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우스 엑스 마키나-2화 (2/235)

EP.2 신, 강림 (1)

어둠이 짙게 깔린 동굴 깊숙한 곳.

청동 그릇 위에 타오르는 푸른 불꽃이 동굴 안을 비춘다.

방 안으로 들어오는 곳에는 두꺼운 철문이 통로를 막고 있고, 굳건한 빗장이 걸려있었다.

외부인의 침입을 막기 위해.

하지만 외부인이 누가 있을까?

이곳은 다른 곳도 아닌 신들의 지배자이자 농경의 신-크로노스의 신전 안 동굴인데.

"아아...!"

금발의 여인은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그 떨림이 품에 안은 물빛 머리칼 아기에게 전해져, 아기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인상을 찌푸렸다.

"아가...!"

여인은 아기를 품에 안고 눈물을 흘렸다.

아기는 어머니의 울음에 눈물을 글썽였지만, 대견하게도 소리내며 울지 않았다.

아이도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다.

- 내 아이는 어디에 있느냐!

동굴 입구에서부터 철문을 흔들 정도로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의 주인이 자신을 잡아먹으러 온다는 것을.

남자는, 아기를 죽이기 위해 동굴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아아악!

밖에서 여인들의 비명 소리가 울려퍼진다.

"아아, 안 돼...!"

금발의 여인은 포대기 안에 있는 푸른 눈동자의 아이를 보물처럼 감싸쥐었다.

무엇보다도 소중한, 자신이 배 아파 낳은 아이이건만, 이제는 이 아이를 영영 떠나보내야만 한다.

먼저 태어난 아이들이 그렇듯.

꺄아악, 아악!

여인들의 비명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중간 중간 뺨이 날아가고 주먹을 휘둘러 사람이 얻어맞는 소리가 안까지 들려왔다.

쾅!

누군가가, 문을 거칠게 두드렸다.

여인은 두려움에 떨며 사방을 살폈다.

동굴 안은 아무리 둘러봐도 빠져나갈 수 없는 막다른 곳이었다.

빠져나갈 곳은 없다.

만약 진작에 빠져나갈 수 있었다면, 먼저 태어난 아이들이 그렇게 가지 않았을 것이다.

쾅! 콰앙!

다시 문이 흔들렸다.

걸어놓은 빗장은 무쇠로 바꾸어 걸어놓았으나, 문을 두드리는 자의 압도적인 힘 앞에는 그저 얇은 철판에 지나지 않았다.

"문을 열어다오, 레아!"

바깥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여인, 레아는 귀를 파내고 싶었다.

예전에는 너무나도 사랑했던 목소리.

하지만 이제는 저주하여 죽여버리고 싶은, 술에 취한 목소리.

"크로노스...!"

레아 본인의 남편이자, 태어난 아이들의 아버지이자, 자식들을 죽인 학살범.

저 자가 방 안에 들어오는 순간, 이 청안의 아이는 죽음 목숨이다.

숨길 곳이 없을까.

레아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한 곳을 발견했다.

"...미안하다, 아가. 부디...잠시만."

레아는 아기의 입에 입술을 맞췄다.

그러자 순진무구한 눈으로 깜빡이기만 하던 아이는 고스란히 잠들었고, 레아는 아이를 단단히 포대기에 감싸고 숨겼다.

첨벙.

제발 크로노스에게 들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우지끈!

빗장이 순식간에 박살났다.

동굴 안쪽에 만든 철문은 티탄 신의 힘 앞에 나무판자처럼 구겨졌다.

"흐흐흐, 축하한다. 나의 아내. 나의 사랑."

곱슬거리는 긴 흑발의 중년인, 크로노스는 레아를 향해 두 팔을 벌리며 활짝 웃었다.

"우리 사랑의 결실, 내 아이는 어디에 있느냐?"

"없어요...!"

"없어? 하하, 이번에도 숨바꼭질이더냐? 흐흐, 좋다. 내 아이와 놀아주기를 바라는데 내가 어찌 놀아주지 않을 수 있어."

크로노스는 성큼성큼 레아에게 다가와 그녀의 목을 움켜쥐었다.

"커, 커흑...!"

"또 배에 숨겼느냐? 여기는 아니군. 아니면 다리 사이에 숨겼느냐? 그도 아니야. 아니면....!"

쾅!

크로노스는 침대를 걷어찼다.

큼지막한 침대가 단숨에 옆으로 넘어가며 수직으로 섰다.

"침대 아래는 이제 통하지 않지. 또 어디냐. 옷장 안에 숨겼느냐, 아니면...."

꼬르륵.

"!!"

레아는 귀에 들려오는 소리에 절망했다.

하지만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호오, 이건 무슨 소리지? 딸꾹."

크로노스는 술에 잔뜩 취해있었다.

그의 눈은 인사불성이 되어있었고, 다리는 제대로 걷지도 못해 몸이 좌우로 흔들렸다.

"뭔가 소리가 난 것 같은데...."

"저는 몰라요. 당신...뱃속에 있는 아이들이 우는 소리겠죠!"

"꺼-억."

레아의 절규에 크로노스는 입을 벌리는 것으로 화답했다.

크로노스의 행동에는 레아에 대한, 아내에 대한 예의나 사랑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우리의 다섯째는 어디에 있을까...아하."

크로노스는 성큼성큼 어딘가로 향했다.

레아는 평정을 가장하며, 제발 걸리지 않기만을 기도했다.

"어항이 있네? 그것도 나무로 된. 크으, 동굴 안에서 지내니 바깥이 그립기라도 했나? 아이 대신에 아니면 물고기라도 키우면서 적적함을 달래고자 한 건가?"

"......."

"대답을 안 해? 크흐흐, 뭐, 상관없다."

크로노스는 레아를 비웃으며 욕조를 붙잡았다.

"아, 안 돼요!!"

레아는 단숨에 크로노스를 향해 달려나갔다.

퍼-억!

하지만 크로노스는 팔꿈치로 레아를 뿌리치며 그녀를 밀쳐냈다.

명치를 얻어맞은 레아는 켁켁거리며 주저앉았으나, 곧장 크로노스의 바지와 다리를 붙잡아당겼다.

"제발, 제발...! 이 아이만큼은, 제발!!"

"하하, 레아야. 이렇게 물방울 속에 넣어둔 건 나보고 한 입에 꿀떡 삼키라는 것이냐?"

"아니에요! 제발, 아니야! 크로노스, 저주는 저주일 뿐이에요! 절대 그러지 마세요!"

"저주일 뿐?"

크로노스는 레아를 비웃으며 물속에서 꺼낸 물방울을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물방울 속에는 하얀 포대기가 있었고, 안에는 아이가 눈을 꼭 감은 채 잠자고 있었다.

"저주라. 크흐흐, 어떤 놈이 내 자지를 자를 지도 모르는데, 어찌 내가 조심하지 않을 수 있겠나?"

"그런 일 없어요!"

"아버지 우라노스도 그런 생각을 하시다가 내게 좆이 잘렸겠지. 나는 방심하지 않는다, 레아."

쯔어억.

크라노스의 입이 순식간에 벌어지기 시작했다.

레아는 위로 손을 뻗으며 아이를 되찾으려고 했으나, 크로노스는 레아의 배를 걷어차고 목을 짓밟으며 제압했다.

덥썩.

크로노스는 아이를 단숨에 집어삼켰다.

"아, 아아...!"

레아는 절망했다.

그녀가 마지막에 본 것은 자신의 운명도 모른 채, 잠에서 깨어나 자신을 향해 활짝 웃는 아이의 얼굴이었다.

"아아악!!"

레아는 비명을 지르며 크로노스의 다리를 때렸다.

"이 개새끼! 너는 반드시 벌을 받을 거야!!"

갸냘프고 고사리같은 손으로 때리고 할퀴며 레아는 저주를 퍼부었다.

크로노스의 다리에서 튄 피가 레아의 얼굴에 스쳐, 마치 피눈물처럼 흘러내렸다.

"...벌?"

크로노스는 레아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레아를 단숨에 뒤집어 엎드리게 만들었다.

"네가, 나를?"

크로노스는 레아의 두 손목을 붙잡고 억눌렀다.

"어디, 지금 저항은 할 수 있고?"

"이 개새끼! 싸지마, 이 패륜아 새끼야! 어차피 죽일 거면, 왜 자꾸 나한테 이러는 건데!!"

"그거야 당연하지. 네가...."

크로노스는 레아를 위에서 억누르며 사납게 웃었다.

"내게 그 저주를 건, 가이아의 딸 년이니까."

"!!"

"탓할 거면 가이아, 네 어미를 탓해라."

찌걱, 찌걱.

레아는 그저 크로노스에게 범해지며, 흙바닥을 눈물로 적실 뿐이었다.

* * *

8개월이 지났다.

크로노스는 레아를 임신할 때까지 범했고, 레아는 또다시 임신했다는 것에 좌절했다.

레아의 저항이 심해질 때마다 크로노스는 레아를 꼼짝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이제는 동굴 안에 가두는 것을 넘어 기어이 족쇄와 사슬을 가져와 레아를 침대에 묶었다.

여신은 그저 만삭의 배가 부풀어가는 것에 의미없는 시간을 보낼 뿐이다.

크로노스는 배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 즉시 레아를 범할 것이며, 아이는 또 잡아먹히게 되리라.

레아가 임신으로 인해 헛구역질을 할 때까지 강간을 반복하고, 그리고 또 임신하는 동안 다른 여자를 품으며 그 짓을 반복하겠지.

차마 입에도 담기 힘든 그 악행을.

"흐끅, 흐읏...!"

레아는 배를 부여잡고 울었다.

태어날 아이에게 아무런 도움도 될 수 없는 자신이 너무나도 원망스러웠다.

[나의 아이야.]

"!!"

순간, 레아는 귓가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목소리는 분명히 땅에서 들려왔다.

너무나도 작고 집중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소리였지만, 레아는 귀를 쫑긋 세우고 벽에 귀를 기울였다.

[들리느냐?]

하지만 놀라면서도 애써 소리를 내지 않고,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하구나. 그 자의 경계가 너무 삼엄하여, 이제서야 간신히 네게 닿을 수 있었다.]

레아는 참아왔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한 때는 그런 저주를 내려 크로노스가 미친 짓을 벌이게 한데 원인을 제공한 가이아를 미워하기도 했지만, 가이아 또한 자신의 어머니였다.

[정말로 미안하다.]

나쁜 건 크로노스지, 가이아가 아니었다.

"...어머니. 알고 계신가요? 벌써 다섯 명이에요."

[.......]

대지의 어머니가 어찌 자식을 잃은 슬픔을 모를까.

더군다나 장성하여 다 자란 아이도 아니고, 젖조차 몇 번 물려보지 못한 갓난아이들이 전부 아비의 뱃속으로 들어가고 말았으니.

"부디, 이 아이만은 어떻게 해주세요. 제발요. 만약에 이 아이까지 잡아먹히게 된다면...저는 자결할 지도 몰라요."

[방법이, 있다.]

가이아의 목소리는 착 잠겨있었다.

[아이을 낳게 되면, 반드시 아이를 흰 천으로 감싸거라. 그리고 땅에 묻어라. 마치 네가 장사를 지내는 것 마냥.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터이니.]

"어머니...!"

[부디, 나를 믿어다오. 네 아이를 땅에 묻으면, 내가 손을 뻗어 그 아이를 받아낼 것이다.]

"......."

레아는 고민했다.

아이를 땅에 파묻으라니!

그건 마치 아이를 레아 스스로의 손으로 장사지내라는 것과 같지 않은가?

이미 레아는 다섯 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모두 빼앗겼다.

첫째부터 다섯째에 이르기까지, 한 명도 남김없이 크로노스가 직접 레아가 보는 앞에서 잡아먹었다.

절망은 본디 희망이 극한으로 가득차있을 때 나락까지 더 깊게 떨어지는 법.

정말 가이아가 맞을까?

어쩌면 이건 크로노스가 가이아인 척 하면서 자신을 농간하는게 아닐까?

아이를 땅에 묻으면, 그 때는 땅을 파내며 흙더미에서 꺼낸 아이를 낼름 잡아먹는게 아닐까?

하지만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레아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약 2개월 뒤.

"아악...!"

산통이, 시작되었다.

* * *

응애.

다시 태어났다고 생각한 순간, 어머니로 보이는 여인이 나를 땅에 파묻고 있었다.

“응애?”

“제우스, 살아남아다오…!”

"응애?"

제우스?

내가?

...환생 좆 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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