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9화 〉 최종화 : 오늘부터 우리는 (2)
* * *
침묵을 동반한 대치 상태가 이어진다.
두 사람이 대치하는 모습은 서부극의 절정부를 닮았다. 긴장감으로 심장이 차갑게 얼어붙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파직!! 그 순간, 검왕검의 표면에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균열이 달렸다. 도대체 몇 번째로 나타난 균열인지 모르겠다.
검왕검은 조금씩 끝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이것은 그녀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시간을 길게 끌 수 없었다.
파직!! 거의 시간차를 두지 않고 또 다른 하나의 균열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이 신호가 되었다.
두 사람의 전신에서 검붉은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타이밍은 거의 동시였다.
천변무궁류의 제이검. 하지만 세부적인 디테일은 조금씩 다르다. 백신현의 제이검은 초록색 입자를 동반했다. 그에 비해 백신아의 제이새하얀 입자를 쏟는다.
두 사람이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마력의 성질이 드러낸 결과였다. 실력의 차이와는 거리가 멀다.
서로 다른 색의 입자를 흩뿌리면서 두 사람의 검이 교차한다. 처음에는 서로가 서로를 헛쳤다. 곧바로 몸을 돌려서 검을 부딪친다.
쿵!! 그 소리가 들린 시점에서 두 사람의 위치는 이미 바뀌어 있었다. 대각선 위 상공, 전혀 다른 위치에서 검을 맞붙였다.
쿵!! 또 다시 그들의 모습이 전혀 다른 위치에서 나타났다. 공간 이동은 아니었다. 초고속 이동에 의한 눈에 착각. 하지만 이 자리의 그 누구도 그 공방을 쫓아가지 못했다. 머리로는 이해해도 감각이 붙잡지 못한다.
같은 유파, 같은 천변무궁류.
서로 같은 기술이 부딪치는 과정에서 두 사람의 실력이 상승 작용을 일으킨 결과였다.
서로가 서로의 실력을 높은 영역으로 끌어올린다.
보이지 않는 저편에 있는 무?의 극한을 향해.
서로 다른 두 줄기의 빛이 날카로운 궤적을 그리며 쉴 새 없이 부딪친다.
「어째서일까요.」
소리조차 쫓아올 수 없는 공방 속에서 이상하게 목소리가 들린다. 음성을 통한 전달이 아니었다. 그 사실을 혼으로 이해했다.
「이 싸움에는 목숨이 걸려 있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저희가 겪어온 그 어떤 싸움과 비교해도 가볍고, 위험하지 않은 싸움이에요.」
쿵!! 검과 검이 반발하면서 두 사람의 몸이 반대 방향으로 밀려 나간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여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거리가 벌어진 그 순간 백신현의 배후에서 수많은 칼날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력으로 짜낸 칼날이다. 일제히 쏘아진다.
백신아도 같은 수단으로 대응했다. 새하얀 마력 입자로 칼날이 벼려졌다. 쏘아진다. 사출된다.
국소적인 규모의 폭발이 수도 없이 반복되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다지도 가슴이 뛸까요. 검주께서는 제 의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그런 싸움도 있는 법이야."
오른손을 높이 치켜든다. 검왕검의 칼날이 크게 부풀었다. 천변무궁류의 제삼검. 하지만 그 형태가 조금 불안하다.
원래부터 천변무궁류의 제이검과 제삼검의 병행은 까다로운 곡예이지만 그런 이유는 아니었다.
불안정한 형태로 구축된 칼날은 채찍 같은 유연성을 지녔다. 그것을 그대로 휘두른다. 검으로는 할 수 없는 특이한 공격 패턴을 보인다.
처음 보는 응용이었음에도 백신아는 큰 고민 없이 회피했다. 그럴 것 같았다. 백신현은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그녀의 실력을 신뢰하고 있었으니까.
포기하지 않고 다음 공격에 들어간다.
"네가 말한 것처럼 이 싸움에는 목숨이 걸려 있지 않아."
백신아의 칼날에 희푸른 마력이 휘어감긴다. 천변무궁류의 제삼검. 하지만 이쪽은 완전한 형태다.
제삼검이 서로 부딪친 순간 불안정한 형태였던 칼날이 산산조각으로 흩어졌다.
피드백으로 뇌가 지끈거린다.
그러나 전사는 웃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다른 생각 없이, 싸움에 집중할 수도 있는 법이지. 목숨이나, 주변 사람들의 피해 같은 부차적인 요소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자기 자신의 의지에 따라서."
산산조각으로 흩어지던 칼날이 갑자기 공중에서 멈춘다. 다시 한 번 백신현의 제어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칼날이 아니다. 둥근 고리의 형태로 모인다.
「마력 게이트……」
허유와의 싸움에서도 보여주었던 응용이다.
전방에 둥근 고리 형태의 게이트를 전개. 그 게이트를 통해 검을 쏘아 보내서 마력을 덧씌우는 것과 동시에 어마어마한 속도를 싣는다.
백신현은 검에 크게 집착하지 않는다. 그가 처음부터 가지고 있던 그 자신의 성향이다. 그에게 있어선 검조차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
그의 본질은 모험가에 더 가까우니까.
파직!!
검을 역수로 쥐고 투창의 형태로 집어 던진 루이스의 검이 마력 게이트를 통과하면서 어마어마한 강도와 속도를 얻었다.
마력 게이트는 루이스의 검이 통과한 직후 무너졌다. 무너진 마력 게이트를 다시 한 번 제어한다.
부서진 마력 게이트는 조그만 칼날로 분열한 뒤 백신아의 회피 루트를 가로막는 형태로 날아 들었다.
퇴로는 막혔다. 그렇다면 뚫고 나갈 뿐. 백신아는 루이스의 검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지금까지와 다르게 걷어내는 게 쉽지 않았다.
서로 다른 힘이 반발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불씨가 튀었다. 그러나 이겨냈다. 루이스의 검이 위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검왕검도 무사하지 못했다. 애초에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여러 개의 균열이 산발적으로 표면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백신아는 침착한 표정이다.
남은 시간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듯한 태도였다.
루이스의 검은 걷어냈지만 아직 공격은 남아있다. 사방에서 에워싸듯이 파고드는 마력의 칼날. 그것을 본 순간 백신아는 큰 미련 없이 검왕검을 놓아버렸다.
싸움을 포기한 건 아니었다. 백신아의 손에서 빠져 나온 직후 검왕검은 자유를 얻었다.
인간의 몸으로 결코 보여줄 수 없는 복잡한 궤적을 그리면서 조그만 칼날을 단숨에 쳐낸다.
"어검술???……"
검왕검은 관성을 무시하는 움직임을 보이면서도 전혀 감속하지 않았다. 모든 칼날을 쳐낸 지금 다음 표적은 백신현이다.
지금 그의 손에는 검이 없다. 하지만 루이스의 검은 여전히 그의 제어 아래에 있었다.
공중에서 아래로, 빠르게 낙하하면서 검왕검을 찍어 누른다. 다시 한 번 불꽃이 튄다. 이번에는 루이스의 검이 검왕검의 공격을 걷어내려 하고 있었다.
콰직!! 무거운 소리와 함께 검왕검의 궤적이 틀어졌다. 상당히 어렵게 걷어낸 듯 루이스의 검이 벌벌 떨린다.
하지만 두 자루의 검은 아직 살아 있다. 공중에서 쉴 새 없이 부딪치면서 힘을 겨룬다.
그때마다 검왕검은 상처를 입었다.
칼날 부분이 쉴 새 없이 깎여 나가면서 무수한 쇳조각을 흩뿌렸지만 그 힘도 속도도 전혀 약해지지 않았다.
"역시, 강한걸."
「검주에게 배운 것입니다.」
두 검사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검 없이 싸우지도 못하는 반편이가 아니니까.
때로는 스스로의 검을 밟고, 때로는 상대방의 검을 발판으로 내딛으면서 삼차원의 전투를 자유자재로 실행해 나간다.
「검주는 뼈가 부러지고 팔이 날아가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검주의 곁에서 살아온 제가, 겨우 이 정도 상처로 멈춰설 수 있겠습니까?」
의도해서 드러낸 빈틈은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틈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실력의 차이가 이러한 결과를 만들었다.
백신현의 기준에는 완벽한 방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격상의 고수인 백신아의 눈에는 다르다. 방어 사이에 존재하는 틈을 찾아서, 서슴 없이 오른발을 내질렀다.
"컥……"
배에 오른발이 꽂힌다.
위력을 죽이거나 자세를 제어하는 등의 행위는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대로 추락한다.
그 순간 검왕검을 견제하고 있던 루이스의 검이 공중에서 궤적을 틀었다. 자석으로 당긴 것처럼 오른손에 달라붙었다.
쿵!! 백신현은 지면에 루이스의 검을 세게 꽂으면서 착지했다. 카가가가가각!! 루이스의 검은 대지를 깎아내면서 힘겹게 속도를 줄인다.
고통을 수습하며 고개를 들었다.
백신아는 검왕검을 손에 쥔 상태로 춤추듯 지면에 내려앉은 참이었다.
그 태도는 여유가 아니다. 그녀의 주변에 흐르는 마력의 기류가 모두 한 방향에 집중되어 있었다.
최고의 일격을 내지르기 전에 그녀에게도 조금 준비가 필요했다.
그런 이유로 발생한 불가피한 공백이었다.
백신현은 다르다. 그의 육체는 이미 한계에 도달해 있었고, 준비도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
하지만 이제 와서 도망칠 수는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는 천변무궁류의 기술이 단 하나 존재한다.
불규칙하게 흐르던 마력의 기류가 한 점에 집중되었다.
천변무궁류?????
일식필살검一?必??
하얀 유성白?
참으로 공교로운 일이 벌어졌다.
이 마지막 순간, 두 사람이 선택한 기술은 서로 같은 기술이었다.
한 점에 집중시킨 마력의 기류를 타고 내달리는 초고속의 참격기.
'이 기술이었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지켜보고 백신현은 희미한 감상을 느꼈다.
'너와 만난 첫 날, 나는 이 기술로 네게 구해졌다'
지금도 잊지 못한다.
아니, 꿈에서라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너와 함께 싸웠던 첫 날, 나는 이 기술로 마력을 얻었다'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눈부신 나날이었다.
'나는 너에게 정말로 많은 것을 받았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빛나는 추억마저 이 가슴에 새기게 되었다.'
이길 수 없다는 건 그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다.
그녀의 기억 속에 남게 될 백신현의 마지막 모습을 그런 한심한 형태로 끝맺고 싶지 않다.
백신아가 백신현에게 위대한 스승이었던 것처럼, 백신현은 백신아가 자랑으로 여기는 검주이니까.
'……그렇지? 겨우 이 정도로 한계 앞에서 포기하는 게 네가 자랑스러워하는 검주의 모습은 아니잖아?'
가속한다.
가속한다.
팔과 다리에 상처가 달렸다. 제어에 실패한 대가였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달려 나갔다.
이 기술은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다.
아니, 실패할 수 없다.
"윽……,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포효와 함께 달려 나갔다.
눈부신 추억과 함께.
아득히 머나먼 곳에 있는 백신아의 세계로.
* * *
"……아."
몸을 지탱할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피를 흘리면서 쓰러진다. 그의 상반신에는 대각으로 긴 상처가 새겨져 있었다. 그러나 면적에 비해서 깊이는 얕다.
마지막 순간, 백신아가 손속을 두었던 탓이다.
의지로 극복할 수 있는 차이가 아니었다.
도대체 얼마나 커다란 차이가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을 명확하게 짚어낼 수도 없다. 차이를 가늠하기도 어려운 실력의 차이가 존재했다.
하지만 의미는 있었다.
「훌륭합니다, 검주……」
등을 돌리고 서 있던 백신아가 천천히 돌아선다. 그녀의 상반신에도 역시 길쭉한 상처가 있었다. 이쪽도 깊지는 않다. 하지만 상처는 상처였다.
보이드부터 허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강적들이 도전했지만 누구도 도달하지 못한 흔적이다.
찢어진 상처를 손끝으로 살짝 쓰다듬으며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가는 젖어 있었다. 하지만 입술은 미소를 그리고 있다. 그녀에게는 이것이 감격의 표현이다.
「역시……, 검주는 제 자랑이에요……」
그 순간 간신히 형태만 유지하고 있던 검왕검이 완전히 무너져내렸다.
그녀의 무릎에서 힘이 쭉 빠지더니, 가느다란 몸이 천천히 앞으로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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