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81 강간마 제우스 (1)
헤라의 정실 선언 이후.
무려 1년이 지났다.
갑자기 1년이 지났다고 하면 이상하지만, 이 1년 사이에 나는 정말 지옥같은 시간을 보냈다.
육아, 육아, 육아
나란 새끼, 병신 새끼.
호라이와 모이라이들을 키우면서 메티스와 테미스가 정말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고, 아버지의 역할이 참으로 힘들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더 깨닫게 되었다.
나의 딸들.
정말 많은 딸들이 태어났다.
아테나 이후로 아스트라이아, 헤파이스토스, 페르세포네, 카리테스 세 쌍둥이, 코뤼반테스, 클리오를 비롯한 무사이 쌍둥이, 헬레네, 헤르사, 페르포에스....
누군가 내게 소개를 듣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하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할 만큼 정말 딸들이 많았다.
그리고 나는 이 수많은 딸들의 아버지로서 역할을 수행하느라 진땀을 뺐다.
우루루, 까꿍.
플라잉 제우스!
우쭈쭈, 에베베....
을 한 방 마다 하나하나 돌아가며 했다.
여신들은 잠깐이라도 내가 얼굴을 비추고 가는 것에 미안해하면서도 몹시 고마워했다.
그렇게 나는 수많은 딸들의 육아지옥을 견뎌야 했다.
다행히 영유아기는 몇 달만에 끝나버렸고, 지금은 훌쩍 자라 말귀는 통하는 아이들이 되었지만, 아직도 나의 고생길은 끝나지 않았다.
"미안해, 오빠."
헤라는 내 등을 토닥였다.
나는 갑자기 그녀가 미워졌지만, 내 잘못도 있어서 차마 뭐라고 할 수 없었다.
"피임 도구를 하나 개발해야겠어. 소의 가죽을 얇게 펼친 다음, 자지 위에 덮고 거기다가 싸는 거야. 그러면 임신 안 하지 않을까?"
헤라는 임신에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첫번째 딸, 헤파이스토스를 낳고도 또 바로 임신했다.
왜냐?
출산 이후, 기쁨의 섹스를 했다가 또 임신했다.
지금은 헤라가 둘째를 낳고 어느덧 약 2개월이 흐른 시간.
"으에엥."
"그래, 그래. 아레스, 착하지...."
내 등에 어부바를 한 채 울고 있는 이 작은 아이가 바로 미래 전쟁의 '여'신, 아레스다.
정말 놀랍게도 아레스다.
헤파이스토스도 여자로 태어난 마당에 뭐가 놀랍지 않겠냐만은...뭐? 헤파이스토스가 여자라는 것이 놀랍다고?
'그럴 수 있지.'
너무나 많은 여자와 섹스를 한 반향인지, 아니면 크로노스를 향해 우라노스 킥을 날린 업보인지, 내 아내들은 이상하리만큼 딸밖에 나오지 않았다.
아레스 또한 여자다.
그리고 아마 헤라의 뱃속에 잉태한 생명 또한 여자겠지.
그렇다.
헤파이스토스를 낳고 프로포즈 기념 섹스를 하여 아레스가 수정된 뒤.
아레스를 낳고 출산 기념 섹스를 하다가 또 아이가 생겼다.
아이 이름은 '에일레이티이아'라고 지을 거라나 뭐라나.
"오빠, 안 피곤해? 오늘은 괴물들 상대하고 왔잖아."
"괜찮아. 그래, 아레스. 아빠가 괴물들 물리치고 온 거 보여줄까?"
"와아!"
아레스는 눈을 빛내며 기뻐했다.
미래 전쟁의 신 답게, 아레스는 내가 싸우는 모습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치지직.
나는 손목에 채운 금팔찌에서 전류를 튀겼다.
원격형 아스트라페에서 뿜어져나온 금빛 전류가 넓은 거울처럼 펼쳐졌고, 그 안에는 전류로 이루어진 형체들이 서로 격하게 싸우고 있었다.
"저기 보이지? 하데스 이모야. 아빠랑 하데스 이모가 명계에서 나온 괴수들을 상대하는 거란다."
나는 지상만 다스리는 게 아니다.
바다의 지배와 명계의 지배를 각각 넵튠과 하데스에게 위임했고, 나는 둘이 처리하기 곤란한 괴물이 있으면 함께 가서 레이드를 뛰고는 했다.
"아레스, 너도 할 수 있어. 나중에."
"벌써부터 바람 넣으면 안 돼."
"그래도 운명은 정확하잖아? 모이라이가 그랬는 걸. 아레스는 아테나 다음 가는 전쟁의 신이 될 거라고."
"끙...."
헤라는 복잡한 얼굴로 아레스를 쓰다듬었다.
쓰다듬는 척 하면서 아레스를 들어 귀를 막은 것에서 나는 그녀의 생각을 짐작했다.
"미안."
"아니야, 오빠. 사실인 걸. 어쩌면...어려서부터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도 연습해야할 지 몰라."
아레스.
아테나 다음가는 실력자.
아테나 다음가는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상, 전쟁 방면에 있어서 만년 2인자라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아테나가 가지고 있는 힘을 생각하면 사실상 나-넵튠-하데스-헤라로 이어진 다음 순번에 안착하는 만큼 아테나의 권위는 상당하지만, 그런 아테나를 넘어서지 못한다는 건 헤라의 자존심과도 관련이 있다.
메티스의 딸 아테나는 승승장구하는데, 자기 딸들은 아테나보다 못하다?
내 자식에 대한 자격지심.
이것만큼은 내가 어떻게 함부로 못하는 분야다.
나야 모두에게 최대한 공평하게 사랑을 주려고 노력하지만, 어머니인 여신들은 당연히 자기가 배아파 낳은 자식이 제일 사랑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들은 나로서는 고마우면서도 신경이 곤두서는 경쟁 아닌 경쟁을 펼치는 것이....
"아테나가 너무 잘난 것에 그렇게까지 신경을 쓰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그도 그럴게...나중에 아레스가 크면 오빠가 만들 올림포스 12신 자리에 들어갈 수 있잖아?"
"그렇지."
올림포스 12신.
나는 원전에 준수하여 신탁회의를 만들 것이다.
원년 멤버는 당연히 나를 비롯한 레아의 육남매에 아테나를 추가하는 것.
문제는 여기서 다섯 신을 더 추가해야하는데, 적당한 사람이 없다.
그나마 추가한다면 헤파이스토스와 아레스, 둘.
"헤파이스토스, 지금 뭐하고 있어?"
"뭐? 음.... 그, 그냥 흙 가지고 놀고 있어."
"...너 설마 또 애 공구 빼앗은 건 아니지?"
"......."
헤라는 침묵했다.
"헤라."
나는 그녀를 나지막하게 불렀다.
하지만 헤라는 아레스에게 젖을 먹이며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다.
"헤라. 잠깐 나 좀 봐."
"...또 뭐라고 하려고 그러는 거잖아."
헤라는 나를 톡 쏘아봤다.
감히 하늘 그 자체인 남편에게 바라보는 눈빛이라고 생각하면 불손했지만, 그녀는 그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헤파이스토스가 연장 가지고 노는 거, 나 진짜 싫어."
헤파이스토스는 대장장이의 신이다.
당연히 대장간 일에 재능이 있고, 손재주도 뛰어나다.
하지만 헤파이스토스는 어려서 망치를 가지고 놀다가 그만 자신의 다리를 크게 다쳤고, 한쪽 다리를 절게 되었다.
다리를 잘라내야 할 정도는 아니지만, 헤파이스토스는 걸을 때 누가 봐도 다리가 불편하다는 것을 느낄 정도로 후유증을 앓게 되었다.
그 뒤로 헤라는 위험한 공구를 가지고 노는 헤파이스토스를 크게 질책했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질책했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헤파이스토스에게서 위험한 물건들을 최대한 멀리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여기서 나와 헤라의 양육관에 차이가 발생하고 말았다.
"키클롭스의 도움을 받으면 돼. 녀석들을 믿어."
"싫어. 키클롭스들은 살아남기 위해 야장이 된 거잖아. 헤파이스토스에게는...그런 일을 시키고 싶지 않아. 평생 불을 쬐고 철만 두드려야 하잖아."
헤라는 헤파이스토스가 소위 '남자가 하는 일'을 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키클롭스 자매들이 지옥불에 그을리고 손이 어떻게 굳어가는지 옆에서 지켜봤기에, 딸인 헤파이스토스는 그런 모습이 되지 않기를 바란 셈이다.
그렇다면 나는?
"...아니, 뭐, 여자라고 대장장이 일 하지 말라는 법이 있나?"
"할 수는 있지. 그게 내 딸인 건 싫어. 오빠랑 나를 닮아서 누구보다도 예쁜 아이들이...자꾸 전쟁이랑 엮이는 거, 싫단 말이야."
어떤 부모든 자기 자식이 아픈 걸 바라지 않는다.
헤라는 특히 그 성향이 강했고, 나도 그걸 차마 꺾을 수는 없었다.
"...아직은 좀 더 생각해보자. 헤파이스토스도 차근차근 이야기를 하면 알아듣겠지."
"응. 오빠가 이야기 좀 해줘. 내 이야기는...요즘 아예 안 듣더라."
아아, 헤파이스토스는 사춘기가 와버렸다.
마치 밤에 몰래 스마트폰을 하는 아이와 그걸 막으려는 어머니 사이의 기싸움처럼 보여 안타깝기도 했다.
그것 좀 하면 어떤가 싶으면서도, 헤파이스토스가 그렇게 다친 걸 생각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공존한다.
참으로, 육아란 어려운 일이다.
똑똑.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헤라에게 프로포즈를 하는 과정에서 노크는 어느덧 매너로 자리잡았고, 나는 먼저 나가서 문을 열었다.
"실례합니다, 제우스 님."
"테미스...?"
"헤라 님도 계셨군요."
"아...테미스 님. 죄송해요. 아레스에게 젖을 먹이느라...."
"괜찮습니다. 신경쓰지 마세요."
테미스는 철저히 헤라를 자신보다 더 높은 존재로 대했다.
원리 원칙을 지키는 그녀답게, 과거 메티스를 철저히 자신의 위로 대했듯이 이번에는 헤라를 상전으로 대했다.
헤라가 불편해하든 말든.
"제우스 님께 급히 상의드릴 일이 있어 왔습니다."
"내게?"
"예."
늦은 밤.
테미스가 급히 나를 찾았다.
"인간 여자 하나가 신전을 찾아왔습니다."
"...인간이?"
충격.
* * *
인간 여자에게 올림포스의 신전을 찾아왔다.
이는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잠깐.
여기서 말하는 인간은 좆간과는 다르다.
좆간의 악의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면 순수한 선 그 자체로 만든 순박함 덩어리들이 지금 이 시대의 인간이다.
그런데 왜 인간이 올림포스까지? 어떻게?
"위대하신 제우스 시여, 그리고 수많은 올림포스의 신들이시여. 감히 인간 따위가 이 땅을 밟은 것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이 불경은 이 년의 목숨으로 갚고자 하오나, 감히 그 전에 제 억울함을 들어주시겠습니까?"
"네 이름이 무엇이냐?"
"저는 칼리스토라고 합니다."
나는 나서려는 여신들을 진정시킨 뒤,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래. 말해보아라. 네 억울함이 무엇이냐?"
"저는...티탄 남신 중 누군가에게 강간을 당했습니다."
강간.
그 말에 여신들은 침음성을 흘렸다.
서로 눈치를 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아테나.'
'신으로서의 판단과 여자로서의 판단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 같네. 인간이 강간당하는 건 알 바 아니지만, 그래도 여자가 강간당한 거잖아.'
아테나는 바로 내게 지혜를 빌려줬다.
"어떤 자가 너를 범했는지 아느냐?"
"그는...자신을 위대한 오케아노스와 테티스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포타모이 군. 씁."
메티스에게는 형제가 된다.
티타노마키아에서 타르타로스에 갇힌 극성 일부를 제외해도 2천 명이 훌쩍 넘는 수의 티탄들이다.
덕분에 나는 칼리스토의 상황을 바로 파악할 수 있었다.
"헤라, 어떻게 생각해?"
"일단 잡아야지요. 다른 건 몰라도 강간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 하지만 어떤 방법으로? 강의 님프들은 침묵할테고, 강의 신들은 자기 형제를 고발하지 않을텐데."
뭔가 방법이 없을까.
그래.
그 방법이 있다.
"칼리스토라고 했지. 너는 그렇게 주변에 알려라."
나는 범인을 끌어낼 좋은 방법을 알렸다.
"가서 말해라. 너를 범한, 강간한 범인은 바로...."
제우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