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우스 엑스 마키나-36화 (36/235)

EP.36 탈출, 타르타로스로 (2)

확실히 신들의 왕은 허명이 아니었다.

"죽어라, 쥐새끼 같은 놈!"

크로노스의 공격은 정말 빛처럼 빨랐다.

나는 그에게 공격을 넣을 시도조차 못했고, 피하는데 급급했다.

"하아앗!"

그래도 공격하는 틈을 노려 역공을 펼친다.

스퀴테를 휘두르는 동작은 클 수밖에 없고, 동굴 안은 상대적으로 폭이 좁아서 낫을 공터마냥 휘두르기에는 제한적이다.

그러므로 노리는 곳은 낫을 휘두르고 난 뒤, 낫을 회수하는 동안!

"죽어라!"

나는 검을 앞으로 내질렀다.

검은 정확히 크로노스의 눈을 가리키고 있었다.

"어리석은 놈!"

크로노스는 나를 비웃으며 입을 쩍 벌렸다.

"설마-"

콰득!

크로노스는 내 검날을 깨물었다.

세상에, 강철로 된 검을 이로 깨문다?

이게 주신의 힘?

"크윽!"

검을 비틀어 안으로 비집고 넣는 것도, 이 사이에 끼인 검을 빼는 것도 쉽지 않다.

그리고 나는 그게 잘못된 판단임을 금방 깨달았다.

"너같은 놈들이 한 두 명이었는 줄 아느냐!"

크로노스는 장대를 잡은 손 하나를 내게 뻗으며 멱살을 움켜쥐었다.

"크으윽…!"

"너같은 놈들을 위해 준비했지! 잘가라!"

위이잉.

스퀴테의 낫과 자루 사이, 원형의 보석이 반짝였다.

가운데 부분이 세로로 길게 찢어진 구슬은 마치 흉측한 눈처럼, 그리고 보지처럼 벌어지며 흉흉한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죽어라!"

스퀴테의 눈은 정확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정확히 목이 꿰뚫려 죽는다!

"어딜!"

"큭?!"

내 허리 옆으로 뱀처럼 휘감아오는 창이 스퀴테를 찔렀다.

창끝으로 낫의 날부분을 정확히 찔러, 순간적으로 스퀴테의 방향이 흔들리게 만들었다.

피융ㅡ!

마치 레이저빔과도 같은 것이 내 머리칼을 스쳤다.

코에서 느껴지는 단백질 타는 냄새가 전신을 소름돋게 만들었다.

포세이돈의 도움이 없었다면 나는 분명 죽었다.

하지만 포세이돈의 도움이 있었기에, 그리고 내가 포세이돈을 믿기에 나는 스퀴테의 간격 안으로 파고들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믿는 건 포세이돈 한 명 뿐이 아니다.

"오라버니!"

나는 내 옆으로 뻗는 손길을 붙잡았다.

내 손에는 짧은 단창이 들려있었고, 나는 곧장 검을 놓고 단창을 한 손으로 들어 바닥에 깃발을 박듯이 내질렀다.

"어디 이것도 먹어봐라!"

"큭!!"

날카롭게 벼려진 단창에 크로노스는 고개를 뒤로 젖혔다.

놈의 얼굴을 노리려던 창날을 볼을 스쳐 그의 쇄골에 박히게 되었다.

카앙ㅡ!

이게 사람의 몸에서 나는 소리인가, 아니면 청동 동상에서 나오는 소리인가?

분명 검으로 내려쳤음에도 불구하고 크로노스는 상처 하나 없었다.

창은 박히지도 않았고, 미끄러지듯 아래로 향했다.

"크하하! 너는-"

"지금!"

나는 아래로 미끄러지는 관성을 이용해 창을 아래로 더 강하게 찔렀다.

부우욱!

피부는 긁히지만 옷은 잘 잘린다.

쇄골부터 명치로 내려간 창은 곧장 복부를 긁으며 고간에 당했다.

"으아악!!"

크로노스는 기겁을 하며 뒤로 크게 뛰었다.

덕분에 내 단창은 애꿎은 바닥을 찔렀지만, 그 바람에 시간을 '또' 벌 수 있었다.

"으하하! 잘했어, 하데스!"

나는 내게 단창을 내밀어준 하데스를 붙잡고 달렸다.

포세이돈은 이미 스퀴테의 궤적을 바꾼 시점에서 뒤로 내달렸고, 상대적으로 발걸음이 느린 하데스는 내가 허리를 붙잡고 안아들듯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몸이 하데스가 더 가볍지 않냐고?

저승 가까워지는 소리.

"오라버니, 죄송합니다…."

"뭘. 나야 좋지."

나는 내 품에 안은 하데스를 안고 지하통로의 구덩이를 향해 달렸다.

이미 포세이돈은 구덩이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하데스를 내려놓고 둘의 허리를 동시에 휘감았다.

"네 놈! 비겁하게 성기를 노리다니!!"

"어떤 호로새끼가 아버지 좆을 그렇게 잘랐다고 해서 말이지!"

"이 개새끼가!"

크로노스는 스퀴테를 수평으로 크게 휘둘렀다.

죽음의 기운이 일렁거리는 참격이 우리에게 날아왔고, 나는 잽싸게 둘을 안고 구덩이 안으로 다리를 집어넣듯 주저앉았다.

"빡쳐서 조준도 제대로 못하냐?! 하긴, 구멍 안에 넣지 않으면 아무렇게나 질질 흘리고 다닐테니!"

"이 개자식! 너는 너를 낳아준 아버지에게 감히 그딴 망발을 지껄이느냐!"

"나를 레아가 낳았지, 네가 낳았냐?!"

"이, 이…!"

언어폭력의 온상에서 살아온 키보드워리어에게 입딜로 누가 이길쏘냐.

나는 크로노스를 향해 중지를 들어올리며 구덩이로 빠졌다.

"꼬우면 따라와보시든가!"

나는 둘을 내 품에 안고 구덩이로 몸을 던졌다.

과거 레아를 데리고 도망쳤던 그 때처럼, 나는 미끄럼틀을 타듯 아래로 떨어졌다.

"놓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에는 크로노스도 과감히 구덩이에 뛰어들었다.

스퀴테를 들고 들어올만한 공간은 아니었지만, 스퀴테가 없어도 크로노스는 맨몸으로도 위협적인 존재였다.

"오라버니, 곧 거기예요!"

"그래?! 후우, 앞에 잘 봐줘!"

나는 둘을 보호하느라 아래를 볼 수 없다.

하지만 둘은 내 품에 안겨 아래를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중간에 '장애물'이 있는 것 정도는, 충분히 보고 이야기해줄 수 있다!

"지금!!"

"우오오!"

나는 하데스의 신호와 동시에 등판으로 바닥을 치며 몸을 띄웠다.

안그래도 급격한 경사로에서 몸까지 띄우니 순간 하늘을 나는 것처럼 몸이 붕 뜨게 되었고, 바닥에 착지하는 순간 등허리와 전신이 아팠다.

"놓칠 것 같으냐!!"

뒤에서 크로노스의 고함이 울려퍼진다.

나는 그를 향해 미리 애도했다.

"충돌각!!"

"뭣-"

빠각.

덜커덩.

뭔가 걸리는 소리와 함께 크로노스의 속도가 멈췄다.

"흐흐, 어차피 이제 애들 낳을 것도 아닌데 부랄이 필요는 없잖아?"

"이...크헉…."

크로노스는 옆으로 누운 채로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손은 고간부를 붙잡고, 괴로움의 신음을 흘리며 통로를 따라내려왔다.

"와...부랄 깨졌는데 쫓아오다니. 독하다, 독해."

중간에 설치한 과속방지턱으로 알이 제대로 깨졌을 것이다.

심지어 과속방지턱의 형태도 완벽하게 알을 깨뜨릴 악의를 가지고 강철심으로 된 손톱 형태를 박아넣은 만큼, 스쳤어도 하나 정도는 확실하게 으깨졌을 것이다.

"끄으어어억…."

부랄이 깨졌을텐데도 크로노스는 고통을 참고 내려오고 있다.

역시 저래야 한 신화의 주신 자리를 차지하는 건가.

같은 남자로서 존경심이 생길 지경이었다.

물론, 좆을 노리는 것이 비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유일한 약점인데 안 건드릴 수 없지.'

크로노스의 좆은 물리적으로도 약하겠지만, 심리적으로나 패륜적으로나 확실한 약점이다.

자신이 좆을 잘라서 왕좌에 올랐으니, 찬탈자가 좆을 노리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죽여, 죽여버리겠어…. 매일 매일 재생하는 걸 잘라서 터뜨려버리겠어…!"

크로노스의 저주가 뒤에서 들려온다.

하지만 그는 한 번 방지턱에 걸려 알이 깨진 뒤부터, 내가 뭔가 몸을 비틀면 나를 따라서 움직이고는 했다.

혹시나 또 깨질까봐.

"오빠, 슬슬 시작할게요!"

"그래. 지금부터...꺾인다!"

뭔가 턱을 넘었다 싶은 순간, 경사가 급격하게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후우…!"

포세이돈이 심호흡과 함께 손가락을 강하게 튕기자, 내 등이 축축하게 젖기 시작했다.

쏴아아ㅡㅡㅡ!!

동시에 통로 전체에서 물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피부 전체를 긁듯이 따갑던 흙 통로는 포세이돈의 힘 덕분에 워터 슬라이드가 되었고, 나는 아래를 향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물을 타고 내려갔다.

쏴아아!

아래로 미끄러지는 속도에 탄력을 받았다.

크로노스와 내 체격이 비슷한 이상, 내가 하데스와 포세이돈을 안고 있으니 더 빨리 아래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크아아아!"

하지만 크로노스의 집념은 중력 가속도니 뭐니 하는 걸 전부 다 무시해버렸다.

"놓치지 않는다!!!"

"씨발, 저게 뭐야."

놈은, 마치 드롭킥을 날리러 오는 것 마냥 두 발을 모으고 있었다.

중간에 걸리는 과속방지턱-에그 브레이커는 맨발로 부수며, 위로 뻗은 두 손 너머로는 막대한 에너지가 방출되기 시작했다.

"크하하하하!!"

나는 아직 인간의 생각이 짙었나보다.

티탄 신이 어떤 신의 권능을 가지고 있는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느리구나, 떨어지는 것 조차!!"

"이런 미친!"

따라잡힌다.

먼저 둘을 내려보내야하나?

여기서 둘을 아래로 보내고 옥쇄를 각오해야하나?

"오라버니. 크로노스를...멈추게 할 방법이 있어요."

하데스는 크로노스가 쫓아오는 위를 가리키며 손을 뻗었다.

"용서해주세요, 오라버니…!"

하데스는 그 말과 함께 내 입에 키스했다.

아니, 갑자기?

츄릅.

심지어 혀까지 넣으려고 하면서?

'이거 데드 키스 각 아닌가?!'

이런 위급 상황에서 키스라니!!

플래그 적으로 얘기하자면 명계의 신이 다가와서 죽음을 예언하는-

'하데스가 죽음의 신이 될텐데?'

……?

"이, 이런 미친…!!"

뒤에서 경악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무슨 개짓거리를 하는 것이냐! 남매지간끼리, 도대체 무슨!"

"실좆은 닥치세요."

포세이돈도 내 쇄골에 얼굴을 묻으며 크로노스를 노려봤다.

"강간밖에 모르는 쓰레기가 사랑을 어떻게 알겠어요?"

"뭐, 뭣…!"

"사랑의 신이시여…!"

포세이돈과 하데스는 내 볼에 입을 맞추며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다.

""제발, 저희를 저 강간마의 좆에서 구해주세요…!!""

순간.

뭔가가, 동굴 아래에서 핑크빛의 무언가가 반짝거렸다.

"크하하! 소용없다!"

그리고 크로노스의 발끝이 내게 닿기 직전.

푹!

분홍빛의 화살이 내 이마를 스쳤다.

만약 두 명이 내 얼굴을 입술로 누르지 않았다면, 분명 미간이 꿰뚫렸을 터.

그리고.

"!!"

분홍빛 화살은 크로노스의 영 좋지 못한 곳에 박혔다.

* * *

태초에 가이아가 태어나 세상을 만들었다.

하지만 가이아 이전에, 세계는 혼돈으로 가득차있었다.

혼돈으로부터 밤이 생기고, 어둠이 생기고, 또한 대지가 생겨났다.

그리고 범접할 수 없는 지옥이 생겨났다.

혹자는 그것을 타르타로스라고 불렀다.

하지만 누군가는, 아주 오래전부터 살아온 누군가는 그 지옥을 또다른 이름으로 불렀다.

사랑.

티탄 신들조차 헤어나올 수 없는 마성의 저주.

"음…."

분홍 머리칼의 여인은 자신을 향한 기도에 가슴에 손을 올렸다.

진심이 전해졌다.

그의 삶을 통해서 본 '새로운 형태의 사랑'은 자신의 심금을 울렸다.

걱정스럽기도 했다.

과연 저 사랑, 당사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순애라는 것이 퍼진 그리스는 어떻게 될까?

예정된 미래보다, 더 혼란스럽지 않을까?

"...재밌겠는데?"

스륵.

분홍 머리의 여인은 활을 들어올렸다.

"이번은 도와줄테니, 어디 한 번 내게 보여주렴."

그리고는 가장 낮은 곳, 지상을 향해 화살을 쐈다.

"야스가 뭔지를. 그리고...."

화살 끝에는 하트 모양의 화살촉이 걸려있었다.

"현관합체라는 것을. 꼭."

여인의 눈동자에는 분홍빛 혼돈의 폭풍만이 가득했다.

"쎅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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