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우스 엑스 마키나-37화 (37/235)

EP.37 탈출, 타르타로스로 (3)

"으아악! 크으, 으윽…!"

아무도 보지 못하는 동굴 속.

크로노스는 자신의 한쪽 고환을 꿰뚫은 화살에 괴로워했다.

"이, 이 망할…!"

크로노스는 알을 붙잡고 동굴 아래로 흘러내려갔다.

그리고 가장 끝에서 벽을 붙잡고 선 채, 파도가 굽이치는 바다를 내려다보며 이를 갈았다.

"하나같이 도움이 안 되는 새끼들 뿐이구나…!"

실수다.

사고다.

화살의 궤적은 분명히 제우스의 머리를 꿰뚫었다.

아래를 보면서 내려가려면 당연히 고개를 들 수밖에 없었고, 화살은 정확히 제우스의 머리를 꿰뚫어야만 했다.

하지만 두 딸, 포세이돈과 하데스가 제우스와 키스를 하며 얼굴을 강제로 눌렀다.

그 바람에 제우스의 이마를 화살이 스치는 정도로 끝났고, 결국 화살은 크로노스의 고환을 으깨버린 것이다.

"하악, 하악…."

휴식을 취하면 다시 상처는 재생된다.

하지만 이 굴욕은 회복되지 않는다.

휘리리릭.

동굴 밖, 하늘에서 빙글빙글 돌며 날아온 스퀴테가 크로노스의 손에 잡혔다.

스퀴테에게서 뿜어져나오는 빛이 크로노스를 휘감았고, 그는 금방 원래의 모습을 되찾고 안정된 호흡으로 반듯하게 섰다.

"...반드시 복수하겠다. 너희들 모두."

크로노스는 스퀴테를 꽉 움켜쥐며, 바다를 향해 겨눴다.

"다음 번에 잡히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그래...네가 패륜을 저질렀으니, 나도 한 번 더 패륜을 저지르마. 흐흐."

크로노스는 혀로 입술을 핥으며, 마지막으로 사라지던 '그'의 모습을 상기했다.

"네 여동생들이 보는 앞에서 제우스, 너를 강간해주마."

이곳은.

그리스.

* * *

나를 노린 정체불명의 화살.

그것은 크로노스의 고간에 박혔다.

"아즈아아아!"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당장 속도가 멈췄다는 것이 중요.

알이 화살에 터지든 말든, 일단 내가 두 여자를 데리고 이곳을 탈출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날아간다!!"

서서히 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나는 구멍을 나가기 전, 둘의 허리를 꽉 끌어안고 몸을 튕기듯 구멍 밖으로 날렸다.

새애액ㅡㅡㅡㅡ

제우스, 발사.

위는 온통 푸른 하늘 뿐이다.

저것은 분명 바다의 색이 반사되어 보이는 색일 터.

우리에게 들이닥친 시련과 상관없이, 하늘은 정말 맑고 청명했다.

그리고 그만큼 우리가 떨어지는 곳 또한 푸르고 청명할 터.

""꺄아아악!!""

둘은 비명을 지르며 내게 더 강하게 달라붙었다.

물과 함께 뿜어져나온 만큼 전신이 젖어, 얇은 옷감 너머 둘의 피부 감촉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말캉, 뭉클.

'천국이다.'

비록 몸은 떨어지고 있지만 최고다.

수십 미터 절벽에서 고공낙하를 하고 있지만, 이건 신뢰의 도약인 만큼 절대 다치지 않는다.

나는 그녀를 믿는다.

다른 건 몰라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족 이외에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단 두 명의 여인을 꼽을 것이다.

아말테아.

그리고 메티스.

"내가 간다!!"

등이 해수면에 닿았다.

분명 등이 터지는 듯한 큰 충격이 와야하지만 그런 건 없었다.

느껴지는 것은 마치 푹신한 침대 속에 처박히는 듯한 감각 뿐.

그래.

마치 메티스의 침대와 가슴처럼 포근한 감각이다.

그녀의 가슴과 엉덩이에 코박죽을 하고 얼굴을 부비부비했을 때의 감각처럼, 바다는 나를 감싸안았다.

꼬르륵.

그리고 우리 셋은 바다 속으로 천천히 가라앉았다.

포세이돈을 제외하면 나나 하데스는 호흡에 상당한 문제가 있었지만, 우리는 금방 '뿅'하는 소리와 함께 아래로 떨어졌다.

물방울 속으로.

"후아…. 살았다."

나는 아래에서 뻗어오른 덩쿨 줄기에 안도했다.

"살았어요, 어머님. 그리고 정말 고마워, 메티스."

"이 정도는 기본이죠."

지혜의 님프, 메티스.

동시에 바다의 여신 테티스의 딸이기도 한 그녀는 크로노스의 침입에 대비하여 우리를 돕기 위한 탈출선을 마련해두었다.

마치 캐러밸과도 같은 형태의 범선은 거대한 물방울 속에서 바다 속을 헤쳐나가고 있었고, 우리는 레아가 갑판에서 뻗은 덩굴 줄기의 도움으로 무사히 안착하는데 성공했다.

"다른 동생들은?"

"안에서 쉬고 있어요. 그보다 유피테르 님?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우선 두분한테 얘기 좀 해주세요."

메티스는 내 품에 안긴 둘을 가리켰다.

"이제 안전하니까 떨어져도 된다고."

"......."

"......."

포세이돈도 하데스도 침묵을 지키며 가만히 있었다.

내가 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독이고 나서야 둘은 순순히 몸을 떨어뜨리며 물러났다.

"배 만드느라 고생했겠어, 메티스."

"인간들이 고생했죠."

메티스는 발로 갑판을 가볍게 굴렀다.

아마 이 배의 노를 젓는 건 메티스가 지켜주던 작은 마을의 인간들이리라.

불도 쓸 줄 모르는 원시 인류에 가깝지만, 메티스는 이들에게 노를 젓는 방법과 삶의 터전을 옮겨야 할 필요성을 이해하는 지혜를 가르쳤다.

물론 이렇게 '바다 속'을 갈 수 있는 건 메티스 덕분.

"테티스 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흐흥, 엄마한테 잘 전달할게."

그리고 동시에 메티스의 어머니, 테티스가 크로노스의 격노가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돕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땅은 가이아의 영역이라 크로노스의 눈을 피해 숨을 수 있었다.

하지만 바다는 가이아의 영역이 아니다.

아무리 바다의 깊숙한 곳이 땅이라고 하더라도, 나의 지질학적 지식은 티탄 신족의 우월한 신격 앞에 한낱 쓸모없는 미래 지식에 불과하다.

마치 내가 비트코인이 떡상하는 시기를 알고 있다고 해도 지금부터 현대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것처럼, 현대 지식에서 내 삶에 도움이 되는 건 온갖 야동으로 섭렵한 다양한 체위와 테크닉 뿐이다.

그래서 이 바다보다 실은 땅이 더 깊다고 말해봐야 소용은 없다.

그저 테티스와 메티스의 도움으로 우리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에 쉽게 도착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를 할 뿐!

"두 명은 잠깐 들어가봐. 나는 메티스랑 둘이서 이야기를 나눠야 하니까."

"둘이서…?"

"오라버니, 이 님프와는 무슨 관계죠?"

포세이돈의 표정이 굳고, 하데스는 다급한 목소리로 내게 직구를 날렸다.

"관계라."

포세이돈과 하데스는 내 동생들이며, 가족이다.

그런 의미에서 혈연은 끊을 수 없는 가장 가까운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근데 형제자매는 법적으로 이촌 지간 아닌가?'

촌수 관계를 따지면 다섯 쌍둥이는 레아를 거쳐서 나와 이촌 관계에 있다.

현재 내게 있는 유일한 일촌은 레아.

하지만 이제 일촌이 '될' 여자가 한 명 있다.

"나와 메티스의 관계는 간단해. 미래를 약속한 사이야."

"...두루뭉술하기는 하지만 썩 마음에 드는 관계인 걸."

메티스에게는 올림포스 12신, 지혜의 여신으로서의 자리를 이미 약속했다.

그러므로 미래를 약속한 사이라는 건 틀린 말이 아니다.

"두루뭉술하다고? 나는 있는 그대로 말했는데."

물론 나도 이런 말장난으로 여럿을 속이거나 상황을 무마하려는 놈도 아니다.

"결혼해달라고 프로포즈 하기 전까지는 아직 그런 관계 아니냐?"

"...프로포즈라뇨?"

"이런 거지."

마침 딱 좋은 타이밍이다.

레아도 보고 있고, 포세이돈이나 하데스도 있고, 우리의 도착에 막 갑판으로 올라온 헤라와 데메테르, 헤스티아도 있다.

'그리고 우리를 지켜볼 장모님도 계시고.'

따지고보면 레아와 언니가 되지만, 그리고 메티스는 내 사촌이 되기도 하지만, 그리스 티탄끼리 뭐 어떠랴.

"메티스."

나는 메티스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자, 잠깐만요!!"

메티스는 기겁을 하며 주변의 눈치를 봤다.

아니나다를까 내 동생들의 표정이 가히 좋지 않았고, 심지어 레아마저 불편함을 감추지 못했다.

"뭘 잠깐만이야. 지금 중요한 말 하려고 하니까 조용히 해."

"윽…!"

주신이 될 자가 무릎을 꿇는다?

아니다.

"내 아이의 어머니가 될 사람에게, 배 아파서 아이 낳아줄 여자에게 이 정도도 못 할까봐."

"...당신이 무릎을 꿇는 건 선 여자의 보지를 빨 때만 그런 줄 알았는데."

"그건 그 때고."

쪽.

나는 메티스의 왼손 약지에 키스했다.

"메티스, 나와 결혼해주겠소?"

"......지금 대답 안하면 안 되는 거죠? 지금 진지한 거 맞죠? 막 보여주기였다고 무르면 저...진짜 앞으로 얼굴 안…."

나는 그저 메티스를 지긋이 올려다보기만 했다.

"...진지한 거 맞죠? 저...여기에 대답해도 되는 거죠?"

때로는 백 마디 말보다 진심이 담긴 시선과 행동이 뜻을 전하기 쉬울 때가 있다.

"...일어나요, 유피테르."

"말하기 전까지 안 일어난다."

"아이 참…! 저 진짜 살해당한다니까요…!"

메티스는 주변을 가리키며 전전긍긍했다.

"아내 송장 치르고 싶어요…?!"

"...킥."

결국 메티스는 인정하고 말았다.

썩 바람직한 대답은 아니었지만, 이걸 통해 나는 분명히 엄포할 수 있게 되었다.

"레아 어머님. 그리고 모두. 메티스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겠지."

생명의 은인.

그 말로 메티스가 우리 남매들에게 있어 어떤 존재인가 분명히 표현할 수 있다.

그리고 이제 여기에 한 가지 관계가 더해질 뿐이다.

"메티스는 내 첫 아내입니다."

"...죽어도 유일한 아내라고 말하지는 않죠? 나 참."

메티스는 볼을 긁적이며 레아와 동생들에게 허리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바다의 여신 테티스의 적녀, 바다와 지혜의 님프 메티스라고 합니다. 어, 음…."

메티스는 자신을 향한 시선에 난감해했다.

"...친해지는 거, 많이 어려울 것 같은데요."

"괜찮아."

나는 메티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갑판 아래를 가리켰다.

"같이 섹스하면 친해지게 되어있어. 앞으로 섹스를 하고 싶으면 메티스의 허락을 받아라."

"뭣…?!"

섹스 통제.

'정실 부인'의 위엄을 살리는데 이만한 권력이 또 어디에 있을까?

"그, 그런…."

"생명의 은인이면 다...읍읍…!"

"진정해요, 언니. 오빠한테 밉보이면 언니만 피해보는 게 아니라니까…!"

"와, 그러면 메티스 언니라고 불러도 돼요?!"

가장 먼저 메티스를 향해 손을 내민 건 역시 헤스티아였다.

"앞으로 잘 부탁해요, 언니."

"그, 그래요."

"아이, 오빠 아내 분인데 말 편히해도 좋아요."

"그래도…. 아, 아니. 알았어. ...잘부탁해."

헤스티아는 메티스와 손을 맞잡고 웃었다.

그러면서 남들에게 듣지 못할 정도로-나만 들릴 정도로 작게 속삭였다.

"...제가 1등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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