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하렘만들기-63화 (63/76)

〈 63화 〉 대시?

* * *

진정 내가 방금 들은 소리가 진짜일까?

내가 헛것을 들은건 아닌가 싶어서 볼을 꼬집어 봤지만..

생생한 고통만이 느껴졌다.

“ 대장님! 지금 농담하시는거죠? “

“ 농담이라니..? 나는 진심이다만, 무슨 문제라도 있나? “

“ 대체 왜요?! “

그 말에 경악한 루샤가 제 상관에게 쏘아붙이듯 물었으나,

정작 문제의 폭탄 발언을 입에서 내뱉은 마르실님은 무덤덤하게 흘려낼 뿐이었다.

마르실님의 머리위에 달린 곰 귀마저도 부동의 움직임을 내보이지 않고 있으니, 진심으로 말한 것이리라.

되려 무엇이 문제냐고 물어보는듯한 마르실님의 의문스럽다는 시선에 루샤는 기가 찬 듯 보였다.

그도 그럴게 마르실님이 오기전까지만 하더라도,

내가 한눈을 판다는 이유로 나를 쥐어짜내지 않았던가.

애정을 갈구하던 여동생의 집착욕은 내 생각보다도 무서웠다.

여전히 얼굴은 눈웃음 짓고 있었지만…

흡사 막 갈아낸 날카로운 예기를 띠는 검처럼 찌를듯한 기백이 흘러나오는 시선.

그 시선이 마르실님을 향해 쏘아내지고 있었다.

그러나 원체 무신경한건지, 간이 큰 건지, 마르실은 전혀 개의치 않고 오히려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 간단하다. 마음에 들었으니까. “

“ 예…? 지금 농담하시는거죠? “

“ 루샤, 한번이라도 내가 거짓으로 말하는 걸 본적이 있나? “

그 말에 한층 더 일그러지는 루샤의 얼굴.

“ 그래서… 뭘 어쩌겠다고 지금 말하시는건데요. “

“ 당연히 데려가야지. 시험해볼게 한 두가지가 아니니깐 말이지. “

“ 시험이요…? “

전혀 예상치 못한 단어가 튀어나왔기 때문에, 루샤는 당황한 것 같아보였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인지라, 여지껏 꾹 다물었던 입을 들어올려 마르실에게 물었다.

“ 무슨 시험을 말하시는겁니까? “

“ 그거야… 내게 걸맞는지 알아내기 위한 시험이지. “

콰드득—!

돌연 불길한 소리가 옆에서 들려왔기에 고개를 돌려보자,

루샤가 앉아있는 의자의 손잡이가 일그러져 있는 것을 발견 할 수 있었다.

일그러진 모양새를 보아하니 이건… 루샤의 손모양인데?

“ 어라..? 이게 왜 이렇게 부숴졌지..? 아.. 얘기 나누시는데 방해해서 죄송해요. “

전혀 몰랐다는듯 난처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난색을 표하는 루샤.

그러나 이건 연기에 불과했다.

앞으로 내보이는 얼굴과 달리 내가 앉아있는 곳에서는 루샤의 뒷모습까지도 볼 수 있는 각도였기 때문이었다.

루샤의 곡선을 그리는 허리밑으로 자리한 여우꼬리가 꼿꼿이 세워져 있는데다가 털까지 빳빳하게 곤두세우고 있었으니,

이는 루샤가 화가 났을때 자연스레 나타나는 몸의 반응이었다.

그것도 어지간히 화가 났을 때가 아닌 진심으로 화가 났을 때의 반응이지.

그런데…

어째 반응이 이상하다?

지금까지 앞에 앉아있는 자신의 상관인 마르실님에게 화살을 겨누던 루샤였다.

하지만.. 묘하게 느껴지는 이 분위기는…

어느 순간부터 목덜미 부분이 바늘에 찔린듯 따끔 따끔 거려온다.

루샤녀석 날 의심하고 있구나!

결코 내가 벌인 짓이 아니었지만..

그렇다하더라도 마르실님을 앞에 두고 내가 한 게 아니라는걸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

“ 크흠..! 어찌됐든 그리됐으니 그 자는 내가 데리고 가도록 하겠네. “

“ 자,잠깐만요! 대장님. 원래 이렇게까지 적극적이시던 분이 아니잖아요! 대체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러시는거예요?! “

“ 당황스러운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마르실님. 저희 만난게 이제 막 두번째이지 않습니까? “

도저히 납득이 안가는 부분이 꽤 많았다.

우리가 만난 시간을 통틀어서 생각해본다고 하더라도 10분이 안되었고,

날 이렇게까지 꾀어들려고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한테 빠질 계기라도 있었냐고 물어본다면…

글쎄... 전혀 없는 거 같은데?

마르실이 툭하면 사랑에 빠지는 그런 타입이라면 전부 이해가 가겠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그 누구라도 이 여인을 눈 앞에 두고서 그런 생각을 품을 수는 없을 것이다.

짐짓 굳힌듯한 날카로운 느낌을 주는 인상하며, 자세에서도 느껴지는 기품은 고고했으니.

“ 내가 그래서는 안된다는 이유라도 있는가? 왜들 그렇게 난리인지 모르겠군. 참고로 이 일은 이사장인 에리스님께서 직접 하명하신 일이다. 그러니 더는 토 달지 말도록, 루샤. “

누가 명령을 내렸다고?

생각지도 못한 이름이 거론되는 순간.

날 의심하며 따가운 시선을 보내던 루샤는 당황하여 얼빠진 사람마냥 멍해져서 중얼거린다.

“ 에,에리스님이... 하명하신 일이라고요...? 이,이게 대체 무슨... “

데엥 데엥하고 울려퍼지는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열차의 종소리.

이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을 대신해서 대화의 끝을 마무리 짓는듯한 그 소리에 마르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자, 그럼 자리에서 일어나도록 하지, 라크군. 날 따라오게나. “

이것이 어찌된 일인지 규명해야 할 필요가 있었으므로 나는 그녀를 따라가야 했다.

그 전에 얼빠진 루샤를 톡톡 건드려서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렸으나, 루샤는 가보라는듯 손을 휙휙 내저었다.

그에 나는 마르실님의 뒤를 따라서 역전에 내리고 아카데미로 가는 통학로를 따라서 걸어나가며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 헌데.. 언제부터 이러실 마음이 드신겁니까? “

“ 음... 처음에 만났을 때를 기억하나? 내 기백을 받아내고도 멀쩡한 남자는 자네가 유일한 남자였다네. 그래서 궁금해졌다고 말해야 할까? 곧장 나는 이사장인 에리스님께 달려가서 붉은 머리를 가진 자네에 대해서 물었지. “

“ 무엇을요? “

마르실님과 나는 아카데미 부지내의 넓은 통학로를 걷다가, 길 옆에 줄지어서 흐드러지게 핀 꽃들로 가득한 나무 사이로 진행 방향을 틀었다.

아카데미 부지내에서 다른 이의 방해를 받지 않을 수 있고, 고요함으로 가득한 장소로 향하는 길.

에리스의 대저택으로 향하는 길로 말이다.

이 곳이라면 아카데미 재학생들도 없으니 좀 더 직접적으로 캐물어도 상관없겠지.

마르실이 입을 열어서 말하려던 찰나에 나는 선수를 쳐서 먼저 물었다.

“ 저를 정인으로 받아들여도 되겠냐는 질문을요? “

“ 그거야 내 제자로 들여도 되겠냐는... 뭐...?! 자, 자네 지금 대체 무슨 말을 하는거지!! “

응...?

토마토처럼 푹 익은듯한 벌건 얼굴과, 범죄현장을 들킨 범죄자처럼 벌벌 떠는 마르실님의 손이 내 눈에 드는 순간.

나는 통학열차의 객실에서부터 우리의 대화가 평행선을 달리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

“ 라크! 정말 오랜만이로군!! 정말 미안하네, 내가 그동안 바빠서 연락을 통 하질 못했다네. 이해를 해주게나. 헌데.... “

고급 비단으로 짜여진 커튼이 보기좋게 묶여있어 따사로운 햇살이 드는 창.

고급진 가구들로 채워져있는 넓은 집무실.

그 한가운데에 놓여진 책상앞에 앉아있는 하이엘프 여성은 눈앞에서 묘하게 느껴지는 광경에 입을 들어올려 물었다.

“ 자네들 왜 그렇게 떨어져 있는겐가? “

책상 바로 앞에 서있는 두 사람,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한 수인여성과 한 인간남성이 서있었다.

라크와 마르실.

어딘가 어색한 분위기의 그들은 먼 발치에 떨어져서 서있었기에, 기이하다고 느낄만한 광경이었다.

“ 아니요, 여기까지 오는데 좀 오해가 빚어진 터라... 제 불찰입니다. “

“ 아하, 그렇구나... 또 그런게냐? 하여튼 자네의 대화능력은 알아줘야 해. 어딜가나 사고를 일으키기에, 내가 평소에도 타인과 교류해보라고 그리 경고했거늘. “

마수사냥꾼 양성 에콜 아카데미의 이사장 에리스 드라우니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영 마뜩잖은듯 쓴입을 다셨다.

에리스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찻잔을 들어올려 우아하게 마시고는 말을 이었다.

“ 라크, 갑작스럽게 들은 일이라서 당황하지 않았나? 내가 대신해서 사과하도록 하겠네. “

“ 아니요. 괜찮습니다. 전부 다 이유가 있으셔서 그러셨을텐데요. “

“ 역시 그렇게 말할줄 알았다네. 어미를 쏙 빼닮았어. 그래.. 이쯤에서 잡담은 각설하고 본론을 얘기해주도록 하겠네. 최근에 주의해야 할 일이 생겨서 그 방도를 알아내느라 바빴다네. “

“ 주의해야 할 일이요? “

라크의 질문에 에리스는 짐짓 굳은 얼굴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자네에게 아주 큰 연관이 있는 일이지. 이전부터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내보이던 자들이 있었는데... 자네가 아카데미에 모습을 드러내고 나서부터 활동이 더 활발해졌다네. 아마 자네를 노리려 들겠지. “

“ 저,저를요? “

급작스러운 이야기에 당황스러울만도 했다.

라크에게는 자신을 노리는 집단이 정말 존재했다는 것부터가 선뜻 믿겨지지 않는 사실이었지만, 말로써 들으니 그것이 사실이라는게 실감됐다.

“ 어디서 정보가 새어나간거지... 라크, 자네 지금까지 4대 명가의 영애들중 몇 명과 접촉을 했는지 기억 할 수 있겠나? “

에리스의 묻는 말에 라크는 곰곰히 그간 만나봤던 4대 명가의 영애들을 떠올려보았다.

잠깐이라도 마주쳤거나, 아카데미 생활을 같이 했었던 영애들을.

라이오넬 가의 카르사와 나디아.

블렌더 가의 데이지.

샤토 가의 마리엘.

이중에 그 집단과 연관이 있는 영애가 있다는건가?

...

라크의 이어지는 침묵의 시간이 길어지는 것을 본 에리스는 라크의 생각을 대충 눈치챘는지 말문을 틀어서 집무실에 흐르는 정적을 깼다.

“ 하여 자네에게 호위를 붙이자니 24시간 그럴수도 없는 노릇인지라... 방향을 바꿨다네. 자네의 능력을 성장시키는 쪽으로 말이지. “

에리스가 톡톡 손으로 책상을 두들기니 마르실이 그 앞으로 걸어나가 라크의 앞에 섰다.

에리스가 손을 펴서 다른 사람을 소개하려는듯 마르실을 향했다.

“ 이쪽은 평소에 날 경호하는 경호대의 경호대장 마르실 베이커라고 하네. 이미 인사를 나눴고 대화했으니 알겠지만... 이제부터는 자네를 가르치게 될 선생이 될걸세. “

그 말을 뒤이어 에리스의 손이 이번에는 라크를 향한다.

“ 그리고 이쪽은 라크 아트리에, 마르실, 자네의 제자가 될 자라네. 서로 인사를 나누도록. “

이미 알고있는 지인이었지만, 사제지간의 인사를 나누는 것에 의미가 있으므로, 라크는 허리를 숙였다가 펴서 마르실에게 인사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두 사람의 어색함은 풀리지 않았는지, 그 기색이 행동에서 묻어나오고 있었다.

마르실의 솟은 눈썹이 내려오지 않는 걸 보면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 좋아, 해야 할 일은 전부 끝났으니, 라크, 자네는 이만 수업에 들어가보도록 하게. 어디로 새지 말고 곧장 가게, 내가 지켜보도록 할테니 빠져나갈 생각하지말고. “

에리스가 라크에게 따끔하게 주의를 하며 축객령을 명하자, 라크는 마르실과 에리스에게 인사를 하고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이윽고 집무실에서는 에리스가 찻잔을 들이키는 소리와 괘종시계가 작동하는 소리만이 울려퍼진다.

“ 저.. 에리스님. 여쭙고 싶은게 있습니다. 에리스님이 명하셨기에 그대로 따른거긴 하지만... 라크는 뭐하는 자 입니까? “

“ 아.. 내가 바빠진 탓에 정신이 없어져서 그걸 얘기한다는 것을 깜빡했군 그래. 그냥 제자로 들이라고만 말해서 미안하네. 그냥 최중요 인물이라고 생각하게나. “

“ 최중요 인물... 알겠습니다. 그저 하명하신대로만 따르면 될 뿐이겠지요. 그런데... 아트리에라...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 것 같습니다만. “

“ 뭣?! 자네까지도 청년치매가 온겐가?! “

“ ...네? “

“ 아, 아닐세... 아무튼 아트리에라는 이름이 자네 부대에도 있을텐데 그걸 모른단 말인가? 그리고 자네가 아카데미를 다녔을 적에도 동기중에서 그 이름이 있었을텐데 말이지. “

“ 아...! “

한때 마르실이 아카데미를 다니고 있을 적에 고결하고 아름다운 미모를 자랑하는 학내 최고의 미인이 있었다.

그 이름은 리타 아트리에.

그렇지만 그녀의 이해 할 수 없는 기이한 행보에 접근하려는 남자들은 다 떨어져나가고 말았다.

그리고..

몇 년전에 그녀의 딸이 경호대에 들어오고 싶다는 소식에 자신이 직접 그 딸을 만나서 판단을 내렸었다.

루샤 아트리에.

잠깐만... 아트리에라고?

그렇다는건...

귀결되는 생각에 마르실은 입을 틀어막고 소리없는 경악을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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