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우스 엑스 마키나-39화 (39/235)

EP.39 탈출, 타르타로스로 (5)

가이아의 섬에서 빠져나온 우리는 테티스 여신의 도움을 받아 지하세계, 타르타로스로 향했다.

"태초에 혼돈이 있었고, 혼돈으로부터 태어난 네 명의 고대신이 있었으니, 이들이 각각 스스로의 이름을 말하기를 가이아와 닉스, 에레보스와 타르타로스라고 하더라."

갑판 위.

나는 한 자리에 모은 여동생들에게 메티스로부터 들은 세계의 역사에 대한 설명을 이어나갔다.

왜냐?

우리가 갈 곳이 타르타로스이므로.

"타르타로스는 가이아 님처럼 티탄 신인가요?"

"티탄이라고도 할 수 있고, 티탄의 기원이라고도 할 수 있지."

"오라버니, 타르타로스는 지옥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럼 사람이 아니라 지형...아니 세계 아닌가요?"

"신이자 지형이자 세계라고 하더구나. 가이아 님께서 땅 그 자체이자 땅의 여신인 것처럼, 타르타로스 또한 나락이며 동시에 한 명의 신이라고 하더구나."

타르타로스는 지하세계인 동시에 하나의 신격이라고 했다.

"지옥의 이름도 타르타로스고, 지옥의 신도 타르타로스인 셈이지. 우리가 이 땅 전체를 가이아라고 하는 것처럼 말이야."

"그럼 타르타로스는 저희의...편인가요?"

"그건 애매하지. 그인지...아니면 그녀인지도 몰라. 가이아 님께서도 타르타로스의 '실체'를 보지 못한지 엄청 오래되셨다고 했으니."

타르타로스는 하나의 세계이나 그곳을 다스리는 자는 특별히 없다고 했다.

애초에 누군가가 '내가 이곳의 지배자다!'라고 말할 수 있는 환경도 아니라고 했다.

지옥의 가장 바닥.

"지하 5층 짜리 감옥이 있다고 한다면, 그곳은 마치 지하 6층에 해당하는 감옥이라고 할 수 있겠지."

"5층인데 6층이요?"

"뭔가 알려져서는 안 되거나...언급하는 것조차 꺼려질 정도로 위험한 공간이거나 그런 느낌이겠네요."

"그런 셈이지."

용암과도 같은 지옥불이 흐르고 생명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영원한 갈증과 고통 속에서 죽지도 못하고 평생 고통을 받는 곳이 타르타로스라고 했다.

과연 그것이 실제인지 아닌지는 이제 들어가서 확인해봐야 알 터.

"...슬슬 들어갈 때가 되었군."

쏴아아아.

어느새 배는 주변이 온통 흰 안개로 뒤덮인 바다에 도착했다.

그리고 우리는 만나게 되었다.

"너희는 누구냐?"

혈색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백발의 여인.

머리칼도 그렇고 눈썹도 그렇고 눈동자도 그렇고 전부 하얀색 일색이라 소름마저 돋을 지경이다.

하지만 미인이다.

"스틱스 님이십니까?"

"나를 알아보다니, 제법이구나. 그렇군. 네가...그 소문의 아이로구나. 그리고 뒤의 여인들은...너의 애첩들이냐?"

"제 여동생들입니다."

"...실례를 했군."

스틱스는 포세이돈을 비롯한 동생들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오빠를 바라보는 눈빛이 마치 연인을 바라보는 눈빛이라 오해를 했구나. 그만큼 가족을 아끼고 사랑한다는 것일 터. 나의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의미에서 너희들의 부탁을 들어주마. 단, 크로노스를 죽여달라거나 그런 건…."

"그건 제 몫입니다. 여신께서는 그저 저희가 명계에 다녀오는데 길을 열어주시길 바랄 뿐입니다."

"명계라?"

스틱스는 갑판 위에 맨발로 살포시 안착했다.

"명계에는 어쩐 일로?"

"타르타로스에 가려고 합니다."

"......산 자가 타르타로스에 간다? 허, 그곳이라면 크로노스에게 쫓기지 않을 수는 있겠지. 하지만-"

"그곳에 갇힌 분들을 구할 것입니다."

"......음. 그렇겠지."

아무래도 이 여자, 다소 착각이 심한 듯 하다.

설마 우리가 크로노스를 피해 도망쳐 타르타로스에서 살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렇다면 오산이다.

"타르타로스에 갇힌 가이아 님의 자식들은 아무런 죄도 없이 갇혀있었습니다. 그곳을 지키는 자들도 크로노스의 하수인이죠. 저희는 그들을 무찌르고, 그분들을 구할 것입니다."

"그렇군. ...하지만 너희들에게 길을 열어준다는 것 자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느냐?"

스틱스는 하늘을 가리켰다.

"나는 당장이라도 크로노스에게 이 사실을 말할 수 있다."

"......오라버니."

하데스를 비롯한 동생들이 바로 전투 태세에 임했다.

여차하면 스틱스와 싸울 기세로, 배가 망가져 스틱스 강에 빠져 싸워야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틱스에게 바로 적의를 보였다.

"여신이시여, 부디 현명한 선택을 내리시길."

나 또한 마찬가지.

"만약 제가 크로노스를 무찌르고 승리를 쟁취하게 된다면, 여신께서 주신 은혜를 잊지 않을 겁니다."

"호오. 미리 논공행상으로 나를 끌어들이려고 하는 것이냐? 좋다, 무슨 수로? 내게는 여우같은 남편과 토끼같은 자식들이 있다. 나의 가정에 위협이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희를 지지했을 때 얻는 이득이 무엇이냐?"

이득을 논하는 시점부터 이미 반쯤 넘어왔다.

나는 명계로 통하는 길이 열릴 것이라 확신했다.

"명예."

"이미 나는 여신으로서 많은 명예를 누리고 있다. 그런데 명예라니?"

"'스틱스 강에 맹세코.'"

나는 선서를 하듯 한 손을 반듯하게 올리고 선언했다.

"본인 제우스는 스틱스 강을 걸고 하는 약속은 이 목숨과 힘이 다하더라도 지킬 것을 약속하는 바이오."

"......호오."

스틱스가 눈을 반짝이기 시작했다.

"예를 들자면?"

"너무나 아름다운 여인이 있고, 그 여인을 범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고 가정을 합시다. 그리고 내가 그 여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스틱스 강에 맹세하고 어떤 부탁이든 들어주겠다고 약속한 것이오. 그러자 그 여인이 말하기를, '저를 범하지 말아주세요'라고 말한다면 순순히 포기하리다. 왜냐? 스틱스 강에 대고 한 맹세니까."

실제로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겠지만, 그만큼 아주 강력한 효력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마치 현대 사회에서 인감 도장을 만들 권리와 그에 관한 모든 권한을 주겠다는 제안과도 같다. 아님 말고.

"스틱스 강에 맹세를 한다라. 그것 참...좋은 어감이구나."

제우스도 가이아도 레아도 아니다.

이 땅 전역에 펼쳐진 절대적인 언약, 신들의 약속이 '스틱스'라는 이름 아래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과연 지금까지 크로노스가 스틱스에게 이런 명예를 주었을까?

결코 아니다.

'이미 메티스랑 다 논의해서 정한 사안이라 이거야.'

* * *

언젠가 메티스와 이야기를 하며 스틱스 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러니까 크레타 섬에서 다섯 자매와 보믈리에 테스트를 하기 전.

나는 종종 메티스를 찾아가 기러기 부부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메티스도 나의 생환을 축하하며 내 품에 안겼다.

"그래서 여동생들이 당신과 하기를 바란다고요?"

"살을 섞을 수록 강해지니까."

"그게 아니더라도 너무 멋져서 그런 거 아닌가? 레아 여신님이랑도 저처럼 사랑을 나눌테니...어떤 여자든 부러움을 느낄 거라고요. 후후."

메티스는 다행히 우리의 관계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은 아니었다.

"가족만큼 확실한 조력자는 없죠. 축하해요, 유피테르. 여동생 분들이랑 섹스하고 나면 그분들은 앞으로 평생 당신을 배신하지 않을 거예요."

"왜?"

"설령 그리스 누구와 섹스를 하더라도 당신만큼 애정넘치고 쾌락 가득한 섹스를 하는 남자는 없을테니까."

오히려 긍정적이었다.

"크….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 있다면, 메티스 너를 만난 일이야. 사랑한다, 메티스."

"피, 말로만."

"내 마음을 열어서 보여줄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그러고 싶은 지경인 걸? 너와 평생을 함께하고 싶다는 이 마음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말이지."

"어떻게 당신의 마음을 확인한다는 거예요? 종이에 적으면 찢어버릴테고, 다른 사람에게 말하게 해도 협박해서 말을 바꾸게 할텐데."

"어디 강에 대고 맹세하면 되는 거 아닐까?"

"강에 대고 말하면 다 들어줘야한다? 세상에 그런 게 어디있어요?"

"...없어?"

충격!

스틱스 강에 대한 맹세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 나중에 그런 거 하나 만들까?"

"좋네요. 주신조차 어길 수 없는 진실의 맹약. 약속을 어기면...티탄 신의 권위가 벌레만도 못한 수준으로 전락할 정도로 확실한 약속이면 되겠네요."

...그랬던 기억을 바탕으로, 나는 타르타로스로 향햐는 길게 있는 스틱스를 어떻게 꼬드길까 고민하다가 이 문제를 메티스와 상의했다.

"메티스, 지난 번에 했던 얘기 기억나? 강에 대고 맹세를 하는 거. 스틱스한테 그걸 제안해서 길을 열어달라고 하자. 크로노스조차 스틱스 강에 맹세를 하면 지켜야 할 정도라고 한다면 어때?"

"...메티스 강은 없는 게 아쉬울 지경이네요."

스틱스 강은 테티스의 영역이 아니다.

그래서 타르타로스로 가기 위해서는 스틱스의 도움이 필요했는데, 마침 나는 스틱스 강에 대한 맹세를 지금 써먹기로 했다.

비바, 미래지식.

비바, 현대치트.

"한 번 시험해볼까? 스틱스 강에 맹세하마. 네가 다른 남자를 침실로 들이지 않는 한, 나는 너를 사랑할 것이다."

"...역시 당신도 그리스 남자가 맞네요. 절대 나만 사랑한다고 하지 않아. 스틱스 강에 맹세하면서 한 여자만 사랑한다고는 말 못하죠?"

"그건 진짜로 미안하다."

메티스가 따지고 드는 것에 나는 차마 그렇다고 말할 수 없었다.

제우스가 맹세를 하여 한 여자만 사랑한다?

그건 제우스가 아니라 제우스의 탈을 쓴 무언가다.

그리고 나는 제우스다.

"진짜로 미안해."

"...풋, 그렇게 미안할 필요 없어요. 왜냐면 제가 대신 말하면 되니까."

메티스는 내 볼에 키스하며 속삭였다.

"스틱스 강에 맹세코, 당신만을 사랑하면서 살아갈게요. 만약 그걸 어긴다면, 저는 다시는 깨어나지 않을 영원한 잠에 빠지게 될 거예요. 물론 제 몸에 흐르는 티탄의 피가 저를 다시 깨워주겠지만, 영면인 만큼 엄청 오랫동안 잠들게 되겠죠."

"......정말 사랑스러운 여자야. 메티스 너는."

메티스는 내 위에 몸을 겹치며 베시시 웃었다.

"약속해줘요. 스틱스 강에 맹세코, 유피테르의...제우스의 승리를."

그렇게 나는 메티스와 스틱스를 회유할 방법을 만들어냈다.

* * *

그리고, 다시 지금.

"아주 훌륭한 맹세로구나.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해. 한 가지 더 부탁을 들어줘야겠다."

스틱스는 내 뒤에 있던 여동생들을 가리켰다.

"만약 너희들이 크로노스로부터 승리를 한다면, 너희 중 한 명이 타르타로스를 비롯한 명계를 다스려줘야되겠다."

"그건…!"

"잠깐 중간중간 나오는 건 있어도, 거의 대부분의 삶을 지하에서 살게 되겠지. 지하의 주인이자, 저승의 왕으로서. 어떠냐? 너희 중 누가-"

"제가 하겠어요."

스틱스의 앞에 나선 그녀는 흑발이었다.

"하데스?"

아무래도.

"오라버니께서 지상을 다스린다면, 저는 지하를 다스리겠어요."

운명이라는 것은 정해져있는 모양이다.

"타르타로스에 크로노스를 처박고 난 뒤에, 누구 하나는 그걸 감시할 필요가 있잖아요? 명계의 왕으로서."

하데스는 내 옆에서, 내게만 들릴 목소리로 아주 작게 속삭였다.

"...지상의 왕과 명계의 왕. ...여왕 정도는 되어야 아내로서 격이 맞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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