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우스 엑스 마키나-49화 (49/235)

EP.49 개전, 티타노마키아 (5) 하라는 전쟁은 안 하고

넵튠과의 정사...아니 정찰 이후.

해자 너머에서 대기 중이던 하데스와 동생들, 그리고 지원자들이 산 위로 올라왔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해야하는가?

"진지공사, 시작!"

헤레스들이 지형지물을 활용해 요새를 만들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이곳 올림포스는 크로노스를 상대로 향후 10년은 거뜬히 버틸 수 있는 곳이여야 하며, 설령 산이 포위당하더라도 그에 따른 대처가 이루어져야 하는 곳이다.

훗날 신전이 될 걸 생각하면 조경이나 다양한 방면에서 아쉬움이 들기도 하지만, 일단 산을 깎아 우리가 우리의 몸을 지키기 편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하여 헤레스들이 본격적인 올림포스 개축 작업에 나선 사이.

나는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메티스를 데리고 산 정상으로 올라왔다.

"좋다...."

주변 경치에 환호성을 내뱉은 그녀는 금방 산의 이상성을 느꼈다.

"바다보다는 덜하지만, 그래도 이런 곳도 보기 되게 좋네."

메티스는 이렇게 단 둘이 있을 때는 상당히 나를 편하게 대했다.

다른 이들이 앞에 있을 때는 내게 존칭을 섞거나 격식을 차렸지만, 이렇게 '부부'로서 함께 있을 때는 상당히 편하게 나를 대했다.

"정말 좋은 곳이야.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어."

"뭔데."

"이렇게 높은 산에 무슨 샘이 있는 거지?"

산 정상에 샘이 있더라.

메티스의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리라.

"포세이돈이 만든 샘이야. 산의 독기를 빼내고 있는 중이니까 당분간 마시면 안 돼."

"산의 독기? 그런 것도 있어?"

"어."

"...흐응."

메티스는 샘물을 보며 눈을 흘겼다.

"물에다가 뭐 이상한 거 한 거 아니야?"

"맞아. 사실은 저기다가 한 발 쌌어."

"...지렸다고?"

"어. 하얗게 물들였지."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메티스는 다소 황당하다는 듯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지만, 나는 할 말이 많았다.

"탁탁탁 했다는 거야?"

"앞으로 이 산이 나의 근거지가 될 거고 우리의 집이 될 거잖아? 그러니까 이 올림포스 산이 우리의 터전으로써 안전하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정액을 뿌렸지."

저기 남쪽 이집트에서는 파라오가 나일 강에 자위를 해서 강의 범람을 진정시켰다고 하더라.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인디언식 기우제.'

될 때까지 하면 뭔들 이루어지지 못하겠는가.

"내가 앞으로 이곳에서 평생을 지내게 될테니, 이곳에 한 발 빼면서 제발 우리를 보호해달라고 간절하게 청하는 거야."

임신할 때까지 안에 박고 싸고 하는 제우스식 임신 섹스와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거야?"

"딱히 없기는 해. 하지만 그것 자체로도 의미를 가지는 거야."

"지금 아무 소리나 하려고 하니까 힘들지? 그냥 여기서 누구랑 섹스를 한 거 아니야? 그 사이에?"

뜨끔.

"어디보자. ...포세이돈이 안 보이네. 이유는 뭘까?"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노려보는 메티스는 입꼬리를 비틀며 내 옆구리를 찔렀다.

"했네, 했어. 맞지?"

"아닌데? 포세이돈이랑 안 했는데?"

"그럴 리가. 너 지금 자지가 가라앉아있잖아. 넵튠."

포세이돈, 그러니까 넵튠은 지금 첫 사정 이후 샘물 아래에서 자신의 흔적을 지우며 정화 작업에 한창이었다.

첫 사정을 받은 이후 부끄러워서 물속에 잠긴 셈이었지만, 그녀는 아무래도 밖으로 당분간 나오지 못할 것 같았다.

"...누구야, 또 그건. 어떤 녀석이야? 여기 산에 살던 님프라도 돼? 내가 모르는 이름인데. 그렇다고 여기에 누가 살던 것 같지도 않고. 사실대로 말해. 님프만 아니면 화 안 내."

"......섹스네임."

나는 메티스에게 몰래 사실을 전했다.

님프만 아니면 된다고?

과연 그럴까?

"섹스네임이라니, 그게 뭐야?"

"둘이서만 있을 때 부르는 이름이야. 애칭이지."

울,,,애긔,,,같은 느낌이랄까.

헤어지고 나서 보면 우리 쪼꼬미니 뭐니 한 게 지랄맞아보이지만, 그래도 그걸 막상 할 때는 전혀 그런 게 없었다.

오히려 더 했지.

"...그러니까 포세이돈은 너무 이름이 남자같아서 여자 이름으로 하나 붙여줬다는 거야?"

"그런 셈이지."

"부러운데. 자기한테 애칭도 받고 말이야. 섹스네임이라니...생각보다 끌리는 걸."

메티스는 샘물을 부럽다는 듯 쳐다보며 입맛을 다셨다.

"확실히 포세이돈보다는 넵튠 쪽이 더 여자같고 좋네. 본인도 좋아할 것 같고. 나는 뭐 없어?"

메티스는 눈을 반짝이며 내 앞에 섰다.

"나도 섹스할 때 뭔가 특별한 이름으로 불렸으면 좋겠는데."

"뭐?"

"그렇잖아. 어머니 만나고와서 알겠지만, 내 어머니랑 나랑 한 글자 차이잖아. 테티스, 메티스."

안에 쌀게, 테티스.

탈룰라하기 딱 좋은 이름이기는 하다.

"나는 너를 특별한 이름으로 부르는데, 나도 그런 이름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거야."

"내가 특별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고?"

"그럼. 유피테르. 앞으로 모든 사람들이 '제우스'라는 이름으로 너를 칭송하게 될텐데, 유피테르라는 이름을 아는 건 아주 극소수에 불과하잖아?"

"...그렇긴 하지."

순수하게 내가 스스로를 '유피테르'라고 처음 소개했던 여자는 메티스가 유일하다.

내 아명이자 이명이 유피테르라는 걸 아는 사람은 제법 되기는 해도, 제우스 인 걸 모르고 만난 여자는 메티스가 처음이었다.

...사실 얼굴을 본 순간부터 내가 제우스, 그러니까 레아의 아들이라는 건 알았겠지만.

"내가 너를 유피테르라고 부르는 것처럼, 나도 나만의 이름을 받았으면 좋겠어. 어때? 뭔가 애칭같은 거 있어? 뭐...메티라거나?"

"글쎄다. 나는 메티스라는 이름이 너한테 어울리고 예뻐서 그것 자체로 좋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식으로 넘어가시겠다?"

메티스는 볼을 부풀리며 불만을 드러냈다.

"흥. 뭔가 좋은 이름이나 호칭 아니면 유피테르라고 안 불러줄 거야. 빨리 생각해봐. 나만을 위해서 네가 내게 줄 수 있는 호칭."

"있긴 한데, 들으면 조금 화낼 지도 모른다?"

"듣고 나서 화낼테니까 한 번 말해봐."

"아테나 엄마."

메티스에게 가장 어울리는 호칭이 아닐까.

"...아테나가 누군데?"

"우리 딸."

"세상에."

메티스는 굳어버린 채 한참동안 나를 바라봤다.

"아직 임신도 안 했는데 딸 이름부터 생각한 거야?"

"그래서 싫어?"

"......너무 예쁜 이름이라서 좋아. 아테나 엄마.... 후후."

메티스는 배를 만지작거리며 베시시 웃었다.

"아테나 아빠. 아테나가 빨리 아빠 만나고 싶다고 하는데요?"

"나도 빨리 만나고 싶다. ...어우 씨, 놀래라."

부글부글.

물속에서 넵튠이 갓파처럼 눈까지만 밖으로 내민 채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눈 아래에서 거품이 이는 게 분명 불만을 궁시렁대는 게 틀림없었다.

"넵튠도 누구 엄마 소리 듣고 싶은 모양인데?"

"......."

포세이돈의 자식 중에 유명한 여자가...누구 있더라.

* * *

진지를 구축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바로 보급이다.

식량은 우리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다.

티탄 신이 인간에 비해 훨씬 우월한 종족인 건 사실이나, 인간이 티탄 신족을 닮은 만큼 티탄 신들도 인간들이 가진 모습을 가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식욕과 성욕.

성욕은 크로노스를 보면 알 수 있듯이, 티탄 신족은 성에 대한 욕구가 넘쳐난다.

그리고 식욕은 티탄 신마다 다르지만, 신들은 먹고 마시기를 즐긴다.

따로 인간이나 짐승들처럼 배변을 하는 것도 아니건만, 신들은 술을 마시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걸 즐긴다.

신들의 음료를 우리는 넥타르라고 부르며, 음식을 암브로시아라고 부른다.

살아남기 위해 먹는다기 보다는 음식의 맛을 즐기기 위해 먹는다.

올림포스는 그런 의미에서 식욕을 해결하기에 제법 좋은 곳이다.

"와, 과일이 잔뜩 있어요!"

데메테르는 사방에 가득한 과일들을 보며 숲을 춤추듯 걸었다.

"오빠, 여기 한 번 봐봐요! 이거면 저희 얼마나 지낼 수 있을까요?"

"최소한...1년?"

"1년이라뇨. 10년은 넘게 지낼 수 있죠. 잘 보셔요."

데메테르는 우아한 손놀림으로 나무를 쓸었다.

"잘 자라렴, 아가야."

데메테르의 손길이 스친 나무는 왠지 모르게 더 녹색이 짙어지고 나무 껍질도 윤기가 나는 듯 했다.

톡.

내 손 위에 마침 사과 한 개가 툭 떨어졌다.

마치 나무가 나를 위해 하나 준 것처럼, 낙과라고 하기에는 미묘한 속도로 떨어져 내 손에 안착했다.

아삭.

"...맛있네."

사과는 정말 달콤했다.

이것이 그 암브로시아가 아닐까싶을 정도로 달콤했다.

전생에서는 잘 먹지 않았던 과일이 이렇게나 맛있었다니.

전생 싹다 손해를 본 걸까, 아니면 이곳의 과일이 특별한 걸까.

"오빠, 여기 좀 보실래요?"

데메테르는 나무 위를 가리켰다.

엥엥거리는 소리가 제법 등허리에 소름이 돋는 소리였고, 나는 다소 손쉽게 다가가기 어려웠다.

"풋, 오빠. 벌이 무서우세요?"

"무섭다기보다는 경계를 하는 거지."

데메테르가 가리킨 곳에는 벌집이 있었다.

그곳에서 나온 수많은 꿀벌들은 우리를 상대로 경계 태세를 보이는 듯 했으나....

"얘들아, 실례할게."

데메테르가 나무를 건드린 순간, 꿀벌들은 일제히 벌집에서 빠져나와 어딘가로 향했다.

곧 벌집에서 애벌레들이 빠져나와 나무 줄기를 갉아먹기 시작했고, 벌집은 내 손 위에 툭 떨어졌다.

"....이게 도대체 뭐지?"

"벌들 조차도 이 산의 주인을 반기는 거죠?"

"데메테르 네가 어떻게 한 게 아니고?"

"저는 그냥 협조만 구했을 뿐이랍니다?"

데메테르는 검지로 입술을 붙이며 눈을 찡긋였다.

"당장은 먹을 게 마땅찮기는 하지만...그래도 동굴 안에서 지내던 때랑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풍족하네요."

"그러게. 정말.... 다행이야."

나는 데메테르와 함께 거대한 나무 앞에 섰다.

다른 나무보다 몇 배는 더 두껍고 큰 나무를 등지고 서며, 우리는 잠시 그늘에서 휴식을 취했다.

"...그래서 메티스 언니한테는 아테나 엄마라고 했다면서요?"

"윽. 갑자기 그 얘기가 왜 나와?"

"궁금해서요. ...저는 어떻게 되는 거죠?"

데메테르는 나를 나무에 밀친 채, 가슴으로 나를 압박하며 나를 올려다봤다.

"이곳이면 농사가 정말 잘 될 것 같지 않아요?"

"농사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모른 척 하시긴. 자식농사 말이예요, 자식농사."

"......."

데메테르.

훗날 농경의 여신이 될 여자.

그리고 내 기억이 맞다면....

"아이 이름은, 페르세포네가 좋겠어요."

나는 데메테르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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