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9 정실결전 (4) 누가 네 뺨을 때리거든
사람의 환심을 사는 가장 빠른 방법이 무엇인가?
바로 선물이다.
타인이 마음에 들어하는 물건을 제공함으로써 호감도를 끌어내는 것.
아무리 작은 선물이라도 정성이 들어있다면, 받은 사람은 최소한 고맙다는 인사라도 하게 된다.
그게 선물의 힘이다.
그런데 그게 상당히 고가이거나, 상대방이 진심으로 마음에 들어하는 물건이라면?
-나를 위해 이런 걸 준비하다니, 크흑, 감동이야...!
상대의 호감을 극상으로 끌어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의 정실이 되고 싶은 자는 내일까지 이 자리에 모이거라.
-그리고 나를 위한 선물을 하나씩 준비하거라.
-어떤 것이라도 좋다.
-이 이상은 힌트가 될 수 있으니 말하지 않겠다. 모든 이들에게 기회는 공평하게 한 번씩, 하나의 선물을 가져와야 할 것이다.
-그 어떤 것이라도 좋다.
-가장 마음에 드는 선물을 준 자를 나는 정실부인으로 맞이할 것이다.
제우스는 여신들에게 선물을 하나씩 가져오라고 말했다.
자신을 꼬셔보라고 엄포를 놓은 것처럼, 그는 주신으로서 엄청난 폭거를 저질렀다.
-선물...정말 무엇이든 괜찮습니까?
-물론. 무엇을 생각하든 나를 위한 것이라면 뭐든지 된다.
그는 선물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딱히 어떤 주제를 정하지도 않았고, 물건을 지정하지도 않았고, 그저 자신을 위한 선물을 준비하라고 말했다.
- 제우스 님이 좋아하실만한 게 뭐가 있을까?
- 섹스?
- 근데 그건 매일매일 하시잖아.
- 하루에 최소 3명 이상이랑 삼시세끼 밥 대신 여신을 먹는데 섹스가 흥을 끌 수 있겠어? 제우스 님이 좋아하시는 거, 뭐 들은 거 없어?
- 뭘 좋아하는지 어떻게 알아?! 맨날 자지에 기절하기 일쑤인데!
여신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말았다.
- 앗, 이건 설마...!
- 누가 가장 제우스 님을 잘 파악하고 있는가 확인하기 위한 제우스 님의 시험...!
그리고 이 선물이라는 것이 곧 제우스의 시험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올림포스의 안주인이 되는 자는 곧 제우스의 부인이라는 것과 일맥상통.
여신들은 지금까지 올림포스 최고의 여신이라는 자리에 연연하느라 중요한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제우스가 자기 아내를 어떻게 여기는지.
여신들은 제우스라는 존재의 중요성을 상기했다.
-인과관계가 반대였어...!
-제우스의 아내이기에 진정으로 올림포스에서 권위를 가질 수 있지.
-올림포스 최고의 여신이라서 제우스 님의 아내가 된다? 아니야. 제우스 님이 선택한 여자가 올림포스 최고의 여자라는 얘기야...!!
제우스는 올림포스 최고의 여신이라는 지위보다, 자신의 아내라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다!
-아아, 저희가 어리석었어요! 최고신의 아내라는 것은 곧 최고의 여신이라는 것과 똑같은 말인데!
-님프인데도 메티스가 그렇게 힘을 가졌던 이유가 뭐겠어요? 나이도 많은 테미스가 율법을 지키는 존재로서 권위를 가지게 된 이유가 뭐겠어요? 다 제우스 님의 아내라서 그런 거라고요.
-제우스 님의 자식은 누구나 낳을 수 있다. 하지만 제우스 님의 아내 자리는 한정적이다.
그리고 여신으로서 본격적으로 자신의 매력을 증명하기 위해, 제우스를 위한 선물을 찾아나섰다.
문제는 그 누구도 감히 제우스 본인에게 물어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것.
제우스 본인이 자신을 위한 선물을 가져오라고 했는데, 어찌 당사자에게 직접 물어볼 수 있겠는가?
그래서 여신들은 각자 꾀를 내기 시작했다.
먼저 첫번째 그룹.
"위대한 주신의 권위를 위해서는 최고의 물건이 필요해!"
그들은 물질을 중요시했다.
자신이 이전에 최고라고 생각하던, 주변인들이 모두 바라마지 않는 물건들을 선물로 여겨 예쁘게 포장했다.
거미의 실로 엮은 옷이라거나, 100년을 숙성한 넥타르라거나, 백년에 한 번 핀다는 아름다운 꽃이라거나, 올림포스 인근에서 가장 덩치가 크고 사납다고 알려진 사자라거나.
불과 하루 사이에 그들은 엄청난 보물들을 모았다.
자신이 가장 가치있다고 생각하고, 다들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물건을 제우스에게 헌사한다.
한 마디로, '보물'을 바친다.
그리고 다음.
두번째 그룹은 그래도 정보를 조금이라도 모으고자 했다.
"설마 제우스 님께서 값비싼 물건을가져오라고 이렇게 하셨겠어?"
"제우스 님은 우리의 정성을 보고자 하는 거야!"
"왕관과 보석 같은 건 개나 소나 다 가져올 거라고...! 나만의 특별한 선물이 필요해!"
"제우스 님이 뭘 좋아하는 지 알아보려면 역시 주변인들에게 물어봐야지!"
여신들은 그래도 상대적으로 제우스와 가까이 있던 이들을 찾아나섰다.
"넵튠님!"
"하데스님!"
"레아님!"
"헤라님...히이익!! 죄송해요! 잘못찾아왔어요!"
여신들은 제우스의 어머니와 동생들을 찾았다.
몇몇 이들은 '공정한 경쟁'을 운운하며 정실결전에 참가한 여신들에게 정보를 달라고 하기도 했지만, 당사자들의 강력한 힘 앞에 겁을 먹고 물러나야만 했다.
"오빠가 좋아할만한 거? 음...좋은 무기? 크로노스를 쓰러뜨리기 위해서는 항상 좋은 장비가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지."
"선물로 줄만한 게...딱히 생각나는 건 없군요. 최강의 무구는 가지고 있고, 이미 올림포스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데."
넵튠과 하데스는 여신들에게 그다지 끌리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겉은 여성인데도 무구나 갑옷 등을 이야기하는 그들의 말에 여신들은 공감하기도 했다.
실제로 티탄 남자들은 좋은 무구나 갑옷을 받으면 자랑하고 다녔으니까!
키클롭스 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장인으로 유명하던 이의 갑옷을 받으면 그걸 1년 내내 입고 다닐 정도로 티탄 남자들은 무구를 좋아했다.
"남자는 다 똑같아. 어차피 칼싸움 하고 그런 거 주면 다 좋아한다구."
제우스 또한 티탄 남자다.
그러므로 그 또한 아주 멋진 무기와 갑옷을 좋아하리라.
그렇게, 모두들 저마다 자신이 생각하는 보물들을 가지고 결전의 장소로 향했다.
선물 공개의 날.
"제우스 님, 저는 강의 님프로부터 얻은 만년 숙성한 넥타르를...."
"제가 가져온 건 우라노스 님이 흘린 피로부터 만들어졌다고 하는 광석으로 제작한 검이랍니다!"
"제 딸의 처녀를 선물로 드리겠어요!"
여신들은 제우스에게 온갖 선물 공세를 퍼부었다.
정작 제우스는 고맙다, 감사하다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여신들은 서로의 선물을 비교하며 제우스의 반응을 유심히 살폈다.
"제우스 님.... 보석은 관심없어 보이지?"
"오히려 데메테르 님께서 가져온 꽃 한 송이에 더 좋아하셨어.... 어머, 멋진 남자...!"
"헤스티아 님이 선물한 볼 뽀뽀 봤어? 아주 입꼬리가 귀에 걸리셨더라. 으으, 내가 그렇게 했어야 했는데...."
제우스는 물질보다 정성을 더 추구하는 존재였다!
"내 보석은 쓰레기였어...! 볼 뽀뽀 하나보다 못한 수준이었다니?"
"선물을 준비 못했다고 보지를 준비했다는 건 또 뭔데. 제우스 님은 또 그걸 보고 좋아라하면서 섹스하셨어. 도대체...저 분은 뭐지?"
"보통 티탄과는 다른 분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여신들의 혼란이 가중되는 가운데.
드디어.
마지막 차례.
헤라가 모두의 앞에 섰다.
제우스는 아무것도 들고 오지 않은 헤라를 보며 눈을 빛냈다.
"헤라, 너는 왜 선물이 없지?"
"내가 왜 제우스 님께 선물을 드려야하죠?"
헤라의 말에 공기가 얼어붙었다.
하지만 헤라는 너무나도 도도하고 당당한 얼굴로 서있었다.
"뭐라고?"
"정실부인이 되면 세상에서 가장 가치있고 훌륭한 선물을 자동으로 주는 셈인데, 뭐하러 선물을 준비하겠어요?"
"무슨 말이더냐?"
"간단해요. 제우스 님을 위한 선물은 바로...."
헤라는 엄지로 자기 자신을 가리켰다.
"저예요."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여신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저래도 될까?
너무 동생이라고 믿고 나대는 거 아냐?
저러다 밉보이면 어떻게 하려고?
전략을 잘못 세운 것 같은데?
제우스 님 표정 안좋아지는 것 좀 봐. 쌤통이다.
자기 자신이 선물.
헤라의 말에 제우스는 한참 입을 열지 않았다.
"그렇군. 헤라라면 그 정도는 해야지. 그러니까-"
"정실부인으로 정하면 그 때 불러요."
헤라는 제우스의 말을 끊고 뒤돌아섰다.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떠나려했다.
"헤라!"
떠나려했다.
제우스는 헤라를 막아세웠고, 헤라는 짜증을 내며 옆으로 비켜 지나가려했다.
"어딜 가?"
"방이요."
"선물 주고 가야지."
"하, 맨입으로 받으려고 했어요? 저라는 여신을?"
헤라는 고개를 도도하게 들어올리며 제우스를 비웃었다.
"저는 제 남편에게만 선물을 줄 거예요. 세상 그 무엇보다도 가장 가치있는 물건을. 제우스 님이 제 오빠지, 남편은 아직 아니잖아요? 뭐, 남편이 되면 생각 좀 바꿀 수 있고."
"...너."
제우스는 헤라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에-
"맘대로 만지지 마."
짜-악!
헤라는 제우스의 뺨을 날렸다.
"다른 여자 만진 손으로, 날 만지지 마."
헤라는 그 말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
제우스는 한참 동안 아무 말 없이 제자리에 서있었다.
"저, 저저...!"
"제우스 님! 아무리 헤라라고 해도 이건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짓입니다! 당장...!"
"......와, 씨발."
제우스는 어이가 없다는 듯 욕지기를 내뱉었다.
"멋있어. 섹시해. 귀여워."
"...네?"
"하...이런 젠장. 그러면 안 되는데."
사락.
제우스는 손으로 이마를 쓸었다.
앞머리를 까며 화를 삭이는 모습에 여신들은 다리가 살짝 저렸다.
"그래. 여자가 튕기는 맛이 있어야지."
할짝.
"날 이렇게 대한 건 네가 처음이다...헤라."
앗.
모든 여신들이 제우스의 말을 듣고 경악했다.
틈새시장.
그 어떤 여신도 제우스의 구애에 튕긴 적이 없었고, 그 어떤 여신도 제우스의 구애를 거부한 적이 없었다.
"감히 나를 거부해? 못 참지."
헤라의 전략은 성공적으로 제우스에게 먹혀들었다.
* * *
"오빠, 죄송해요! 때려서 죄송해요! 안 아팠어요?! 아으, 어떡해...! 너무 세게 때린 거 아니죠?! 아프면 그 자리에서 제 뺨을 후려치셨어야죠!! 아으, 내가 미친년이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거기서...!! 오빠, 화나신 만큼 저를 때리셔도 좋아요!!"
"너 평소에 나한테 반말 하다가 왜 존댓말이냐."
"아으...죄송, 그, 미...미안해.... 그...많이 아팠지?"
"그래. 그래야 헤라지."
다 짜고 치는 연기다.
대본은 아테나.
주연배우, 제우스와 헤라.
"근데 선물은 좀 줬으면 좋겠는데."
"어, 어떻게 하면 좋아? 보지 벌려?"
"...아픈 곳에 볼 뽀뽀."
"아, 아으...."
쪽.
헤라는 머리칼보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내 볼에 뽀뽀를 했다.
"그럼 나는 자궁에 귀두로 뽀뽀해야지."
나, 제우스.
뺨을 맞으면 보지를 때리는 남자다.
쯔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