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화 〉 승부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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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정체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내가 일곱 살이 될 무렵이었다.
10여년전, 만인의 경외와 관심을 받았던 여신교의 성녀, 리타 아트리에.
사람들은 불세출의 신성같은 존재였다고들 말하고는 했다.
역대 성녀들 중에서도 가장 많은 신성력을 몸에 담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여신 벨미아님의 기적을 행하는데 부족함이 없었으리라.
먼 옛날, 여신 벨미아님께서 이 땅에 현신하셨을때 너그러운 성품으로 만인을 품고자 하셨다고 전해져온다.
일찍이 마에 고통받던 생명들을 위해 구원해주신 여신님이었기에 곧 배려심은 여신교가 추구해야할 덕목이 된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리타 아트리에라는 성녀는 받들어야할 존재였다.
어린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세계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여신님께서 내려주신 기적을 만인을 위하여 베푸셨으니까.
그 어린 성녀의 눈에는 제 몸을 불살라서라도 사람들을 돕겠다는 의지가 가득 차올라있었다고 한다.
시대가 흘러서 기술이 발전하며 둥지가 불시에 나타나지않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세상은 여전히 위험에 놓여져있었고 그렇기때문에 자애로운 여신교의 성녀를 우상처럼 떠받들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옛날부터 그렇게 대단하던 어머니이셨다.
지금은 여신교 이야기를 꺼낸다면 절로 얼굴을 찌푸릴정도로 불쾌하시지만 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여신교의 성도들과 여신교 그 자체를 미워하신게 아니라, 여신교의 주교들이 원망스럽다고 말씀하셨다.
여신 벨미아님께서 내려주신 축복의 아이들을, 누구보다도 여신을 섬기는 자들이 내쳐버리는게 말이 되냐면서 화를 내시는것이었다.
지금까지도 어머니는 때때로 여신교의 요청이 들어올때마다 갈무리된 분노를 표출하기도했다.
그리하여 쌍둥이 남매는 알고있었다.
전 성녀였던 리타 아트리에가 여신교의 사람들에게 성녀라고 불리는것을 얼마나 싫어하는지를.
그래서 그런것이다, 자연스러운 수순같은것.
쌍둥이 남매는 제 어미처럼 여신교를 싫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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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스의 저택에서 우연히 다시 마주치게된날 물어뜯을듯이 싸워댔다지만, 루샤와 나는 기본적으로 잘지내는편이었다.
어디까지나 주관적인거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있다.
루샤는 날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절로 고이는 침을 녀석에게 들키지않게 조용히 삼켜넘기고, 앞의 화면에 집중해서 바라보는척을 하며 옆을 힐끗 쳐다본다.
루샤야 모르겠지만 나는 여신님을 만나서 전생의 기억을 주입했고, 그로 인한 부작용으로 군데군데 구멍이 난 치즈처럼 옛기억들이 흐릿하게만 떠오른다는것을···
에리스의 대저택에서 마주치자마자 녀석에게 처절하게 괴롭힘당했던 기억들이 하나 둘씩 바로 떠올라서 루샤인것을 알아볼수있었지만, 내 기억속에서의 루샤의 모습은 어린 시절의 꼬맹이 그대로였기때문에 성장한 지금의 루샤가 좀 낯설게 느껴졌다.
몇년만에 보는것같은 느낌.
오랜만에 보는 여동생의 몸은 완전한 여성의 몸의 형태를 갖추고있었다.
빨래판같았던 가슴은 굴곡진 언덕처럼 솟아올라서 어떤 옷을 입더라도 부각되어 보였고, 허벅지는 골반옆으로 통통하게 튀어나와있었다.
여동생의 약올리는듯한 고양이상의 미소를 볼때마다 치밀어오르는 분노도, 임신하기에 최적화 된 몸매를 보고있으니 눈녹듯 사르르 녹아내려갔다.
" 푸하하!! 존나 못해!! 아직도 이걸 못막아?!! 그러엄···· 이건 어때!! "
루샤는 녹림처럼 푸른 에메랄드 색의 눈동자에 빛을 담아내고선 게임에 집중하고 있어서그런지, 흑심을 품고있는 날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녀석은 게임을 할때 몸도 같이 움직이는 타입이라서, 재빠르게 조작을 할때마다 상반신을 이리저리 흔드는 바람에 입고있는 목늘어난 헐렁한 티셔츠도 같이 움직여댔다.
조.. 조금만 더 이쪽으로 흘러내린다면 보여져선 안될것도 보일것같았기에, 게임에 집중하는척을 계속해나가면서도 시선은 티셔츠를 뚫고나올거같은 왕가슴에 고정할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멍하니 여동생의 가슴을 쳐다보고있던 나를 제정신으로 돌려놓은것은 크게 울리는 경적소리였다.
아, 지고말았다.
" 끝! 아! 완전 못하죠?! 아니, 존나 못하죠?!! 허접! 허접도 이런 허접이 있을수가 없지! 킥킥킥!! 개허접이 무슨 생각으로 이 루샤님에게 덤빌 생각을 다하셨을까? "
첫번째 승부로 내가 자신만만하게 꺼내든것은 쌍둥이 남매의 추억이 담긴 물건이었다.
때가 묻은 낡은 게임기.
전생에서의 각종 오락거리가 가득한 게임이 많았던것처럼, 이 세계에서도 문명은 오랜 세월이 흘러서 발전하였기때문에 비슷한 오락거리들 또한 존재하고있었다.
루샤 녀석이 날 손쉽게 이길거라고는 생각 못했는데····,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한 셈이다.
" 뭐,뭐야! 너 오랜만에 하는거 맞어?! "
" 누가 그래? 저기 순위표 안보여?? 내가 집에 올때마다 기록 갱신하고 그랬잖아. 바보라서 그런것도 까먹은거야? "
알고보니 순위표에 적혀진 저 이름들이 전부 루샤의 닉네임이었다.
얼마나 우스웠을까?
그렇지만 어차피 상관없다, 본격적인 시작은 이제부터니깐.
나는 애써 분한 표정을 지어보이고는 주먹을 꽉 쥐고선 울분을 집어삼키려 노력하는것처럼 내보였다.
그러자루샤녀석은 날 성공적으로 약올린것이 맘에 드는지 쿡쿡하고 웃어보인다.
" 그래, 일단 첫번째 승리를 가져간건 나네. 막 후회되지않아? 이기지도 못할 승부를 걸고말았다고 그런 생각에 자괴감 들고 그런거 말야. 킥킥 "
기세등등해진 루샤는 허리에 손을 얹은채로 가슴을 내밀고선 자기 자신을 뽐내듯이 굴었다.
머리위에 달린 여우귀는 그 어느때보다 하늘을 향해 솟아올라서 우쭐거렸다.
자신의 음란한 몸매를 자각하지 못한 꼬마여우는 계속해서 날 유혹하고있다.
녀석도 내가 그런 생각을 품을것이라는 것을 아예 상정하지않은것일지도 모르지만말이다.
어쩌면, 날 집어삼키려드는 끝없는 성욕이 지금 상황과 맞물려서 내 머릿속을 음란하게 물들인것일수도 있고.
지금은 그저 날카로운 송곳니를 감춰야할때다.
" 다음 승부로 할 거나 빨리 말해. "
" 으응··· 어쩔까, 역시 그걸로 하는게 낫겠지? 아니야, 저 새끼라면 할수있을지도···. 좋아! 결정했어!! "
루샤 녀석이 결정했다고 소리치고선 대뜸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 이건··· 아티팩트? "
" 맞아, 아티팩트지. 너도 아카데미에 입학할정도라면 아티팩트 하나정돈 갖고있을거아냐? "
아티팩트.
마법을 다루기위해서 사용되는 보조도구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것을 받은 기억이 없는데···.
" 그래서, 뭐 이걸로 지금 뭘하자는건데? 그리고 난 아티팩트가 없으니깐 다른 걸로 승부내지 그래. "
" 뭐?! 아티팩트가 없다고? 지금 장난하자는거야?? 지금 네 손가락에 끼고있는 반지는 아티팩트가 아니라면 그건 뭔데?! 상당한 마력이 느껴지는데···, 아마 엄마가 준거겠지. 안그래? "
아, 그런건가.
이 반지가 아티팩트였다니.
금시초문이었지만 왠지모르게 이해가 갔다.
엄마가 허투루 내게 이런 반지를 줄 것 같지 않았으니까.
" 준비물은 준비됐으니 그럼 시작해볼까? 그냥 아티팩트에 있는 힘껏 마력을 불어넣으면 돼. 그러면 마력흔이 피어오를텐데 누가 더 진하게 피어올리는지 승부를 내는거지. "
루샤의 말을 들어보니 에콜 아카데미의 설립 당시부터 전해져오는 대결 방법이라고 한다.
어쩌면 에리스가 생각해낸 대결 방법이지않을까?
헤실헤실 웃어대는 그 바보같은 얼굴의 엘프가 생각났다.
" 자, 그럼 이제 마력을 불어넣어!! "
시작을 알리는 루샤의 목소리에 나는 반지를 낀 손가락에 정신을 집중시켰다.
머리에 있는 피가 바싹바싹 마르고, 목이 타는것처럼 느껴지는 메마른 느낌이 일순간 몰려온다.
그러자, 반지를 낀 내 손가락위로 사파이어처럼 푸른 색의 마력흔이, 얼음 결정의 모양을 이루어서 희미하게 피어올랐다.
나는 그것을 보고 상당히 놀라고말았다.
마력을 아예 못쓰는 사람들도 있었기때문에 그랬다, 일단 마력흔을 피워올릴수있다면 마법을 다룰수있다는 증거였으니말이다.
" 오! 오오!! 야,야! 이거 봐! 마력흔이야!! "
지금껏 단 한번도 마법을 써본적이 없었기때문일까?
나는 무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에 도취하여 뛸듯이 기뻐하고말았다.
하지만 먹이를 노리는 맹수처럼 눈을 한차례 반짝인 루샤의 눈에, 흠칫 몸을 떨고말았다.
나는 승부라는것을 잊어버린 나머지, 잊지말아야 할 것도 잊어먹은것이다.
그러나, 내 예상과는 다르게 루샤는 참아오던 웃음을 터트렸다는듯이 배를 잡고 데굴데굴 굴러댔다.
" 실화야?! 하하하!! 저,저게! 푸웁! 하하하하!! 야! 어린 애들도 그정도는 아니야!! 내가 본 초등부 애들도 니꺼보단 선명한데!! 바아보아니야~? 진짜! 완전 웃기네!!! 하하하하하하!!!! "
이, 이 썅년이 기어코 내 성질을 건드려?!
왠지모르게 달아오르는 얼굴.
부들부들 떨려오는 어깨.
못참겠다.
어떻게든 응징을 해줘야겠어!
" 하하하···. 너무 웃었더니 배가··· 흐읏!!!!! "
믿을 수 없다는듯 커진 눈.
내 손은 루샤녀석의 겨드랑이에 들이댄채로 가만히 멈춰있었다.
루샤는 제 운명이 내 손에 달려있다는것을 깨달았는지 조용해져있었다.
" 진,진정해? 오빠?? 나 간지럼 잘 타는거 알잖아?? 거기서 손 좀 떼줄래?? "
그러나 루샤의 바램과는 반대로 손은 살살 움직였다.
" 히악!!! 아,안된다고 했잖아! 푸흡!!! 아,안돼 더 웃으면 배가 찢어져!!! "
" 이럴때만 오빠라고 부르는거야? "
" 아,알겠어. 내가 잘못했어!! 앞으로 오빠라고 불러줄게!! 그럼 됐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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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움직이던 손이 멈추자, 루샤는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이제 끝났나 싶었던 순간, 시야가 암전되는것처럼 그늘이 진다.
" 대,대체 뭘···?! "
오빠새끼가 자신의 여우귀에 입을 밀착한채로 말을 내뱉었다.
" 싫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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