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 신, 강림 (2)
섹스를 하다가 살해당했다.
이 무슨 개소리냐 하면, 나도 어처구니가 없지만 경험담이다.
원나잇으로 클럽에서 만난 여자가 설마 사람 간을 빼먹는 구미호일 줄이야.
아니다. 백마를 먹었으니까 뱀파이언가?
...비유다.
그냥 섹스를 하다가 질싸를 하고 여자의 위에 엎어졌는데, 그 여자가 내 목에 주사기같은 걸 찌르더라.
일말의 주저도 없이 내 목을 찌르는 손놀림을 생각해보면 분명 프로가 틀림없었다.
젠장.
안에 사정을 안 했으면 살아남았을까?
하지만 노콘은 본인이 하자고 했는데. 설마 노콘이 나를 저승으로 보내는 것에 대한 마지막 배려라면, 참 좆같은 배려다.
안녕, 내 예쁜 장기야.
멀리멀리 사방으로 퍼져나가 곳곳에서 잘 활용되렴.
섹스를 하다 죽어서 그런가, 고통없이 죽어서 그런가.
왠지 모르게 딱히 죽어도 아프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복상사가 이런 느낌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어차피 부모 없이 혼자 살던 인생, 시체는 백마가 알아서 잘 수습해줄테니 뒷 일도 걱정없다.
내가 죽은 지도 모른 채 고지서는 계속 우체통에 쌓일 것이며, 온갖 곳에서 요금을 내라고 독촉하다가 자연히 끊어지게 되겠지.
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조차 하지 않은 채 세상은 잘 돌아갈 것이다.
그러다 나는 다시 태어났다.
중간과정 없이, 뭔가에 이끌리듯 무언가에 빨려들어갔다.
응애.
그리고 아기가 되었다.
이게 그 말로만 듣던 회빙환?
이라고 생각하기도 잠시.
내 몸은 갑자기 아래로 푹 꺼졌다.
땅속으로 갑자기 몸이 빨려들어가기 시작하며, 나는 마치 워터슬라이드를 타고 내려가는 것 마냥 경사를 타고 포대기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아, 서서히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간혹 환생하는 자들은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정신을 차려서 산모를 힘들게 한다고 하던데, 나는 태어난 상태로 최소 수 km에 이르는 땅을 슬라이딩으로 내려가야만 했다.
그래도 다행히, 그 끝에 다다랐다.
뭉클.
푹신한 무언가가 나를 받아냈다.
나는 제대로 뜰 수도 없는 눈을 뜨려고 애를 썼다.
"아아...!"
기나긴 통로를 탈출한 끝에, 금발의 여인이 나를 받자마자 활짝 웃었다.
"아이야...!"
거유! 미시! 금발!
이 여자가 내 엄마?
그렇다면 나는 전력으로 젖을 빨 자신이 있었다.
성인 남자가 어린 아이가 되어 젖이나 빨 생각에 기뻐하는게 부끄럽지도 않냐고 묻는다면, 대지모신처럼 풍만한 가슴을 보면 누구나 다 젖을 빨, 아니 가슴에 파묻히고 싶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응애!
나는 일부러 울었다.
단순한 생각이지만, 서럽게 울면 젖을 물려주지 않을까?
"그래, 그래. 너도 네 어미와 떨어져서 슬프겠지. 하지만 이해해다오...."
응?
"이 할미가 너를 지켜주마. 그 개새끼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너를 보내주마. 이 크레타 섬이 너를 지켜주는 요람이 될 것이다."
애?
할머니라고?
아무리 나쁘게 봐도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이 여자가 할머니?
아무리 금발벽안의 외국인이라고는 하지만, 입은 복장이 드레스 한 벌이라 상당히 야하지만, 이 여자가 나의 할머니라고?
응애!
상관없다.
'젖 줘!'
생긴 모습이 할머니가 아닌데 무슨 상관이랴?
저 가슴에 얼굴만 파묻을 수만 있다면, 불편한 진실로부터 시선을 돌릴 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아아, 아이야. 너는 결코 그 존재가 들켜서는 안 되느니라. 네가 살아있다는 걸 알면, 그 미친 놈이 너를 잡아먹을테니."
응애?
"잊지 말거라. 네 위로 죽은 다섯 명의 고통을. 네가 반드시 장성하여, 그 놈을 죽여야 한다."
어라? 이거 어디서 분명 들어본 이야기인데?
"부디...살아남아다오. 그래. 네 이름. 이름을 알려줘야지. 레아 대신에 내가 이름을 알려주게 되었지만...이해해다오. 너는."
제우스란다.
시발.
좆됐다.
* * *
제우스.
그리스 로마 신화의 주신.
번개의 신으로 많은 곳에서 화자된 존재.
그게 나란다.
'회빙환 중에 왜 환생이냐고!'
퍽, 퍼억.
나는 움켜쥔 목검으로 허수아비를 후두려 팼다.
나의 분노를 가득 담아 짚단을 터뜨리듯 목검을 휘둘렀다.
퍼억, 퍼억!
제우스.
흔히들 아무 여자나 다 범하고 다니는 걸 생각하는 난봉꾼 이미지가 강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주신으로서 성공하고 난 뒤의 이야기다.
올림푸스 12신의 기둥에 이르기까지, 그는 엄청난 개고생을 했다고 들었다.
그걸 내가 해야되네.
깔깔깔.
"씨벌!"
나는 목검으로 짚단인형-크로노스의 심장을 찔렀다.
내 짜증 실린 목검은 우지끈 소리를 내며 부러졌고, 나는 그걸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근처 바윗덩어리에 주저앉았다.
'이왕 다시 태어나게 해줄 거면 차라리 빙의를 시켜주지 그랬어!'
제우스가 세계를 평정하고 난 후, 헤라에게 질투를 당하든 말든 일단 올림푸스의 주인이 된 상태로 빙의했다면 어땠을까!
몸에 적응하는 과정이 다사다난했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내가 위기를 직접 넘겨야 한다는 건 몹시 큰 시련이었다.
시련없이 꿀 빨고 싶다.
신화 속 제우스가 왜 그렇게 여자를 탐하고 다녔는지 조금은 이해가 간다.
어린 시절, 크로노스를 죽여야 한다는 사명과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압박감 속에 괴로운 나날을 보낸다.
청년 시절, 크로노스로부터 구한 형제누이들과 거인들을 쓰러뜨려 올림푸스의 패권을 가져온다.
문제는 이 때의 이야기, 솔직히 제대로 기억하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내가 기억하는 건 아주 단편적인 것 밖에 없는데!'
어린 시절.
동네 도서관에서 본 만화책이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지식의 전부였다.
두 남매가 나와서 서로 투닥거리다가 털보 아저씨가 이야기를 해주던 내용을 가끔씩 보던게 끝이었다.
어둠으로 가득찬 이 세상에서 빛이 되어 지켜주겠다고 말해야 할 사람이 나, 제우스가 된 것이다!
"젠장."
안죽이고 그냥 때려치울까?
평생 숨어살면서 그리스 지역을 떠나버릴까?
그래. 그리스 로마 신화가 아니라 동쪽으로 떠나 벽력신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단군이 내가 된다.
풍백, 우사, 운사를 이끄는 뇌제가 되어 왕국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스가 크로노스의 독재에 고생을 하든 말든.
'내가 살아있는 걸 아무도 모르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어?'
설마 크로노스가 극동까지 쫓아와서 나를 죽일까?
그리스 지방의 신들이니 그리스 안에서 살겠지.
"......아냐. 성공하면 돼."
나는 스스로의 마음을 다잡았다.
'성공하면 이 그리스 땅의 모든 미녀가 내 것이다.'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섹스하다 죽은 내게, 어쩌면 신이 내려준 형벌이자 동시에 구원일지도 모른다.
크로노스만 죽이면 된다.
그 뒤는 제우스의 형제누이들, 포세이돈이나 하데스 같은 이들과 함께 위기를 헤쳐나가면 된다.
아, 아-
올리브 나무 아아래에서
신들이 되기로 맹세를 했네
...아무튼.
일단 크로노스라는 시련만 넘기면, 그 뒤는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다.
찬란한 그 날, 올림푸스 정상 옥좌에 앉아 창 하나를 쥐고 당당히 웃통을 까고 앉는 그 날을 위해.
나는 크로노스를 반드시 죽일 것이다.
"유피테르! 어디에 있어?"
"아, 눈나아아아!"
나는 멀리서 들려오는 회색 머리칼의 님프, 아말테아를 향해 달려갔다.
"정말, 누나라고 부르면 안 된다니까...?"
"왜에?"
"그, 그거야.... 아니야. 점심이나 같이 먹자."
아말테아.
그녀는 내가 크로노스를 죽이기 위해 가이아가 내게 보낸 도우미였다.
"스읍, 하아."
"유피테르?"
"잠 온다...."
나는 아말테아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아직 내 키는 얼굴이 아말테아의 배에 닿을 정도일 뿐.
응애.
아말테아가 안아주지 않았다면, 만약 케이론이라는 땀내나는 남자가 내 스승이었으면 나는 진지하게 탈주를 생각하지 않았을까.
...불끈.
'참아. 내 안의 제우스.'
제우스로 환생하며, 나는 한 가지 확실한 혜택을 받았다.
신의 육체.
제우스는 제우스였다.
근력, 체력, 활력.
그 모든 것이 신의 위엄을 가지고 있었다.
전생, 김치의 피가 흐르는 청년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올리브 피의 티탄은 다른 곳도 티탄이었다.
'자지도 제우스.'
그렇다.
나의 페니스, 즉 자지는 제우스 그 자체였다.
"씨발, 좆나 크네."
전생의 나보다 더 크고, 우람하고, 두꺼워서 괜히 열패감마저 든다.
하지만.
'이제는 내 좆이야.'
내가 바로 제우스니까.
* * *
님프, 아말테아는 거룩한 대지모신 가이아의 엄명을 받았다.
이 아이를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길러라.
처음 임무를 받았을 때, 아말테아는 왜 자신에게 이런 시련이 내려졌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아이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 신들'의 아이였다.
아말테아는 어리석은 님프가 아니다.
가이아는 자신에게 미래를 맡긴 것이다.
그리고 그 미래는 영민하고 영특하고 성실하게 신을 죽이기 위한 수련에 힘썼다.
-이름이요? 음...유피테르로 해요. 그래야 저를 숨길 수 있으니까. 헤헤.
너무나도 똑똑하여, 때로는 이미 장성한 성인이 어린 아이로 변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어떤 아이가 자신의 존재를 숨겨야한다는 걸 자각하고 이름조차 가명으로 쓰고자 하겠는가?
그래서 아말테아는 아이를 진심으로 양육했다.
비록 친모는 아니지만, 대지모신의 지엄한 명령에 따라 아이, 유피테르를 가족처럼 돌봤다.
자식이라고 하기는 좀 그런게, 유피테르는 아말테아를 '누나'라고 불렀다.
아이도 아는 것이다.
자신을 길러주는 여인이 어머니가 아니라는 것을.
아말테아는 그게 너무나도 슬펐다.
아무리 신의 핏줄이라고 한들, 사랑을 받고 자랄 어린 아이가 어미의 사랑조차 받지 못하고 사명을 위해 칼을 가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다.
눈나아아아
그래서 아말테아는 그의 응석을 받아들였다.
어린 시절, 젖을 직접 물려주기도 했지만, 유피테르는 아말테아의 가슴을 너무나도 좋아했다.
아말테아도 그게 썩 싫지는 않았다.
다만.
"...곤란한데요."
아말테아는 나날이 성장하는 유피테르의 몸에 난색을 표했다.
빨리 어른이 되면 크로노스를 죽이러 여행을 떠나겠지.
하지만 그는 이미 한 곳이 어른이 되어있었다.
정말, 훌륭한 어른이.
첨벙, 첨벙.
차디찬 샘에 알몸으로 들어가 땀을 씻어내리는 유피테르의 아래에는, 아말테아의 뿔보다 더 굵고 두꺼운 물건이 자리잡고 있었다.
"...꿀꺽."
님프의 아랫배가, 조금씩 욱씬거리기 시작했다.
"아아, 신성이...!"
신의 위엄앞에, 그저 한낱 님프는 침만 꿀꺽 삼킬 뿐이었다.
설령 그것이 자신이 직접 젖을 먹이고 키운 아이라고 해도, 신이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