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우스 엑스 마키나-35화 (35/235)

EP.35 탈출, 타르타로스로 (1)

밥 먹는 중에는 개도 안 건드린다더라.

누군가가 중요한 일을 할 때는 절대 건드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런데 한 날 한 시에 처녀를 떼기로 결의했건만, 남은 둘의 처녀를 가지려고 했는데 갑자기 훼방을 놓는다?

"죽이고 싶다."

크로노스만 아니었으면 당장 나가서 죽이고 들어왔을 것이다.

놈의 목과 좆을 잘라 밖에 내던진 다음, 승리의 쾌감을 만끽하며 포세이돈과 하데스의 처녀를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그 크로노스다.

우리가 현재 어떻게 할 수 없는 강자이며, 아직은 힘이 더 필요하다.

포세이돈이나 하데스나 이제 육체적으로 막 처녀를 뗄 수 있을만한 성인이 된 만큼, 우리에게는 아직 성장을 할 시간이 필요했다.

"헤스티아! 빨리 비상통로 쪽을 열어! 시간은 우리가 벌겠어!"

"알았어요, 오빠! 조심하세요!"

헤스티아는 본인도 다리를 절면서 레아를 부축했다.

방금 전에 질싸를 받았지만, 데메테르 또한 아직도 몽롱한 상태인 헤라를 부축하며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미안하다, 둘 다. 모처럼 기념비적인 첫 섹스였는데."

"괜찮아요. 이기거나, 또는 도망치고 난 다음에 하면 되니까요."

"기껏 날 잡고 용기도 냈는데...후. 이 분노는...반드시 갚아야겠습니다."

포세이돈과 하데스는 각각 창을 움켜쥐었다.

아말테아가 직접 깎은 창대 끝에는 날카롭게 벼려진 강철의 창날이 달려있었다.

뭔가 반달처럼 생겼다거나 꼬불꼬불하다거나, 그런 건 없다.

내가 든 검 또한 마찬가지.

이 시대에 크로노스의 눈을 피해 이 정도 무장을 갖추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나마 가이아가 지하를 통해 우리에게 몸을 지킬 수 있는 위기탈출용 무기를 건네줘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크로노스의 낫을 맨몸으로 상대했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크로노스의 낫은 평범한 강철로 된 낫이 아니다.

티탄 신의, 우라노스의 좆을 잘라내고 그 피를 머금은 신물 그 자체다.

실제로 나는 크로노스에게 고자킥을 날리며, 스퀴테가 혹시나 날아올까봐 황급히 자리를 피해야했다.

그 우라노스의 좆을 자르기 위해 가이아가 직접 준비한 무기다.

그걸 크로노스같은 개백정이 들고 있으니, 위협적이지 않을 수 없다.

"...온다."

저벅, 저벅.

동굴 바깥에서 안으로 걸어오는 발걸음 소리가 안으로 들려오기 시작했다.

포세이돈과 하데스는 점점 말 수가 줄었고, 긴장한 듯 목에 침 넘어가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렸다.

"여차하면 같이 도망쳐. 내가 시간을 벌테니."

"하지만...!"

"나 그런 거 싫어한다. 도망치라면 도망쳐. 나는 어떻게든 살아서 도망칠테니까."

크로노스는 예언 때문에 우리를 죽이러 오는 것이다.

내가 제대로 엿을 먹여서 그렇지, 크로노스가 노리는 건 나 하나가 아니다.

레아가 있고, 다른 다섯 쌍둥이 모두가 크로노스의 표적이다.

그리고.

"...안에서 냄새가 나는구나."

드디어 도착했다.

어둠 속에서 살기등등한 얼굴로 나타난 크로노스는 당장이라도 내 목을 자를 기세로 낫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너희들은...그래. 그 머리칼을 보니 알 것 같구나. 하데스와 포세이돈이냐?"

둘은 여자로 태어났다.

하지만 크로노스가 둘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명백한 적의가 깔려있었다.

"제우스 뿐만 아니라 너희들 모두 이 자리에서 죽여주마. 타르타로스에도 처박지 않을 것이다. 다시는 태어나지 못하게...사지를 잘라서 매일 독수리가 쪼아먹게 만들어주지. 흐흐흐."

"이...잔인한...!"

내 예상대로, 크로노스는 우리를 자식으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어떻게 봉인을 풀었는 지는 몰라도, 네 눈에서는 피눈물이 나게 되겠구나. 기껏 구한 다섯 자매가 모두 다시 죽게 생겼으니."

"피눈물이 흐르는 게 누가 될 지는 당신 빼고 다 아는 사실인데?"

속에서 음습한 욕구가 끓어오른다.

비단 크로노스의 평정심을 흔들기 위한 것 뿐만 아니라,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크로노스에 대한 우월감과 자신감이 외치고 있다.

저 자에게 진실을 말하라고.

'어차피 얘들도 알 건 다 아니까.'

포세이돈이나 하데스, 아니 다른 자매들 모두가 들어도 상관없다.

내가 이들의 오빠이자, 아빠라는 것을.

"봉인을 어떻게 풀었냐고? 그거야...."

"당신은 우리의 아버지가 아닙니다."

포세이돈이 내 말을 끊으며 창을 겨눴다.

그녀는 다소 긴장하고 있지만, 분명한 눈빛으로 크로노스를 비웃었다.

"하하, 내가 아버지가 아니다? 그래, 자식을 죽이려는 아버지는 없지. 하지만 나는 다르다. 내가 너희들의-"

"당신이 낳은 자식들은 죽었어요. 우리는 제우스 '아빠' 덕분에 다시 태어났거든요."

"...뭐라?"

하데스의 지원 사격에 크로노스의 표정에 금이 갔다.

오빠와 아빠.

의미하는 바는 명백히 다르다.

"그, 그게 무슨...."

"혼은 당신으로부터 물려받았을지라도, 육체를 이루는 씨는 당신이 아닌 제우스에게 받았다는 겁니다."

"자식을 태어나자마자 먹어치웠잖아요? 그럼 이미 그 자식은 죽었죠. 아직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둘은 내게 시선을 돌렸다.

나는 둘의 시선에서 눈을 돌릴 수 없었다.

내가 확실히 말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이 상황에 가장 어울리는 말을 해야한다.

순간.

스퀴테의 날에 비친 내 모습이 보였다.

오랜 기간 동굴 안에서 생활하여 피부는 하얗지만, 어느새 크로노스에 비해도 손색이 없는 다부진 몸은 분명히 근육이 가득한 주신의 몸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피부가 검게 탄다면....

'완전 금태양이네.'

금태양이라.

그렇다면 해야할 말은 하나.

"레아 보지 쩔더라."

"뭐, 뭣...?!"

"내 몸에 흐르는 패륜아의 피를 이기지 못하겠더라고. 아버지의 성기를 자른 자의 피가...패륜을 하라고 외치던데?"

최대한 비릿하게.

그리고 최대한 크로노스를 하찮게 생각하는 마음으로.

'나보다 좆도 작은 게.'

완벽한 하찮음이다.

"레아 안에 질싸했다."

"......."

크로노스가 붙잡은 스퀴테가 슬며시 내려갔다.

그는 큰 충격을 받은 채, 표정 없는 얼굴로 멍하니 서있었다.

"네가 먹어치운 내 누나들, 내가 레아 안에 집어넣고 안에 사정해서 다시 태어나게 만들었다 이 말이야. 그래서 이제는 내 여동생들이자...내 딸들이거든?"

방금 전에 섹스하려고 했지만.

"그러니까 가족끼리 오붓하게 지낼 시간에 괜히 훼방놓지말고 꺼져."

마지막 한 방.

"레아가 지금 침대에서 기다리고 있으니까."

"이, 이 패륜아 새끼!!"

분노한 크로노스가 스퀴테를 바닥에 찍었다.

나는 아말테아에게 배웠던 훈련 그대로 옆으로 몸을 날렸다.

서걱!

동굴이 세로로 쪼개졌다.

가만히 있거나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내가 동굴과 함께 반으로 쪼개졌을 것이다.

"......오빠."

"응, 이거 안 되겠네."

고작 분노에 찬 일격으로 땅을 반으로 가르는 자를 철검으로 이길 수는 없다.

무기 탓을 하려는 건 아니지만, 스퀴테 정도의 무기가 아니면 이 철검을 휘둘러봐야 피부에 긁힌 자국도 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시간을 벌며 도망친다.

살아서 도망만치면 '그곳'에서 이길 수 있다.

"뒤져라, 이 더러운 패륜아!!"

"내가 패륜아면...."

나는 스퀴테의 날을 전력으로 피하며, 크로노스의 아래를 집중적으로 노렸다.

"너는 패배한 수컷이다. 실좆 새끼야."

아무리 크로노스가 강하다고 한들, 나의 입딜은 막을 수 없다.

* * *

티탄 신이 기본적으로 신인 건 맞지만, 신들 중에서도 전투력이 압도적으로 뛰어난 이들이 있다.

제우스가 그렇다.

그 뒤를 잇는 포세이돈과 하데스가 그렇다.

그렇다면 레아나 헤스티아, 데메테르와 헤라는 얼마나 강한가?

상대적으로 그들은 약하다.

앞의 셋이 압도적으로 강한 것도 있지만, 그들은 크로노스와의 싸움에서 인질로 사로잡혀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더 높았다.

"크윽...!"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도망가야했다.

혹시나 모를 사태에는 항상 대비하고 있었기에, 언제든지 도망갈 수 있도록 채비를 마련했다.

그리고 넷은 도망쳐오기만 하면 바로 크레타 섬을 탈출할 수 있는 수단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하아, 하아...!"

힘겹지만 긴 동굴을 달리고 달려, 드디어 동굴의 끝에 도착했다.

까악, 까악-

그곳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오직 파도가 굽이치는 바다 뿐이며, 구멍에서 해수면까지 족히 수십 미터는 넘을 정도로 높은 절벽이었다.

"괜찮니...헤라?"

"네, 네...."

헤라는 헤스티아와 데메테르의 부축을 받으며 숨을 헐떡였다.

티탄 신족이 동굴을 조금 내달렸다고 체력이 부족한 것도 아닐텐데, 그녀는 좀처럼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미안...해요, 어머니. 그리고...둘 다."

"아니야, 아니야. 제우스한테 질내사정을 받았으니까 그럴 수 있어. 다들 그런 걸."

"하지만 데메테르는...."

"언니는 여러 번 받았잖아요."

"......."

헤라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자신이 욕심을 부리고 거짓말로 제우스의 자지를 독점하려고 한 바람에, 그녀는 크로노스의 추격으로부터 하마터면 큰 민폐를 끼칠 뻔 했다.

"...앞으로 조심할게."

"아니에요, 언니. 이번에는 때가 안 좋았던 것 뿐이에요."

"맞아요. 그리고 언니가 질싸받은만큼 저희도 받으면 되는 거였으니까...괜찮아요."

"아."

헤라는 옅게 웃는 헤스티아를 보며 더 부끄러워졌다.

"...후후, 다들 좋은 마음가짐이구나. 제우스는 어쩔 수 없지."

레아는 그런 딸들을 보며 활짝 웃기만 했다.

"제우스랑 포세이돈, 하데스가 살아서 오기만을 기다리자. 금방...올 거야."

"그럼 이제 어떻게 하면 돼...?"

"조금만 기다려보렴. 분명 여기 아래에서...."

뿌우우---

아래에서 아주 약한 호각 소리가 들려왔다.

넷은 파도가 굽이치는 해수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

절벽 아래.

이상할 정도로 잔잔한 곳이 있었다.

절벽에 그냥 서면 보이지 않지만, 허리까지 걸쳐질 정도로 상체를 앞으로 뻗으니 경사에 가려진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동굴?"

절벽 아래에는 해식동굴이 있었다.

그리고 그곳은 마치 바다의 가호를 받는 것 마냥, 아주 파도가 잔잔하게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아...!"

헤라는 보았다.

호각을 들고 있는 아말테아가 손을 흔드는 것을.

"......헤에."

그리고 또 보았다.

아말테아가 타고 있는 작은 배 위.

하얀 드레스 차림의, 포세이돈보다는 탁하지만 물빛과도 같은 회색 머리칼의 여인이 갑판 위에 키를 잡고 서있는 것을.

"...쟤가 메티스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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