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화 〉 1. 마검님이 보고 계셔 (5)
* * *
그 남자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천천히 시선을 떨어트렸다.
정장의 가슴 부분을 중심으로 직경 30cm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남자의 육체는 마력에 의한 강화 마법과 옷 위에 덧씌우는 형태로 펼친 장벽에 의해 이중으로 보호 받고 있었지만, 연금술사가 시간을 들여서 전개한 마법은 그 모든 보소 수단을 날카롭게 부수고 들어갔다.
그의 몸이 힘을 잃고 낙하하기 시작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부터 바닥에 꽂힌다.
"……후우."
남자의 몸이 바닥에 추락할 때까지 연금술사는 검지 손가락으로 그를 계속 쫓고 있었다. 그리고 몸뚱이가 바닥에 처박힌 바로 그 순간, 주저하지 않고 다시 한 번 마법을 사용했다.
아주 조금 남아있던 마력까지 꼼꼼하게 사용해서 확실하게 마무리를 짓는다. 검지 손가락 만한 굵기의 섬광이 쓰러진 남자의 정수리를 뚫고 들어갔다.
"윽……"
긴장이 풀린 탓일까. 연금술사는 손으로 미간을 짚은 채 잠시 비틀거렸다. 하지만 쓰러지지는 않는다. 그 대신 술 취한 사람처럼 오른손으로 벽을 짚은 채 나를 돌아본다.
나는 한쪽 무릎을 꿇은 자세 그대로 굳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자세를 바꿔서 앉을 수 있을 정도의 체력조차 남아있지 않은 상태다.
몸 여기저기에 단검이 꽂힌 상태라 몸을 움직이려고 할 때마다 통증이 느껴졌다.
전투의 긴장감에서 회복된 후, 나는 간신히 현재의 내 상태를 돌아볼 수 있었다.
칼을 꽂으면 튀어나오는 해적 장난감처럼 마구잡이로 단검이 꽂혀 있다. 하지만 얻어맞은 단검에 비해서 실제로 몸뚱이에 꽂혀 있는 단검의 숫자는 많지 않다.
조금 전, 나는 무수히 쏟아져 내리던 수백 개의 단검을 서로 간섭하게 만들어서 상당수의 궤적을 틀어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한 번 간섭을 겪은 후에도 방향을 바꾸지 못한 수십 개의 단검 또한 그 흐름을 뚫고 나오는 과정에서 위력이 상당히 줄어든 상태였다.
타격점이 다들 미묘하게 빗나가 있었다.
정확히는, 그렇게 되도록 조정을 한 거지만.
그 결과, 수십 개의 단검은 내 몸에 쏟아지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내 몸과 부딪치고 뼈에 충돌하는 과정에서 제대로 꽂히지 못하고 튕겨나가고 말았다.
제대로 내 피부와 살을 뚫고 꽂힌 단검의 숫자는 십수 개 남짓한 개수에 불과했다.
연금술사는 내 몸에 꽂힌 단검 중 하나를 쥐고 뽑으려고 했지만, 이내 그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는지 포기하고 물러선다.
"잡아 뽑는 순간 피가 솟구칠 거 같네. 함부로 뽑지도 못하겠는 걸."
"일단…… 잠시만 쉬고 있으면, 혼자서 일어날 수 있을 거 같아요."
단검은 대부분 팔과 어깨 같은 곳에 꽂혔고, 다리 쪽은 비교적 피해가 적었다.
몇 개만 잡아 뽑으면 일어서서 걷는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렇게 대답하자 연금술사는 무슨 오물이라도 보는 듯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 꼴로 참 잘도 일어나겠다. 바보는 여기에서 잠시 쉬고 있어. 내 공방에서, 널 옮길 도구를 가져올 테니까."
"제 이름은 바보가 아닌데요."
연금술사는 내 대답을 무시하고 몸을 돌렸다.
그녀는 마력 없이 체력으로만 버텨야 하는 나와는 다르게 마력을 써서 몸을 지탱하고 있는 데다가, '유사 현자의 돌'을 섭취한 탓에 육체의 질이 보통 사람하고 다르다.
그 짧은 사이에 어느 정도 몸을 회복한 거 같다.
나는 잠시 여기에서 쉬고 있을까.
사실 단검이 몸에 꽂혀서 다친 것보다는 부족한 신체 능력으로 억지로 맞서 싸우느라 입은 데미지가 더 심하다.
내 몸을 가르고 들여다볼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서 자세한 것까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 몸 여기저기에 내출혈이 발생하고 뼈가 부러지거나 금이 간 곳이 잔뜩 있을 것이다.
손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뜨끔 하고 느낌이 오는 걸 보면 힘줄이나 인대도 좀 다친 거 같다.
정말이지 지독하기 그지없는 전투였다.
한 번이라도 실수를 저지르거나 선택지를 잘못 고르면 즉사하는 싸움.
할 수 있다면 이런 전투는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다.
"……안 돼."
문득 들려온 소리에 내 시선이 연금술사의 얼굴을 향해 움직였다. 내 앞에 서 있는 연금술사는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훨씬 더 먼 곳에 있는, 좁은 골목길의 저편을 바라보고 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부상 상태임에도 나는 홀린 듯 그녀의 시선을 쫓아 머리를 움직였다.
그리고 그 끝에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 어어어어어어어……"
정장의 남자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가슴과 머리에 뚫린 구멍으로 반대편의 풍경이 보인다. 심장이 있어야 하는 자리에도, 뇌가 있어야 하는 자리에도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상태다.
그런데 살아있다.
살아서 움직이고 있다.
지나온 길을 다시 돌아가듯이 구멍으로 흘러넘치던 혈액이 처음 있던 위치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은 그게 끝이 아니다. 이제는 뚫려 있던 구멍까지 외곽부터 천천히 메워지고 있다.
……이건, 설마.
"애초에 인간이 아니었던 건가……?!"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마력을 통해서 인간의 형태와 구조를 모사하고, 움직이게 하고 있을 뿐이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수백 년 전의 마법을 기록한 서적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극히 드문 타입의 술식이다.
실수했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저것이 인간이 아니라 인간의 형태를 취하고 있을 뿐인 존재라면 처음부터 그런 식으로 맞서 싸워서는 안 되었다.
연금술사의 마법도 효과가 없었던 건 아니라서 놈의 상태도 그렇게 좋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확실하게 쓰러트리기 위해서는 다른 종류의 마법을 선택해서 밀어붙였어야 했다.
할 수 있을까.
내가 미처 움직이기도 전에 그 남자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그의 검이 검게 빛난다.
대응책을 떠올리기는커녕 손에 쥔 검을 미처 움직이기도 전에 검에서 시꺼먼 빛이 쏘아졌다. 그 속도는 연금술사의 마법과 비교하면 눈에 띄게 느린 속도였지만, 상처투성이인 지금의 내가 피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때, 연금술사는 순간적으로 몸을 움직여서 내 앞에 방패로 나서려고 했다.
그리고 나는 그 찰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해결책을 펼치기 위해서 손에 쥔 검을 휘두르려고 했다.
"아."
격전 속에서 망가진 몸이 실수를 저지른 것일까.
아니면 이미 내 몸은 더 이상 움직일 수도 없을 정도로 심각한 손상을 입은 상태였던 것일까.
손아귀의 힘이 약해지면서 쥐고 있던 검이 거짓말처럼 내 손에서 흘러나왔다.
광선은 이미 코앞까지 다가온 상태였다.
"……."
끝장이다. 그렇게 생각한 바로 그때.
불현듯 눈에 보이는 세상이 흑백으로 바뀌면서 시간이 흐르는 속도가 급격하게 느려지기 시작했다.
지나치게 집중한 탓일까. 그게 아니면 죽기 직전에 보게 되는 주마등일까. 마치 정신만이 몸뚱이에서 튕겨 나온 상태로 모든 사물을 관조하는 기분이었다.
검 하나 똑바로 쥐지 못한 채 휘두르는 자세로 굳어 있던 내 손가락 끝에 뭔가가 다가와서 접했다.
그것은 내 손아귀에서 한 번 미끄러졌음에도 다시 스스로 다가온, 바로 그 마검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지만 그런 걸 따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마법처럼 다가온 검을 다섯 손가락으로 단단하게 틀어쥔다.
단단하게, 단단하게, 아예 끈으로 묶어서 고정한 것처럼 강하게.
두 번 다시 놓치지 않도록.
바로 그때, 나는 자루를 틀어쥔 다섯 손가락을 타고 보이지 않는 무형의 힘이 주입되는 것을 감지했다. 오른팔을 타고 올라온 힘이 몸통을 거쳐 전신으로 퍼져나간다.
몸이 풍선이라도 된 것처럼 부풀어오르는 느낌이 들었지만 불쾌한 기분은 들지 않았다. 도리어 청량한 쾌감이 등뼈를 관통하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그 직후 내 전신에 고슴도치처럼 꽂혀 있던 모든 단검이 스스로 뽑혀 나오고, 나의 전신에 기묘한 속도가 붙었다.
모두가 느려진 흑백의 세상 속에서 오직 나 혼자서만 가속한다.
나 아닌 다른 존재의 힘이 나의 전신을 장악했다.
그 보이지 않는 무형의 힘은 나의 팔과 다리의 위치를 조정해서 내가 기존에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자세에 존재하던 수많은 결함을 없애버렸다.
그럴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나는 온몸에 전율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이런 검술이…… 존재할 수 있는 건가……'
특급 모험가의 검술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순수한 경외심이 마음 속에서 피어오른다.
소리가, 들렸다.
『전투 감각은 합격. 머리 굴리는 수준도 마음에 들고, 적당히 무식한 것도 제 취향이네요.』
그 소리는 검의 안쪽에서 들려온 강렬한 울림이었다.
성별을 구분할 수 없는 목소리는 갑작스럽게 내 머릿속에 끼어든 후, 다음과 같은 말로 나를 혼란시켰다.
『제 주인이 될 만한 인간이라는 건 대충 알았어요. 그러니까 지금부터…… 당신을 제 검주??로 인정하고, 힘을 빌려드리겠습니다.』
검의 주인이라고……?
하지만 내가 미처 의구심을 느끼기도 전에 내 몸은 이미 나 아닌 다른 존재의 의지로 움직이고 있었다.
홀린 듯 한 걸음 나아간다.
두 다리가, 검을 쥔 오른손이, 마치 나의 몸이 아닌 것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아니, 내 몸이 아니다.
검.
오른손으로 틀어쥔 검이 스스로 움직이며 내 몸을 앞으로 끌고 나갔다.
마치 거대한 톱니바퀴의 움직임에 연쇄되어 작은 톱니바퀴가 돌아가고, 이윽고 그것이 하나의 거대한 장치를 움직이게 하는 것처럼.
검이 먼저 움직이고, 몸은 그 움직임에 최적화된 자세로 따라갔다.
신기하게도 불편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그게 당연한 일인 것처럼.
나의 몸은 그런 상태였다.
다음 순간 나는 연금술사의 어깨에 손을 얹은 뒤, 그녀의 몸을 뒤로 밀어 버리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검을 아래에서 위로 휘두른다. 검은 광선이 위쪽으로 튕겨 나간다.
느려졌던 시간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면서 흑백의 세계에도 다시 색채가 돌아왔다.
나는 검은 섬광을 튕겨낸 직후 정장의 남자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그 남자도 대응할 생각이 들었는지 단검을 마력으로 구축해서 내 미간으로 집어 던졌다.
몸의 자세가 무너지지 않도록 무릎만 굽혀서 종이 한 장 차이로 스쳐 지나가게 만들었다. 속도를 죽이지 않고 성큼 다가간다. 처음부터 멀지 않은 거리였다.
한 걸음 나아간 것만으로도 장검이 최고의 위력을 얻을 수 있는 거리에 들어섰다.
검과 검이 동시에 움직였다.
쿵!!
나는 격돌하는 순간 유려하게 방향을 비틀어 충격을 모조리 분산시켰다. 단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흘려보낸다.
이건 조금 전까지의 나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이었지만, 그게 아니다.
본능적으로 이해했다.
수준이 다르다.
"신현이 너……"
나의 갑작스런 변화를 눈치챈 것일까. 엉덩방아를 찧고 앉은 연금술사가 곤혹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얌전히……, 누워 있어요."
나는 이미 검에게 모든 주도권을 빼앗긴 상태였지만,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부위가 하나는 존재했다.
나는 나 자신의 목소리로 연금술사에게 의지를 전달한 뒤, 다시 입을 다물었다.
검과 검이 또 다시 움직인다. 몸은 언제나 조금 늦게 따라갔다.
검과 검의 격돌이 다시 한 번 시작된다.
그 한 번, 한 번의 충돌 속에서 나는 깨달았다. 신체 능력에서 나는 여전히 이 남자에게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팔과 다리의 움직임은 여전히 나의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조금 강화된 건 사실이지만 마력을 다루는 이들이 보여주는 인간을 초월한 움직임에는 도저히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움직임을 따라잡는다. 많이 느리긴 하지만, 아슬아슬한 지점에서 따라붙은 뒤 맞부딪친다.
어깨로 따라잡을 수 없다면 허리를 쓴다. 허리와 하체를 최대한 구동시켜서 검을 휘두르는 팔에 추가로 힘과 속도를 더하고 있다.
물론 지금의 행위는 나 역시 골수에 새겨지도록 익혀둔 기술이다. 하지만, 단적으로 말해서 몸을 다루는 수준이 전혀 다르다.
나의 수준도 절대 쳐지지 않는 수준인데도 상당히 커다란 차이를 느낀다.
물론 신체 능력의 차이는 여전히 심각하다. 나의 검은 간신히 남자의 검을 따라잡고 있을 뿐. 수세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시점부터 조금씩.
"……!!"
아주 조금씩.
나의 검이 그에게 따라붙기 시작했다.
검의 속도가 높아졌다? 그것도 사실이지만, 그 이상으로 남자의 검이 느려져 있었다.
검술은 흐름이다.
한 번 검을 휘두른다고 끝이 아니다. 첫 번째 동작에 연쇄돼서 두 번째 동작에 속도가 더해지고, 두 번째 동작에 연쇄돼서 세 번째 동작에 속도가 붙는다.
나의 검은 남자의 동작이 연쇄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방해하는 것도 모자라, 충돌할 때마다 발생하는 충격을 모조리 자신의 가속에 필요한 주춧돌로 삼았다.
내가 쭉 꿈꿔왔던 검술의 극의가 지금, 이 칼 끝에 걸려 있었다.
그래, 나는 이렇게 검을 휘두르고 싶었다.
지금의 내 능력으로 쫓아가기에는 아득히 먼 영역에서, 검은 홀로 춤추고 있었다.
속도의 차이가 없어져 간다.
적 또한 그 흐름을 느끼고, 억지로 흐름을 끊기 위해서 마법을 휘둘렀지만 의미가 없었다.
무거운 마력이 전신에서 방출된 그 순간, 칼날은 원형으로 퍼지는 마법 속의 아주 미세한 틈세를 베어 찢었다.
마법의 효과를 지워내는 것과 동시에 흩어진 마력이 오히려 주인의 팔과 다리를 붙잡는 족쇄가 되도록.
집행된 마력의 표면에 파고들고, 그 안에서 비틀고, 또 다시 나아가면서 순식간에 그러한 흐름을 만들어냈다.
나와 남자의 차이가 또 다시 좁혀졌다.
기술의 차원이…… 너무나도 다르다.
"그어어어……!!"
숨기지 못한 경악이 미처 재생되지 않은 목구멍에서 흘러나왔다. 검이 부딪칠 때마다 푸른 불꽃이 튀었다.
전투의 흐름은 이쪽에 있었다.
핏, 처음으로 나의 검이 그의 뺨을 찢었다. 여전히 그의 표면에는 마력으로 구축된 장벽이 있었을 텐데, 칼날은 그 존재를 무시하고 파고들었다.
이번에는 뺨이다.
다음에는 틀림없이 그 기름진 목을 뚫고 다시는 부활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짓이겨버릴 것이다.
"그……, 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물러나려고 하면 그 틈을 파고들어서 거리를 좁힌다. 다가오려고 하면 그 틈을 파고들어서 적절하게 거리를 벌린다.
빠져나오고 싶어도 빠져나올 수 없는 공방. 그 속에서 빠져나가기 위해서 놈은 스스로 뼈를 깎는 선택을 했다.
일부러 나의 검에 자신의 팔을 가져가서 속도를 아주 조금 늦춘 뒤, 그대로 마력을 방출해서 스스로의 몸을 뒤로 날려 보낸 것이다.
내 몸은 이렇게 될 것을 예측하였다는 것처럼 그 기습적인 움직임에도 대응했지만, 지금의 내 신체 능력으로는 쫓을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무리하게 쫓아가지는 않았다.
베어 찢긴 오른팔이 하늘을 날았다.
지금까지 이어진 흐름이 잠시 끊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팔을 빼앗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긴 것일까.
그게 아니면…… 잠시 소강 상태에 들어가는 것 또한 아직 끊어지지 않은 '흐름'의 일부인 것일까.
"그, 그 검……"
놈이 떠듬떠듬 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곳에서 '눈이 뜨는 순간'을 목격하게 될 줄이야……. 하지만, 나도 여기에서 이 육체를 잃을 수는 없어……. 부수고, 지나가겠다……."
길쭉이 뻗은 남자의 그림자가 검을 쥔 손을 위로 들었다.
번뜩이는 칼끝에 시꺼먼 마력이 맺힌다.
조금 전에 사용했던 기술이다. 하지만 위력이 조금 전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피부로 느껴지는 마력으로 깨달았다.
눈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고밀도로 맺힌 마력을 한계까지 압축시킨 뒤, 단숨에 참격의 형태로 발하는 기술.
좁은 골목길에서는 피하기도 어려운 범위 공격이다.
마력의 크기를 보았을 때, 발사까지는 앞으로 3초도 남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이때 그가 어째서 한쪽 팔을 포기하면서까지 거리를 벌리려고 들었는지 그 이유를 이해했다.
흐름을 잃어버린 나의 다리로는 기술이 쏘아지기 전에 그에게 도달할 수 없다.
검이 부딪치는 싸움에서는 이길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 대응할 틈도 없이 화력으로 밀어버릴 생각이다.
그것을 위한 3초.
……바로 조금 전에 있었던 전투와 같은 양상이다.
근접 전투에서 조금씩 승기를 잡아가던 나를 쓰러트리기 위해서 저 남자는 넓은 범위에 단검을 쏟아붓는 마법을 사용했었다.
그때, 나는 원거리에서 넓은 범위로 쏟아지는 공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부족한 부분을 몸으로 떼우는 방식으로 그 공격에 대응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다.
남자는 알지 못했다.
시간이 필요했던 건 이쪽 역시 마찬가지였다는 것을.
'흐름'은 아직 끊어지지 않았고, 거리를 두고 기다리고 있는 지금의 이 순간조차도 흐름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이걸로 끝이다!!"
1초.
나는 그저 검을 쥐고 기다렸다.
2초.
나는 무의미해 보이는 일검을 허공에 대고 휘둘렀다.
그리고 2.7초 째에 달려 나갔다.
몸이 날듯 앞으로 나아간다. 아니, 정말로 날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력의 흐름에 실려 살짝 공중에 뜬 상태로.
앞으로.
좀 더 앞으로.
지금까지의 공방은 놈의 전력을 깎아나가면서도 물리적인 검술로 대기 중에 부유하던 마력에 간섭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불어온 마력의 흐름에 몸을 실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숙련된 마법사조차 몸에 축적된 마력을 끌어와서 활용할 뿐. 대기 중의 마력에는 간섭할 수 없다.
스스로의 체내에서 한 차례 걸러진 마력조차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마법진과 주문이 필요한 법인데, 불규칙적으로 움직이는데다 불순물까지 섞여 있는 대기 중의 마력을 조작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이런 일을 사람의 기술로 해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내가 바라던 검술의 이상?이 여기에 펼쳐진다.
"수라??───── 커, 컥?""
아마 놈은 자신의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할 것이다.
검을 높이 든 그 자세에서 남자의 상반신이 비스듬하게 잘려서 떨어진다.
너무나도 빠르게 베고 지나갔기 때문에 검 끝에는 핏물 하나 묻어있지 않았다.
"어, 어어…… 어어어억……"
조금 늦게 그의 검에 맺혀 있던 마력이 폭발을 일으켰다..
벽에 칠해진 물감에 불이 붙기라도 한 걸까. 순식간에 불바다가 된 통로 속의 광경이 현실이 아닌 것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윽……."
열두 시가 되어 마법이 풀린 것처럼 갑작스레 전신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처음부터 성한 곳은 없었지만 특히 오른팔이 아팠다.
검에서는 이제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육체의 제어권도 돌아왔다. 나는 검을 지지대로 삼아서 힘겹게 쓰러지던 몸을 지탱했다.
새하얀 칼날은 사방에서 타오르는 불꽃을 반사해서 요염하게 빛나고 있었다.
마치, 피에 절은 것처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