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4 전격 등장! 괴도 뷰지 (1)
오늘도 그리스는 평화롭다.
사건이 일어날 기미도 보이지 않고, 평화롭기 그지 없다.
아아, 그리스에는 평화가 가득해.
"흐에엥, 아빠아아아!"
"...아폴로-온?"
의술의 신, 아폴론은 울면서 내게 달려왔다. 막 레토를 안고 나온 나였기에 나는 절정에 기절한 레토를 보여줄 수 없어 문을 닫은 뒤 복도에서 그녀를 맞이했다.
"무슨 일이니? 아르테미스랑 싸우기라도 했니?"
"아니야! 내, 내가 기르던 소가!"
"소...."
아폴론이 기르는 소.
그것들은 올림포스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할 녀석들이었다.
-우유 먹으면 키 큰다!
-우유 먹으면 가슴이 커진다!
나는 우유를 만드는 중이었다. 그리고 우유를 통해 그리스인들의 체구를 높이고 몇몇 하데스와 같은 질환을 앓고 있는 여성들을 위한 치료제를 만드는 중이었다.
아폴론은 이를 위해 소를 직접 기르는 중이었다. 온화한 동물들을 기르며 음악을 들려주는 것이 그녀의 몇 안 되는 낙이었다.
"혹시 아르테미스가 도망치는 소들을 사냥하기라도 했니?"
"아니야! 소들이 도둑 맞았어!"
"도둑을 맞아...?"
도둑.
뭔가 기분이 쌔하다.
갑자기 오한이 들고 뭔가 잊었던 것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려고 하고 있다.
"이거 봐봐!"
아폴론은 내게 편지와도 같은 종이를 펼쳤다. 그곳에는 아폴론을 조롱하는 듯한 글귀가 적혀있었다.
-그대의 소는 내가 가져간다. 그리스 최고의 도둑, 위대한 제우스의 딸, 괴도 뷰지.
"...이건 누구야?"
내 딸 중에 이런 장난을 치는 자가 있나? 없다.
하물며 내 딸 중에 아폴론의 눈을 피해서 소를, 그것도 무려 50마리나 훔쳐갈 능력을 가진 이는 거의 없다.
"누구지?"
"아빠, 혹시 짐작가는 사람 있어?"
"......없는데."
없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없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도둑하면 떠오르는 신은 있지만, 그 아이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아빠 딸이라고 했으니까 아빠 딸 중에 한 명일 거 아니야?"
"그렇지. 그런데...."
한 둘이어야지. 나는 차마 내가 말을 하면서도 살짝 부끄러웠다.
"그래. 다 물어보고 다녔어! 그런데 아무도 없단 말이야. 아빠, 혹시 아빠가 몰래 낳은 아이 아니야?"
"얘는. 내가 우라노스 인줄 아느냐? 내가 여자가 되어 아이를 낳게?"
"...? 아, 그런 의미는 아니야. 나는 아빠가 또 다른 엄마 임신시킨 줄 알았지."
"...그렇군."
혹시나 아폴론이 엄한 생각을 하나 싶어서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내가 괜한 오해를 했다.
하지만 그럴 정도로 나는 아폴론의 소를 훔쳐간 존재, 괴도 뷰지의 존재가 전혀 짐작가지 않았다.
도대체 누구일까.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사이....
"제우스 님!"
멀리서 아테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연기와 함께 나타난 아테나를 맞이했다.
"오, 잘 왔다. 탐정 아테나...."
"혹시 누구 사생아 낳은 적 있어요?"
"......예?"
만나자마자 스트레이트로 턱을 얻어맞은 기분이다. 아테나의 표정은 심상치 않았고, 아폴론은 나와 슬금슬금 거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올림포스가 난리났어요. 누가 신들을 향해 소를 두 마리 바쳤는데...."
"앗...!"
아폴론은 비명을 질렀다.
"내, 내 소를...! 이 썩을 괴도 뷰지! 감히 신에게서 소를 훔쳐서 그걸 공물로 바쳤다고?! 그것도 두 마리나?!"
"...아폴론의 소였군요. 아폴론, 범인은 스스로 자백을 했어요."
"뭐라고요?"
아폴론은 뒷목을 잡았다.
소를 훔쳐간 범인이 올림포스 신들에게 공물을 바치는 것으로 모자라, 스스로 자백을 했다고 한다.
"이, 이...."
"범인은 누구지? 괴도 뷰지인가?"
"...그 이상한 이름은 뭐예요? 이 녀석입니다."
화륵.
아테나가 허리에 걸린 등불로 푸른 불꽃을 일으켰다. 올림포스 내부의 원탁과 연결된 불꽃은 어떤 광경을 내 눈에 보여주고 있었다.
"......어?"
날개 달린 모자.
날개 달린 신발.
가벼운 경장.
하지만 그걸 압도하는 외설스러운 복장.
"비키니 아머?"
나는 저것을 안다.
이 그리스에 현대 문명이 보일만한 것이 누구의 머리로부터 나왔겠는가.
나다.
"저 녀석이 괴도 뷰지야?"
"예, 그래요. 그녀는 스스로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어요. 단지 공물을 바치면서 올림포스 신들의 이름을 불렀죠. 제우스, 포세이돈, 하데스...."
아테나는 차가운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헤르메스."
"......."
네가 왜 여기서 나와.
그것도 왜 어른이 된 모습으로 나와.
"그, 나중에 자식을 낳으면 그 이름을 주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하아. 그럴 줄 알았어요. 당신 눈매를 쏙 닮은 걸 봐서는 당신 자식이 맞거든요."
"그럴 리가.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거지?"
"간단하죠."
아테나는 손가락을 펼쳤다.
"당신이 임신시킨 여자는 대략 몇 명?"
"...20명 정도 되나?"
"당신의 자식은 몇 명?"
"50명 정도 되지."
"그럼 질문. 당신이 안은 여자의 수는 몇 명이죠?"
"......아테나."
나는 아테나의 어깨를 붙잡았다.
"아무리 신이라도 질싸한 여자의 수를 모두 기억하고 있는 건 변태가 아닐까?"
"하.... 그래요. 그래서 이런 경우가 아닐까 싶어요."
아테나는 진심으로 짜증난다는 듯 중얼거렸다.
"당신은 그냥 하룻밤 불장난으로 섹스를 했지만, 아이가 생겼다면 어떻게 할래요?"
"......."
원샷 원킬.
"그게 헤르메스다?"
"네."
충격.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헤르메스를 낳았다.
...내가 아니라, 내가 하룻밤 불장난을 저질렀던 여자를 상대로.
"짐작가는 사람 없어요? 딸 얼굴을 보면 엄마가 생각날 거 아녜요."
"그, 뭐시냐. 옷 보자마자 팍 감이 오기는 했는데...."
저런 비키니 아머-발키리와 같은 옷을 입을 여자들은 그들 뿐이다.
"......혹시 플레이아데스 인가?"
"플레이아데스가 누군데요?!"
"아틀라스의 딸."
"그렇...이봐요."
아테나가 혀로 볼을 튕기며 헛웃음을 지었다.
"마이아, 메로페, 엘렉트라, 알키오네, 켈라이노, 아스테로페, 타이게테."
"......중에 한 명이지 않을까?"
이 중에 한 명, 헤르메스의 엄마가 있다.
* * *
<아주 먼 옛날>.
오늘도 그리스는 평화롭다.
사건이 일어날 기미도 보이지 않고, 평화롭기 그지 없다.
아아, 그리스에는 평화가 가득해.
"그러니까 너는 번개죽창."
키에엑!
괴수는 아스트라페를 통해 만들어낸 번개 모양의 창에 찔려 죽었다.
거대하고 굵은 촉수를 사방으로 흩날리며 주변 일대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연가시 같은 괴물은 기어이 쓰러지고 말았다.
"괜찮나? 아틀라스?"
"네, 괜찮습니다. 구원에 감사드립니다, 제우스 님."
나는 나보다 수십 배는 더 큰 거인의 인사를 받았다. 그녀는 아르테미스의 '사냥 모드'의 모티브가 된 여인으로, 누구보다도 가장 굳건하고 힘이 세보이고 강대해보이는 고대의 '티탄'이었다.
아틀라스.
지구를 떠받치는 것이 그녀의 임무이며, 그녀는 실제로 지금 지구를 떠받치고 있다.
현생을 살았던 나로서는 지구의 아래에 엄청난 크기의 거인이 지구를 들고 있다는 것이 새삼 두려웠지만, 나는 그녀에게 이어진 힘을 통해 자연법칙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틀라스는 지구의 '모형'을 들고 있었다. 이 모형은 실제 지구와 연동이 되어있고, 아틀라스가 지구를 떨어뜨리는 순간 지구는 혼란이 일어날 것이다.
뭔가 다른 방법이 없을까했지만, 아틀라스는 담담히 자신의 임무에 충실하고자 했다.
프로메테우스와 에피메테우스의 동생인 그녀는 헬리오스나 셀레네처럼 지구를 들고 있는 것으로 자신의 임무를 다하고자 했다.
그녀에게 이 일을 시킨 자는 가이아다.
그래서 가이아를 직접 설득하지 않는 이상, 누군가가 대신 지구를 들어주지 않는 이상 아틀라스는 지구와 연결된 모형인 지구본을 내려놓을 수 없다.
그래도 본인은 만족하고 있다니 다행이지만, 문제는 지구의 파괴를 바라는 자들이 하나 둘 아틀라스를 습격하기 시작했다는 것.
"고생이 많구나."
"아닙니다. 저와 제 딸들이 부족해서 제우스 님께 도움을 요청하게 되었습니다. 송구합니다."
아틀라스의 곁에는 일곱 명의 티탄이 있었다.
'플레이아데스'라는 이명을 가진 이 일곱 자매는 아틀라스를 수호하는 자가 되어 아틀라스에게 접근하는 이들을 원천 차단하는 일을 맡았으나, 이번 괴수는 상대적으로 강했다.
촉수괴물!
마치 내 머릿속 그리스 신화 괴물의 대표와도 같은 히드라를 연상케하는 괴물은 몸에서 수십 가닥의 돌기를 뽑아내어 플레이아데스를 습격했다.
플레이아데스는 아틀라스의 딸들답게 강했지만, 아틀라스를 노리는 괴물들은 나날이 강해졌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누군가가 너를 습격하겠지. 음…. 좋다, 내가 너희에게 힘을 불어넣어주마."
"정말이십니까?"
"그래. 플레이아데스, 일곱 자매에게 새로운 무기와 방어구를 건넬 것이다."
나는 플레이아데스의 이야기를 헤파이스토스에게 건넸고, 헤파이스토스는 플레이아데스에게 내가 디자인을 고안한 무장을 만들어 건넸다.
"이건…?"
"발키리."
뭐? 그리스 신화의 내용이 아니라고? 그건 북유럽 신화라고?
'어차피 같은 유럽인데 좀 빌려쓰면 어때.'
플레이아데스가 싸우는 모습을 보니 발키리가 딱 제격이었다. 가벼운 몸으로 하늘을 날아다니고, 중세의 기사처럼 날개 달린 갑옷을 입히는 존재를 명명하는데에는 발키리가 제격이었다.
먼 훗날 신화학자들이 발키리의 기원을 두고 어디가 먼저냐고 싸운다면, 적어도 '그리스 신화 쪽이 더 꼴리고 예쁘다'고 할 것이다.
"이게...갑옷?"
"노출 면적과 방어력은 비례하는 법. 너희들의 장점인 기동력을 살리기 위함이니 걱정하지 말거라."
무엇을 숨기랴.
이것은 비키니 아머다.
발키리-비키니 아머로서 상당히 노출 면적이 심하다.
그래서 준비했다.
"안에 이걸 받쳐 입거라."
"제우스 님, 이건…?"
"갑옷을 입었을 때 안에서 쓸리는 것을 방지해줄 것이야."
전신 스타킹!
나는 기어이 스타킹을 개발해내는데 성공했다.
최소한 스타킹의 기원에 대해 누군가 묻는다면 그리스의 발키리에게 전신 스타킹을 입힌 것이 그 시작이라고 사학자들이 정리할 것이다.
"흐흐."
전신 스타킹에 비키니 아머.
여러모로 눈이 호강하는 디자인이다.
"다치지 마라. 너희의 몸은 누구보다도 소중하다. 적에게 한 번도 맞지 않겠다는 각오로 갑옷을 입고 전투에 임하라."
"...네!"
의복을 갈아입은 플레이아데스는 무기와 갑옷에 부여된 나의 힘에 만족하며 활짝 웃었다.
앞으로 이들이 아틀라스를 도와 지구를 지킬 걸 생각하니 절로 기뻤다.
"위대하신 제우스 시여.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응? 뭐냐. 잠깐 들어줄까?"
"아닙니다. 이것은 제 운명입니다. 제우스 님께 부탁드릴 건 하나."
쿵.
아틀라스는 지구를 받치고 있는 와중에도 내게 한쪽 무릎을 꿇었다.
"제 아이들은 여기서 평생 저를 지키겠다고 스틱스 강에 맹세를 했습니다."
"앗."
"그래서 평생 남자를 모르고 살 것입니다. 제우스 님, 부디 한 번만. 제 딸들에게 여자의 기쁨을 알려주십시오."
"아앗."
"일곱 명 모두 처녀입니다."
"전부 벗어."
섹스.
* * *
"...확률은 1/7."
그녀들 사이에서 헤르메스의 엄마를 찾아야 한다.
"일곱 명이랑 모두 했어요?"
"...일곱 명 모두 처녀더라고."
"하."
"아니, 나도 몰랐지."
설마 한 방에 임신을 할 줄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