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3 신화의 종말 (1)
"끄어억, 잘 마셨다."
금발의 중년, 태양신 헬리오스는 넥타르를 벌컥벌컥 마시며 침대에 발라당 누웠다.
"올 때 암브로시아."
"뭐? 오빠가 챙겨놔."
막 황금마차에 올라 밤의 장막을 펼치려던 셀레네는 친오빠 헬리오스의 말에 화가 치밀었다.
"지금 겨울이라서 내가 더 길게 일하잖아. 오빠가 더 많이 쉬는데, 그 정도도 못해?"
"그 정도도 못해? 에베베."
"......."
셀레네는 헬리오스가 몹시 한심스러웠다.
"나는 분명히 말했다. 안 가져오기만 해봐. 아주 확 그냥."
헬리오스는 주먹을 들어올리며 셀레네를 위협했다. 셀레네는 그 행동이 너무 같잖았지만, 울분을 삼키고 황금마차에 올랐다.
결국 자신들이 싸우면 피해를 보는 건 세상 사람들이다.
셀레네는 제자리에 누워 배를 손으로 긁는 헬리오스를 향해 침이라도 뱉고 싶었다.
'제우스 님은 저러지 않겠지.'
헬리오스는 티탄 신들의 전형이었다.
하지만 제우스는 다르다.
태생부터가 꽃미남에 신사적인 그는 섹스조차도 남달랐다.
생전 처음 남자와 해보는 자신도, 이미 기혼에 남편까지 있던 에오스도 제우스의 섹스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자에 대한 사랑과 배려가 느껴지는 섹스.
"아…."
몸이 기억을 떠올리니 절로 아랫배가 쑤시다.
셀레네는 최대한 빨리 황금마차를 움직이며 밤하늘을 펼쳤다.
평소보다도 빨리 밤이 찾아왔지만, 셀레네는 그걸 따질 겨를이 없었다.
히히힝.
황금마차를 모는 유니콘들은 올림포스 산에 도착하여 천천히 착지했다.
"금방 다녀올게."
히힝.
유니콘들은 다 안다는 눈빛으로 셀레네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눈빛은 마치 신혼부부가 꽁냥대는 걸 멀리서 지켜보는 나이 든 어른과도 같았다.
그렇게 유니콘들의 응원 아닌 응원을 받은 셀레네는 조심스레 제우스의 거처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욱…."
안쪽으로 다가가자, 진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남자와 여자의 살내음이 뒤섞인 냄새는 동굴 안쪽에서 풍겨왔고, 셀레네는 떨리는 마음으로 안으로 다가갔다.
"힉…."
그곳에는 수많은 여자들이 기절한 채 사방에 누워있었다.
침대에 대자로 뻗은 이, 옆으로 엎어진 이, 덩굴 줄기 위에 누워있는 이 등 정말 다양했다.
그리고 그들의 면면이 전부 익숙하다는 것에 셀레네는 등허리에 소름이 돋았다.
레아, 테미스, 메티스, 그리고 레아의 다섯 딸.
몇 명과 했는지 헤아리다가 기가 찰 정도로 많은 이들이 기절했다.
그리고 그들을 기절시킨 장본인은 혼자서 벽에 등을 기댄 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뭐지?"
"아, 제우스...님…."
"너도 섹스를 하러 온 건가?"
제우스.
그는 자신의 허벅지에 여자를 무릎베개하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한쪽 무릎을 당겨 팔을 적당히 걸친 채, 휴식 중인 그의 모습에 셀레네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 나, 나중에...."
"하고 싶으면 해도 된다. 대신, 지금은 내가 직접 하지는 못하니...."
제우스는 붉은 머리의 여인을 살포시 옆으로 밀며, 자신의 자지를 손가락으로 한 번 튕겼다.
"올라타라. 내 특별히 기승위를 허락해주지."
"......."
에피메테우스.
제우스의 위에 올라탄 채 스스로 허리를 흔들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라, 셀레네는 괜히 얼굴이 붉어졌다.
그러나.
"실례하옵니다...."
셀레네는 천천히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비록 자신보다 한참 어린 동생이지만, 오빠인 헬리오스보다 몇 배는 더 잘 생기고 여자에 대한 배려가 가득한 남자.
"아, 아아...!"
셀레네는 스스로 제우스에게 안겼다.
밤하늘의 달이 서서히 잠기는 것으로, 세계에는 어두운 밤의 장막이 드리웠다.
* * *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른다.
영생을 사는 티탄도 전성기가 오고 시간이 오래 지나면 쇠락하기 마련이고, 전성기가 찾아오기 전의 젊은이도 나이를 먹고 점점 강해지기 마련.
올림포스에 자리잡은 제우스 세력은 나날이 강해졌다.
시작은 스틱스였다.
남편 팔라스의 강권에 따라 스틱스는 자식들을 이끌고 올림포스를 공격했지만, 제우스에게 오히려 범해지게 되었다.
스틱스는 자식들의 안전을 위해 제우스에게 안겼고, 자식들은 어머니 스틱스를 보호하기 위해 제우스에게 충성을 맹세하게 되었다.
그 다음으로는 달의 여신과 새벽의 여신이었다.
셀레네, 에오스가 낮마다 어디론가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헬리오스는 여동생들이 어느 순간 제우스의 아래에 깔려서 앙앙거리는 것을 목격했고, 낮이면 영혼없이 태양마차를 몰았다가 밤이면 혼자서 쓸쓸히 폐인처럼 잠을 자기를 반복했다.
그 다음으로는 티타니데스 중 한 명, 테미스였다.
여동생 레아를 돕기 위해 올림포스에 왔던 그녀는 제우스를 만나자마자 바로 저항하지 못하고 범해졌다.
그 외에도 수많은 티탄 여신들이 제우스에게 범해졌다.
제우스는 자신을 찾아오는 여자들을 한 명도 남김없이 범했고, 여자 신들은 제우스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올림포스를 공격하러 들어갔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제우스에게 범해졌다.
여동생도, 누나도, 아내도, 처녀도, 남편이 있는 유부녀도, 노처녀도, 비처녀도 모두 제우스에게 범해졌다.
유일하게 범해지지 않은 이들이 있다면, 상대적으로 아름다움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는 노파의 모습을 한 여신들이었다.
일부 여신들은 제우스가 노파를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을 파악하고 스스로 노파로 변장하기도 했다.
결국 크로노스 휘하의 오르튀스 산에는 남녀노소 중 '여'가 빠지게 되었고, 당연히 남자들은 제우스로부터 여자들을 구하기 위해 무기를 들고 찾아왔다.
-제우스 님을 괴롭히지마!
제우스에게 범해진 여자들은 머리가 어떻게 되어버렸다.
별 희안한 옷을 입고도 제우스를 지키고자 무기를 들었고, 남자들은 제우스도 아닌 제우스에게 굴복한 여자들과 싸우게 되었다.
싸워도 싸워도 끝이 없는 상황.
티탄도 성욕은 있다.
특히 크로노스 휘하의 남자 신들은 성욕으로 똘똘 뭉친 이들이었다.
그런데 주변에는 남자와 노파밖에 없으니, 자연히 싸울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올림포스의 제우스는 지나가는 여자들을 아무나 붙잡고 박고 다닌다던데, 우리는 도대체 여기서 무엇을 하는 것인가?
-어쩌면 올림포스에 가면 섹스 시켜주지 않을까?
-그렇게 수많은 여신들을 따먹었는데, 한 명 정도는 나한테 주지 않을까?
-자기가 모두랑 결혼할 것도 아닌데, 그래도 나 하나 정도는 괜찮지!
그리하여.
크로노스의 세력은 점점 쇠락하기 시작했다.
남자들이 하나 둘 올림포스에 투항하는 것을 시작으로, 크로노스의 세력은 와해되기 시작했다.
* * *
"분양? 어림도 없지. 타르타로스 직행."
"아아아악!!"
나는 음습한 욕망을 가지고 투항한 남자 티탄을 향해 바로 엄지를 내렸다.
철컥, 철컥.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헤카톤케이레스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남자의 몸에 구속구를 채웠다.
헤카톤케이레스들이 찬 '어디서든 제우스'와는 다른, 상대를 구속하고 결코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 진정한 의미의 구속구다.
"이 개같은 자식! 한 명, 한 명 정도는 넘겨줘도 되잖아!!"
"싫은데? 올림포스에 있는 여신들은 모두 내 여자다. 그리고 당사자들이 싫다는데 어쩔 거냐?"
나는 투항한 남자의 아내였던 여신을 내 옆에 안았다.
"어찌할테냐?"
"몰라요, 저런 실자지. 저는 이것만 있으면 돼요."
여신은 자신의 아래에 채워진 정조대를 만지며 진심으로 활짝 웃었다.
"제우스 님의 자지...이것만 있으면 저는 하루 하루가 행복하답니다."
"여보! 그 자지는 가짜야! 강철 쪼가리에 불과하다고!"
"닥쳐! 질의 절반도 들어오지 않는 주제에! 제우스 님은 자궁구를 팡팡해주셨어!"
"아, 아아...!!"
티탄은 전의가 꺾였다.
나는 놈에게 나락의 절망을 보여주기 위해, 여신의 정조대에 손가락을 살짝 튕겼다.
파지직.
"아아앙...!!"
여신은 단숨에 고개를 뒤로 젖히며 가버렸다.
가버리면서 뿜어낸 조수가 정조대 옆으로 흘러 아래로 우수수 떨어졌고, 티탄은 그걸 보며 더욱 절망에 빠졌다.
"저런, 쯧쯧."
놈은 발기했다.
전 아내가 내 손짓 한 번만으로 가버리는 것을 보면서도 발기한 것이다.
"자기 아내가 범해지는데 주먹을 쥐기는 커녕 딸을 잡다니. 용서할 수 없다. 타르타로스에 처박아라."
"아, 아아...."
끼아아악.
바닥에서 마법진 같은 것이 생겨났다.
지옥으로부터 열린 문은 단숨에 남자를 집어삼켰다.
"...풋."
방금 전까지 내 손길에 가버리던 여자는 금방 옷매무새를 단정히 정돈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너무나 속 시원하다는 얼굴로 웃었고, 남자가 지옥으로 떨어진 것에 안도하고 있었다.
"...정말로 괜찮나?"
"네, 감사합니다. 제우스 님."
딸칵.
여신은 정조대를 풀었다.
남자 티탄의 예상과 달리, 정조대 안은 내 물건 모양 딜도가 부착되지 않은 순수한 강철 팬티였다.
모조품이라는 얘기.
나는 이 여자를 안은 적이 없다.
섹스를 한 적이 없다.
단지 남자를 마지막까지 시험하기 위해, 이 여자의 복수극에 어울려줬을 뿐.
"저 자는 폭력을 일삼았죠. 그러니 더 큰 힘의 앞에 굴복하는 건 당연해요. 심지어 님프랑 바람까지 피웠으니, 앞으로 평생을 지옥에서 반성하며 살기를 바랄 뿐입니다."
여신은 다소곳한 차림으로-노팬티로-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저, 아스테리아의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페르세스 놈을 지옥에 처박아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래. 앞으로는 어떻게 할테냐?"
"딸과 함께 어디 조용한 섬에서 둘이 살고자 합니다."
아스테리아는 남자에게 너무 큰 상처를 받은 여자였다.
남편, 그러니까 방금 지옥에 떨어진 페르세스 놈에게 크로노스가 레아에게 했던 것과 같은 고통을 받아왔다.
그래서 내가 범했다.
섹스는 한 적 없지만, 나는 그녀의 복수를 위해 내가 그녀를 범한 것으로 꾸몄다.
"그...한 가지 간청이 있습니다."
"무엇이냐?"
"제우스 님은 스스로의 오명을 뒤집어 쓰면서까지...저희를 도와주셨습니다. 이곳은 여자들에게 있어 강간당하는 곳이라고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강간마들로부터 몸을 피해 안식을 영유하는 곳이었죠."
"음."
조금 쑥쓰럽기는 하지만, 사실이다.
"언젠가 제 딸, 헤카테가 올림포스를 위해 봉사할 것입니다. 그 때까지, 저는 얌전히 섬에서 남은 여생을 보내겠습니다."
"그래, 알겠다."
"그리고...가기 전에...."
아스테리아는 주변의 눈치를 보며 내게 무릎을 꿇었다.
"한 번만...안아주시면 안되겠습니까? 다른 아내분들에게 했던 것처럼."
"......뭐, 그 정도야."
찌걱, 찌걱.
그 날.
올림포스에는 영혼의 치유를 받은 여신의 울음소리가 울려퍼졌다.
그 역사는 무려 10년이나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