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화 〉 먼저 내 아이를 배는 사람이 엄마인거야! ~가족구성원 재정립의 시간~ ( 1 )
* * *
줄지어 늘어선 허름하고 낡아빠진 주택과 물비린내가 나는 고인 웅덩이로 가득한 이 곳은 하르마디아의 가장 외진 곳에 있는 빈민가.
그 빈민가에서 한 사내가 빠르게 뛰어가고 있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몸을 웅크리고 있는 모습.
무언가에 쫒기는 것처럼 사내의 모습은 몹시도 불안해보였다.
사시나무 떨리듯 진동하는 사내의 눈동자는 금단증상에 허덕이는 약물중독자를 연상케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쫒기듯 빠른 걸음으로 뛰쳐나가는 사내의 얼굴에는 짜증스러움으로 가득했다.
사내가 입고 있는 흰색 와이셔츠.
그 와이셔츠는 사내가 흘려낸 땀으로 푹 젖어들어서 착용자에게 불쾌감을 안겨주고 있었다.
허나, 사내에게는 그 와이셔츠를 갈아입을 시간도, 아니, 그런 생각을 할 여유조차 없었다.
사내의 심호흡 소리는 매우 헐떡이고 있었으며, 주위를 경계하느라 여념이 없어보였으니 말이다.
이윽고 빈민가에 울려퍼지던 사내의 발걸음 소리가 멎었을 때.
그 사내는 빈민가에서도 가장 낡아빠진 건물 앞에 서있었다.
아니 매우 별나다고 표현을 해야 옳을 터.
벽 곳곳에 금이 가있으며, 거미줄이 쳐져있어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건물이라고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어보이는 건축물.
그 건축물은 마력열차가 있는 진보된 기술을 갖고 있는 현대에 어울리지 않는 고리타분하고 낡아빠진 고대 유물과도 같아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사내의 면전 앞에는 오랜 시간이 흐른듯한 나무문이 있었다.
어찌나 오랜 시간이 흘렀는지, 나무판자들을 고정시키는 경첩에 유격이 생겨서 헐거워진 상태의 나무문.
나무 판자들 사이로 생겨난 틈새는 안을 들여다 볼 수 있을만큼 커다랬지만, 그 안을 볼 수는 없었다.
그 틈새로 보이는 건 오직 칠흑의 어둠뿐이었으니까.
사내가 쇠로 된 둥근 문고리를 손에 쥐어잡는다.
그리고 이어질 사내의 행동은 문고리를 잡아당겨 집안으로 들어서는 것이리라.
그러나 사내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우뚝하고 멈춰선 사내.
손가락을 규칙적으로 까닥이는 사내의 모습에서는 망설임이 읽혀졌다.
안으로 들어설지 말지, 머뭇거리는 사내는 골똘히 생각했다.
' 과연 지금 들어가는 게 맞는 걸까? '
만일 지금 이 순간이 바로 그 적기가 아니라면...?
다시금 사내의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사고를 가속하여 어느 결정이 옳을지에 대해서 골똘히 생각하는 사내.
그러나 그 결정은 생각보다도 빠르게 나왔다.
불현듯 뜀박질치는 무수한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 순간.
더는 망설여서는 안된다는 걸 깨달은 사내는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문고리를 잡아당겼고, 그 까만 암흑속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끼이익.
오래된 문이 닫히면서 나는 소리와 함께 사내에게 찾아든 건 한 치 앞조차도 분간이 안가는 어둠이었다.
그리고 사내의 눈은 밝은 햇빛에 적응되어있던 터라, 칠흑같은 어둠 속을 알아본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려면 좀 시간이 걸릴 터.
사내는 하는 수 없이 제자리에 멈춰서기로 했다.
" 일단 들어오기는 했는데... 어디로 가야하지? "
난감한 상황이었다.
목적지로 가라고 얘기만 들었지, 그 후로 어떻게 하라고 지시를 듣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난감한 상황은 생각보다 오래 가지 않았다.
" 어떤 일로 오셨는지요? "
정중한 어조와 묵직한 음색의 목소리.
바닥에 짙게 깔린듯한 중후한 남성의 목소리에는 듣기만 해도 압도되는 위압감이 깃들어 있었다.
그 목소리에 순간 사내는 깜짝 놀랐지만,이내 몇번 들었던 목소리라는 것을 깨닫고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사내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문을 틀었다.
" 길,길포드님이셨군요.... 후우... 아! 약속! 약속을 이행하러 왔다고 전해주십쇼! "
" ....알겠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전달해드리도록 하죠. "
잠깐의 침묵. 다행히도 그 중후한 목소리의 소유자는 사내의 말에 긍정을 표했다.
그리고 멀어지는 발자국 소리와 느껴지던 인기척이 옅어졌기에 그제야 사내는 안도할 수 있었다.
' 후우... 이제야 한시름 덜었나... '
이로써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거나 마찬가지다.
이제 사내가 해야할 건.... 그 정보를 전달하는 일.
본래 사내는 이러한 일에 친숙하지 않은 부류의 인간이었다.
절대 청렴결백하다고 말은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빈민가의 허름한 저택에 올 인간도 아니였다.
그리고 고비가 머지 않았다는 사실은 사내의 경계심을 해이하게 만들었다.
어둠 속에 있다보니 적응된 사내의 눈이 무언가를 포착해내는 순간.
세상이 한바퀴 뒤집혀졌다.
" 어...!?"
녹색의 빛이 번뜩이자, 사내는 자신의 완력으로는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무형의 힘이 옭아매는 것을 느꼈다.
그에 사내는 버둥거려서 저항해보았지만, 그게 부질없는 행동이라는걸 깨달았을 때는 사내가 바닥으로 메쳐진 후였다.
쿠웅!
" 끄악....! "
일평생 이런 고통을 겪은 적이 없었기에, 고통에 면역력이 없던 사내는 입을 벌려서 그대로 비명을 토해내려했다.
허나, 그 전에 사내의 벌린 입을 누군가가 손을 써서 막아냈다.
" ......! "
그건 말그대로 사람의 손이었다.
보드랍고 말랑말랑한 손.
그 손에는 무시할 수 없는 완력이 담겨있었기에, 사내는 그 손을 깨물 수도, 밀어낼 수도 없었다.
그래서 사내는 어떻게든 저항하려고 몸을 움직이려 하던 순간이었다.
" 움직이지마. "
사내의 귀에 들려온 여성의 목소리.
그 목소리는 무척이나 고운 음색을 가지기도 했지만, 무심하여 차갑게도 들리기도 했다.
사내에게 허락된 움직임은 오직 눈동자의 움직임뿐이었다.
그래서 사내는 눈동자를 굴려서 정면을 바라봤다.
짙은 에메랄드 색의 눈동자, 그건 눈이었다.
이 칠흑의 어둠이 내려앉은 어두캄캄한 장소에서도 오롯이 홀로 빛나고 있는 에메랄드 색의 눈동자.
그렇기에 그 에메랄드 색 눈동자는 무척이나 특별해보였다.
어둠 속에서도 이토록 빛이 나고 있다는건 마력을 발현시키고 있다는 증거였으니.
캄캄했던 이 암흑 속에서 번뜩였던 의문의 녹색 궤적.
그 궤적은 필시 에메랄드 색을 가진 눈동자가 그려내던 궤적인게 분명했다.
사내의 전방에서 다시 무심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 너, 소리 지르면 죽어. 내가 묻는 거에만 대답. 알겠어? "
자신의 입을 틀어막고 있는 완력, 그리고 어둠 속에서 형형하게 빛나고 있는 녹안은 위협적이었기에 사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사내의 입을 틀어막고 있던 손이 떨어졌다.
대신 사내의 턱을 손으로 붙잡았지만, 한결 편해진 호흡에 사내는 깊게 숨을 내쉴 수 있어서 그나마 살만해진 기분이 들었다.
" 여기에 온 목적. 그게 뭐지? "
" 그,그게에... 전해야 할 말이 있어서 왔습니다. "
" 전해야 할 말...? "
그 목소리의 주인은 그 말을 끝으로 침음을 흘려냈다가 사내에게 다시 말을 꺼냈다.
" 나한테 말해. "
" 예? 아뇨,아뇨,아뇨. 이,이건 진짜 아무에게나 말할 수 없는... 우그윽...!! "
빠드득—!
듣기에도 매우 불안한 소리.
불길하기 짝이 없는 그 소리는 사내의 턱을 붙잡은 손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 나, 여기 일원. 그러니까 말해. 어서. "
" 으극...! 마,마르... 말! 하르께요!! "
일그러져 있던 사내의 입 사이로 뭉그러진 발음으로 이루어진 되다만 말이 튀어나온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사내의 턱관절을 노리던 손아귀의 완력이 줄어들었고, 고통에 가득차있던 사내의 얼굴이 안정을 되찾았다.
하지만 사내의 심신은 지칠대로 지쳐있었다.
아직까지도 육신에 고통이 잔류하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정신을 못차리는 사내는 잠시만 쉬고자 했지만, 불행히도 방해가 곧바로 들어왔다.
" 말해. "
무심한 목소리의 주인은 그 목소리의 소유자답게 인정머리가 없었다.
재차 사내의 턱을 붙잡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하려는 찰나에.
" 여우! 여우요! 여우! "
다급하게 외쳐진 사내의 말에 그 손이 움찔하고 멈춰섰다.
" 여우...? "
" 그냥 여우가 아니라 여신교의 그 성녀요! 한 때 모습을 감췄다는 그 유명한 여우수인 성녀말이에요! "
" 붉은머리? 어째서? "
" 이번에는 대역이 아닌 진짜 동일인이라고요! "
" 진실? "
사내는 열변을 토해내듯 말을 쏟아냈던 터라,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게 하나 있었다.
어느 새 보이기 시작하는 건물 안의 풍경.
사실 보이기 시작한 건 한참 전이었을 거다.
사내가 깨닫지 못했을 뿐이지.
그리고 어둠에 적응한 사내의 시야에는 앞에서 그를 위협하고 있는 여성의 외형이 조금이나마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붉은 선홍색의 머리카락과 뒤로 툭 튀어나온 푹신한 털꼬리.
이 꼬리의 정체는...
***
집에 들어서는 순간.
엄마와 여동생이 싸늘한 안색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어리둥절했다.
묵직하게 내 어깨를 짓누르는 중압감.
그 중압감은 아래에 깔려서 모든 무게를 감당해야만 하는 주춧돌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대체 무슨 일이지?
아트리에 가의 집에서 이러한 무겁고 경직된 분위기가 내려앉은건 처음이었기 때문에.
나는 생소하면서도 거북하게 느껴지는 이 상황에 당황하여 눈을 꾹 감았다가 떠보였다.
그러자.
" 아들.. 꽤 늦었네요? 어서 손씻고 자리에 앉으렴. "
" 오빠, 오늘 내 연락 왜 안받았어? "
헛 것이라도 본 걸까?
언제나 그렇듯 따뜻한 미소를 짓고 있는 엄마와 입술을 샐쭉하게 들어올리고 퉁명스럽게 불평하는 여동생.
방금전까지 집 안에 깔려있던 냉랭하던 분위기는 사라져 있었고, 두 사람이 둥근 식탁에 앉아서 날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으니까...
아무래도 내가 모르는 사이에 몸이 많이 지쳤나보다.
헛 것을 볼 정도면 많이 고단하다는 증거였으니 말이다.
그리 생각하자, 그 전까지 자각하지 못했던 피로감이 한꺼번에 내게 몰려들었다.
고단했던 수학여행을 끝마치고 집에 막 귀가했을 때처럼.
물먹은 솜마냥 무거워진 전신.
나는 그 무거운 몸을 움직여서 집안으로 들어섰다.
***
어째서인지 모르겠으나, 정신이 멍했다.
머리가 잘돌아가지 않는 느낌.
뭐가... 어떻게 된 거지?
그리하여 어디서부터 일이 잘못된 것인지, 내가 기억을 떠올리려던 순간.
" 으윽....!! "
지금까지 몇번이고 겪었던, 절대 익숙해지지 않을 강렬한 쾌감이 내 하반신을 강타했다.
약간의 간질간질거리는 느낌.
여성과 몸을 겹치는데 익숙해진 내게는 너무나도 생소한 느낌이었다.
어,어째서 내 몸이 이런 거지?
간질거리는 느낌이 지속적으로 사타구니와 신경이 몰려있는 허벅지를 타고 돌아다녔고, 하반신에서 시작된 그 열기는 곧바로 내 머리 꼭대기까지 치솟아올랐다.
점점 거칠어져 가는 숨결.
헉헉거리며 겨우 숨을 쉬던 나는 고개를 들어서 자극이 가해지는 내 사타구니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 곳에는 불청객이 있었다.
못돼먹고 이기적인 아기씨 청소부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가장 피가 짙게 이어져 있는 직계가족의 아기씨를 탐하려는 변태 모녀가 내 사타구니에 달라붙어있던 것이다.
이 풍경은 언제나와 같은 일상이었지만, 모녀에게서 흘러나오는 분위기는 그러지 않았다.
아마 철천지원수를 맞닥뜨려도 이보다는 더 따뜻하지 않을까?
그토록 싸늘한 분위기였다.
일전에도 아트리에 가의 모녀가 이러한 싸늘한 분위기를 흘려낸 적이 있었긴 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과는 다른 점이 있었다.
" .....아들, 전부... 다 알고 있으니까, 빨리 원상복귀해. "
내 자지 기둥을 쓸어내리는 엄마의 새하얗고 길다란 손가락.
" ...야 당장 돌려놔라. 안그러면... 알지? "
아기씨가 가득 담긴 불알을 쪼물락대며 얼굴을 들이대고 있는 여동생 루샤.
두 모녀는 내 자지에 달라붙어있으면서도 내게 그 싸늘한 냉기를 쏘아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