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7 개전, 티타노마키아 (3) 올림포스
일차적으로 군세가 물러난 뒤.
나는 프로메테우스의 제안에 따라 올림포스라는 곳에 터를 잡고자 했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
하나는 이곳이 크로노스가 기거하고 있는 '오트뤼스' 산과 가이아의 영지 사이에 위치한 곳이라는 점.
하나는 그곳이 크로노스의 군세를 상대로 전쟁을 치르기에 지리적 이점이 있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은 그곳이 올림포스라는 점.
'이건 원전을 따라가야지.'
나는 미신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내 아래에 딸린 여동생들과 함께 올림포스를 만들어나갈 이들을 생각하면 어떤 신이라도 기도를 올릴 수 있다.
제우스는 올림포스에 터를 마련했다.
나 또한 올림포스에 기틀을 잡는다면, 크로노스에게서 승리하는 운명에 한발자국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저희는 이곳을 떠나겠습니다, 어머님. 그리고 가이아 님."
나는 레아와 가이아에게 이 영지에서의 이탈을 선언했다.
"어째서 그렇게 성급하게 결정을 내리는 것이냐?"
"그래. 밖은 위험해. 좀 더 안정을 찾은 뒤에...."
"이미 결정은 내렸습니다. 이곳을 더 위험에 처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가이아와 레아는 나를 만류했지만, 나는 이곳에 남아있을 생각이 없다.
'여기가 가이아 땅이지 내 땅은 아니잖아.'
단군왕검도 새로운 땅으로 나아가 고조선을 건국했다.
이곳에 터를 잡는다면 크로노스를 쓰러뜨리고 난 뒤에도 가이아를 비롯한 가이아 휘하의 티탄들이 분명 나의 지배에 관여를 할 터.
'내가 주인이 되어야 해.'
나는 내가 주인이 되어야 할 곳에 기틀을 마련할 것이다.
그래야 내가 앞으로 그리스를 지배함에 있어 주도권을 가질 수 있다.
'가이아도 마냥 믿으면 안 돼.'
아무리 아말테아로 변신하여 내 자지의 노예가 되었다고 한들, 그녀는 아들에게 우라노스의 성기를 자르게 만든 장본인이다.
즉, 언제든지 나를 배신할 수 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설령 가이아가 우리를 배신하게 될 지도 모르니, 그에 대비한 힘을 기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내가 왜 이런 걱정을 하느냐 하면....
'가이아는 그럴 여자야.'
크로노스만큼 강해졌기 때문일까.
나는 크로노스가 왜 가이아의 수족이라고 할 수 있는 키클롭스와 헤카톤케이레스를 비롯한 가이아의 자식들을 타르타로스에 가뒀는지 감이 오기 시작했다.
가이아는 눈에 보이는 것처럼 마냥 인자한 여자가 아니다.
"흐음.... 그래?"
"제우스, 그래도 위험하니까 나중에 가는 건 어떠니...?"
오직 근심, 걱정, 사랑만이 가득한, 레아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과 이렇게 다르지 않은가.
"어머님, 걱정마세요. 마음같아서는 어머님도 함께 모시고 올림포스로 가고 싶지만, 당장은 가이아 님의 비호 아래에서 몸을 숨기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크로노스는 저부터 노릴테니."
어그로는 내가 끌었다.
크로노스는 이제 적극적으로 나를 노릴 것이며, 내가 가이아의 영지에서 나간다면 더욱 올림포스만 노리게 될 것이다.
설령 후방으로 돌아 가이아의 영지를 습격한다고 해도, 올림포스에서 우리가 뒤를 치는 것이 걱정되어 그런 모험은 하지 않을 터.
내가 밖으로 나감으로써, 우리는 더욱 안전해지게 된다.
"너는...생각을 바꿀 생각이 없어보이는구나."
레아는 나를 끌어안았다.
나는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위로했다.
"알았다. 말리지 않을게. 대신 약속해줘. 만약 위험에 처하거든 반드시 살아서 돌아오겠다고."
"예, 물론이죠. ...그런데, 레아."
모처럼 분위기를 잡고 있었는데, 아랫도리에 감각이 뭔가 이상하다.
고개를 슬쩍 아래로 내려보니, 레아의 큰 가슴이 내 배에 눌려 아래가 보이지는 않았다.
"...하."
그래서 옆으로 고개를 살짝 돌리니, 레아는 일부러 자신의 비부를 내 고간에 바싹 붙이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그러고 싶어요?"
"그, 그래도 이제 떠나면 당분간 보지 못하게 되잖아...!"
이별 키스도 아니고 이별 섹스라니.
내가 아무래도 좆으로 버릇을 단단히 들여놓은 것 같다.
"그렇네요. 보지로 못하게 되겠네요. 가이아 님,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그...혹시 시중이 필요하느냐? 아말테아를 부를까?"
"아뇨. 그녀도 쉬어야지요."
나는 레아를 번쩍 안아들었다.
"모자 간에 잠시 긴밀한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레아와 단 둘이서 오붓한 시간을 가졌다.
* * *
올림포스 정상.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올림포스에 왔고 올림포스를 봤는데, 이긴 건 어째서죠?"
"우리가 여기에 성공적으로 도착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승리는 확실하다는 거지."
나는 포세이돈과 둘이서 먼저 선행으로 올림포스 정찰에 나섰다.
다른 네 여동생은 키클롭스와 헤카톤케이레스들과 함께 진을 치고 진격 중이었고, 우리는 혹시나 크로노스가 우리의 행선지에 대한 첩보를 입수하고 움직일까봐 먼저 올림포스로 왔다.
올림포스.
이곳은 정말 높은 산이다.
농담으로 산 꼭대기가 하늘에 닿아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높았고, 산맥은 험준하여 지상에서 정상으로 오르기가 쉽지 않아보였다.
'인간들은 절대 오르지 못하겠네.'
티탄 신에게도 지상에서 정상까지 30분 정도 걸릴 법한 거리인데, 훗날 본격적으로 나타날 '지성체로서의 인간'이 감히 올림포스에 오를 수 있을까?
결코.
'문제는 크로노스의 티탄 부하들은 여기를 오를 수 있다는 건데.'
미래의 인간들보다 당장 눈앞의 티탄들이 더 걱정이다.
다행히 올림포스는 기본적인 자연 지형이 수비에 상당히 좋은 형세였다.
열 걸음에 산을 넘어올 수 있는 거대한 괴물이라도 나타나지 않는 한, 올림포스는 누구에게도 점령당하지 않으리라.
그리고 이대로 그냥 두지도 않는다.
"포세이돈. '그거' 가능해?"
"네. 물길이 이쪽으로 흐르고 있어서 충분히 가능해요."
포세이돈은 한 손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그러자 그녀의 손을 중심으로 수증기가 물줄기로 바뀌며 하나로 모여들었고, 손에는 청색의 삼지창이 생겨났다.
트리아이나.
나의 아스트라페와 마찬가지로 키클롭스 세 자매가 만들어준 삼지창은 바다를 다스리게 될 포세이돈의 상징이며 물을 다스리는 그녀의 힘을 제어해주는 강력한 무기다.
판타지로 치면 일종의 마법 스태프.
쏴아아.
트리아이나의 창끝에 각각 물방울이 모이기 시작했고, 각각의 창끝에서 흘러나온 물줄기는 포세이돈과 나를 중심으로 발밑에서 원을 그리며 흐르기 시작했다.
지상도 마찬가지.
올림포스 산을 중심으로 양 옆으로 흐르고 있던 강의 물줄기가 서서히 올림포스 산으로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주 작은 물줄기였지만 그 흐름은 점점 더 커지기 시작했고, 올림포스 산을 중심으로 원형을 그리기 시작했다.
"...다 됐어요. 시간이 지나면 다 완성될 거예요."
"고마워. 네가 이런 힘을 가지고 있어서 다행이야."
"저도 오빠에게 도움이 되어서 정말 기뻐요. 이거...해자라고 하셨죠?"
"그래."
나는 올림포스 산이 무주공산이라는 걸 깨닫자마자 바로 본래 생각했던 '계획'을 바로 실행에 옮겼다.
올림포스의 요새화!
그 첫번째 일환으로 가장 먼저 할 게 바로 '해자'다.
"...메티스 님은 정말 똑똑한 것 같아요."
"그렇지."
해자라는 개념이 아무리 고대부터 있었다고 해도, 여기 이 그리스 고대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인간이 인간을 상대로 이기기 위해 만들어진 비책이니, 산 주변에 흐르는 강 정도는 풀쩍 뛰어넘을 수 있는 티탄 신족에게는 별 효과가 없었다.
하지만 해자가 있다는 것 만으로도 큰 힘이 되며, 우리는 티탄 신족을 대처하기 위한 또다른 방안도 마련해뒀다.
"강을 넘어오면 반응하는 함정.... 정말, 메티스 님은 대단하네요."
"그렇지."
기승전 메티스.
나의 모든 현대 지식 치트는 메티스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다.
"저도 메티스 님만큼 도움이 되고 싶어요."
"너도 충분히 도움이 되고 있는데? 우리 중에서 나 다음으로 강한 게 너잖아."
"...티탄이 아니라, 여자로서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말이거든요?"
앗.
"오빠."
포세이돈은 내 옆에 서며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물었다.
"...제가 여기에 오빠가 말한 걸 만들었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제게 선물 하나를 주면 안 될까요?"
"선물?"
"네. 별 건 아니에요. 그냥...제게 '이름'을 선물해주셨으면 해요."
"이름?"
"네. 포세이돈은 조금...남자 이름같으니까."
그렇긴 하다.
'어떻게 여자 이름이 포세이돈.'
실제로 나도 포세이돈이라는 이름이 조금 좋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원전의 포세이돈, 그러니까 푸른색의 긴 머리칼이 뽀글거리는 근육질의 수염쟁이가 자꾸 생각나서 조금 거리감이 들기도 했다.
"아예 이름을 바꾸겠다는 거야?"
"아뇨. 포세이돈이라는 가진 신명을 바꿀 수는 없죠. 하지만...오빠랑 있을 때만은 다른 이름으로 불렸으면 해요."
"애칭같은 건가?"
"애칭...후후, 좋은 어감이네요. 그래서 제게 어떤 이름을 선물해주실 건가요?"
이름.
선물.
역시 그게 가장 좋을 것 같다.
"넵튠."
제우스에게 주피터라는 또다른 이름-로마 신화의 명칭이 있듯, 포세이돈에게도 넵튠이라는 이름이 있다.
엄밀히 따지면 넵투누스인가 뭔가 하는 이름이지만, 내게는 넵튠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하다.
"어때?"
"넵튠.... 여자 이름으로 포세이돈보다는 좋네요."
포세이돈, 아니 넵튠은 내 손을 꼭 잡으며 슬며시 웃었다.
"애들한테 연락은 넣어뒀어요. 지상에서 정상으로 올라올 때까지 시간 좀 걸리겠죠?"
"그렇지."
"그럼...."
쏴아아.
넵튠은 손에 쥔 트리아이나를 바닥에 꽂았다.
삼지창에서 푸른 물결이 흘러나오며 정상 위에 있는 작은 분지를 채우기 시작했다.
참방.
"...잠깐 쉴까요?"
넵튠은 물 위에 누웠다.
하얀 드레스는 물에 젖어 살결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그녀는 붉어진 얼굴로 나를 향해 슬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저, 지금 젖었어요. 오빠."
포세이돈과의 섹스.
'불가능.'
그럼 넵튠과의 섹스는?
'쌉가능.'
사소한 어감의 차이지만, 넵튠이라는 여자라고 생각하니 거부감이 사라졌다.
"여기서 해도 괜찮아?"
"여기라면 괜찮아요. 앞으로 제가 바다를 다스리게 된다면...이곳에 있는 샘으로 바로 넘어올 수 있으니까요."
넵튠은 나를 향해 두 팔을 뻗었다.
"어떤 바다에 있든 오빠가 부른다면 올림포스에 있는 이 샘으로 바로 넘어올게요. 제 처음이 담긴...이 샘으로."
"......."
참방.
나는 하늘이 탁 트인 올림포스 정상에서 넵튠의 위로 몸을 겹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