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 목줄
* * *
최고급 마수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부드러운 소파가 서로를 보게끔 배치되어있었다.
소파 사이에 있는 테이블위에 올려져있는건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찻잔 두개.
서로를 마주보고 앉은 두 여성이 차를 들이켜마시며 침묵으로 대치한다.
결국말문을 연것은 얼굴에 웃음을 띄고있는 붉은머리의 여성이었다.
"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하죠. 이사장님. 절 교수로 취임시켜주세요. "
쨍그랑!
그 말을 들은 여성은 어지간히도 놀랐는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손에 힘이 풀려서 찻잔을 떨어트렸다.
" 대체 왜? 오랜만에 와서 한다는 얘기가 왜 그런 얘기인건지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구만. 자네 혹시.... 그... 요즘 티비에서 나오던 청년치매에 걸린게 분명하구만! 하하! "
리타가 찌릿하고 째려보자 이사장은 무안했는지 큼큼하고 목을 가다듬고선 모른척을 했다.
" 아무리 그래도 하실말씀이 따로 있죠. 제 나이가 이제 서른살이랍니다? "
" 나이가 서른에 애딸린 엄마면서..... 아! 아이고 여우가 노친네죽이네!!! 살려주게!! "
이마에 핏줄이 불거진 리타가 이사장의 멱살을 붙잡고 붕붕하고 뒤흔들었다.
" 알겠다네! 들어줄테니깐 이거부터 좀 놔아아!! "
" 다시는 나이얘기는 하지마세요. 아시겠어요? "
손을 놓자 쿵하고 엉덩방아를 찧었는지 이사장 악하고 비명을 질렀다.
찧은 엉덩이에서 쓰라린 고통이 몰려왔는지 손으로 쓸어내리며 눈물을 글썽이는 이사장.
리타는 다시금 이사장의 외향을 관찰했다.
이사장 에리스 드라우니.
고귀한 하이엘프의 후예.
150센티미터의 아담한 키와 옆으로 길게 이어진 뾰족한 귀를 가졌으며.
청량한 느낌을 주는 밝은 녹색의 머리는 한쪽으로 묶어 내렸다.
리타가 아카데미를 다녔을적과 같은 변함없는 이사장의 모습.
" 그나저나 몸은 괜찮으세요? 저번에 뵈었던 때보다 전혀 성장하지 않은것같은데요. "
" 그 부분은 걱정좀 하지말게! 내 몸은 내가 잘아니깐 말일세. 그보다 은퇴한 자네가 어찌하여 아카데미의 교수로 들어오려하는겐가? "
도저히 알수없어서 답답한 마음이었는지 이사장은 눈썹을 찌푸려서 불편함을 피력한다.
" 곧 학생 하나가 입학할텐데 그 아이를 곁에서 돌보고싶어서요. "
그러나 곧 이어진 리타의 뚱딴지같은 말은 이사장의 혼란스러움을 배가시킬뿐이었다.
" 하,학생 하나때문에??? 그 학생이 누구이기에 자네가 이렇게까지 하려 한단말인가!! 서,설마! 뒤늦게 만든 애인인건가...!! "
" 제 아들이에요 이사장님. 엄한 생각하지마세요. "
아들이라고?
그게 더 말이 안되는 소리였다.
리타가그리 귀하게 여기던 아들이 위험한 마수사냥꾼이 되려하는데 그걸 안말렸다고?
순간 이사장은 자신의 눈앞에 있는 여성이 알고있던 인물과 동일인인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 리타. 자네 정말 괜찮은건가? "
" 이사장님. 제가 성녀였다는것을 망각하신모양이신가요? 지금은 성녀가 아닐지라도 제 본분은 잊지않았으니 걱정하지않으셔도 됩니다. "
이사장은 속으로 코웃음치며 생각했다.
' 성녀는 무슨 광견이었겠지... '
지금으로부터 5년전 혜성같이 나타나서 둥지를 마구잡이로 파괴하고 다녔던 마수사냥꾼계의 신성.
그 새로운 별은 나타나자마자 최전방을 이잡듯이 돌아다니며 홀로 박살을 내었기때문에 미친개라고 불렸었다.
그리고 그 미친개는 바로 이사장의 눈앞에 있었으니.
리타 아트리에.
지금으로부터 17년전 여신교에서 행방불명됐다고 알려진 유일한 성녀.
그녀는 10년전부터 이 곳 에콜 아카데미를 다니는 재학생이었기때문에 이사장을 포함한 소수의 인원만이 그 사실을 알고있었다.
고귀한 신분의 그녀가 위험하게 홀로 나서서 그런 일을 벌이다니 대체 무슨 이유로 그런것일까?
어느 날 참다못한 이사장이 직접 그녀에게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 우리 아들이 요즘 열차에 빠져서요. 장난감 대신 진짜 열차를 사주면 깜짝 놀라겠죠? "
다른사람이라면 농으로 치겠다만 다름아닌 리타 아트리에였다.
국교 여신교의 역대 성녀들중에 가장 뛰어났고 가장 자애로웠다고 알려진 성녀.
과거에는 그렇게 불렸으나.
잠시라도 눈을 뗐다가는 큰사고를 치는 사고뭉치.
지금은 그렇게 불렸다.
화려한 전적이 있는 이 사고뭉치의 행동원리의 근원를 파고들어보면 언제나 아들이 자리잡고있었으니.
거기다 여신교를 등에 업은 사고뭉치 성녀의 기행을 막을수있는 사람은 몇안되었기때문에 문제였다.
성녀를 제지해야할 여신교는 그 성녀에게 휘둘리고 있으니 그야말로 환장할 콜라보였다.
열차를 산다는 목표는 포기했지만 육아비용을 충당한다며 마수사냥을 계속하던 성녀는 돌연 3년전 그만두었지만 말이다.
그런 그녀가 이번에는 무슨 꿍꿍이인지 마수헌터 양성 아카데미에 교수로 취임하겠다고 말해온다.
그 이유도 아들이 입학하니깐 엄마가 교수로 취임해서 곁에 붙어야 있어야겠다고?
딸이 입학했을때랑은 너무나도 달랐다.
루샤 아트리에가 왜 그런 영악한 아이로 자라게 됐는지 이제야 이사장은 알것같았다.
그렇지만 리타가 아카데미에 들어온다는 사실을 생각하자 이사장은 머리가 아파져오는거같아 미간을 부여잡았다.
" 아니 교수로 취임한다는건 둘째치고 자네 아들이 이곳에 입학한다고? 적성 검사는 다 통과한겐가?? 애초에 자네가 어떻게 허락을 했는지부터가 궁금하구만... "
" 그게 여신님의 명이었으니깐요. "
" 뭐라고? 여신님께서 명하신 일이라고 말한겐가? 자네가 직접 들은겐가?? "
마도공학의 기술발전으로 번영하여 지금 시대를 황금기를 부르게됐지만 그것 또한
벨미아 여신님의 보호아래에 있었기때문에 가능했던 것.
위대하신 벨미아님께서 명하신 일이라니 이것은 중대사인게 틀림없없다.
" 예. 그랬죠. 근데 일이 이렇게 됐네요. 마음같아선 입학이고 뭐고 다때려치고싶지만말이에요. 여신님께서 명하신 일인데···제가 어찌 거부하겠어요. 그러니 최대한 편의를 봐주세요. 혹시모르니 호위까지 붙여주셨으면 좋겠네요."
사실 이사장은 그 말을 듣기전까진 단순히 리타가 또 괴상한 사고나 치려는것 아닌가 싶었다만.
이사장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테이블밑에 있는 서랍에서 서류종이 하나를 꺼내 빠르게 적어나갔다.
" 그러면 그렇게 해야할것같구만. 자네는 원치않아하는것 같지만 일단 수속을 밟아두도록 하고.... 과목은 마법학 부문으로 해두면 되겠나? "
" 그렇게 해주세요. 이사장님 억지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한창 펜을 빠르게 놀리던 이사장이 갑작스레 멈추더니 무언가 생각났는지 손뼉을 치며 말했다.
" 그래. 그럼 그렇게 된걸로 하겠네.아! 리타!! 내가 한가지 묻고싶은게 있네만.... "
" ...? "
" 자네 아들은 어떤 아이인가? 그 리타 아트리에가 어머니이니 무척 잘따르는 아이겠지? "
" 아들은! 착한 아이이에요. 이사장님이 말씀하신대로 지금껏 제 말을 거스른 적도... "
리타는 말을 하다가 불현듯 며칠전 밤에 라크와 있었던 일을 떠올리고는 뺨을 붉혔다.
그렇게 진한 수컷냄새를 가까이서 맡은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뒤로 며칠뒤까지 자신의 꼬리에서는 그 냄새가 빠지질않아서 곤혹스러웠지만 말이다.
리타는 돌연 사타구니에서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다리를 움츠렸다.
" 읏...! "
" 리타! 왜 그러나!? 혹시 어디가 아픈게야? "
" 아.. 아뇨! 괜찮아요 이사장님 그냥 좀 현기증이 느껴져서 "
그녀의 얼굴에는 홍조가 새빨갛게 올라와있었지만 이사장은 눈치못챈듯 감기에 걸린거 아니냐며 호들갑을 떨어댔다.
그런와중에 문득 그녀는 고민거리를 상담해보면 나아질거같다는 생각에 입을 열었다
" 저기 이사장님 저도 고민거리가 하나 생겨서 그런데요 들어주실수있나요? "
" 으응?! 나야 언제나 환영이라네 뭐든 말만하게나! "
작달만한 키의 장수종이 자신만 믿으라며 가슴을 팡팡치는 모습은 웃음을 자아냈지만 리타는 꾹 참아냈다.
" 이.. 이사장님! 그럼 잘부탁드리겠습니다. 전 이만 가볼게요 다음에 연락주세요 "
" 응? 그... 그래! 빨리 들어가서 쉬게나. 내가 집까지 데려다주겠네 "
리타가 서둘러 소파에서 일어나 이사장의 배웅을 받으며 나갔다.
방안의 전등이 파지직 거리며 몇번씩 점멸했다가 다시 빛을 비춘다.
리타가 앉아있는 소파에 깊숙한 뒷부분에 묻은 투명한 물이 그 빛을 반사하고있었다.
*****
여신교
칼로스 대륙의 국교이자 철옹성같이 굳건한 종교.
아주 먼 옛날 악마세력들이 대륙을 집어삼키려고 기승을 부릴때 강림하여 막은 이는 바로 여신 벨미나님이셨다.
여신의 용사와 그의 수인동료들은 여신님의 축복을 받고서 파죽지세로 악마세력을 와해시켰으며 그 끝에는 마왕까지 무찔렀다.
그리고 평화를 되찾은 대륙은 용사에게 노고를 치하하려 찾았지만 그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없었고 먼지 한톨마저 남기지않은 용사는 그뒤로 볼 수없었다.
여신님을 숭배하고 세상의 평화를 추구하는 여신교는 대륙으로 퍼졌고 이내 국교로 지정되었으며, 용사일행이였던 수인동료들이 낳은 자식들로 이루어진 대가족은 가문이 되어 훗날 4대 명가로 불리게 되었다.
왜냐하면 여신님에게 하사받은 능력은 대를 이어서 계승되었기때문에 자손들도 특출한 능력을 보였기때문이다.
그렇게 4대 명가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 위세를 높혀만갔다
라크 아트리에
그에게 내려진 사명은 그 위대한 4대 명가를 손에 넣는것.
라크는 그리하여 생각했다.
4대 명가를 손에 넣기위해선 어찌해야할까?
생각해보니 답은 간단했다.
4대 명가의 영애들에게 손을 대면 자연스레 4대 명가의 실세가 자신의 눈앞에 나타나겠지.
그렇다면 내 목표는 그녀들을 범해서 더럽히면되는것이다!
마수사냥꾼 양성 교육기관인 에콜 아카데미.
거기에 그녀들이 있다고 여신님께서 친히 알려주셨기때문에 나는 그 곳으로 가야했다.
하지만 설마 누가 알았겠는가?
그 원대한 계획이 첫걸음부터 무너져내릴줄을···
여신님께 사명을 받은 자가 적성검사에서 불합격이라는 불명예스러운 타이틀을 받을줄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으리라.
그래서 라크는 지금 혼이 나간 사람처럼 지내고있었다.
며칠동안 저러고 지내는 라크가 보기 안쓰러웠던 리타가 다가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 아들 여기좀 보세요 "
" 예... 예?! 엄마 왜요? "
" 제가 우리 아들을 위해 힘좀써봤어요. 자 이거 받으세요 "
라크는 어머니가 건네준 종이봉투를 얼떨떨한 표정으로 받아들고선 그리고 종이봉투 안을 확인했다.
그것은 네모난 학생증이었다.
단순한 신분확인을 위한 학생증이 아니라 칩까지 달려 여러 기능이 들어있다고 알려진 에콜 아카데미의 학생증
자신의 사진이 크게 붙어있었으며 옆에는 라크 아트리에라는 이름이 크게 써져있었다.
어머니가 대체 어떻게 이걸...?
" 엄..엄마 어디서 이걸 구하셨어요? 거기다 불합격통보를 받았는데 어떻게 하신건지.... "
순간 라크는 끔찍한 비명소리가 들렸던 날이 생각났다.
어머니가 날 위협으로 보호한다면서 감금시키려들었던 날
사람하나까지 담그는데 능숙하다면 이런것도 그냥 가능한걸까?
" 엄마가 거기 졸업생이예요. 라크 이사장님이랑 친분이 있어서 부탁 드려봤더니 흔쾌히 허락해주셨어요. 어때요? 엄마 능력있죠? "
아들에게 도움이 됐다는 생각에 기쁨을 주체할수없어 고조된 기분이었던 리타는 라크에게 칭찬해달라는듯 웃음을 지으며 여우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댔다.
" 엄마! 고마워요!! "
막장에 다다른듯 풀수없는 문제를 당면해 끙끙 앓고있던 라크에게 리타의 도움은 그야말로 하늘이 내려주신 기적처럼 느껴졌다.
라크도 감정이 벅차올랐는지 소파에서 벌떡일어나 리타를 끌어안았다.
" 케엥! 아..앗!! 라크 이거좀 놔보세욧!!! "
라크는 너무 기쁜나머지 리타와 갑작스런 포옹을 했지만 리타의 이상반응에 화들짝 놀라며 물러섰다.
뻣뻣하게 선 꼬리를 끌어안고 가쁜 숨을 내쉬며, 볼에는 새빨간 홍조를 띄고있다.
머리위에 달린 여우귀는 축늘어졌다는것은 기쁨이라는 감정보다 당황스러운 감정을 뜻한다.
" 어..엄마? "
" 라.. 라크 어..엄마가 몸이 안좋아서 좀 자야겠어요. 미안해요 "
라크는 리타의 흔들리는 금색 눈동자을 보고선 그녀의 상태가 온전치 못하다는것을 알수있었다.
아마 냄새중독 특성때문에 라크와 포옹한 순간 냄새를 맡고 흥분을 했던것일것이다.
단순히 기뻐서 포옹을 한것인데 이런 결과를 불러오게될줄이야...
이거 생각보다 수월하게 따먹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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