왜 안 되는데요……?”

“그야 너희 언니랑 만나는데 내가 그럴 수 있겠어?”

“…….”

“설령 혼자 지낸다고 해도 말이 안 되지. 화린이 넌 아직 고등학생이잖아.”

“씨잉…….”

내 단호한 대답에 화린이 울상을 지었다.

분한 표정을 짓는 화린의 눈가로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허나 눈물이 떨어지기 전 억지로 코를 킁 먹으면서 꾹 참아내는 게 보였다.

거 참, 마음 약해지게 왜 이러실까.

“화린아.”

“……왜요.”

“일단 네 뜻은 알겠어.”

뚱한 표정을 짓는 화린을 향해 나는 차분하게 말했다.

“알겠는데, 지금 이렇게 놀러 와서 할 얘긴 아닌 거 같다.”

화린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정도는 이전부터 짐작하고 있던 만큼, 솔직하게 마음을 표현한 화린을 향해 나는 제대로 대답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하지만.

‘그래도 지금 같은 상황에서 나눌 대화는 아니니까.’

저 멀리서 나홀로 텐트를 치고 있을 화연을 생각하면, 이렇게 단 둘이서 밀회 비스무리하게 있는 건 좀 꺼림칙한 기분이 든다.

하물며 화연이랑 그 짓거릴 했는데 또 비슷하게 둘이서만 꽁냥꽁냥 놀 수는 없지 않겠는가.

무엇보다 오늘은 그냥 놀러온 것뿐이기도 하고.

그래서 이렇게 대놓고 들이대는 화린을 보고 있자니 내심 당황스러운 게 사실이다.

어찌어찌 표정 관리를 하곤 있긴 하다만.

뭐, 아무튼 화린 입장에선 나름 용기를 내서 한 발언이긴 하니까.

나도 빠른 시일 내로 제대로 답변을 줘야겠지.

다만 그게 지금 당장은 아닐 뿐.

“으음……. 그것도 그렇네요.”

다행히 화린도 그런 내 뜻을 대충 짐작한 모양이었다.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어서 다행이네.

“알았어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 화린이 다시 한 번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대신 나중에 꼭 제대로 대답해주셔야 돼요.”

“당연하지.”

“오빠가 뭐라 대답하든 전 절대 포기 안 할 거예요.”

“그래. 그러니까 그 얘기는 나중에…….”

“오빠도 저한테 꼴렸다고 그랬으니까!”

“…….”

다시 흥분해서 떠들기 시작한 화린을 보며 나는 속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 알았으니까…….

이젠 진짜 좀 가자…….

***

그렇게 짧은 실랑이를 벌인 뒤 거의 반 강제로 화린을 끌고 왔다.

텐트라도 같이 칠 목적으로 최대한 빨리 오긴 했다만, 안타깝게도 이미 화연은 텐트를 모두 친 상태였다.

“왔어?”

홀로 친 텐트를 뒤로 한 채, 물 위로 튜브를 띄운 화연이 손을 흔들었다.

그런 화연을 보며 나는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쟤는 지 동생이 나한테 대쉬한 걸 알고도 저렇게 태평하게 있을 수 있으려나.

속도 참 편하다니까.

“야, 너는 힘들게 이걸 혼자 다 쳤어?”

“뭐 별 거라고.”

미안해서 괜히 말을 꺼내니 화연이 별 거 아닌 양 손을 흔들었다.

찰랑찰랑 물결치는 수면을 흔들며 화연이 우리 쪽으로 물을 튀겼다.

“에잇!”

“야야. 물 튀기지 마.”

“왜. 어차피 들어올 거 아냐?”

“그렇긴 한데…….”

뭐, 햇빛 아래에서 화린이랑 계속 얘기한다고 더웠던 참이긴 하지.

지금도 온 몸에서 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으니까.

“저희도 빨리 들어가요, 오빠.”

“알았으니까 그만 잡아당겨.”

내 팔뚝을 끌며 질질 끄는 화린을 따라 못 이기는 척 계곡 물에 몸을 담갔다.

“크으.”

발을 담그기 무섭게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새어나왔다.

와, 한여름인데도 물이 이렇게 차갑네.

몸을 부르르 떠는 내 모습에 화린이 옆에서 키득키득 웃었다.

“킥킥, 오빠 그러니까 무슨 아저씨 같아요.”

“따지고 보면 아저씨 맞지 뭐.”

“오빠가 아저씨면 세상 남자 다 애 아니면 아저씨거든요?”

“맞는 말 아냐?”

“……이 오빠는 무슨 농담을 이렇게 진지하게 받는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은 화린이 나를 두고 안쪽으로 훅훅 들어갔다.

“후후.”

어느새 화연이 둥둥 떠다니는 튜브에 도달한 화린이 씨익 웃었다.

보아하니 또 뭔 일 저지를 표정인데.

“너 설마……?”

불길함을 느낀 화연이 불안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미 대응하기엔 늦었다.

지척까지 온 화린에게 거칠 것은 없었으니까.

“그 설마가 맞지롱!”

“야! 하지……!”

제지하려는 화연의 손길이 무색하게 화린이 언니의 튜브를 확 뒤집었다.

“푸웁!”

풍덩!

순식간에 물에 빠진 화연이 물 안쪽으로 떨어졌다.

갑작스런 사태에 놀란 화연이 허우적거리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뭐, 그다지 깊은 건 아닌 거 같으니 괜찮겠지.

“푸핫!”

“꺄하핫! 혼자 논 벌이지롱!”

“주화린 너어…….”

물에 젖은 생쥐 꼴이 된 화연이 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너도 한 번 당해봐라!”

방심한 틈을 타 눈빛을 빛낸 화연이 곧바로 반격 태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어, 잠깐?!”

순식간에 뒤로 돌아 화린의 허리를 잡은 화연의 몸놀림에 화린이 당황해서 손을 휘둘렀다.

허나 이제 열아홉인 화린과 스물여섯인 화연의 체급차이는 쉽사리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으헥! 오, 오빠! 살려줘요!”

순식간에 턱끝까지 입수한 상태가 된 화린이 날 보며 간절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하지만 이거 어쩐다.

나는 도와줄 생각이 전혀 없는데.

“다 인과응보란다.”

“으앙! 배, 배신자!”

내 대답에 절망적인 표정을 짓는 화린.

결국 완전히 물귀신 모드가 된 화연으로 인해 화린의 얼굴이 푹 잠겨들었다.

“푸헥!”

풍덩!

괴상한 비명소리와 함께 화린이 물속으로 잠겨 들어갔다.

“으하하하!”

그리고 그런 화린을 꼬시다는 듯 자신만만하게 웃는 화연.

그러는 와중에도 수면 아래로 발악하는 화린을 꽉 붙잡고 있는 꼴이 아주 악마가 따로 없었다.

“허, 참.”

어째 여자애들 치고는 꽤 험하게 노는 거 같은데.

역전세계라 그런 건가?

“푸핫!”

가까스로 화연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온 화린이 수면 위로 고개를 쳐들었다.

완전히 반대가 된 상황 속에서 화연이 자신만만하게 자신의 동생을 내려다보았다.

“헤엑, 헤엑!”

“맛이 어때?”

“이씨! 언니 뒤졌어!”

“어허, 이게 언니한테 말버릇이!”

그렇게 시작된 난타전.

“푸핫!”

“어푸푸! 으헥!”

사납게 물을 튀기며 노는 두 사람을 나는 황당한 기분으로 바라보았다.

미녀 둘이 물 튀기면서 노는 건 분명 아름다운 광경일 텐데…….

왜 섬뜩하게 느껴지는 걸까……?

“그럼 이번엔……. 알지?”

“응.”

순간 눈빛을 마주한 두 사람이 싸움을 멈추고는 묘한 표정으로 웃었다.

그러고는 내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홱 돌리는 게 아닌가.

뭐, 뭔가 등골이 서늘한데.

설마.

“현수 네 차례야!”

“각오해요, 오빠!”

“자, 잠깐!”

내 이럴 줄 알았지.

근데 알면서도 왜 나는 안 피하고 있는 걸까.

‘그거야 뭐…….’

당연히 내 양 팔을 붙잡은 두 사람의 부드러운 감촉 때문이지.

“으악!”

장난스럽게 날 붙잡은 두 사람의 힘에 못 이기는 척 나도 함께 물놀이에 편승하기 시작했다.

“푸핫!”

“아하하! 꼴좋다!”

“히히, 안 도와준 벌이에요!”

“야, 나는 왜?!”

“왠지 오빠만 가만히 그러고 있으니까 괜히 골려주고 싶……. 풉!”

“너도 아직 안 끝났거든!”

“아, 언니, 잠! 푸웁! 물 그만 튀겨어!”

“튜브의 복수다! 크헤헷!”

“너는 뭐 저렇게 아저씨처럼 웃고 있어…….”

“어푸! 오, 오빠! 나 좀 지켜줘요!”

“야, 잠, 다가오지, 으헉!”

튀어오르는 물방울 위로 환한 미소를 짓는 화연과 화린.

다 젖어 몸매가 드러나는 미녀 두 사람 사이로 나는 한동안 물놀이를 즐겼다.

그래.

다른 게 야스가 아니라니까.

이게 바로 야스지!

***

우리는 해가 질 무렵까지 물놀이를 즐겼다.

나야 이 세계로 오면서 몸이 상당히 강해졌으니 체력에는 문제가 없으니 상관은 없다만, 두 사람도 장난 아니게 잘 노네.

노는 체력은 다르다곤 하지만 나도 조금 지칠 정도인데.

“으흐으, 힘들다…….”

기운 빠지게 텐트에 앉은 화연이 자신의 팔뚝을 살살 비벼댔다.

저 멀리 물가에서 올라오는 화린도 몸이 살살 떨리는 게 보였다.

이젠 슬슬 그만 놀고 들어갈 타이밍인가.

“좀 춥다. 배도 고프고.”

“추우면 일단 옷부터 갈아입어.”

“응.”

내 말에 곧이어 텐트로 들어간 화연이 곧바로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등 뒤로 스윽 옷이 흘러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아, 또 꼴리네…….

확실히 화린이만 없었어도 진짜 야스각이긴 한데…….

아니지. 오늘은 진짜 놀기만 하기로 했잖아.

웬만하면 참자, 참아.

“배고파요~!”

텐트로 다가와 투정을 부리는 화린을 보며 나는 미소를 지었다.

“점심도 안 먹고 한참 놀았으니까.”

“으,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겠네. 저희 밥 뭐 먹을 거예요?”

“화연이가 삼겹살 준비했다더라.”

“앗싸! 삼겹살 파티!”

“숙소 앞에서 구워먹을 수 있다니까 씻고 거기서 밥 먹자.”

“넵! 그런데 텐트랑 짐은요?”

“화연이랑 뒷정리 해야지. 먼저 가 있어. 옷 숙소에 있지?”

“네.”

“그래. 씻고 기다리고 있어. 한 명이라도 빨리 씻어야 빨리 밥 먹지.”

“……오빠 가끔 보면 엄마 같은 소리 하는 거 알아요?”

“너 같은 딸 둔 적 없거든.”

“저도 오빠 같은 아빠 둔 적 없거든요~.”

“언젠 엄마 같다며……?”

그리고 오빠 같은 아빠는 또 뭔데.

어감이 괴상하잖아.

“메~.”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 날 보며 화린이 혀를 쭉 내밀고는 숙소로 몸을 홱 돌렸다.

“빨리 정리하고 와요! 저 배고파 죽겠으니까!”

“그래, 알았어.”

몸을 돌린 화린이 콧노래를 부르며 숙소로 향하기 시작했다.

숙소도 바로 앞에 있으니까 혼자 보내도 상관없겠지.

“고기, 고기~. 삽겹살 파뤼~.”

괴상한 고기 타령을 하며 화린이 저 멀리 사라져 갔다.

하는 짓 보면 애는 애라니까.

곧이어 시선을 거둔 나는 뒤쪽을 텐트를 향해 말문을 열었다.

“다 갈아입었어?”

“……화린이는?”

“벌써 갔어. 빨리 갈아입어. 고기도 구워야 되는데.”

“그……. 현수야.”

“왜?”

“저기, 그게 말이지…….”

평소와 다르게 화연의 어조가 다소 미묘하다.

뭔가 망설이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니, 그러니까 그게……. 으음.”

“뭔데 그래?”

내가 의아해하는 찰나 화연이 텐트 입구로 얼굴을 쏙 내밀었다.

몸은 다 가린 채로 얼굴만 쏙 내민 화연이 곤란한 듯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그러니까……. 잠깐만 안에 좀 들어와 볼래?”

“너 지금 다 벗은 거 아냐?”

“그게……. 아, 아무튼 좀 들어와 봐.”

“설마 옷 없어서 그래?”

곤란해 하는 화연을 보며 나는 입고 있던 마른 겉옷을 벗었다.

없으면 그냥 다 젖은 거 후딱 입고 가서 숙소 가서 갈아입으면 그만이지.

일단 대충 내 겉옷이라도 던져주자.

“자, 일단 이거 입어. 안에는 젖은 거 그대로 입고 가야지 어쩌겠냐.”

“아니, 그런 게 아니고……. 그, 그리고 뒷정리 문제도 있고…….”

“아 텐트? 괜찮아. 내가 정리할게.”

“…….”

“아니, 지금 보니까 너 얼굴도 빨갛잖아. 빨리 들어가서 씻어. 그러다 감기 걸리겠다.”

“그런 게 아니래도 진짜……!”`

화연이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홱홱 저었다.

뭐야, 얘가 갑자기 왜 이런데.

“빠, 빨리!”

그 순간 텐트 너머로 튀어나온 화연의 손이 내 멱살을 콱 붙잡았다.

“들어오라고, 쪼옴!”

“야, 잠깐!”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저항할 새도 없었다.

텐트로 다이빙 하듯 뛰어드는 모양새가 된 나는 텐트 바닥에 몸을 뒹굴었다.

“아오, 너 지금 뭐 하는…….”

아니, 잠깐만.

왜 딱딱해야 될 바닥이 이렇게 부드럽지?

그제서야 나는 정신을 차리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현수야…….”

반쯤 젖어 흩날리는 머릿결을 쑥쓰러운 표정으로 정리하는 화연.

그리고 그 아래로는 완전히 전라가 된 화연의 몸뚱아리가 보였다.

부드러운 속살을 밀착시킨 채, 화연이 내 귓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할래?”

“……하긴 뭘 해 이 년아.”

나는 그런 화연을 보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게 아직 정신 못 차렸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