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우스 엑스 마키나-94화 (94/235)

EP.94 프로메테우스 (2)

충격.

프로메테우스가 신들의 불을 훔쳤다!

'내 그럴 줄 알았다.'

이미 나는 프로메테우스의 범행을 예상하고 있었다.

원전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나는 프로메테우스를 처음 알았을 때부터 그의 이름을 정확히 떠올렸다.

아, 그 불을 훔쳐서 절벽에 묶여 평생동안 독수리에게 간이 쪼아 먹힌 그 놈?

알고 있었다.

전부 알고 있었다.

프로메테우스가 올림포스의 승리를 예상하고 미리 우리에게 항복하고 여동생은 마치 항복한 것처럼 꾸미도록 만든 것도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프로메테우스를 책망하지 않았다.

프로메테우스의 예언 능력의 도움을 받지도 않았고, 나는 프로메테우스가 알아서 올림포스에 동화되도록 했다.

그리고 프로메테우스는 올림포스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예언가가 아니더라도, 예언의 능력이 점차 의미를 상실하더라도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분야에서 최대한 많이 노력을 했다.

그렇다면 이제 그를 팽하고자 하는가?

그건 아니다.

오랫동안 일을 했으니 이제 타르타로스에 가서 여생을 보내라고 할 것도 아니다. 프로메테우스는 어머니 레아를 구하는데 공을 세운 자로, 내가 함부로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고 함부로 할 생각도 없는 자였다.

하지만 프로메테우스가 '예언가'였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어버렸다.

나는 그를 찾지 않았다.

하지만 그를 이전부터 아는 자들은 알음알음 그를 찾아가 미래를 묻고는 했다.

-내 자식은 딸일까요, 아들일까요?

-어, 어…?

-말해봐요. 당신은 예언자잖아요. 아들이겠죠? 분명 제우스 님의 첫 아들일 거예요. 아아, 재능은 뭐죠? 잘생겼나요? 말해봐요! 내 자식, 올림포스 12대신의 자리에 있는 거죠?! 네!? 네?! 네!?!!!!!?!??!

-......그, 그건.

프로메테우스는 괴로워했다.

자식에 대하여 궁금해하는 여신들의 질문공세에 양 옆에 꽃받침마냥 남아있던 머리카락마저 전부 빠져버렸고, 그는 완벽한 대머리가 되어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제우스 님! 살려주십시오!

그는 내게 상황을 해결해줄 것을 읍소했다.

-제우스 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앞으로 운명을 말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제우스 님이 임신시킨 여신들이 제게 몰래 찾아와서 자꾸 묻습니다!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제우스가 말하지 말라고 했다.

라고 말하라고 했지만, 소용은 없었다. 주신의 엄명보다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더 강대하고 위대했다.

제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이해한다.

나도 전생에 자식새끼가 모의고사 등수 백분율보다 AOS 게임 백분율이 더 높다는 걸 알고 가슴을 치며 슬퍼했지만, 그래도 꼴에 수능 백일 남았다고 공부를 시작하자 어디 기도를 다니며 수능 제발 잘 되게 해달라고 하셨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자식이 늘어나고 하니 내 자식들이 누구 하나 무시당하는 일 없이 다들 자기 재능을 꽃피우기를 바라고 있으며, 모두가 나의 사랑하는 자식들이다.

하지만 때때로 불안하기는 하다.

내 자식이 만약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어느날 갑자기 어떤 놈팡이 새끼가 내 어여쁜 딸 중 한 명을 상대로 욕정을 참지 못하고 건드리기라도 한다면?

운명을 보지 않겠다, 미래를 보지 않겠다 생각은 했지만 그럴 때는 미래시에 대한 유혹에 자꾸만 귀가 솔깃했다. 내 자식을 강간하는 자를 15년 뒤에 죽이지 않고 15년 전에 미리 죽이면 얼마나 마음이 편하겠는가?

하지만 운명을 미리니름하는 것은 통제가 필요했다.

현재 올림포스에 운명, 미래를 알 수 있는 자는 총 세 명.

한 명은 가이아.

한 명은 모이라이. 테미스의 두 번째 세쌍둥이 자매들이지만 이들은 항상 함께하는 만큼 한 명으로 쳐도 된다.

그리고 마지막, 프로메테우스.

-저는 올림포스가 승리하던 날 이후로 미래를 보는 힘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내일 날씨는 어떤가...그런 정도밖에 알 수 없습니다!

그는 예언자로서의 힘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두가 크로노스를 지지할 때 홀로 올림포스를 가장 먼저 지지했다는 것 덕분에 대 예언가로서 이름을 널리 떨치고 말았다.

자기 혼자만 꿀을 빨았다, 라는 욕도 먹었다.

그리하여 프로메테우스는 종합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이전에 가지고 있던 능력의 소실.

살아남은 티탄들로부터 알게 모르게 받는 손가락질.

내가 운명이나 미래를 알아보는 것을 지양하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식에 대한 걱정 때문에 프로메테우스를 찾아오는 여신들.

-미래를 아는 것은 독이다.

프로메테우스는 결국 특단의 조치를 원했다.

자신에게 누구도 더이상 찾아오지 못하도록, 그리고 예언가로서의 인생을 끝맺을 수 있도록 극단적인 방법마저 불사하고자 했다.

그래서 나는 예언이라는 것을 못하게 만들기 위해, 메티스와 한 가지 꾀를 내었다.

그렇다.

프로메테우스는 불을 훔쳤다.

누구도 아닌 헤스티아가 관리하는 화로에서, 올림포스의 불에서 불씨를 훔쳐 인간들에게 불을 전파했다.

이게 가능한가? 불가능하다.

헤스티아는 항상 화로를 관리하고 있으며, 섹스를 할 때에도 화로 근처에서 따뜻하게 불꽃섹스를 하는 여신이다.

헤스티아의 허가 없이, 그 누구도 화로에서 불을 가져갈 수 없다. 원전은 어떻게 훔쳐갔는지 모르지만, 지금의 올림포스는 그런 구조다.

그런데도 프로메테우스는 불을 훔쳤다. 그리고 불씨를 피우는 법을 알려주었고, 인간은 불을 다루는 방법을 터득했다.

인간들에게 불을 전파해야한다는 것은 나도 예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냥 불을 전파했다가는 '아무리 제우스라도 신의 것을 함부로 인간들에게 줬다'는 오해를 살 수 있었다.

인간들에게만 불이라는, 신들의 권리를 줬다는 공분을 살 수 있었다.

-하하, 그런 거라면 괜찮습니다. 제가 다 떠안겠습니다.

프로메테우스.

그는 스스로 죄인이 되고자했다.

인간을 위한 내 배려를 알고, 그는 자신이 총대를 메고 불을 인간들에게 '나눠주었다'.

이를 통해 그가 얻는 것은 고작 인간들의 칭송, 하나.

-제우스 님, 하나 불경한 말을 해도 되겠습니까?

-말하라.

-언젠가 신들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인간만이 남아 세계를 꾸려나가는 날이 올 것입니다. 제가 본 마지막 미래에는 신들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인간만이 가득한 세상이었습니다.

-불경하지만, 허락하마. 너는 그 말을 감히 입에 담을 자격이 있는 자이니.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 때가 되었을 때, 인간들은 티탄 신과 제우스 님의 업적을 두고 길이길이 칭송하겠지요. 그러니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제가 감히...당신의 업적을 하나 훔쳐도 되겠습니까?

다른 티탄 신들과 님프, 동물들에게 아무 불만을 사지 않고 인간들에게 불씨를 나눠주기 위해서.

더이상 예언이라는 이름으로 모두가 혼란스러워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다소 불명예스럽지만 프로메테우스의 '은퇴'를 위해서.

-그래. 훔쳐라. 인류에게 불씨를 나눠준 것은 티탄들에게는 도적질이지만, 인류에게 있어서 그것은 너무나 큰 영광일 것이다. 너는 불을 훔쳐간 것이 아니다. 내게서 인류로부터 받는 칭송을 훔쳐갔노라.

-진정으로 감사드립니다. 제우스 님.

그리하여.

프로메테우스는 불을 훔쳤다.

나는, 그에게 불을 훔치라고 지시했다.

나의 사랑하는, 인간을 위하여.

* * *

"후, 후후."

프로메테우스는 절벽에 묶였다.

헤파이스토스가 제작한 수갑과 족쇄가 채워진 채, 그는 절벽에 묶였다. 그나마 알몸이 아닌 의복을 갖출 수 있었던 건 그의 공로를 생각한 제우스의 마지막 배려였다.

지나가는 모두가 그의 치태를 볼 수 있었다.

지나가는 모두가 프로메테우스의 굴욕을 볼 수 있었다.

티탄도, 님프도, 동물도, 하물며 그가 그렇게 신경을 써준 인간들마저도 프로메테우스가 절벽에 묶인 걸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아무리 남들의 발걸음이 닿지 않는 곳이라고 한들, 불도둑 프로메테우스에 대한 관심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조금 슬프군."

"뭐가요?"

"배신을 당한 것 같아서."

지혜의 여신, 아테네는 조용히 프로메테우스의 앞에 섰다. 아주 오래전부터, 제우스의 세력이 올림포스에 당도하기 전부터 제우스를 보좌했던 사이인 만큼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신감을 느낄 거예요. 제우스 님은 당장 당신을 도와줄 수 없으니까요."

"아니. 내가 배신감을 느낀 건 제우스 님이 아니야."

프로메테우스는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아무리 제우스 님이 허락을 하셨다고 하지만, 나는 만약 제우스 님이 불허했다고 해도 인간들을 위해 불을 훔쳤을 것이야."

"왜요? 인간들에게 줄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았는데요. 물속에서 호흡할 수 있는 아가미도 있었고, 하늘을 날 수 있는 날개도 있었죠."

"지혜의 여신인 자네가 그런 말을 하기 있는가? 인간들에게 필요한 건 불이었어. 다른 건 전부 다 손으로 만들 수 있었지만, 불을 이용하는 건 불가능했지. 나는 예언가라네. 인간들이 번영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티탄들의 번영이라고 생각했지."

프로메테우스는 또다시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제우스 님이 나와 같은 생각이라는 것에 처음에는 기뻤네. 하지만 그 뒤에 나는 나 스스로에게 환멸을 느꼈어. 제우스 님이 인간을 신경쓰시던 건 나와 다른 이유였던게야."

"다른 이유?"

"나는 우리 티탄의 권위를 위해 인간들의 숭배를 받으려고 했다네. 인간들이 숭배하고 공물을 바치고, 그걸로 우리 티탄들은 권위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게 되는 세상이 올 것이야. 후후, 그대도 알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미리 알짜배기 땅에...흠흠."

"뭐래요? 흥."

아테나는 싱긋 웃으며 검지로 입술을 훑었다.

"제우스 님께서는 알고 계신가?"

"다 알고 계셔요. 오히려 좋은 땅을 점지해주시기 까지 하셨는 걸요."

"편애군."

"저니까요."

"그건 그렇지. 그래. 제우스 님의 사랑은 목적이 없어. 그분은 순수하게 사랑하시는 거야. 그대도, 여인들도, 여신들도, 그리고...인간들 마저도. 정말, 위대하신 분이야."

프로메테우스는 졌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마지막으로 제우스 님께 한 마디만 전해주게."

"뭔가요?"

"정확히 10년 뒤. 거품. 조개."

아테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프로메테우스는 그저 씩 웃기만 하며 엄지를 들어올렸다.

"이 프로메테우스가 드리는 예언이자 선물이라고 알려드리게."

"...여자예요?"

"글쎄. 후후, 나도 모르겠는걸. 원래는 잘 보여야 하는데...예전부터 자꾸 흐릿하게 보여서 말이야."

"그렇군요. ...아, 온다. 고생하세요. 남은 여생, 즐기면서."

"물론."

아테나는 떠났다. 프로메테우스는 눈을 잠시 감았다가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펄럭, 펄럭.

"......흐."

하늘에 펼쳐진 그림자에 프로메테우스는 입맛을 다셨다. 하늘에는 머리 위에 독수리의 머리를 형상화한 모자를 쓴 여인들이 하나 둘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들의 팔은 중간부터 하얀 날개가 달려있었다.

"제우스 님께서 말씀하신 티탄이 당신이죠?"

"그렇다."

"당신의 여동생에게 이런 걸 선물받고, 당신을 대상으로 이런 짓을 저질러서 조금 미안하네요."

"괜찮다. 바라던 바니까."

프로메테우스는 절벽으로 몸을 기대며 어깨를 으쓱였다.

"와라. 제우스 님께 배운 절륜한 테크닉을 그대로 보여주지."

"어머나, 당신, 우리 '하피'들에게 강간당하는 거라고요. 좆 까."

프로메테우스.

그는 하피 취향이다.

* * *

"만약에 님프가 취향이라고 했으면 어떻게 하려고 했어요?"

"세이렌 섬에 가뒀지."

하피성애자는 하피들과 섹스하며 평생의 여생을 즐기며 살 것이다.

하피들은 티탄 남신으로부터 씨를 받아 종족 번영을 이룰 것이다.

인간들은 불을 받아 번영을 누릴 것이다.

"해피엔딩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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