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우스 엑스 마키나-99화 (99/235)

EP.99 새로운 시대의 선물

옛날 이야기를 하나 해주지.

뭐? 알고 있는 이야기라고? 이건 모를 걸.

그래. 내가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옛 인류의 멸망에 관한 이야기야.

위대하신 제우스 신께서는 인류를 멸망시키려고 하셨네. 왜 그렇게 했는지는 몰라.

단지 옛 인류가 제우스 신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것 밖에 몰라. 어떤 일이 그 자비로운 제우스 신을 불쾌하게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제우스 신은 인류를 대홍수로 멸망시켰다네.

지금 땅에 흐르는 강이나 땅으로 깊게 들어간 바다있지? 그게 다 제우스 신께서 포세이돈 신에게 지시하여 바다가 육지를 범람하게 만들고 남은 흔적이란 말이지.

옛 인류가 어떻게 멸망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같은 역사학자들이 바로 그걸 파헤쳐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과거의 유물을 발견했다네.

오랜 시간이 지나 바람에 흙이 깎여, 그 흔적이 드러난 고대의 도시를 발견했다네.

그곳에서 발견한 것은 정말이지 참혹한 광경이었어.

감히 위대한 올림포스 신들을 상대로 그런 상상을 했다는 것 만으로도 나는 내 생각을 게워내고 싶은 지경이었다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알고 있는가?

구 인류가 멸망한 뒤, 지금의 인간이 어떻게 태어나게 되었는지 말이야.

인류의 기원은 '판도라'라고 불리는 분일세.

그분은 신들이 직접 만들어낸 최초의 현 인류였지.

하지만 판도라는 여자였어.

여자 혼자서는 아이를 가질 수 없지 않은가?

그래서 옛 인류 중 살아남은 이들에게 신들은 판도라를 보냈지.

옛 인류 중에서도 제우스 신의 분노를 피해 살아남은 이들이 있었거든.

아마 그들은 신께서 분노할만한 짓을 안 한 자들이었을 것이야.

그런데 이들도 죄를 지었네.

자네, 아름다운 여자가 있으면 어찌하고 싶나?

막 범하고 싶지?

응? 그런 짓 했다가 큰일이라도 나면 어떻게 하냐고?

그렇지.

지금은 큰일나지.

큰일 나는 걸 넘어, 그건 나라에서 정한 범죄지.

하지만 판도라가 내려왔을 때는 그런 게 없었단 말이야.

그래, 율법도 법률도 없던 아주 미개하던 시절이었어.

그런데 신들이 판도라라는 여인을 내려보냈으니 그 뒤는 어떻게 되었겠는가?

인간들은 판도라를 마구 범했다네.

한 가지 분명히 말하자면 판도라는 인간이지만 인간이 아니었어.

인형을 인간으로 만들었다고 보는 게 맞지.

뭐? 신들은 판도라를 범해지도록 내던진 게 아니냐고?

그런 관점도 있을 수 있군.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해.

판도라는 신들이 인간들을 위해 내려보내준 희망이었다고.

단지 그 희망을 인류가 멋대로 범했던 거지.

범하고, 범하고, 또 범하고.

자신들이 판도라를 범하여 낳은 자식들, 그러니까 우리의 선조들이 옛 인류를 제거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거야.

쉽게 죽지도 않는 자들을 묶어 죽을 때까지 죽였다네.

구 인류는 모두 죽었고, 구 인류와는 다른 새로운 인류가 세상을 지배하게 된 것이야.

판도라 님의 자식이었던 퓌라 님, 그리고 신들께서 퓌라 님의 짝으로 보내주신 데우칼리온 님이 결혼하여 낳은 아이들이 바로 지금 이 나라를 비롯해 수많은 왕가의 시조가 되는 분들이지.

어찌보면 우리는 모두 판도라 님으로부터 태어난 존재라고 할 수 있겠어. 허허.

...사학자로서 궁금한 점이 하나 있다면, 만약 제우스 님과 만나뵙게 된다면, 나는 개인적으로 이 말을 꼭 드리고 싶네.

지금의 인류로서 드리는 말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으로서 드리는 감사 인사일세.

그런 놈들은 멸망해도 싸다고.

아, 그래.

나는 보고 말았다네.

구 인류의 추악함을.

감히 신에게 도전한 자들의 말로를.

그래서 나는 내가 찾은 모든 자료들을 불태웠다네.

그 누구도 과거의 과오에 대해 궁금해해서 알아보지 못하도록.

그러니 명심하게.

인류는 올림포스 신들 덕분에 살아가고 있음을.

신의 위대함을 숭배하고 따르게.

그래야 우리는 신들의 보호를 받고 살 수 있어.

대지의 괴물들.

우리는 신들의 보호가 있어야만, 이 괴물들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네.

명심하게.

결코 그분들을 화나게 해선 안 돼.

* * *

프로젝트 판도라는 성공했다.

인류의 멸망을 두고 성공이라는 표현은 조금 이상하기는 했지만, 인간이 이제 더이상 티탄 신의 화신같은 존재가 아니다.

서로 질투하고, 시기하고,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으로 나뉘게 되었다.

이제, 인류는 부족사회를 넘어 고대 왕국 형태로 나아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나는....

"어이, 유 씨. 지금 뭐하냐?"

"쉿. 저기 사냥감이 있잖소."

나는 사냥군 아 씨와 함께 숨을 죽이고 바닥에 엎드렸다. 절벽 아래에는 크기가 3m는 넘는 거대한 백마가 우아한 자태로 걸어가고 있었다.

"저거, 진짜로 사냥하게?"

"사냥해야지. 왕국에서 현상금을 내걸지 않았는가."

나는 나무로 된 활을 들었다. 시위에 건 화살은 불로 달군 철제 화살촉이었다.

"저 놈의 뿔에 찔려 죽은 여자의 수만 무려 열 명이 넘네. 그들 중에는 귀족 가문의 영애도 있었다, 이 말이야."

"그래. 그건 나도 안타깝게 생각하네. 그런데...그 소문대로라면...."

"소문?"

사냥꾼 아 씨는 정말 조용한 목소리로 내게 속삭였다.

"유니콘들은 비처녀만 보면 죽인다고 하던데?"

"그렇지."

"그럼 유니콘이 죽이는 여자들은 그거란 말인가?"

"엄밀히 따지면 조금 다르긴 하지. 미안하지만 내가 그대의 모친에게 실례를 해도 되겠는가?"

"하지말게. 무슨 말인지 바로 알아들었으니."

사냥꾼 아 씨는 나를 향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나는 뒷 말을 삼키고 활 시위를 놓았다.

새애액.

"갸아아악!"

"쳇."

눈에 화살이 박힌 유니콘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하얀 피부에 붉은 피가 흐르기 시작하니 조금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저놈은 그냥 아무 여자나 죽이는 학살마다. 비처녀라고 아무나 죽이는 놈이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저놈은 자기 어미도 찔러 죽인 놈이라고 하더군."

"와우. 미친놈일세."

"그러니까 죽이러 온 거지. 평범한 사람들이 잡지를 못하니."

"오, 오오...."

나는 활에 다음 화살을 걸었다. 하지만 유니콘은 한쪽 눈으로 절벽 위의 우리를 발견하고는 절벽에 머리를 박기 시작했다.

"젠장."

조준이 흔들렸다. 놈은 흥분하여 뿔을 마구 벽에 박기 시작했다.

"크, 큰일났군! 저런 상태면 여자고 뭐고 아무나 박고 다닐텐데!"

"괜찮소. 저놈을 상대하기 위한 최강의 사냥꾼을 영입했으니."

휘이잉-

쿵!

하늘에서 거대한 돌덩이가 우리 머리 위로 날아갔다. 산길에 박힌 거대한 덩어리를 뽑아온것 같은 돌덩어리는 유니콘의 허리 옆에 정확히 떨어졌다.

캬아아아악!

유니콘은 비명을 지르며 엎어졌다. 나는 절벽 맞은 편을 향해 엄지를 들어올렸다.

"잘했다, 디아나!"

쿵, 쿵, 쿵.

절벽 너머에서, 석양을 등진 채 2m에 이르는 거한이 나타났다. 우리 둘을 전부 합친 것만 같은 거한은 손에 큼지막한 몽둥이를 들고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위, 위험하오!"

"괜찮소. 저놈은 절대 저 아이를 공격할 수 없거든."

"그게 무슨...? 헉!"

사냥꾼은 눈앞의 광경에 놀랐다.

낑, 끼잉....

유니콘은 디아나의 앞에 머리를 비비려고 했다. 압도적인 폭력 앞에 굴복한 것처럼, 유니콘은 자신의 앞으로 다가온 죽음에 눈을 감았다.

"유니콘은 절대 처녀를 공격할 수 없소."

"...처녀라고? 저게 여자라고?"

"뭐?"

나는 사냥꾼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지금 내 딸을 보고 저게라고 말한 이유가 뭐지?"

"따, 딸이라고?"

"아버지."

거한, 디아나는 절벽 위로 올라와 피가 뚝뚝흐르는 몽둥이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끝났소. 씻으러 갑시다."

"그래. 이보시오, 우리는 씻고 올테니 가서 국왕에게 보고하시오. 우리가 유니콘, '비처녀 킬러'를 죽였다고."

잠시 뒤.

"후우우...."

나는 나의 딸, 디아나와 함께 인근의 작은 샘에 들어왔다.

주변에는 인간들이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전격의 역장을 펼쳐놓았고, 우리는 안심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아르테미스, 가슴으로 장난치지마라."

"왜요?"

"보기 그러니까."

"히힛."

사냥꾼 모드를 해제한 아르테미스는 자신의 몸을 과시하며 물을 끼얹었다.

이런 장난은 그녀가 태어나고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딱히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녀를 대하는 나의 평정심은 다르다.

"한 번만 더 그런 식으로 장난치면 레토를 부르겠다."

"아, 그, 그러지마요. 엄마는 진짜 무섭단 말이예요."

"그래. 그러니까 얌전히 물속으로 들어오너라."

"칫."

내리갈굼이란 무서운 법.

아르테미스가 잘못을 하면 나는 레토를 내 침대로 부른다.

당연히 갈구는 건 침대에서 사랑으로 갈군다.

이 때의 플레이는 레토가 원하는 플레이가 아닌 다른 플레이이기 때문에, 레토는 내가 어떤 체위로 박았느냐에 따라 상황을 파악하고 아르테미스를 혼내거나 칭찬했다.

"네 덕분에 무사히 미친 유니콘을 죽였는데 네가 그러면 칭찬할 수 있겠니?"

"그거야 그렇지만, 그...."

아르테미스는 턱까지 물속에 집어넣으며 중얼거렸다.

"이 나이 되어서 아빠랑 같은 물에서 목욕한다고 하면 다들 좀...."

"......."

아아. 결국 오고만 것인가. 사춘기가.

"제우스 님이랑 같이 알몸으로 있는데 안 하냐고 놀린단 말이예요."

"아, 그런 얘기냐? 난 또 뭐라고."

-흔히들 그런 건 줄 알았다. 아빠랑 같이 빨래하지 말라는 그런 거.

"레토에게는 잘 이야기하마."

"고마워요. 그런데 아빠, 요즘...."

"그래. 많이 나오지."

인간들이 감당할 수 없는 괴물들.

"...인간들, 너무 약해."

우리가 멸망시킨 구 인류에 비교하여 현 인류는 신들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을만큼 너무 나약하다.

"안 그래도 지금 그거 찾느라 정신이 없는데 땅에서 솟아나는 괴물들까지...."

누가 만든 괴물들인지는 알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괴물들을 모조리 쓸어버리고 싶은데, 당장은 내가 찾아야하는 물건이 있다.

"조개만 찾아봐라, 확 그냥."

'그 조개.'

"프로메테우스, 이 나쁜 자식. 운명이 바뀌었다고 진작 얘기를 해줬어야지."

드디어 바닷 속 거품에서 그것이 탄생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