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93 프로메테우스 (1)
무엇을 숨기랴.
페르세포네는 남자다.
하지만 대외적으로는 '여신'으로 알려져있다.
이유는 두 가지.
하나는 데메테르가 자신의 자식이 남자로 태어난 것에 두려움을 느껴서 여자로 키웠기 때문이다.
나는 이에 대해 나의 아들로 공표를 하고 싶었지만, 데메테르는 그건 절대 안 된다고 엄포를 놓았다. 최초의 아들은 정실부인인 헤라가 낳아야 한다나 뭐라나.
이해는 한다.
정실결전에서 헤라가 승리했고, 헤라는 가정의 수호신으로서 나의 '아내'가 되었다. 정실부인의 아들이 적자라는 건 가부장적 사회에서 기본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었지만, 데메테르는 한사코 거부했다.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에 한창 신경을 써야할 시기, 나는 이 문제로 데메테르와 다소 심한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아들을 아들로 키워야지, 도대체 뭐가 문제냐고. 헤라를 걱정할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아들을 걱정해야하는 거 아니냐고.
나의 논리적인 반박에 데메테르는 결국 눈물을 터뜨렸다. 선즙필승인가 싶어 더 엄하게 대하려고 했으나, 데메테르는 진심으로 서러워했다.
-내 아들, 제우스 아들이라고 소문나서 여신들이 강간하러 오면 어떡해…!
그 말에 나는 그만 말문이 턱 막히고 말았다.
나와 닮은 자식들은 정말 많다. 당장 아폴론만 하더라도 '내가 여자로 태어났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페르세포네만큼은 확실히 다르다.
페르세포네는 나를 똑 닮은, 나의 소년 시절과 판박이였다. 그리고 육체는 나의 몸속에 있던 티탄의 남성호르몬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이전의 시기에서 성장이 멈춰버렸다.
내가 메티스를 처음 만났을 때, 나름 청년시기라고 우길 수 있었던 시기.
조금만 여자로 꾸며도 누구나 여신이라고 할만한 모습. 페르세포네는 당시의 나를 너무나 닮아있었다.
뭐라더라.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던 말로는 오토코노코라고 하던가.
여자 그려놓고 작가들이 남자라고 우긴다고 막 성토하던 거나 친구놈들이 미소녀 사진이라고 올려놓고 '가능?' 이 지랄을 하다가 가능이라고 하면 '사실 남자임 엌ㅋㅋ 게이새기'그러던 사진들에서나 볼 법한 외모가 바로 페르세포네의 현 모습이다.
이런 미소녀언이 남자다?
솔직한 말로, 따먹힌다.
여신들에게도 위험하고, 남신들에게도 위험하다.
그래서 나는 데메테르가 페르세포네를 여자로 키우겠다고 말을 했을 때, 누구에게든 강간당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만 허락해버리고 말았다.
다행히 페르세포네는 자신의 성정체성을 확고히 다잡았다. 상황을 이해한 아테나와 레아가 진심으로 페르세포네의 양육에 큰 도움을 주었고, 페르세포네는 어엿한 봄의 여신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페르세포네의 아래에는 남자로서의 자긍심이 존재한다.
내 아들이니까, 바로 이렇게 나와 같은 온탕에 몸을 넣고 목욕을 할 수 있는 거다.
"페르세포네."
"네, 아버지."
참으로 예의바르다. 머리를 댕기처럼 땋고 상투를 틀기라도 하면 갓이라도 씌워주고 싶을 정도로 예의범절이 바르다.
"네가 어렸을 적이 생각나는구나. 나는 남자인데 왜 드레스를 입어야하냐고 성을 냈지."
"어렸을 때는 제가 어떤 상황인지 잘 몰랐으니까요."
"그래. 그래서 고맙다. 참 그러면 안 되는데...아버지가 되어서 네게 큰 짐을 만들어줘버렸구나."
"아닙니다, 아버지. 저는 이해합니다.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난 것의 무게감...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확실히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페르세포네의 얼굴에는 뭔가 달관한 듯한 인상만 남아있었다.
"제가 범해지는 것은 곧 아버지를 욕보이는 것. 절대 저는 누군가에게 범해지지 않을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납치를 당하지도 않을 것이고요. 언젠가 헤라 어머님께서 남자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진정으로 아버지의 명예를 물려받는 날, 그 때 저는 제 진짜 모습을 드러내고 제 사랑을 찾아 나서겠습니다."
"여러모로 미안하구나."
"괜찮습니다. 여신으로 사는 것도 나름 재미있는 걸요. 언제 들킬지 몰라 조마조마한 게...이게 또 한 재미 하거든요."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 했던가. 페르세포네는 일류였다. 자신의 여장에 대해 즐기겠다는 마음가짐을 먹는 프로였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언제든지 말해다오. 아테나를 통해서든 데메테르를 통해서든 뭐든지 준비해주마."
"그, 그럼…."
페르세포네는 얼굴을 붉히며 나를 응시했다.
"아버님이 어렸을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십시오."
"응? 내 이야기?"
"예. 어머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님이 아버지의 도움으로 다시 태어나기 이전에 대해서는 들은 적이 없습니다. 크로노스 신으로부터 레아 할머님과 어머님들을 구해오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때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흐흐."
페르세포네도 남자는 남자였다.
영웅의 모험담을 좋아하는 평범한 남자였다.
"그럼 밖에 나가서 바람을 쐬면서 이야기하자. 물에 제법 오래 있었다. 따라오너라. 모처럼이니 네 어머니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자."
"예, 아버님."
첨벙.
우리 부자는 물에서 나왔다.
그리고 나는 페르세포네를 보며 확신했다.
'나중에 아내가 아주 죽어나가겠는 걸.'
페르세포네는 분명한 내 아들이라는 것을.
* * *
화르륵.
올림포스의 원탁 한 가운데.
지상을 전부 내려다볼 수 있는 불꽃이 활활 타오른다. 신비한 기운을 내기 위해 붉은 불꽃말고 다른 색으로 해달라고 했더니, 이것 저것 하다가 결국 푸른불꽃으로 했다.
뭔가 신비해 보이니까!
그리고 이 푸른불꽃을 중심으로 이어진 원탁의 자리는 전부 12자리.
"모두 모였군."
나는 우선 나와 대등한 존재로 널리 알려놓은 바다와 지하의 지배자를 불렀다.
그리고 내 좌우를 보좌하는 헤라와 아테나. 그들의 옆으로 데메테르와 헤스티아.
이렇게 7인.
그리고 남은 다섯 자리를 채울 신들을 하나하나 불렀다.
"모두 들어오너라."
내 부름에 다섯 '여신'들이 한꺼번에 올라왔다. 형형색색의 머리칼 중에서도 역시 단연 눈에 띄는 사람은 근육질의 거한, 아르테미스.
"한 명 한 명 스스로를 증명하라."
나는 가운데에 피어오로는 화로의 불을 잠시 꺼뜨린 뒤, 다섯 명을 화로 위에 오르게 하여 정식으로 신좌의 자리에 임명했다.
"헤파이스토스. 대장장이의 신에 임명한다. 대장간의 불을,아름다운 보석을 다루는 공예의 기술을 잘 잘고 닦거라."
"아레스. 전쟁의 신에 임명한다. 올림포스가 치르는 모든 전쟁의 선봉은 네가 될 것이며, 네가 전쟁을 승리로 이끌 것이다."
"아폴론. 의술의 신으로 임명한다. 동시에 2대 태양신에 더불어 음악의 신으로도 임명한다."
"아르테미스. 너는 사냥의 신이다. 동시에 2대 달의 여신으로 임명한다."
"페르세포네. 너에게는 곡물의 신이라는 자리를 주마. 어머니 데메테르와 더불어 너는 농경을 관장하며, 지상의 곡식들을 잘 보듬거라."
나는 다섯 명에게 각각 자리를 권했다. 각자 역할이 정해진 신들은 자신의 자리를 찾았고, 나는 화로에 다시 불을 붙여 본격적인 올림포스 12신의 시작에 시동을 걸었다.
"우리 올림포스 12주신들은 앞으로 이 원탁에서 회의를 할 것이다. 정기적으로 오지 못하는 이들은 각자의 거처에 있는 화로를 통해 분신으로 참가하도록 하라. 사안이 중대하거나 긴급한 일이 있을 때는 반드시 참가하여야 할 것이다."
회의의 주체인 나는 언제나 항상 참여한다. 그게 제우스, 주신의 일이다.
"우리는 올림포스, 나아가 이 세계를 다스리는 자들이다. 각자의 영역에서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며, 지상과 지하, 온 세계의 것들이 우리를 우러러 보는 세상을 만들 것이다. 알겠나?"
모두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진지하게 말을 하고 있으니, 다들 진지하게 반응하고 있다.
좋은 방향이다. 지금 내가 처음으로 올릴 안건은 아주 심각한 안건이니까.
"그렇다면 12신들에게 나, 주신 제우스가 묻는다. 현재 올림포스에는 그대들의 판단을 기다리는 아주 심각한 상황이 하나 생겼다."
나는 손뼉을 쳤다.
그러자 화로 속 불꽃에는 양손이 사슬에 묶인 여인이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다.
"에피메테우스?"
누군지 알아본 이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도대체 왜 에피메테우스가 스스로 죄인이 된 것마냥 무릎을 꿇고 있는 지 모를 것이다.
심지어 에피메테우스의 옆에는 법률의 여신, 테미스가 천칭과 검을 들고 서있었다. 올림포스에서 정해지는 방향에 따라 결론이 나겠지만, 에피메테우스를 타르타로스에 집어넣겠노라고 결정이 나면 즉시 그녀는 지옥에 처박힐 것이다.
"에피메테우스가 무슨 죄를 저질렀습니까?"
"방조죄다. 연좌제를 적용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에피메테우스의 오빠인 프로메테우스는 아주 심각한 짓을 저질렀다."
프로메테우스.
모두가 아는 또다른 예언가의 이름이 울리자 잠시 소란이 일어났다.
"불을 훔쳤다."
* * *
"오오오!"
"이것이...구워먹기!"
"프로메테우스 님, 대단해!"
인간들의 찬양이 멀리멀리 퍼진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들을 향해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왜 인간들에게 불을 가져다주었느냐.
불은 인간들에게 허락된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에게 불을 가져다 준 이유는 춥고 헐벗은 인간들에게 불이 많은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불씨를 피우고, 장작을 집어넣고, 계속 꺼지지 않게 관리하라. 그래야 불을 계속 사용할 수 있다."
"프로메테우스 님, 정말 이걸 써도 되는 겁니까?"
"물론."
프로메테우스는 쓰게 웃었다.
"그것이 너희에게 주어진 것이다."
"크으으, 우리는 불을 받다니…!"
"불, 대단해!"
다른 동물들이 뭔가 하나씩 받을 때, 인간들은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 에피메테우스의 실수였고, 프로메테우스는 무엇 하나 받지 못한 인간을 위해 불을 건넸다.
예언.
그의 머릿속에는 남은 예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절벽에서 평생동안 간을 쪼아먹히는 형벌을 받지만, 그의 희생으로 인간은 번성하게 된다.
"인간을 위해서라면."
프로메테우스는 담담히 밖으로 나갔다. 이미 밖에는 프로메테우스를 기다리는 티탄신이 서있었다.
"그대가 아레스인가."
"그렇다. 위대한 제우스 신의 명령으로 너를 잡으러 왔다. 도망치려고 하면-"
"잡아가시오."
프로메테우스는 담담히 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아레스는 그의 손목에 쇠사슬을 단단히 묶었다.
"나는 무슨 형벌을 받나? 타르타로스?"
"아니. 어, 너는 그러니까…."
아레스는 품에서 종이를 꺼냈다가 인상을 찡그리며 종이를 프로메테우스에게 펼쳤다.
"이거야!"
".......뭐라고?"
제우스가 내린 형벌은 지극히 끔찍하기 그지 없었다.
"올림포스 공용 생체딜도. 티탄 남신을 강간하고 싶은 자, 불을 훔친 괘씸한 자를 강간할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