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화 〉 13. 검왕을 찾아서 (6)
* * *
역시, 내가 아는 술집이었다.
도시 외곽을 바로 앞에 두고 자리를 잡은 바 형식의 술집.
나는 상급 모험가 검정 시험에서 떨어진 후 바로 여기에서 루이스와 술을 마셨고, 검왕검을 처음으로 뽑아냈다.
『아, 그립네요. 여기에서 검주가 완전 술에 취해서 추하게 신세한탄 하셨죠.』
'넌 그때도 의식이 있었던 거였냐.'
『의식은 먼 옛날부터 있었다구요. 아무도 제 목소리를 듣지 못했을 뿐.』
백신아가 사람을 열 받게 하는 말투로 옛날 일을 회상했다. 솔직히 그때는 나도 좀 충격을 크게 받아서 많이 정신이 약해져 있었다.
마지막 시험까지 다 통과해놓고 면접에서 떨어졌으니까.
마력을 쓰지 못한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그 잘난 마력 쓰는 사람들도 거의 통과하지 못한 게 마지막 시험이었고, 나는 그 마지막 시험을 통과한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다른 사람의 도움 같은 건 없었다.
오직 나만의 힘으로 모든 장벽을 뛰어 넘었는데, 도대체 높으신 분들은 뭘 보고 날 탈락시킨 건지 모르겠다.
그때만 생각하면 술도 안 마셨는데도 속이 쓰려오는 기분이다.
"데운 술하고 우유를 한 잔씩."
"알겠습니다."
바에 앉은 올리비아가 음료를 주문한 뒤, 나도 그 옆에 앉는다. 아직 이른 시간인 탓인지 손님은 많지 않았다. 이제 막 오픈한 것 같다.
"난 이런 시간이 제일 마음이 불편하다. 할 수 있는 일도 없이, 그저 기다리기만 해야 하니까."
올리비아와 잔을 부딪쳤다. 물론 난 우유였다. 체온에 맞게 데워진 우유가 후끈하게 목구멍을 타고 넘어간다.
"많이 힘든 상황인가봐?"
"아, 이번 사건으로 더 이상 거래를 하지 않겠다는 거래처가 많거든. 일일이 진정시키고 관계를 수복하는 게 쉽지 않다. 이 틈을 타서 독립하겠다고 나선 놈들도 많고."
"어차피 기다려봐야 지금의 상황이 호전될 거 같지도 않으니까…… 차라리 이참에 독립을 해서 알아서 회사를 차려보겠다, 이건가?"
"그렇지. 어떻게 붙잡고는 있지만,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지경이야."
올리비아는 목이 탔는지 술을 여러 잔 추가로 주문해서 독을 채우듯 마구 들이키기 시작했다. 나는 아직 우유 첫 잔을 비우지도 않았다.
"후, 일이 이렇게 된 것도 자업자득이니 누굴 탓할 수 있을까. 스페트로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그 힘을 이용하려 한 건 우리다. 리스크를 고려하지 않은 시점에서 이미 예견된 결과였지."
"잘 아네. 열심히 해보라고."
고생하는 걸 보고 있으면 안쓰러운 마음도 들지만, 올리비아가 말했듯 완전히 자업자득이었다.
스페트로는 그야말로 독이 든 성배 같은 존재였다.
나였다면, 애초에 손도 대지 않았을 것이다.
……라고는 못 말하겠다, 솔직히.
독이 든 성배인 건 여기에 있는 검왕검도 다르지 않으니까.
거대한 위험을 담보하는 힘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내가 담백하게 대답하자 올리비아는 할 말이 없어졌는지 잠시 동안 입술을 우물거리며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느긋하게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린다.
"음, 이런 것도 안 통하는 건가."
"뭔 소리야?"
어이가 없어서 질문하자 올리비아는 뻔뻔한 얼굴로 술을 들이키며 대답했다.
"아니, 약한 척을 해서 네 동정심을 끌어내 볼 생각이었거든. 그런데 전혀 효과가 없군. 역시 네 녀석은 참 담백한 성격이야."
"통하겠냐, 그런 게. 내가 너희 가문 때문에 고생한 게 있는데."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가 했더니.
나는 입술을 일그러트리며 어이 없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샤를로트야 그렇다 쳐도 너네 가주하고 너한테는 별 생각 없다. 그냥 자업자득이라고만 생각하지."
실제로도, 그게 사실이고.
하다못해 스페트로가 폭주했을 때 빠르게 알리기라도 했다면 좀 더 일이 꼬이기 전에 마무리할 수도 있었을 거다.
그런데 올리비아하고 란즈 가주는 그마저도 하지 않고 어설픈 실력으로 시간을 끌다가 그 꼴이 나고 말았지.
나도 심하게 다치게 됐고.
자업자득이라고는 생각할지언정 동정심은 없다. 동정심을 느끼기에는 내가 너무 심하게 고생했다.
술도 거의 못 마시게 됐고.
"그렇게 내 호감을 사고 싶으면 얌전히 반성하는 시늉이나 하셔. 나한테는 그게 직빵이니까."
데운 우유를 홀짝 홀짝 마시면서 말한다.
"음, 그게 너를 공략할 수 있는 방법인가."
"어설프게 꼼수 부리면 난 그게 더 기분이 나빠."
어느 새 잔을 하나 비웠다. 데운 우유를 또 하나 주문하면서 올리비아를 돌아본다.
"너에 비하면 차라리 샤를로트가 낫지. 쓸데없이 요령 안 부리려고 하고, 뭘 하더라도 솔직하고."
"그런가, 아가씨가 마음에 든 모양이군."
"어리고 귀엽고 착하잖아."
하여튼, 그런 아이를 주인으로 모시는 올리비아도 아주 복 받은 놈이다.
오히려 올리비아에게는 조금 과분한 느낌도 든다.
음, 이러니까 꼭 팔불출 아빠가 된 기분인데. 왜 나는 이 나이에 벌써 부성애에 눈을 뜨고 있는 거지.
"아가씨에 비하면 나는 어떻지?"
"원칙적이고, 딱딱할 거 같은데 은근히 영악하지."
"잘 알고 있군."
올리비아는 살짝 웃으며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올리비아는 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난 너 같은 녀석이 우리 일파에 들어왔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천하가 넓다지만 너만한 그릇은 드물 테니까."
녀석이 시선을 돌린다.
취한 걸까, 아니면 취한 척을 하고 있는 걸까.
눈동자가 밤중의 호수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검을 다루는 기교가 좋고, 머리가 좋아서 하는 말이 아니다. 그런 실력이 있으면서도 의리를 지킬 줄 안다는 점이 특히 마음에 들어."
서 있을 때의 키 차이가 앉은 키로 그대로 이어졌다. 살짝 낮은 위치에 있는 올리비아가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앞머리로 내 가슴을 밀기 시작했다.
"네가 아니었다면 아가씨를 맡기지도 못했겠지. 나도 아가씨 걱정으로 일에 집중하지 못했을 테고."
"야, 너……"
올리비아는 바쁜 스케줄 속에서 머리카락도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는지, 이전에 비해서 옆머리가 조금 길어져 있었다. 남장의 느낌도 많이 옅어진 상태다.
"할 수만 있다면, 난 너를……"
그때였다.
불현듯 내 가슴에 머리를 기대고 있던 올리비아가 내 머리를 좌우로 잡더니, 그대로 고개를 들어서……
"스톱. 너 지금 뭐하냐."
"음, 안 통하나."
입술이 닿기 전에 손바닥을 들어서 올리비아의 접촉 공격을 방지했다.
그 순간 올리비아의 목소리에서 술기운이 사라졌다. 쯧, 하고 혀를 차는 소리도 같이 들린다.
"그런 게 통하겠냐. 몇 잔이나 마셨다고."
"난 틀림없이 통할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남장을 하고 다니면서 남자의 심리를 많이 배웠거든. 네게 틀림없이 통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올리비아가 손가락을 튕기면서 한쪽 눈을 감았다.
"난 바람은 안 펴."
"바람이라."
올리비아는 나와 루이스, 그리고 연금술사의 관계를 알고 있는 사람 중 하나다. 살짝 쓰게 웃은 듯했다.
"아깝군. 말로만 듣던 성교가 어떤 느낌인지 알고 싶었는데."
"뭔 소리야? 너 나 좋아하냐?"
"내 육체는 여성이지만, 정신적으로는 남자도 여자도 아니지. 네게도 벗 이상의 감정은 없다."
어째 좀 두루뭉실한 대답이었다.
훅, 하고 올리비아가 숨을 토해낸 순간 뜨거운 술냄새가 무겁게 날아왔다.
"백신현, 네게 의뢰하고 싶은 일이 하나 있다."
"의뢰라. 무슨 의뢰지?"
올리비아의 태도가 변했다.
나도 상반신을 살짝 올리비아 쪽으로 기울이면서 이야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벼랑 끝에 몰린 상황이지만 꼭 죽으라는 법은 없더군. 열심히 영업을 뛰어 다닌 덕에 큰 거래 건을 하나 따낼 수 있었다. 지금까지 진출하지 못한, 바다 건너에 있는 나라에 사업을 확장시킬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어."
"그렇군. 조금이라도 여력이 남아 있을 때, 사업을 확장해서 대량의 자금을 유입시킬 생각인가."
올리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맞다. 어차피 국내에서의 이미지 손실과 영향력 감소는 피할 수 없는 일이야. 이런 상황에서 국내에 계속 집착한들 천천히 말라죽어갈 뿐이겠지."
잔을 손에 쥔 올리비아가 유리잔을 검지 손가락으로 살짝 두드리며 말했다.
"하지만 해외 시장을 무사히 개척할 수만 있다면 지금의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 ……그래서, 지금부터가 본론인데."
잔에 담긴 투명한 액체에 올리비아의 표정이 비친다.
한 순간 녀석의 표정이 긴장한 것처럼 굳어졌다.
"상대방 측에서 우리와 협력할 의향은 있지만, 조건을 하나 붙이더군. '실력'을 증명해줬으면 한다고."
"실력이라고? 그, 싸우는 실력?"
"그렇다. 가문 내에서 사람을 불러서 써도 좋고, 사람을 고용해서 써도 상관 없으니까……. 실력 있는 용병을 기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걸 증명해보이라더군."
스페트로 일파의 수입은 용병을 파견하는 부분에서 나온다.
실력 있는 용병을 내놓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검증하기 위해서 그런 요구 조건을 붙인 건가.
"상대방 측에서 내보낸 무술가와 우리 측의 인물이 친선비무를 벌여서 우리가 이기면 계약을 맺는 조건이다. 그리고 나는 나나 란즈 가주님이 나서는 것보다 네가 나가는 편이 훨씬 나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녀석 때문이야?"
나는 허리춤의 검을 두드리며 질문했다.
이 검집 안에는 천하무적의 검사가 깃들어 있다. 그리고 올리비아는 스페트로를 둘러싼 사건 속에서 그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 생각을 하지 않았냐고 묻는다면 거짓말이지만, 꼭 그런 건 아니다. 네 실력만으로도 충분히 헤쳐 나갈 수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해. 아마 왼팔을 잃은 가주님과 비교해도 네가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있겠지."
올리비아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백신현. 의뢰를 받아주지 않겠나?"
* * *
"음, 여기까지 왔으면 충분하다. 혼자서 걸을 수 있어."
올리비아가 딸꾹 소리를 내며 낮게 신음했다.
이 녀석은 말문이 막힐 때마다 술잔을 입에 가져가는 버릇이 있는 건지, 한두 시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어마어마한 양의 술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였다.
아직 해가 지지도 않은 이른 시간인데 벌써 이런 꼴이다.
결국 조금 일찍 술집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올리비아를 부축해서 현재 녀석이 기거하고 있는 폐쇄된 교회로 데려왔다. 스페트로 가문에 소속되어 있는 사용인들이 이쪽을 보고 있다.
형식상으로 보면 올리비아는 그들의 상급자에 가깝다. 그들 앞에서 모자란 꼴을 보여주고 싶진 않았던 건지 내 부축을 밀어내고 스스로의 다리로 섰다.
"오늘은 즐거웠다. 백신현 너는 말을 참 잘 하는군."
둘 다 말이 많은 성격은 아니었지만, 하다보니 대화가 끊어지지 않고 술술 이어졌다. 속에 쌓아두고 있는 생각이 많아서 그런 걸까.
"친선비무는 다음주에 있다. 내일 다시 너를 찾아가서, 대략적인 상황을 정리하고 계약서를 쓰도록 하지."
"어, 들어가."
올리비아를 향해 손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나도 살짝 머리가 아프긴 하지만, 이건 알코올 냄새를 가까운 위치에서 너무 오랫동안 쐬고 있어서 그런 거다.
맑은 공기를 잠시 쐬면 금방 회복되겠지.
"……아, 그리고 착각하면 곤란한데. 나도 아무한테도 입술을 들이대지 않아. 그 정도로 네게 미안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라도 빚을 갚고 싶었던 거다."
"날 끌어들이고 싶었던 게 아니라?"
"그런 마음도……, 있었지. 사람의 마음이 원래 정확하게 딱딱 나눠지는 게 아니지 않냐. 너를 향한 죄책감, 널 끌어들이고 싶은 욕망, 그리고 성교에 대한 호기심…… 여러 가지 감정이 섞인 끝에 나온 행동이었으니까."
올리비아가 다시 한 번 딸꾹질을 하며 혀 꼬인 목소리를 냈다.
검지 손가락으로 내 가슴을 가볍게 찌르며 살짝 웃는다.
"그런데, 넌 바람 피우기는 싫다고 하니까……. 쿡쿡, 솔직히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너와 네 지인들의 관계는 정말로 특이하니까……"
내가 그 얘기를 괜히 했나. 올리비아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서 큭큭대며 웃음 소리를 낸 후, 갑자기 표정을 싹 지우고 고개를 돌렸다.
"이제 들어가보겠다. ……네게는 늘 폐만 끼치고 있는 듯 하구나."
올리비아가 등을 돌린 채 오른손을 살짝 들어서 인사했다.
나는 올리비아의 등이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그 자리에서 기다린 후, 오른손으로 목을 주무르며 몸을 돌렸다.
다음 주에 아주 큰 싸움이 하나 잡혔다.
때에 맞춰서 최고의 컨디션을 올릴 수 있도록 몸을 자극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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