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6 개전, 티타노마키아 (2)
지상으로 올라오기 전.
타르타로스에서 우리는 키클롭스와 헤카톤케이레스라는 조력자를 얻었다.
3명의 강인한 티탄.
그리고 혼자서 50명의 전력을 낼 수 있는 티탄 셋.
이들의 힘이 있다면 우리는 분명 크로노스가 이끄는 티탄 신족으로부터 능히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대로 지상에 올라가도 되는 건가?
"오빠! 지옥의 망령들이 쫓아오기 시작했어요!"
"젠장, 그냥 얌전히 나가기만 하려고 했더니!!"
우리는 지상으로 쉽게 올라갈 수 없었다.
지상으로 올라가려고 하니 우리를 붙잡으려는 수많은 망자의 손길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와...저게 다 몇 명이냐."
"최소 수 만 명은 될 것 같습니다."
"저들 중 그냥 인간이나 괴수 정도면 괜찮아요. 가이아 님의 혈육이 아닌...다른 티탄 들도 일부 갇힌 자들이 있죠. 그들이 오면 지상으로 가는 길이 막힐 수도 있어요!"
타르타로스에 있던 모든 망령들이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으려고 했다.
이유는 하나.
넌 못 나 간 다 ! !
수많은 망령들이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서로 아귀다툼을 벌여도 시원찮을 놈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하나가 되어 우리를 가로막는 영혼의 벽이 되어버렸다.
"미치겠군."
과연 이 지옥을 탈출할 수 있기는 한 걸까?
스틱스 강으로 가는 길 전부 영혼으로 가득 뒤덮여있는데?
"지금까지 타르타로스에서 아무도 나오지 못한 이유를 알겠군."
"물리적으로 안에서 나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지는 않지만...이렇게 방해가 들어오니까요."
키클롭스들이나 헤카톤케이레스들이 타르타로스에서 자력으로 탈출할 힘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이들이 타르타로스를 탈출하지 못하는 것은 탈출하는 즉시 그걸 알아챈 크로노스가 바로 부리나케 달려와 습격하는 것도 있지만, 타르타로스 안에 갇힌 다른 이들이 탈출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도 데려가줘.
너희만 도망가냐.
죽어도 함께 죽자.
이곳에서 영원히 고통받자.
왜 너 희 만 ???
자신은 다시 지상으로 가지 못하는데 다른 자는 지상으로 도망친다?
"지옥 그 자체로군."
당연히 이 무간지옥을 탈출하는 이들은 모두의 시기와 질투를 사게 되어있으며, 이는 결국 우리가 탈출하는데 큰 걸림돌로 작용하게 되었다.
"완전 무장을 하고 올라가지."
그래서 우리는 탈출을 위해 한 가지 확실한 준비가 필요했다.
망자들의 손길로부터 우리의 몸-특히 내 여동생들의 몸을 보호할 수 있게, 피부에 죽은 자의 손이 닿지 않도록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었다.
"이런 거 혹시 가능해? 전신갑옷이라고 하는 건데, 칼 하나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촘촘하게 갑옷을 만드는 거지."
나는 키클롭스들에게 전생의 기억을 되살려 풀플레이트 갑옷을 제안했다.
"전통적인 복장은 아니네."
"흉갑에 치마 형태의 갑옷? 그건 애들 팔다리가 노출되잖아. 밑으로 망자가 아래에서 나타나면 안 되겠지?"
"과연."
만화 속 그리스인들의 갑옷은 대부분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복장과 비슷했던 것 같기도 하지만, 그보다 한술 더 떠서 전신중갑이어도 썩 나쁠 건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이왕 만들 거면 다 만들자. 그래...159명. 싹 다."
"한 명 한 명 갑옷을 만든다고요? 너무 과한 건...아니겠네요."
"크로노스의 눈을 피해 대규모 전력을 갖추기에 오히려 좋은 셈이네. 타르타로스를 경계하기는 하지만...타르타로스 안쪽까지는 보지 못하니까."
다들 내 걱정에 대해 취지는 공감했다.
유비무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준비를 하는데 과한 준비는 없다.
"그래서 가능하냐?"
"셋이서 하는데 시간이 충분하다면."
"헤레스들도 투입되어서 직접 만들면 안 돼? 나도 도우마."
"...그럼 우리가 지도 감독을 내려야하는데 괜찮겠어? 주신님이 되실 분인데 그래도 돼?"
"물론. 크로노스를 잡을 수만 있다면."
그리하여.
키클롭스들은 150명의 헤레스와 나를 관리 감독하며 전신갑주의 제작에 박차를 가했다.
깡, 깡, 깡.
디자인을 포기하고 오직 방어력과 착용감 만을 신경 쓴 결과, 마치 삼뚝같은 투구와 프로토타입 강철남자 같은 형태가 만들어지고 말았다.
강도는 만족.
나나 포세이돈, 하데스 정도의 근력이 아니면 갑옷은 쉽게 구길 수 없었다.
다만.
"이건 안되겠어. 헤레스들은 괜찮은데, 얘들에게 이걸 입힐 수는 없잖아!"
"주신님! 이건 폭거야. 여자애들한테 이런 갑옷을 입힌다고? 절대 그럴 수 없어! 포세이돈이랑 하데스 거, 다시 만들자!"
"암, 여자는 갑옷도 예뻐야지!"
키클롭스들의 제안에 따라, 나는 K-RPG에서나 나올 법한 중갑여기사들의 디자인을 바로 가져왔다.
"우오오, 대단해!"
"아니, 저희는 괜찮은데…."
"...물론 예쁘게 만들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만."
그리하여.
포세이돈과 하데스의 갑옷은 온라인 게임에서나 나올 법한 미형이 되었다.
그 디자인의 배경에는 나의 훈수와 조잡한 그림 설명, 그리고 그것마저도 찰떡같이 알아들어준 키클롭스와 헤레스 들이 있었다.
누가봐도 '여장군'처럼 보이는 룩.
옆에 '자동사냥'이라는 문구가 붙어서 빙빙 돌아가도 이상하지 않을 갑옷 형태였지만, 그래도 갑옷이라고는 민소매 흉갑 정도가 끝인 초고대 그리스에서 이 정도면 완벽한 룩이다.
신의 위엄을 살리기에 정말 좋은 갑옷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
물론, 나는 갑옷을 입지 않는다.
"오빠는 갑옷을 입지 않는 건가요?"
"이번만."
언젠가 정말 멋진 갑옷이 만들어지는 날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크로노스를 상대하는데 갑옷은 의미가 없고, 오히려 내 몸을 느려지게 만들어 쉽게 공격당하게 만들 것 같았다.
그래서 갑옷은 만들지 않고, 가벼운 흉갑 정도만 입기로 했다.
그렇게 헤레스를 비롯한 모두가 무장을 하고 타르타로스를 떠나려던 찰나, 우리는 또다시 타르타로스 탈출을 눈치채고 달려드는 수많은 망자들의 습격을 받았다.
가지마아아아아
영원히 같이 사는 거야아아아
어딜 너희만 가려고 그래
데려갈 거 아니면 여기 있으란 말이야아
우리의 탈출을 막는 수많은 망자들.
그들을 상대로 힘을 뺐다가는 지상에 올라가서 정작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식량도 서서히 줄어들고, 원래 우리가 타고 왔던 배도 망자들의 습격을 받아 망가진 상황.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우리는 한 노인의 도움을 받았다.
파지지직!!
하늘에서 떨어지는 수많은 벼락.
전격에 영혼 째로 소멸하는 망자들.
지옥에서 볼 수 없는 막대한 전격에 나는 넋을 잃었다.
"아, 아아…!!"
키클롭스들과 헤레스들은 멀리서 다가오는 노인을 보자마자 내 뒤에 숨었다.
"크로노스의 자식들인가. 잘 자랐군."
백발이 성성한 노인은 우리를 훑어보더니-특히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니-망자들의 사이로 벼락을 뿌렸다.
"가라. 그리고 지하에 갇힌 이들을 위해 복수를 해다오."
"당신은…?"
"이름을 말해봐야 부끄러울 뿐. 하지만 만약 복수를 할 좋은 기회가 있거든...나의 이름을 팔거라."
파지직!!
"한 때 하늘이었던 자."
노인은 손에 푸른 전격의 창을 만들어 내던졌다.
앞으로 날아간 전격의 창은 망자들을 일거에 쓸어버리고 스틱스 강으로 향하는 길을 만들었다.
"가라. 새로운 하늘이여."
마치 노아의 방주를 보는 것 같아, 나는 진심으로 소름이 돋았다.
"당신은...역시…!"
"나의 핏줄이여, 한 가지 부탁이 있다면...부모를 건드린 패륜아에게 피의 복수를 해다오."
노인의 눈은 분노로 가득했고, 나는 그의 도움에 대한 은혜를 갚는다는 마음으로 힘을 발휘했다.
그리하여 만들어진 공격.
우라노스 킥.
타르타로스에서 탈출하며 우리는 의외의 조력자로부터 도움을 받았고, 스틱스 강에 도착하여 얻은 배를 타고 지상에 도착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지상에 당도했다.
아주 완벽한 타이밍에.
* * *
불알이 차였다.
크로노스 개인에 대해 말하자면 그렇지만, 크로노스가 이끄는 티탄 군세를 말하자면 허리가 찔렸다.
와아아ㅡㅡㅡ!!
헤레스들은 물만난 물고기처럼 전장을 지배했다.
3명이 하나가 되어 돌멩이를 투척하니 이게 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했고, 티탄 신들은 전신을 얻어맞고 피를 철철 흘리게 되었다.
크로노스의 음경도 마찬가지.
"크윽...! 잠시 퇴각한다!!"
레아를 구할 때와 마찬가지로, 크로노스는 고환을 붙잡고 전장에서 떠났다.
"......해치웠나."
나는 걱정어린 마음에 마법의 단어를 읊었다.
혹시나 내가 말하는 순간 엄살을 부리던 크로노스가 바로 몸을 돌려 우리에게 반격을 하나 싶었지만, 천만다행으로 우리를 향해 다시 달려드는 일은 없었다.
다른 곳도 아닌 자지를 전격으로 지졌다.
이전에는 그냥 걷어차기만 했지만, 이제는 타격으로 인한 물리적 고통을 넘어 전격으로 튀겨버리기까지 했으니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이제 시작이야.'
본격적인 전쟁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과연 이 전쟁이 어떤 식으로 끝날 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한 가지 확신하는 점은 있다.
'이 전쟁, 우리의 승리다.'
확신한다.
나는 지금 크로노스와 비등하거나, 그 이상.
스퀴테의 자루를 요격한 것으로 나는 내 힘을 증명했다.
섹스를 통해 강해지는 내가 타르타로스의 여인들까지 품었으니, 그 강함은 이제 크로노스와 견줄 정도.
'아슬아슬했어.'
나는 전장에 대자로 뻗은 남자를 향해 다가갔다.
"오랜만이오, 프로메테우스."
"...제우스 님을 뵙습니다."
크로노스에 의해 몸이 두동강 날 뻔한 청년은 피골이 상접한 채 내게 머리를 조아렸다.
반짝.
스퀴테에 불이 붙었던 것도 아닐텐데, 정수리가 반짝인다.
차라리 전부 밀어버린다면 스킨 헤드라고 부를 수 있지만, 저건 정수리를 제외하고는 전부 머리칼이 오돌토돌 올라와있으니 차마 뭐라고 말을 하기도 애매했다.
"위대하신 제우스시여. 제 머리칼은 괜찮습니다. 당신을 위한 신전을 수배하였으니, 그곳으로 터를 옮기시지요."
"뭐?"
"아주 오래전부터 당신을 위한 땅을 준비했습니다. 선택하시지요. 어디로 하시겠습니까?"
그리하여.
우리는 머리가 빛나는 프로메테우스의 조언에 따라 새로운 장소에 진지를 구축하기로 했다.
프로메테우스는 내게 세 곳의 진지를 제안했고, 내게는 하나 익숙하면서도 동시에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곳을 하나 찾아냈다.
"이곳으로 하지."
"...탁월하신 선택이십니다. 역시 제우스 님."
그곳은.
이름하야, 올림포스.
나의 아방궁이며 할렘이 될, 천혜의 요새이자 하늘로 우뚝 솟은 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