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이자는 검성의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33화 (33/287)

〈 33화 〉 5. 개와 왕자 (6)

* * *

내게 배정된 방은 자취방보다 조금 넓은 크기였다.

올리바아를 비롯한 사용인들이 쓰는 직원 숙소의 빈방을 그대로 배정받았는데, 전체적으로 고급스러운 이 저택 중에서 몇 안 되는 서민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 곳이다.

물론 내 자취방과 비교하면 훨씬 환경이 좋다. 대략 중상급 정도의 호텔 방 같은 느낌. ……어디까지나 비교적 '서민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는 거지, 여기도 비싼 저택의 일부인 건 마찬가지니까.

아침 일찍 저택에 도착해서 짐도 놓고, 방 배치도 살펴보면서 적당히 마음을 추스른다.

고급스런 문양이 자수된 암막 커튼을 살짝 열어서 바깥 풍경을 둘러본다. 바로 앞에 정원이 있어서 그런가, 경치가 끝내준다.

『와, 뷰 진짜 죽여주네요. 이런 데서 쭉 살고 싶다…….』

얘는 검이라는 애가 왜 이렇게 고급스러운 걸 좋아하는 건지.

나중에 돈 많이 벌면, 비싼 검집이라도 하나 새로 해줘야겠다.

내가 저택에 도착한 게 아침 6시 30분 즈음이었는데, 방에 짐을 넣고 이것저것 상황을 세팅하다보니까 시계가 벌써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제 슬슬 움직여야 한다. 과외 시작 시간이니까.

사용인 숙소를 나서서 정원으로. 이 저택은 언덕 하나를 통째로 깎아서 지어진 곳이다. 꽃이 만발한 정원을 중심으로 여러 개의 건물이 마주보는 구조를 하고 있다.

란즈 드 스페트로의 딸, 샤틀로트 스페트로는 위에서 봤을 때 제일 오른쪽에 있는 건물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은 본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별장이지만 스페트로 가문은 본래 뛰어난 무인을 무수히 배출해낸 것으로 이름을 떨친 일족이다. 세계 각지에 있는 별장에도 저마다 하나씩, 이런 식으로 연무장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지금까지 스쳐 지나가듯 보았던 소녀가 연무장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옷은 움직이기 편한 활동복 차림이고 양갈래로 묶고 다니던 머리카락도 하나로 묶어서 정돈한 상태다. 그것만으로도 분위기가 상당히 달라졌다. 스쳐 지나갈 때마다 느껴지던 미숙함이 사라지고, 차분한 기색이 조용히 감돈다.

"……저, 저기, 안녕하세요……"

하지만 입을 열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던 소녀의 분위기가 다시금 요동치기 시작했다. 눈동자에는 낯선 사람을 향한 두려움이 가득하고, 꾹 닫힌 입술은 파도처럼 물결무늬로 우물거린다.

상당히 수줍음을 많이 타는 성격이라고 해야 하나. 자신감과 오만함을 기본으로 장착하고 있던 영애 시절의 루이스와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 상당히 대조되는 분위기다.

이런 타입은 또 처음인데.

내 주변 여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하나 같이 성깔 있고, 한 성격 하는 사람들이라서 오히려 이런 타입은 대하기가 거북하다. 내가 은근히 목소리도 차가운 편인 데다가 툭툭 뱉는 말투라서 의도와는 관계 없이 거칠게 전달될 때가 간혹 있으니까.

샤틀로트 드 스페트로. 나이는 아마 열네 살이었지. 최대한 놀라지 않게, 조심해서 대해야겠다.

나는 속으로 방침을 정한 후 소녀를 향해 가볍게 손을 내밀었다.

"……!"

아니, 뭐야, 내가 뭘 그렇게 위협적인 행동을 저질렀다고 갑자기 몸을 물리는 건지 모르겠다. 낯가림이 심한 것도 좀 정도가 있어야지, 이건 좀 너무 심하잖아.

나는 샤틀로트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 급하게 내민 손을 거두었다.

"아, 미안. 악수하는 것도 싫어하는 줄은 몰랐다."

"아, 아니에요……."

흠칫, 흠칫 떠는 모습이 매우 비애롭다. 이건 무슨 토끼도 아니고, 점점 더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건지 혼란스럽다.

뭘 가르치기도 전에 인사를 나누는 것부터가 난관이라고 지금.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샤틀로트에게 손을 내밀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내 얼굴을 검지로 가리키면서 인사를 했다.

"난 백신현. 너도 알고 있겠지만, 오늘부터 2주간, 네게 이 지역의 풍토 검술을 가르치게 될 거야. 잘 부탁한다."

"……네……"

혹시 얘, 어디 아프고 그런 앤가? 말은 열네 살이라던데, 하는 걸 보면 열두 살도 아까워보인다.

귀족 영애라서 교육을 좀 특이하게 배운 건가? 하지만 같은 귀족 영애 출신이던 루이스는 상당히 멀쩡한 애였는데.

이거, 생각보다 난관이 많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일단 본격적으로 이쪽의 검술을 가르치기 전에 네가 어느 정도 실력인지 좀 알고 싶은데, 보여줄 수 있을까?"

나는 연무장의 오른쪽 벽을 향해 살짝 눈짓했다. 고급스러운 나무로 쌓아올린 벽에는 검부터 시작해서 온갖 대련용 비살상 무기가 잔뜩 걸려 있다.

스페트로 가문의 가전무공은 물론 창술이지만, 그 창술을 기초로 한 다양한 무기술도 함께 연구 중인 걸로 알려져 있다. 사람마다 체질에 따라서 창술이 맞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을 수 있으니까.

적성에도 안 맞는 창술을 억지로 가르칠 바에야 차라리 창술의 원리를 기초로 하되, 그것을 살짝 비틀어서 검술이나 권법을 가르치는 편이 낫다.

한 가지 형식에 얽메이지 않는 자유로움이 스페트로 가문을 이 대륙에서 손꼽히는 세력을 가진 거대한 용병 집단으로 만들었다.

숫자도 숫자지만 소속된 무인들의 평균적인 전투력을 가늠해 보았을 때, 스페트로 가문보다 높은 세력은 거의 없다.

……어? 근데 내가 지금 뭘 되게 잘못 본 건가? 여기는 창술명간데, 왜 연무장에는 창이 없지?

검도, 극?도, 심지어는 톤파나 사슬낫 같은 출처불명 용도불명의 괴상한 무기까지 걸려 있는데, 오직 창만 보이지 않는다.

그 위화감이 조금 신경 쓰인다. 나중에 올리비아한테 한 번 물어볼까.

"어, 네, 그럼…… 저기, 월도月?으로 해도…… 괜찮을까…… 요……?"

"월도? 그걸 좋아해?"

"……."

아니, 갑자기 입을 다물면 어떡하냐. 그러면 꼭 내가 이상한 놈 같잖아.

하지만 재촉하지 않는다. 이 아이에게는, 이 아이만의 페이스가 있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스스로 입을 열 때까지 가만히 기다려보기로 했다.

언제까지 입만 다물고 있지는 않겠지, 그런 생각으로 내린 결론이기도 하다.

'빨리빨리'가 몸에 붙어있는 나로서는 속에 천불이 나도 모자랄 지경이지만 통장에 꽂힌 선금 때문에 간신히 참고 있다. 진짜 어마어마한 액수였으니까.

"월도……, 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지, 지금은…… 월도를 쓰고 싶은 기분이라서……, 요……."

"그럼 월도 이외에 다른 무기도 쓸 줄 아는 거야?"

"……."

샤를로트가 또 침묵했다. 다시 기다린다. 30초 가량의 어색한 침묵 끝에 라임색 머리카락의 소녀가 양손을 마주잡은 채 손가락을 꼬물꼬물 거리면서 대답한다.

"저기, 그…… 어지간한 무기는……, 모두 써 봤어…… 요……. 창……, 만…… 빼, 빼고……"

창만 빼고 다 쓸 줄 안다고? 물론, 여기는 창술 이외에도 전체적인 무학의 질이 높기로 유명한 곳이지만 그래도 창술명간데, 가주의 딸이면 창을 제일 잘 다뤄야 하는 거 아닌가?

이해가 안 되네. 아니 뭐, 따지고 보면 나는 외부인이고 일일이 신경 쓰고 참견하는 것도 좀 웃기긴 한데.

여긴 창술명가잖아.

"……그럼 일단, 월도를 다루는 걸 좀 볼 수 있을까?"

"……어요……."

대답이 없길래 내 말을 무시한 건줄 알았지만, 살짝 입술이 달싹거리는 걸 보면 대답하기는 했나보다. 입술은 움직이는데, 소리가 안 나와서 안 들렸을 뿐.

본인은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지, 자리에서 얼른 일어나서 무기가 걸려있는 벽으로 도도도 달려갔다. 그리고 누가 재촉이라도 하는 것처럼 까치발을 들고 나무로 된 대련용 월도를 확보한 뒤 돌아온다.

샤틀로트는 그것을 양손으로 쥐고, 활동복 바지를 입은 다리를 좌우로 적당하게 벌렸다.

창술의 자세와 상당히 유사하면서도 느낌이 살짝 다르다. 당연하다. 같은 긴 무기라고 해도 창은 찌르기가 중심이고 월도는 베는 게 중심이니까. 무기에 따라 체중을 싣는 방식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

월도를 손에 쥐고 자세를 잡은 그 순간부터 소녀의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다. 조금 전까지 느껴지던 어설픈 분위기는 온데간데 사라져서 보이지 않고, 붉은색 눈동자는 고요하게 가라앉아있다.

트랜스 상태에 들어가 있는 건가. 상당한 수준으로 집중하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월도를 손에 쥐었을 뿐인데 사람이 전혀 달라보인다.

소녀의 다리가 움직인다. 무?에 있어 움직임의 요체가 되는 것은 하체. 높은 숙련도의 보법이 합리적인 이치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리가 움직이고, 허리가, 팔이 함께 따라서 나아간다.

『호오, 제법.』

나는 휘파람을 불려던 걸 겨우 참았다. 세상이 넓긴 넓구나, 저만한 나이에 이 정도의 성취를 얻어낸 아이가 있을 줄이야. 아무리 명가의 가르침을 받고, 어렸을 적부터 온갖 커리큘럼을 수행해왔다지만.

느껴지는 마력의 질도 꽤 우수한 편이고, 월도를 휘두르는 움직임도 심상찮다.

아직 어린 나이인데도 어지간한 어른 전사 수준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몸이 덜 자란 데다가 마력의 양도 많지 않아서 조금 허우적대는 느낌은 있지만, 저 상태로 10년만 수련해도 대단한 실력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싶다.

월도가 천지??를 찢는다.

무?라기 보다는 무?, 꼭 춤을 보고 있는 것 같다.

필요 없는 요소를 모두 절제해낸 뒤, 철저하게 합리적으로 기능하는 무공은 그 자체로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기능미, 라고 해야 하나.

갑자기 월도의 검식에 관심이 생길 정도로 인상적인 움직임이었다.

"……후우."

월도를 앞으로 길게 뻗은 자세로 잠시 서 있던 샤틀로트가 천천히 팔을 아래로 내렸다.

그 시점을 기하여 소녀의 눈에 다시 초점이 돌아왔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도 깜짝 놀랄 만큼 재빠른 변화였다.

"대단한데. 그 나이에 벌써 그 정도의 실력이라니."

난 솔직하게 칭찬했다. 나 또한 한 사람의 무인으로서 소녀의 경지에 진한 감탄을 느끼고 있었다.

재능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저 나이에 도달할 수 있는 경지는 아니다.

틀림없이 상당한 수준의 수행이 뒷받침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소녀에게는 그런 칭찬조차 부담스러웠는지, 또 다시 입술을 우물거리며 손가락을 꼼지락대기 시작했다.

"……그, 나무로 된 월도라서…… 할 수 있는 거예요……. 쇠로 된 진검을 잡으면…… 엄청 느려지고요……."

아, 그래도 이번에는 대답이 조금 빠르다.

몸을 거칠게 움직이면서 가벼운 흥분 상태에 들어갔기 때문일까.

"그렇다 해도 그 나이에 나쁜 버릇 하나 없이, '몸을 올바르게 움직이는 법'을 터득하고 있는 건 대단한 거야. 그거 제대로 못해서 몇 년 동안 삽질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아무리 몸을 움직이는 것 자체가 사람의 감각에 따르기 때문인지, 한 번 나쁜 버릇이 들기 시작하면 원상복구하는 것도 쉽지 않다.

잘못된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고칠 수 없다는 게 얼마나 환장할 일일지는 내가 잘 안다.

이 나이에 특별한 나쁜 버릇이 없다는 건 칭찬할 만한 일이다.

"자, 그럼 이번엔 내 차례지."

"……?"

내 말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 샤를로트가 고개를 갸웃 움직였다. 하지만 나로서는 오히려 이런 반응이 더 이해 불가다. 저 정도로 멋진 무무??를 봤으면, 당연히 이쪽도 그에 대한 보답을 해야지.

"네 걸 봤으니까 이제 내 것도 보여줘야지. 그렇잖아."

"아……, 어……, 저기, 네, 저도 한 번 보고 싶어요……. 올리비아를 이겼다고 들었, 들었거든요……. 솔직히 좀, 궁금, 했었어요……. 올리비아는…… 되게 강한 사람인데……"

뭐, 그건 그렇지.

루이스에 비하면 많이 쳐질 지도 모르겠지만, 올리비아의 전투 능력은 연금술사는 물론이고, 내가 최초로 만났던 보이드의 분신보다도 강했다. 내가 나쟈의 핵을 획득하고 마력을 손에 넣지 않았더라면 이기지 못할 상대였다.

자타공인 스페트로 가문의 2인자라고 했던가, 충분히 그렇게 불릴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그때의 전투를 살짝 떠올리면서 허리춤에서 천천히 검을 뽑는다.

"아……"

"왜?"

갑자기 샤를로트가 놀란 소리를 내며 검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무심코 날카로운 목소리로 반문했다.

실수했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샤를로트의 얼굴이 흙빛으로 질렸다.

이런, 겁줄 생각은 없었는데.

"아, 미안. 네가 갑자기 소리를 내니까 놀라서 그랬어. 갑자기 뭘 보고 소리를 낸 거야?"

"……어, 으, 그러니까…… 그 검이요……."

"응, 이게 왜?"

나는 최대한 목소리가 부드럽게 나오도록 애를 썼다. 진짜로,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혹시 오해라도 하면 곤란할까봐.

효과가 있었던 걸까. 흙빛이던 샤를로트의 낯빛이 조금 돌아왔다.

"……낡은 검이네요……"

"그렇지. 보기보다 연식이 좀 오래된 검이야."

생각보다 실없는 질문이었다. 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한 뒤, 검을 한손으로 쥐고 자세를 잡았다.

천변무궁류의 자세는 아니었다. 애초에 천변무궁류는 명확한 초식이 없는, 요결에 가까운 유파이니까.

내 검술에서 절반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는 노예 검투사식 아류 검술의 자세이다.

나머지 절반에는 루이스에게서 배운 노하우가 섞여 있다. 말하자면 노예 검투사의 검술과 파르네제 가문의 검술이 절반씩 섞여 있는 하이브리드…… 가 현재 나의 유파다.

누대를 이어서 쌓아올린 명가의 무술에 비하면 좀 잡스러워 보이겠지만, 그래도 나는 지금의 내 검술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쿵!! 새하얀 타일을 세게 내딛으면서 검을 앞으로 휘두른다.

무무??가 시작된다.

* * *

"아, 백신현."

"음?"

샤를로트의 대략적인 실력을 확인한 후, 점심. 사용인들과 함께 주린 배에 음식물을 채워넣은 뒤, 가볍게 정원을 산택하고 있다가 올리비아와 마주쳤다.

그쪽도 지금은 휴식 중인지, 편한 태도로 말을 걸어왔다.

검지 손가락 위에 앉아있던 나비를 도로 날려보낸 뒤, 손을 털고 나서 이쪽을 돌아본다.

"네가 보기에 아가씨는 어떤가? 가르칠 만한 보람이 있겠나?"

"대단하던데."

난 짧게 대답했다.

"좋은 스승 밑에서 오랜 세월 수련한 티가 느껴져. 저대로 몸만 자라도 엄청 강해질 거 같던데."

샤를로트는 검, 극, 톤파, 낫, 그 이외의 온갖 무기를 바꿔끼면서도 항상 일정한 수준의 기량을 유지하고 있었다.

어지간히 실력이 있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다.

저대로 10년만 수행해도 1급은 거의 확정이고, 잘 하면 특급에도 오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현 시점에서도 아마 5급이나 4급 정도의 실력은 있을 것 같다.

루이스 정도는 아니더라도, 상당한 천재성이 느껴졌다.

"그런가. 서로 첫 인상은 괜찮은 것 같아서 다행이군."

"서로?"

지금 그냥 넘길 수 없는 표현이 나온 거 같은데.

"나도 조금 전에 아가씨가 식사 하실 때 너에 대해서 슬쩍 물어봤었는데, 아가씨도 첫 인상은 상당히 괜찮다고 하시더군."

"아, 그래?"

"가르치는 것도 잘 하고, 실력도 있고. 그리고 자신을 배려하는 게 느껴진다고 말이야. 종합적으로는 '상당히 좋은 사람 같아'라고 평가하셨다."

"잘 됐네. 2주 동안 무난하게 버틸 수 있겠어."

과외 아르바이트는 혼자 하는 게 아니라서, 가르치는 사람하고 배우는 사람의 합이 잘 맞아야 하는데…… 샤를로트가 정말로 그렇게 말했다면 걱정할 필요는 없을 거 같다.

나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천천히 주억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그런데 궁금한 게 하나 있어. 샤를로트는 검, 권, 극, 뭐, 이것저것 다 잘하는 거 같은데…… 창은 지금까지 써본 적이 없다고 하더라고."

내 질문에 올리비아는 잠시 침묵하더니, "아" 하면서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가씨께 들은 건가."

"뭐, 그렇지. 근데 다른 곳이라면 몰라도 여긴 창술명가잖아. 당연히 창술도 배워야 하는 거 아냐?"

가르쳐봤는데 잘 안 되서 창이 아닌 다른 것을 가르쳤다, 이건 이해가 된다.

하지만 샤를로트는 창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손에 쥐어본 적이 없다고 얘기하고 있다.

이건 확실히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그건 그렇지."

올리비아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자세한 건 비사?史라서 가르쳐 줄 수 없지만, 아가씨에게는 창을 잡아서는 쓰면 안 되는 이유가 있다. 꼭 그래야만 하는 아주 중요한 이유가."

"많고 많은 무기 중에서, 하필이면 창만?"

"그래. 그러니까 너도, 실수로라도 아가씨에게 창을 쥐게 하는 일은 하지 않아줬으면 좋겠군."

복잡한 가정 사정인가?

"그러지 뭐, 어차피 내가 가르쳐줘야 하는 건 검이니까."

"이해해줘서 고맙다."

나는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남의 집 사정에 함부로 끼어드는 것도 솔직히 좀 꼴불견이고.

나야 뭐, 2주 깔끔하게 가르치고 잔금 받으면 더 이상 볼 사람도 아니니까.

"점심 먹고 나면 저녁 전까지 또 과외지? 아가씨를 잘 부탁한다."

"뭐, 걱정 마. 일을 대충 하진 않을 테니까."

그러자 올리비아가 부드러운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명목상으로는 아가씨와 보디가드 관계지만, 샤를로트와 올리비아의 사이에서는 그런 비즈니스적인 관계를 넘어선 단단한 연결 고리 같은 게 느껴진다.

샤를로트도 올리비아 얘기가 나오면 말문이 조금 트이는 경향이 있고.

"그럼 난 먼저 가보겠다. 남은 저녁 시간도 힘 내도록."

"그래, 알았어."

올리비아는 얼마 쉬지도 않았는데 벌써 업무로 복귀해야 하는 건지, 분주한 발걸음으로 정원을 벗어났다.

샤를로트가 외출할 때는 바로 곁에서 보디가드로 활동하고, 그러지 않을 때에도 란드 드 스페트로 가주의 심복으로서 이것저것 해야 하는 일이 많이 있다든가.

잘은 모르겠지만, 쉽지 않은 삶이라는 건 알겠다.

올리비아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본 뒤, 바지 주머니에 살짝 손을 넣었다.

자, 나도 이제 그만 움직여야지. 휴식 시간은 아직 좀 남았지만, 학생 시절하고는 다르게 뭘 가르치는 입장에 있으니까 마음 놓고 쉬고 있지를 못하겠다.

커리큘럼도 준비하고, 이것도 챙기고, 저것도 챙기고, 하여튼 이것저것 해야 할 일이 잔뜩 있다.

정식으로 말문을 튼 건 오늘이 처음이지만, 그 잠깐 사이에도 샤를로트의 수준이 범상찮은 수준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어설프게 준비하면, 그 순간 된서리를 맞는 건 오히려 내 쪽이 될 것이다.

* * *

"후우."

나는 뻐근한 어깨를 가볍게 주물거리면서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현재 시각은 오후 11시 50분. 커리큘럼을 좀 더 충실하게 수행하기 위해서 2주 동안은 이 집에서 숙식하는 조건이었지만, 점심 시간이나 저녁 시간 이후에는 이런 식으로 자유롭게 외출할 수도 있다.

샤를로트와의 커리큘럼은 오후 여섯 시까지만 하고 끝이 났다.

그 뒤에는 저녁을 먹고, 평소 루틴대로 개인 훈련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근데 왜 지금 와서 이러고 있냐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양치질을 하려는데 칫솔이 없어서, 급하게 자취방으로 달려가서 칫솔하고 기타 등등을 챙기고 돌아온 참이다.

늦은 시각이기 때문인지 정원을 돌아다니는 경비들을 제외하면 불이 켜진 건물이 없었다. 나도 얼른 양치질하고 자야지.

그나저나 여기는 오밤 중인데도 참 그림이 좋다. 여기저기에 만발한 꽃이 완벽한 배치로 각각의 매력을 조화 있게 내보이고 있어서, 이쪽에 그다지 없는 나도 무심코 감탄사가 나올 정도였다.

백신아가 방의 경치를 보면서 마구 흥분해댔던 것도 지금 와서 생각하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

어디에서 들려온 소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 막 이상한 소리가 들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제대로 구분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희미한 소리였지만, 방향은 대략적으로 느껴진다. 정원을 사이에 두고 오른쪽에 있는 건물. 연무장.

창문 쪽에 암막 커튼을 쳐둔 상태라서 잘 몰랐는데, 지금 보니까 아주 살짝 빛이 세어나오고 있다. 진짜 살짝. 아주 살짝.

오밤중에 도대체 누구인가 싶어 연무장 쪽으로 다가간다. 그쪽으로 다가갈 때마다 소리는 점점 더 선명하게 들린다.

물론 내 기준에서 선명하다는 거지, 일반인들은 아무것도 들을 수 없을 정도로 희미한 소리인 건 마찬가지다.

아무튼, 바로 그 연무장 안에서 라임색 머리카락의 소녀가 열심히 월도를 휘두르고 있었다.

"……."

옷이 분홍색 잠옷 차림인 걸 보면 자려다 말고 나와서 저러고 있는 건가. 자세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기특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조금 안타깝게 느껴진다.

무조건 열심히 몸을 혹사시킨다고 몸이 만들어지는 게 아닌데.

특히 저 아이처럼 몸이 덜 자란 어린 아이는 저렇게 무리하게 몸을 움직이는 게 오히려 독이 되어서 돌아올 수도 있다.

뭐든지 과한 건 몸에 좋지 않다.

허구헌날 팔다리에 바람 구멍 뚫어가면서 싸우는 내가 할 말은 아니긴 하지만.

"이기고 싶은 사람이라도 있어?"

"……."

살짝 눈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서, 샤를로트에게 질문했다. 샤를로트는 그 자리에서 등을 움찔 떨더니, 나를 돌아보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내 말을 듣지 못한 건 아닐 거다.

그냥 애가 좀 심하게 놀라서 몸이 굳어버린 거 같았다.

여전히 자존감 없어 보이는 얼굴로, 입술을 물결무늬로 우물거리면서 이쪽을 돌아본다.

"아, 안녕하세요. 신현 씨……"

날 보면서 말을 더듬는 증상은 많이 나아진 거 같다. 아직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참 장족의 발전이다 싶다.

"언제부터 그러고 있었던 거야? 잠옷 차림인 거 보면, 오후 아홉 시 이후에 나온 거 같기는 한데."

내가 샤를로트의 수면 시간을 알고 있는 건 그 정도로 샤를로트에게 관심이 많아서 그런 게 아니라, 올리비아가 이 시간부터 아가씨가 주무시니까 참고해두라고 알려줬기 때문이다(왜 알려줬는지는 모르겠지만).

"여, 열 시부터……"

"지금이 11시 50분인데? 열심히 하는 건 좋지만, 너무 과하다 야."

"그건 알지만…… 잠이 안 와서……, 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나는 나도 모르게 어이가 없어져서 피식 웃고 말았다.

『검주 같은 사람이 또 있네요. 무슨 강해지는데 환장한 사람처럼 저러고 있냐. 이 아가씨도 참 별종이시네.』

나도 그게 좀 신경 쓰여서 이렇게 질문했던 거다. '이기고 싶은 사람이라도 있어?'라고.

관상이나 표정을 읽는 재주는 그다지 대단한 편이 아니지만, 그런 내가 보기에도 샤를로트가 훈련에 임하는 태도는 지나칠 정도로 진지했다.

조금, 신기하게 보일 정도로.

"일단 오늘은 이거 먹고, 얼른 누워."

"이거……?"

"내 스승이 만들어 준 수면제인데, 중독성도 없고 효과도 좋아. 나도 가끔씩 불면증이 올 때가 있어서 상비하고 다니지."

샤를로트의 조막만한 손에 연금술사가 만들어준 쬐끄만 환약을 쥐어주고 물러난다. 나도 종종 복용하곤 하는 수면제인데, 효과는 지금 샤를로트에게 설명해준 그대로다.

애들이 먹어도 크게 문제 없는 수준이라는 건 몇 년에 걸쳐서 자주 복용해온 내가 장담할 수 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자주 복용시킬 생각은 없다. 어디까지나 딱 오늘만 주고 말아야지. 효과 좋다고 계속 주면 습관 된다.

"그리고 내일부터는 커리큘럼의 난이도를 조금 높이고 싶은데, 괜찮을까?"

"어…… 저기, 무슨 뜻…… 이에요?'

잘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샤를로트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나는 연금술사가 으레 그러하듯, 검지를 펴고 강조하듯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네가 이 늦은 시간까지 일어나서 월도를 휘두르고 있을 정도로 체력이 남아 돈다는 걸 이제 알았잖아. 그러니까 내일부터는 커리큘럼의 난이도와 강도를 조금 더 높여서 이런 일을 방지하는 게 좋겠다 싶어서. 네 생각은 어때?"

이 시간까지 깨어 있어봐야 좋을 게 없다. 어린 애들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지.

지금이 한창 자랄 땐데 벌써부터 그러면 키가 안 자라서 연금술사처럼 되고 만다고.

그래서 내 나름대로 생각한 방안이 이것이다. 몸에는 심하게 무리가 가지 않도록 세부 사항은 내가 직접 맞춰나갈 생각이고.

내 생각을 가만히 경청하고 있던 샤를로트는 잠시 머뭇거리면서도 찬찬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 그럼."

"알았어. 오늘은 일단 들어가고, 내일부터 그렇게 하는 걸로 하자고."

샤를로트가 가져온 월도를 제 자리에 다시 걸어놓고, 조금 더러워진 마룻바닥도 깔끔하게 청소한 뒤, 샤를로트를 자기 방으로 올려보냈다.

그래도 이 아이 수준에 맞춰서 커리큘럼을 세팅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조금 얕보고 있었나보다.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대단한 재능을 가진 아이일지도 모르겠다.

* * *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양치질까지 끝마치고 잠자리에 누웠을 때는 벌써 12시 20분이 다 되어 있었다.

벽에 걸려 있는 시계를 흘끔 쳐다본 뒤, 조용히 눈을 감는다.

내게 있어 이 시간은 평범한 수면 시간이 아니다. 검의 가상 세계로 정신만을 날려 보내서 현실에서는 할 수 없을 정도로 거칠고 강도 높은 수행을 진행하는 시간이다.

현실의 수련에 비하면 효율은 좀 떨어지는 편이지만 효과는 확실히 있다.

아직 어린애도 저 정도로 난리를 피우는데, 내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전혀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완전 새로운 동기가 부여됐다.

"……아, 진짜."

눈도 감고, 호흡도 부드럽게 유지하면서, 이제 수마가 찾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옆에서 소리가 들렸다.

침대에 눕기 전에 닫아두었던 창문이 바깥에서 열리고, 작은 체구의 인영이 안으로 들어와서 창틀에 앉았다.

나는 처음 소리를 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킬 뻔했지만, 창틀에 걸터앉은 사람의 얼굴을 본 직후 긴장이 풀어졌다.

마침 달을 가리고 있던 구름이 옆으로 움직이면서 빛이 내려쬐기 시작했다.

달빛이 짙은 밤의 커튼을 걷고 창틀에 걸터앉은 소녀의 얼굴을 비춘다.

가녀린 인상이지만 나올 곳은 확실하게 나와있고, 들어갈 곳은 확실하게 들어간 작은 체구, 허리까지 내려오는 붉은 머리카락, 보석처럼 밝게 빛나는 초록색 눈동자.

나는 눈을 찌푸리면서 질문했다.

"갑자기 오밤 중에 뭐에요. ……연금술사 선생님."

"안녕, 좋은 밤이네."

아니, 그 전에 여기는 어떻게 침입한 거야. 본가가 아니라 별장이라서 방범 술식이 좀 조악하다고는 해도 여기에 깔려 있는 경비만 지금 몇 명인데.

내 위치는 …… 아마 서로의 마력이 섞여 있는 걸 이용해서 탐색했을 테지만.

아니, 뭐, 됐어. 중요한 건 연금술사가 그걸 다 뚫고 여기까지 도착했다는 사실이다. 내가 모르는 수법으로 어떻게 뚫었겠지 뭐. 나도 이 정도 경비는 작정하고 들어가면 뚫을 수 있으니까.

한숨을 쉬면서 상반신만 일으킨다. 그리고 난데없이 비상식적인 행위를 저질러버린 여자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다소 얼이 빠진 목소리로 질문했다.

"도대체 뭐에요? 혹시 무슨 일이라도 벌어진 겁니까?"

"그런 건 아냐. 그다지 급한 일은 아니거든."

"그럼요?'

연금술사는 무단 침입 행위에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는 얼굴로 말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까, 오늘자로 딱 일주일이라서. 생각난 김에 바로 찾아온 거야."

"……일주일? 무슨 일주일?"

"저번에 약속했었잖아. 행위는 일주일에 딱 한 번씩만 하자고."

행……, 위……?

"그게 무슨 소리…………, 아."

갑자기 떠오른 어이없는 가정에 눈을 부릅뜨고 손가락을 하나씩 꼽아보기 시작한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닷새, 엿새…….

그러고 나서 시계를 다시 한 번 쳐다본다. 지금 막 열두 시가 넘어가서 날이 바뀌었으니까…… 이걸로 딱 일주일.

"설마."

"쇠뿔도 단김에 뽑으라는 말이 있으니까. 생각난 김에 바로 와 봤어."

아니, 그러니까 지금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여기서 하자고?

───호텔도 아니고, 남의 집에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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