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우스 엑스 마키나-86화 (86/235)

EP.86 제우스의 자식들 (1)

2년은 제법 긴 시간이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군대가 약 2년이다.

뭐? 요즘은 1년 6개월이면 끝난다고?

나 때는....

아무튼.

2년이라는 시간은 뭔가가 이루어지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인간이 정말 많은 시간을 들여서 해야하는 농사도 흔히들 1년 농사라고 하는데, 하물며 그 두 배인 2년은 얼마나 길겠는가?

"레토가 쌍둥이를 낳은 지도 벌써 2년인가."

아주 짧더라.

이번에도 나는 올림포스를 다스리고 자식들을 돌보느라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다.

레토의 탈주 이후.

헤라는 레토를 정성으로 보듬었다.

레토는 헤라에게 자신이 느꼈던 두려움에 대해 모두 털어놓았고, 헤라는 모두가 다 똑같은 제우스의 자식인데 자신이 어찌 싫어할 수 있겠느냐고 타박했다.

-하지만 감히 제우스 님의 아이를 바로 낳지 않으려고 하다니. 이건 벌을 내려야 합니다.

-네?

-아이들의 육신이 성인이 될 때까지, 제우스 님과는 '어디서든 제우스'로 통정해야할 겁니다.

헤라는 레토에게 '쥬지통제'라는 형벌을 내렸다.

그리고 그 뒤로 어떤 여신도 나의 아이를 낳고 감히 도망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와의 아이를 낳은 것으로만 만족하지 않고, 나와의 밤을 기다리는 여인들은 얌전히 올림포스에 머물렀다.

그리하여, 나는 2년 동안 하나 둘 장성해나가는 자식들을 보며 뿌듯함을 느꼈다.

육아도 테미스가 아이들을 낳았던 시기와 달리, 이전에 내가 열심히 놀아준 아이들이 아기들과 놀아줄 수 있을만큼 커서 내 부담을 덜어주기도 했다.

왜 아이들이 힘든 육아를 도와줬는가?

아이들이 예뻐서?

그것도 있지만, 그들에게는 각자 꿍꿍이가 있었다.

-어서 커서 나 대신 내 일 좀 대신 해주렴.

아이들은 미래다.

먼저 태어난 아이들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이 그 순간은 힘이 들더라도, 이 아이들이 기존 올림포스 신들의 일들을 하나 둘 도맡아주면서 자신에게 걸리는 부담이 점차 줄어든다는 것은.

오오, 위대한 분업의 힘이여!

역시 티탄도 인간도 함께 집단을 형성하고 사회를 구성하는 만큼, 각자 자신이 할 수 있는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니까 뭐든지 좋게 이루어지더라.

여기서 각자의 분야라 함은, 신들마다 가진 재능이다.

나의 아이들, 올림포스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신들은 각자 다른 신들보다 특출난 능력이나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다.

예를들어 헤파이스토스는 대장장이의 일을, 아레스는 전쟁에 재능이 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태어난 쌍둥이 자매,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는 각각 의술과 사냥에 재능이 있다.

그들은 저마다 재능을 갈고닦았고, 드디어 오늘이 '결전의 날'이 되었다.

올림포스가 12신의 체계로 갖춰져나가기 위해서 각자의 전문분야를 정하는 날.

올림포스가 앞으로 뭔가 문제가 닥치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책임자를 정하는 날이다.

이른바, 업무 분장.

모든 총괄은 주신인 나 제우스가 한다.

이는 땅과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을 말하며, 바다는 넵튠이 맡는다.

명계는 너무나 크고 복잡하기에 하데스는 나에 준하는 수준으로 일해야하는 만큼, 나는 하데스의 영역을 하나의 독립된 조직으로 설정했다.

하늘과 땅.

바다.

명계.

이 세 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대소사를 내가 처리할 수 없기 때문에, 각 신이 우선적으로 처리하는 업무 분야를 달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쟁의 신이라고 정한다면, 적어도 전쟁에 대해서는 1차적으로 담당 신-아레스가 우선적으로 판단을 내리기로 했다.

이게 꼭 필요한 전쟁인지 아닌지, 전쟁이 일어나면 이게 올림포스에 얼마나 더 이득이 되는지, 올림포스가 전쟁에 나서면 전력 구성은 어떻게 하는지.

그러한 일들을 이제는 내가 아닌 아레스가 할 것이다.

왜냐?

하나는 내가 이제는 좀 쉬고 싶으니까.

하나는 아레스가 전쟁 분야에 있어서 아직 경험은 부족하지만 충분한 재능을 가지고 있으니까.

신들은 저마다 특출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신들이 그 재능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전쟁에 대한 재능은 아테나에게도 있다.

그리고 그 군재는 아테나가 아레스보다 더 뛰어나다.

당장 아레스만 하더라도 아테나에 대한 자격지심으로 몇 번이고 싸움을 걸지만, 아레스는 번번히 아테나에게 패배하기 일쑤다.

그렇다면 아테나가 아레스보다 더 잘 싸우니까 아테나가 전쟁의 신도 같이 해야할까?

-제우스 님, 제가 짬이 있지 전쟁까지 맡아야하는 건 아니죠? 지혜의 신 하나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당연한 말씀. 네가 맡을 전쟁은 침대 위에서의 전쟁으로 충분하다.

우리 세대도 일할만큼 일했으니 좀 쉬어야하지 않겠는가!

올림포스를 건국하기 위해 맨땅에서 흙퍼먹고 동굴 속에서 그 개고생을 하며 살아왔는데, 이제는 즐기면서 일할 때가 되었다!

-아무리 자식들이라도 우리가 피땀으로 얻은 평화를 날름 누워서 삼키면 안 되지.

일 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자식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올림포스의 주신으로서 권위를 누리고자한다면 그만큼 열심히 일을 해야한다.

그리고 내가 구상하고 있는 올림포스 12신은 다른 신들보다도 더 많은 권위와 높은 위상을 가지게 되겠지만, 그만큼 더 올림포스를 위해 일해야한다.

나는 태어난 순서대로 이들에게 한 번씩 권유를 했으나....

-아빠, 저희는 저희가 잘 할 수 있는 곳에서 열심히 할게요. 호호.

-저희 올림포스 만들어질 때부터 열심히 노력했는데, 이제는 좀 저희 잘할 수 있는 것만 해도 되는 거죠?

-아아, 허리가...! 동생들을 너무 많이 돌보느라 나간 허리가 아파요...!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저희보다 저희 동생들이 더 열심히 하지 않을까요오오?

호라이나 모이라이처럼 대규모 임신 이전에도 태어난 아이들이 있었다.

이들은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보다 훨씬 더 빨리 태어난 만큼 서열이 더 높다고 할 수 있으나, 이들은 권위를 양보하고 편한 삶을 선택했다.

'이거 혹시 동생들에게 짬 때리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만큼 동생들의 능력이 출중하기는 했다.

특히 내가 익히 알고 있던 네 명은 더더욱 그렇다.

올림포스 12신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헤파이스토스, 아레스, 아폴론, 그리고 아르테미스.

이 네 명은 다른 자식들에 비해 훨씬 더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앞으로 올림포스를 이끌어나감에 있어서 각각 특출난 재능이 미래에 큰 도움이 될 것들이었다.

제조, 전쟁, 의술, 사냥.

모두 고대를 살아가는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힘이자, 앞으로 우리가 겪을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핵심이기도 했다.

가이아와의 전쟁.

나는 그만 기억해내버리고 말았다.

티타노마키아가 끝이 아니라는 것을.

언젠가 있을 트로이 전쟁을 누워서 구경만하면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기간토마키아.'

올림포스와 가이아는 전쟁을 하게 된다.

원래 전쟁이 일어난 명분은 뭔지 모르겠지만, 현재는 내가 전쟁의 명분을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이걸 내가 어떻게 기억하게 되었느냐하면, 올림포스 12신의 자리를 구성하다가 그만 깨닫고 말았다.

1. 제우스

2. 넵튠(포세이돈)

3. 하데스

4. 헤라

5. 데메테르

6. 헤스티아

7. 아테나

8. 헤파이스토스

9. 아레스

10. 아폴론

11. 아르테미스.

12. ....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남은 자리는 한 자리인데, 후보로 떠오르는 사람만 무려 셋이나 나타나게 된 것이다.

한 명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비너스라고도 불리우는 이 여신은 아주 먼 옛날 크로노스가 자른 우라노스의 성기가 변하여 태어난 존재라고 들었다.

아프로디테와 제우스가 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지만, 일단 보고 판단할 것이다.

한 명은 술의 신, 디오니소스.

흥이 깨지면 반드시 책임을 지라고 말할 것같은 그 자는 와인을 발명한 업적 한 방으로 올림포스 주신 자리를 꿰찼다.

그리고 나머지 한 명.

뭔가 신으면 다양한 상태이상의 지속시간이 줄어들고 마법에 대한 저항력을 갖추게 될 것 같은 신발의 주인.

'헤르메스.'

그의 일화를 떠올리고 생각하다가, 나는 그만 아주 끔찍한 이야기를 봤던 기억이 떠오르고 말았다.

헤르메스, 그는 날개 달린 신발과 재빠른 몸놀림을 이용해 제우스의 힘줄을 되찾아준다더라.

힘줄을 되찾은 제우스는 헤르메스의 도움으로 뭔가 괴물을 물리치고 승리하게 된다고 하더라.

그게 기간토마키아다.

제우스를 제외한 다른 신들은 모두 동물로 변신하여 올림포스에서 도망치고, 제우스만 혼자 남아서 싸우다가 괴물에게 패배하여 힘줄이 뽑혀나간다고 하더라.

'그럴 수는 없지.'

그런 미래는 사양이다.

그게 만약 가이아가 정한 운명이라면, 나는 그 운명을 멋지게 극복해낼 것이다.

힘줄?

어떤 괴물이 올 지는 모르지만, 헤르메스의 도움을 받기도 전에 이미 괴물의 힘줄을 뽑아내버릴 것이다.

'헤라클레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유명한 자식들의 탄생.

여전히 극소수의 인원에게 몰려있는 업무의 분업화.

그리고 그 신들조차 두려워하는 그리스 최강의 대영웅.

그가 태어날 때까지 내가 많은 아이를 임신시키는 것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니다.

그래.

나는 올림포스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수많은 여인들을 임신시켜야한다.

설령 그것이 티탄 여신 뿐만 아니라 님프, 인간이라고 하더라도.

그러려면 우선 인간이 번성해야하고, 그걸 위해서라도 올림포스 12신의 자리를 일단 구축해야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자식들을 하나하나 면접 볼 것이다.

과연 이들이 원전대로 12신의 자리에 이름을 올릴 만큼 각오가 되어있는가.

이번 면접을 통과하면, 이들은 레아의 여섯 남매와 '원탁'에 앉아서 올림포스의 각종 문제에 대하여 상의하게 될 것이다.

"시작할까요, 제우스 님?"

"그래, 아테나. 들어오라고 해라."

나는 아테나를 대동한 채, 나의 자식들을 상대로 1:1면접을 시작했다.

끼이익.

문이 열리며 들어온 여인은 적발에 주근깨가 내려앉은 여인.

헤파이스토스.

"어서오너라, 나의 딸아. 너는 무슨 신이 되고 싶으냐?"

"저는...."

한참을 뜸들이던 헤파이스토스는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대장장이의 신이 되고 싶습니다."

헤파이스토스의 말에,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저기...."

"......여자가, 대장장이의 신이라."

내 뒤에서.

"헤에. 분명히...어제 얘기했을텐데."

헤라는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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