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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2화 〉 16. 이미 끝난 싸움(4) (142/152)

〈 142화 〉 16. 이미 끝난 싸움(4)

* * *

연예인들이나 탈법한 대형 벤츠.

창이 새까맣게 코팅이 된 그 안에서, 불안한 표정으로 운전을 하는 한 사내와 조수석에서 다리를 덜덜 떨며 핸드폰을 조작하는 근육질의 여성이 있었다.

두 사람은 바로 피버 에이전트의 대표 김옥희, 그리고 전속비서 이우진이었다.

“빌어먹을……. 대체 일 처리를 어떻게 한 거야!”

결국 초조함을 참지 못한 김옥희가 퍼뜩 고개를 들어 노성을 내질렀다.

덜덜 떨며 운전을 하던 이우진이 깜짝 놀라 몸을 벌벌 떨었다.

“이우진! 내가 조심하라고 신신당부 했어, 안 했어!”

“하, 하지만 대표님. 이걸 오로지 제 잘못이라고 하시면…….”

“시끄러워!”

이마의 실핏줄마저 튀어오를 듯 한껏 짜증을 내는 그녀의 모습은, 울퉁불퉁한 근육과 달리 가뜩이나 늙은 그녀의 나이를 한층 더 늙어보이게 했다.

그 무시무시한 모습에 우진은 억울함을 표현하긴 커녕 그저 숨만 죽이며 대표의 눈치를 살필 따름이었다.

“여기서 걸리면 우린 다 끝장이야, 끝장!”

있는 힘껏 성질을 내며 김옥희는 몇 시간 전 일을 떠올렸다.

‘빌어먹을. 그 때 회사에 있었더라면 꼼짝없이 잡힐 뻔했어.’

마침 우진과의 정사로 한바탕 한답시고 회사를 비운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정사를 마치고 우진과 함께 회사로 향하는 사이, 그녀의 눈에 멀리서 회사 입구로 정장 차림의 청년들이 우르르 들어가는 것이 보였던 것이다.

그 순간 김옥희는 무언가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그렇게 그는 곧바로 회사 차량을 이용해 이우진과 함께 도주하고, 현재는 핸드폰으로 적당한 도피처를 찾아 아무 시간이 맞는 항공사를 찾고 있었다.

“그, 죄송하지만 대표님. 저희 비행기 예약 시간은…….”

“지금 하고 있는 거 안 보여! 닥치고 운전이나 제대로 해!”

“예, 예!”

어찌할 줄 모르고 굽신 거리며 운전을 하는 우진이었지만 그 속내는 정 반대였다.

우진의 계획상 이렇게 급작스럽게 들킨다는 시나리오는 전혀 없었다.

‘내가 어쩌다 이 할망구랑 엮어서……. 젠장, 젠장!’

우진은 지금껏 나쁘지 않은 얼굴과 몸매를 이용해 대표를 자신의 품 안에 두게 만들어 왔다.

그렇게 대표의 최측근이 된 그는, 회사 장부를 조작하는 권한과 함께 회사 자금도 적당히 꺼내 쓰는 것마저 가능하게 되었다.

그렇게 한탕 제대로 해 먹은 우진은 적당한 시기에 대표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우고 잠수를 탈 계획이었다.

하물며 중간에 들킬 것을 염려하여 대비책도 2중, 3중으로 준비해둔 바였건만…….

‘제기랄, 코인으로 변환도 하고 계좌추적도 안 되는 대포통장으로 철저히 감췄는데……. 도대체 어떻게 꼬리를 잡힐 수가 있단 말이야?! 이건 말도 안 돼!’

우진으로서는 갑작스럽게 돌아가는 상황이 그저 황당하고 억울할 따름이었다.

“후, 미치겠군.”

그리고 그건 옆에서 모든 걸 지켜보고 있던 대표도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도대체 어디서 걸린 거지?”

“저, 저도…….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분명 계좌 추적이 안 되도록 확실하게 움직였는데…….”

“자금 운용하는 놈이 넌데 네가 모르면 어떡하자는 거야!”

“하, 하지만 저도 피해자라고요!”

“이 새끼가!”

“히이이익!”

우락부락한 팔로 휘두를 김옥희의 기세에 이우진이 놀라 몸을 움츠렸다.

“이런 썅.”

물론 운전 중인 이를 정말로 때릴 수는 없는 노릇.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김옥희가 손을 내렸다.

그 모습을 슬그머니 보던 이우진이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그, 그보다 대표님. 비행기 표는…….”

“후……. 예약 했으니 그만 보채지 그러나? 너 같은 머저리를 챙겨야 하는 것도 짜증나 죽겠는데.”

“…….”

개 같은 마귀할멈 같으니. 지금 진짜 열 받는 건 네가 아니라 내 쪽이라고.

이를 갈며 눈앞의 괴물 같은 여자를 저주하는 이우진이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솔직한 심정을 내뱉을 만큼 바보는 아니었다.

이후로 씩씩거리는 김옥희와 내심 억울함 가득한 이우진은 결국 도착할 때까지 서로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차량 내 분위기는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험악할 따름이었다.

“가자.”

“예, 예.”

마침내 차가 공항에 도착하자 이우진이 헐레벌떡 차에서 내렸다.

뒤늦게 내린 옥희가 그런 우진을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흥. 누가 잡아먹나? 아주 꽁무니 빠지게 내리는군.”

“아뇨,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좀 답답해서……. 하하…….”

“뭐, 됐네.”

무심하게 고개를 홱 돌리는 옥희의 모습에 우진은 순간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어차피 이제 찢어질 사이니까.”

“네, 네? 그게 무슨…….”

“뭐. 그럼 해외로 튀면서까지 너 돌봐줄 여유가 있다고 생각해? 이렇게 된 이상 너나 나나 그냥 범죄자일 뿐이야. 앞일은 알아서 해야지.”

“아, 아니! 요즘 세상에 어떻게 저 같이 연약한 남자를 혼자 두고 간다고 하십니까!”

“거 참, 요즘 세상에 남자 혼자 여행하는 사람도 많은데 무슨 소리야. 그 뭐냐, 알바생 이름 뭐지? 아, 김현수. 걔는 아주 멀끔하게 생겨서 이번에 제주도도 혼자 놀러갔다던데. 자네도 이번 기회에 좀 본받으라고.”

“그, 그건 그 사람이 특이한 케이스일 뿐이고…….”

“됐네. 아무튼 혈연도 아니고 생판 남인 자네를 내가 보호할 의무는 없지. 비행기 표 끊어준 걸로 내 의리는 다 했어.”

“그럴 수가…….”

“알아서 열심히 살아보게. 표 번호는 톡으로 보내놨으니 알아서 확인하고.”

정말로 미련 없이 떠나는 옥희의 뒷모습을 본 순간, 우진의 표정이 한껏 일그러졌다.

“어떻게, 어떻게 나를 버린다고 할 수가 있어!”

참지 못한 우진이 버럭 소리쳤다.

나름대로 떡정으로 대표를 휘어잡았다고 생각했던 우진으로서는 배신이라도 당한 기분이었다.

그래도 나름 가면을 쓰며 겉으로는 괜찮았던 관계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건만, 막상 위기가 찾아오니 어떻게 이렇게 냉정하게 꼬리를 잘라낸단 말인가?

자신이 이런 대접을 받으려고 저 못난이 할멈에게 깔려 앙앙댄 것이었던가?

온갖 수모를 받아가며 더러운 성적 취미를 받아오고, 관심도 없는 사무 처리까지 손수 해온 결과가 고작 이런 것이란 말인가?

“대표님을 위해서 제가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데……. 이럴 순 없습니다!”

벌개진 얼굴로 소리치는 우진의 모습에 주변의 이목이 집중됐다.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모습에 결국 대표의 얼굴도 한껏 일그러졌다.

“이 멍청한 새끼가!”

“끄악!”

단박에 뒤돌아선 옥희가 망설임 없이 우진의 뺨을 후려쳤다.

철썩, 하는 소리와 함게 우진이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될지나 생각해! 괜히 지랄하면서 이목 끌지 말고!”

“크, 크으윽……. 미친, 흐윽…….”

억울함에 결국 우진의 눈에서 참고 참았던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흠.”

그 모습에 무언가 자극을 받은 것일까.

내려다보는 대표의 눈빛이 욕망으로 번들거렸다.

“그 꼴을 보니 침대에서 보던 게 떠오르는군. 오늘 보던 것 중에 제일 마음에 들어.”

“크흐흑……. 짐승보다 못한 년…….”

“그 꼴을 보니 마침 조언거리가 떠오르는군. 마침 동남아 쪽이니 이참에 거기서 물장사나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떤가? 얼굴도 적당히 반반하니 잘 될 거 같은데. 떡감도 꽤 괜찮았으니 아예 그 쪽으로 잡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 모르겠어.”

“개, 개자식이……!”

“거 참, 개자식이라니. 나름 옛 정에 충고하는 것 치고는 말이 너무 심하구먼.”

씩 웃으며 입술을 핥은 김옥희가 그대로 자리에서 휙 벗어났다.

“그럼 알아서 잘 살아 보라고. 으하핫!”

“야 이 개새끼야!”

멀어지는 김옥희의 귓가로, 자리에 엎어진 채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우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 우진을 속으로 다시 한 번 욕한 옥희가 서둘러 자신이 가야 할 게이트를 찾았다.

‘몇 번 게이트지?’

서둘러 목표로 한 게이트로 발걸음을 옮기는 김옥희의 얼굴이 점차 밝아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젠장…….”

주변을 확인한 그녀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그도 그럴 것이, 회사에서 본 검은 정장의 청년들 및 경찰복을 입은 이들 수십 명이 두리번거리며 무언가를 찾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들키면 안 돼, 제발…….’

그들에게 들키지 않게 고개를 푹 숙이는 김옥희였지만, 그런 조악한 방식으로 조사관들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결국 수상쩍기 그지없는 그녀를 발견한 조사관 한 명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실례합니다. 혹시 피버 에이전트 대표 김옥희 씨 되십…….”

“이거 놔!”

“어억!”

들키기 무섭게 공항 내부를 뛰쳐나가는 김옥희였지만, 그 필사적인 발버둥은 채 1분도 지속되지 않았다.

이미 주변에 포진된 조사관들이 재빨리 그녀를 붙잡은 것이다.

반대로 이미 도주 의지조차 잃어버린 우진은 그 전에 벌써 잡힌 상태였다.

“놔, 놓으라고!”

“…….”

경찰관 및 조사관들 주변에서 발버둥치는 우락부락한 노년의 여자와 힘없이 끌려나가는 비실거리는 청년.

그런 두 사람을 주변에서는 무슨 일인가 하는 표정으로 힐끗 바라보며 지나갈 다름이었다.

***

그렇게 두 사람이 일을 저지른 다음 날 아침, 피버 에이전트 내부.

회사 회의실의 둥근 테이블에 몇 명의 사람이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런 테이블에 앉아 볼 수 있게 설치된 커다란 브라운관 위로, 한 늙은 여자 한 명이 수갑에 차 어딘가로 끌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

“…….”

심각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사람들 중에 그녀의 얼굴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여기 모인 이들 모두가 회사에 상당한 투자를 한 대주주, 이사진들이기에.

내부의 심각한 분위기와 더불어 뉴스에서는 각종 발표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증권위, “피버 에이전트 매매거래 일시정지…상장실질심사 대상”

­피버 에이전트 대표 김옥희, 고의 분식회계 및 회사 자금 탈취 의혹

­대표 김옥희 외 공범 1명, 도주 시도로 현재 구속심사 진행 중

­검찰고발 및 이사진, 대표 해임권고 제안 요청 중

“도대체 이게 무슨 일입니까?”

결국 참지 못한 이사진 한 명이 황당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나 그 질문에 대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설령 누군가를 지목했다 하더라도 제대로 대답할 수 있는 이는 없을 것이다.

어찌할 줄 모르는 침묵 속에서 결국 이사진 중 한 명이 띄엄띄엄 말을 이었다.

“크흠. 저는 아침에 검찰 쪽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이사들 소집해서 빨리 대표 해임하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이렇게 다른 분들에게 연락을 돌린 거고요.”

“그거 박 이사 말고 다른 이사들 모두에게도 연락이 왔답니다.”

“아, 그렇습니까?”

“안 그러면 저희가 이렇게 모일 수 있었겠습니까? 다들 바쁜 사람들인데.”

“저는 최 이사님 말씀만 듣고 급하게 온 거라, 이런 상황인 줄은 모르고…….”

“후우. 도대체 이게 무슨 날벼락입니까.”

결국 이사진들 모두 이렇다할 결정은 하지 못한 채 안절부절 못했다.

그렇게 한참 뒤에야 겨우 정신을 차린 이사진 한 명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러면 일단 어떡합니까? 긴급주주총회라도 열어야…….”

“주주총회 열릴 때까지는요? 그 안에도 회사는 굴러가야 할 텐데요.”

“제가 알기로 김옥희 대표 말고는 제대로 내부 상황을 아는 이사 분이 없는 걸로 아는데. 다들 그저 자금만 대고 계시지 않았습니까?”

“크흠…….”

“이거 곤란한데요. 빨리 누구든 채워 넣지 않으면 주가가 곤두박질 칠 터인데.”

“큰일이군요. 그렇다고 대표 자리를 주주도 아닌 사람에게 맡길 수도 없는 노릇이고.”

“허어…….”

다시금 회의실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그 소란의 한가운데에서, 유일하게 젊은 여성 한 명이 주변을 보며 마른 침을 꼴깍 삼켰다.

‘어떡해, 어떡해! 진짜 현수 오빠가 말한 대로 됐잖아……!’

그녀의 정체는 다름 아닌 윤화정.

겉으로는 평온한 기색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지만 화정의 속내는 긴장감에 바짝 타들어가고 있었다.

‘침착해야 해, 그러면 이 즈음에서 분명 오빠가 말한 대로 부사장님이…….’

다시금 침을 꼴깍 삼키며, 화정은 어젯밤 현수가 했던 이야기를 곱씹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화정 양.”

마치 기다렸다는 듯 자신을 불러준 이사진 중 한 명의 부름.

여기서야 단순히 이사진이라는 직책만 가지고 있을지 모르나, 실제로 그녀를 부른 이사진은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그룹의 재벌가에 속하는 인물이었다.

긴장된 속내를 숨기며 화정이 최대한 자연스러운 느낌으로 고개를 돌렸다.

“네, 네엣. 말씀하세요, 부사장님.”

“화정 양이 회사에 기여한 바가 크고 회사 내부에 빠삭할 것이라 불렀던 게 다행이로군 그래. 자네 의견에 대해서도 듣고 싶네.”

“아, 네엣. 그런데 그 전에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뭐지?”

“그으게요, 여기 계신 이사진들께서 간과한 사람이 한 명 있어서요.”

“음?”

화정의 말에 평정심을 유지하던 부사장의 표정이 확 달라졌다.

동시에 화정은 어느덧 주변 이사진들 모두가 자신을 주목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슨 말인가? 알아듣기 쉽게 말해보게나.”

“아, 네에. 제가 알기로 회사 내부에 빠삭하고, 몇 년간 회사 주식을 사와 일개 소주주라기에는 꽤 주식을 모은 사람이 있어요. 아마 그 사람이라면 여러분들이 말하는 여건에 부합하지 않을까 한데…….”

“오오, 정말인가? 그게 누군가?”

“……지금 불러도 되나요?”

“물론이지! 한 시가 급한 상황인데! 빨리 볼 수 있다니 잘 됐어! 다들 안 그렇소?”

그 말대로군요, 이거 생각보다 빨리 해결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등등. 부사장의 말에 동의하듯 이사진들도 각자 동의하는 발언을 한 마디씩 보탰다.

현수의 예상과 한 치도 다를 바 없는 반응이었다.

“그 준비됐다는 사람이 지금 여기 있나?”

“네, 네에. 대기 중이에요.”

“준비성이 좋군 그래. 그럼 지금 회의실로 들여보내 주겠나?”

“어, 알겠습니다. 그럼……. 들어오세요!”

긴장된 기분을 숨기고자 화정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그와 함께 회의실 문이 열리며 또 다른 미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또각, 또각.

구두굽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등장하는 미녀.

분위기에 억눌리지도, 그렇다고 자신만만하지도 않은 동작과 그에 걸맞은 이지적인 외모는 이사진 모두의 눈길을 확 사로잡았다.

슬쩍 주변을 둘러본 그녀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인사와 함께 고개를 든 그녀의 눈빛이 무심하게 빛났다.

“피버 에이전트의 자회사인 피버샵의 대표, 최수민이라고 합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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