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 성녀...?
* * *
연녹색으로칠해진벽지로채워진방.
삑삑거리는비프음만이 방안에 흐른다.
방한가운데에는침대가놓여져있었으며,그위에는창백한얼굴의사내가누워있었다.
언뜻보면여성으로착각하게되는얼굴.
언덕과도같이솟은목젖만이남성이라는걸알려주는증거였다.
침대위로 올라온 새하얀도자기와도같은손이 그 얼굴을쓰다듬는다.
“제아들..라크...눈좀떠보세요제발... “
아들을구슬프게부르는어머니의목소리는 물기가 어려있어 슬픔에 빠져있다는걸 알수있었다.
어머니는 연신눈물을뚝뚝흘리며아들을보살피고있었지만, 병실의문이 드르륵하고 열리더니 사제복을입은통통한늙은이가 걸어들어왔다.
" 후욱... 후욱.. 늦어서 죄송합니다. 성녀님. "
비가 오듯 전신에서 땀이 흘러나와 그의 사제복은 축축하게 젖어있었으며, 병실까지 달려왔는지 숨을 헉헉대며 고르고있었다.
“대사제장루퍼드...그대가왜이제서야나타나시는거죠? “
언제울고있었냐는듯독기서린눈빛과날카로운목소리로무장한 성녀는사제장을추궁한다.
“성..성녀님일단진정하시고..들어보십쇼..!여신교에서경황이없어연락이늦게들어왔습니다. “
“그래서범인은...?여신님의보배나다름없는제아들을이렇게만든자는잡았나요...?! “
“그...그게말입니다성녀님... “
“ 뜸들이지말고당장말하세요! “
성녀가 소리치는 순간 성녀의 붉디붉었던긴머리는 불타오르듯이 흰색으로 물들었고,여우귀는하늘을찌를듯이솟아오른다.
누가 봐도 강렬한 분노에 사로잡혔다는것을 알수있을정도로 성녀는 투기를 내보이고있던것이다.
“그..그자는몇년전에여신교에서이단으로판명되어,내..내쳐진자입니다.현재여신교와는아무연관이없는일반시민이기에가혹한처벌을할수... “
그순간 대사제장은 무언가 차가운 한기가 아래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것을 느껴 고개를 숙여 그 정체를 확인했다.
어느 사이에 얼어붙은자신의다리.
모골이송연해지는것을 느끼고나서야 대사제장은 자신이 취해야할 행동을 깨닫는다.
“서..성녀님...!!! “
“왜그러시죠..?계속말해보세요.
어찌여신교에몸담았던자가여신님의보물을공격했는데도연관이없는지...어서얘기해보세요. “
대사제장이 떨리는 눈을 돌려서 성녀를 바라보자, 이지를 상실한 그녀의 짙은 에메랄드색 눈동자가 보였다.
과거에 성녀와 있었던 기억들을 떠올려보니 지금 이 상황은 매우 위험한 상황이다.
따라서 무조건 빌어야했다.
“아닙니다!성녀님제가실언을했습니다!!그자는지금구금되어있는상태여서당장빼오는것은불가능하지만어떤방법이든강구해서빼내겠습니다!! “
“뭐..그정도면봐줄만한대답이네요. “
성녀가손을내저어사제장을좀먹어가던얼음을 사라지게했다.
“그리고여신교에보관해둔엘릭서하나만가져오세요. “
“ 성녀님아무리그래도여신교에하나밖에남지않은성물을쓰는건대주교님께서허락하지않으실겁니다! “
엘릭서.
죽은자도살렸다고전해져오는여신교의성물.
그렇기에그것은여신교의극비였지만, 성녀라는사람은그귀한것을동네땅바닥에굴러다니는돌멩이처럼취급했다.
그것이못마땅했던대사제장은방금전까지목숨을위협받았다는것을잊고선 교에 대한 충성심을 성녀에게 토해내듯 항의한다.
대사제장이라는 타이틀에 맞게 그는 여신교에 몸을 바치고있는것이다.
“아뇨.들어주실겁니다여신님께서명하신거니깐요.그리고1개가아니라2개나남아있잖아요. “
여신님께서 명하셨다는 성녀의 말에 방금전까지 반항적인 자세를 유지하던 대사제장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여신님께서말입니까?그 분과 대화를 하셨다는겁니까?? 지금! 당장주교님들께연락을해야.. “
“루퍼드“
“예? “
“ 제가 전부터말했을텐데요.저는여신교에돌아갈생각이없다고요.그리고다시얼어붙고싶은 생각이 없는거라면 지금나가주셨으면좋겠네요. “
“ ......알겠습니다성녀님. 전 그럼이만가보겠습니다. “
대사제장은황급히그자리를벗어나서문을 열고 사라졌다.
이윽고병실에는링거다발을꽂고있는아들과그를걱정하는어머니만이남았다.
성녀리타아트리에
여신교의역대성녀들중가장뛰어나다고인정받던성녀.
여신님과대화할수있는것은오직성녀
그것은불변의법칙과도같다.
고작9살에불과한어린아이였던그녀가성녀가될수있었던것은그출중한능력때문이기도하지만,
어린나이에자애롭고상냥한그순수한마음때문이었다.
그런그녀가12살이란나이를맞이했을때.
사건은터지고말았다.
여신교의고귀하고고결한성녀
리타아트리에
그녀가임신을한것이다.
본디성녀가지내는구역은금남의구역이기에,
그누구도성녀에겐 쉽게 접촉할수없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성녀는여신님의은총을입은거라며무죄를주장했지만,커다랗게부른배는누군가의씨를받아임신했다는증거였다.
그리고 공교롭게도몇개월전성녀의구역에는몇차례침입자가발각된사건이있었기때문에그녀의주장은묵살됐다.
그리고소문은꼬리에꼬리를물고여우종족인성녀가음탕한본색을드러낸것이 아니냐는 추문이 돌기까지했다.
결국대주교와주교들이모인자리에서긴급회의가벌어졌고,대다수의주교들이성녀를내쫒아야한다고주장했다.
한편그녀를마지막까지옹호하던대주교가있었지만,
대주교도 주교들의 거센반발을이겨낼수는없었기때문에 성녀는여신교에서쫒겨나더이상성녀가아니게됐다.
그리고 성녀였던그녀를내쫒고새로운성녀를받아들이기위해여신님께기도를올렸지만여신께서는그저침묵만하실뿐이었다.
그로부터4년후,
여신님과유일한소통로가사라지자여신교는위태롭게 그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칠줄모르는이단종파의출현은이단심문관들의발등에불똥을튀게만들었으며,성도들에게크나큰혼란을일으켰으니…
뒤늦게서야 깨달은것일까?
주교들은 사라진 성녀를 이잡듯이 찾으라는 명령을 내려 온 대륙을 수색하기 나섰다.
그리고.
도심지에서멀리떨어진위탁시설.
그곳에서발견한성녀는더이상성녀가아닌 두 아이의어머니로써지내고있었다.
여신교에서는그녀를복귀시키게끔설득하려했지만,이미그녀의마음속에는교에대한불신이라는씨앗이꽃처럼개화하여깊이자리잡고있었을뿐.
결국주교들까지성녀를설득하러몸소나서용서를구하자성녀는조건부승낙으로받아들였다.
“ 3개월.
3개월마다여신님의말씀을전해드리겠습니다.
저는다시그곳으로돌아가지않을거에요.“
그제안을받아들였고, 가늘게 이어지던 명맥이 순식간에 활기를 되찾아 그 옛날의 여신교의 위용을 되찾았다.
하지만 주교들의 심기를 거스르는 일들도 동시에 일어났다.
성녀가지원비라는명목으로여신교의기부금을뜯어가고,거리낌없이 성물을 가져가 사용하는곳은 성녀의 아이들때문이었으니.
누구보다여신교에 헌신적이었던성녀는 더이상 존재하지않았다.
하지만 주교들은 그 분을 삭히는 수밖에 없었다.
한번 고꾸라질뻔했던 여신교를 더는 망가트릴수는 없었으니까.
그로부터17년후.
성녀는여신님의명에따라아이들을잘키웠다고생각했지만자신이틀렸었던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좀더잘했어야했다.
그렇지않았다면이렇게다칠일도없었을텐데
엘릭서가있으면순식간에낫겠지만,고통속에서누워있는아들을보면 성녀는 너무나도가슴이찢어지는것만같았다.
‘여신님께서는항상아이들을지켜봐주신다고 말씀하셨는데.. ‘
여신님께선 지켜봐주신다고 말씀해주셨지만 어제 있었던 일은 그 말씀을 거짓으로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보호받는다고 생각했던 아들이 습격을 당한것이다.
여신님을 향한 믿음이 흔들릴만한 일
그러나 그녀는 성녀였었다.
이 모순에 그녀는 지금껏 없었던 혼란을 겪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론을 짓는다.
만약 여신님마저 항상 아들을지킬수없다면 성녀였던 자신이 나서야만 한다는것을
어두운병실안에서에메랄드색눈동자가빛이나고있었다.
*****
[라크당신께서도와주셔야할일이있습니다. ]
“아예그랬었죠. “
여신님의 보드라운 분홍색 입술을 통해서 나온친엄마를범한다는말에나는나의어머니를떠올리고있었다.
“오늘은이옷을입으세요.아!이옷은1년2개월4일전수목원에갔을때입었던거네요!! "
“짠!라크가다녀온곳에서몰래사온기념품이랍니다!어때요?마음에들어요? “
그녀는라크밖에모르는철부지였다.
하지만 철부지라고 부르는게 맞는걸까?
보통 어머니들과 다른 그녀의 아들에 대한 크나큰 관심은 가히 집착이라고 불러도 될정도였다.
거기까지생각이닿자식은땀이주루룩 내 이마를타고흘러내린다.
금지옥엽같이아끼던 내가크게다쳤으니어머니가 심히 걱정되었다.
지금당장돌아가야한다!
“여..여신님 저 지금당장돌아가야할거같아요..! “
[제얘기도끝나지않았습니다라크.그대는이힘을이용해서4대명가를손에넣으세요. 그들에게 답이 있을거랍니다. ]
내머리위에빛이내려앉더니금세사라지고,
내앞에반투명한창이떠올랐다.
[라크아트리에]
근력: F
기민함: F
마력: D
지혜: F
[보유스킬]
끝없는성욕,페로몬,유전자조작
‘이게뭐냐.... ‘
눈앞에나타난창은글자가적혀있었으며내이름이있늘걸로보아하니이건나에대한정보들이었다.
[그럼라크또다시만날때를기다리고있겠습니다... 아!그리고4대명가를손에넣게된다면그때또다른소원들도 이뤄드릴게요!! 그럼 다음에 봐요!! 아래조심하세요? ]
엄숙히 말하던 여신님은 잊어먹었던 얘기가 있었는지 진지한 표정을 풀고 편하게 말해왔다.
아래를 조심하라는 여신님의 말에 고개를 숙여보니내 발밑에허연구멍이 점점 커지고있었다.
당황하여 몸이 반응하기도전에 그 구멍안으로 쑥하고 내 몸이 떨어진다.
" 으아아악!!! "
급격하게 떨어지는 감각에 그만 나는 기절하고말았다.
****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감겨져있는 눈에 힘을 줘서 뜬다
확 정신이 든 내가 주위를둘러보자 내기억속에 있는 익숙한 가구들로 들어차있는 방의 모습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달빛은 방안을 환하게 비추고있어 밤처럼 느껴지지않았다.
“돌아온건가..? “
불현듯 상처입었던 복부가 생각나서 팔을 들어올린순간
촤르르륵
응?이게뭔소리지?
손에평소와같지않은중압감이느껴져그곳을바라보자,커다란족쇄가내양팔에매달려있었다.
“이게뭐야..!! “
방문이 쾅하고 열리더니붉은긴머리에여우귀가달린미녀가들어선다.
“라크!!일어났어요?!! “
내가일어났다는것을알자마자 허겁지겁 달려왔는지 옆으로 쳐진 여우귀를 한채로 웃고있는 여우수인
리타 아트리에
그녀는 전 성녀였으며, 하나밖에 없는 아들인 나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펴주셨던 나의 어머니이다.
라크의 기억속을 더듬어서 떠올려보자 눈앞의 미녀는 그녀와 일치했다.
달려오면서 흔들리는 커다란 젖탱이는 옷위로도 큰 볼륨감을 자랑했고, 홀쭉빠진 허리와 옆으로 넓은 골반은 기억속의 그 모습과 똑같았으니까
그건 그렇고 왜 묶여있는지를 모르겠네...
“엄마저일어났어요이것좀풀어주세요. “
“내 사랑스러운아들.엄마가얼마나걱정한줄알기나해요?흐윽... “
방금전까지 웃고있던 어머니는나의얼굴을매만지며흐느끼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눈물은 내 얼굴에 뚝뚝 떨어져서 그때문에 내 얼굴마저도 축축해진다.
“알겠으니깐이거부터풀어줘요. “
“안돼요!안돼안돼!!라크는엄마가지켜줘야해요.어디가지말고엄마랑같이살자?응?? 우리 아들은 한번도 내 말안들어준적 없었으니깐 그렇게 해줄거죠???? “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어머니의 에메랄드색 눈동자에는
광기가 서려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