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우스 엑스 마키나-107화 (107/235)

EP.107 티탄과 인간의 시대 (1)

헤르메스가 올림포스에 합류했다.

비록 그녀는 자신의 바람대로 올림포스 12신의 자리에는 오를 수 없었으나, 내 충실한 전령으로 일하기로 했다.

"전령은 뭘 하면 되나요?"

"별로 할 일은 없을 거다. 사적인 일로 너를 쓰지는 않을 것이고, 공적인 일이 아니면 네게 일을 시키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헤르메스가 내 딸이라고는 하지만, 헤르메스에게 상시 5분 대기조와 같은 일을 시킬 수는 없다.

그렇다고 계속 내 옆에서 나를 따라다니라고 하기에는 교육적으로 좋지 못하다.

"내가 부르면 그 때 오너라."

"언제 부르실 건데요?"

"필요한 때."

"그러니까 그 필요한 때를 어떻게 알 수 있죠?"

티탄 여신들의 교육을 받았지만, 역시 쉬운 아이는 아니다.

가르치는 와중에도 그 헤라가 폭발했을 정도이니, 헤르메스가 속을 박박 긁는 건 정말 알아줘야 할 사안이었다.

"언제 저를 부를지 모르니 제가 항상 대기해야하잖아요. 하지만 제우스 님께서는 필요한 때 부르시겠다고 하셨죠? 그러면 저는 언제가 필요한 때인지 모르니까 항상 필요한 때가 올 때를 기다리고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럼 언제나 저는 제우스 님 곁에서 있어야겠는데요? 그런데 필요한 경우에만 있으라고 하셨으니, 이건 모순이라서 말이 안 되는데요?"

"하고 싶은 말은 다 했니?"

"아니요, 좀 더ㅡ"

나는 손으로 헤르메스의 입을 막아버렸다.

"그래서 내가 만들어왔지."

저런 말을 할까봐 미리 준비해뒀다.

"받아라."

"이건...?"

나는 헤르메스에게 원반과도 같은 작은 물건을 건넸다.

손바닥에 쏙 들어올만한 크기의 물건은 마치 달팽이의 껍질과도 같은 형태였으나, 두께는 1cm 정도로 그리 엄청 두꺼운 정도는 아니었다.

"내가 아스트라페로 신호를 보내는 순간, 이 작은 원반에 신호가 갈 것이다. 너는 이걸 항상 가지고 있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즉시 내게로 오너라. 알겠느냐?"

"아...."

헤르메스는 내게서 받은 작은 원반을 소중히 꼭 끌어안았다.

"아버지가 주신 선물.... 헤헤...."

"...크흠."

필요 때문에 준 것이라도 헤르메스에게는 의미가 깊은 걸까. 나는 괜히 머쓱해졌다.

"참고로 네가 내게 거꾸로 신호를 보낼 수도 있으니 참고해둬라."

"네? 그런 것도 가능해요?"

"일회용이기는 하지만. 안에 네가 하고 싶은 말을 한 다음, 그걸 깨뜨리면 된다. 그러면 안에 있던 나의 번개가 내게로 일부 돌아오게 되어있지."

"앗, 이거 혹시 제가 위험에 빠졌을 때를 대비해서...?"

"크흠."

정답이다.

내가 헤르메스를 전령으로 쓴다는 것은 단순히 심부름꾼 역할을 맡기려고 하는 게 아니다. 그녀는 올림포스를 대변하는 자로서, 나의 입을 대신하는 자로서 품위를 가지고 행동할 것이다.

"잠깐 멀리 날아가보거라. 네가 생각했을 때 이 정도면 신호가 닿지 않을 것 같다 싶은 곳까지."

"네!"

헤르메스는 날개달린 신발로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그녀는 단숨에 올림포스를 벗어났고, 나는 아스트라페의 힘을 손으로 끌어당기며 눈을 감았다.

"......선전포고의 전령인가."

언젠가 헤르메스가 진정한 올림포스의 전령으로 거듭나는 날, 아마 그녀에게 나를 대신하여 선전포고를 날리는 날이 오게 될 터.

가이아.

그녀를 상대로 나는 언젠가 선전포고를 날릴 것이다.

크로노스로 대표되는 고대 티탄들을 상대로 '티타노마키아'를 열었다면, 나는 운명론자인 가이아와 그녀의 수많은 하수인들-기간테스들을 상대로 '기간토마키아'를 일으킬 것이다.

아니다.

이미 전쟁은 시작되었다.

올림포스 전역에 있든 소위 '괴물', '마수'들은 가이아의 대지로부터 나온 생물들이다. 이제는 올림포스와 완전히 인연을 끊어버린 그녀는 레아의 방문조차 받지 않는 채, 올림포스를 위협하고 있다.

기가스.

키클롭스나 헤카톤케이레스와는 다른 존재로 가이아가 만들어낸 인공 생명체.

그들은 마치 게임이나 영화 속 로봇, 골렘, 인형과 같은 놈들이었다.

생식도 번식도 불가능한 그들의 목적은 단 하나.

나의 파멸.

놈들은 제우스 신, 올림포스의 파멸을 바라고 있다.

가이아 여신이 다시 필연을 이야기하며 모든 불멸자와 필멸자들이 자신에게 주어지고 정해진 운명을 따르라고 할 것이다.

인류는 자신에게 정해진 미래를 알기 위해 신들을 더 따를 것이고, 티탄 신들마저도 자신의 운명을 알아내고자 가이아 신을 추앙할 것이다.

그러나 가이아는 아직 공식적으로 내게 '전쟁'을 말하지 않고 있다.

괴수들을 만들어 인간들을 괴롭히면서, 그녀는 정작 나와 본격적으로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을 펼치자고 하지는 않고 있다.

불안하기는 하지만, 이건 기회다.

확정가챠 나올 때까지 기다리면 되는 게임이다.

천장을 찍을 때까지 가챠를 까다가, 결국 확정가챠가 나오면 성공하는 전쟁이다.

대 가이아 전에 있어서 필승의 존재.

누구보다도 강인한 전사로 태어날 자.

헤라클레스.

묻고 싶다.

'어머니가 누구니.'

어느 나라의 여자인지만 알면 그녀만 임신시키면 될텐데, 유감스럽게도 나는 졸지에 아무 여자나 전부 다 임신시키고 다녀야 할 팔자가 되었다.

헤라클레스를 찾기 위하여.

언젠가 헤라클레스가 태어나는 날, 나는 헤르메스를 급히 불러 헤라클레스를 올림포스로 초대할 것이다.

그리고 헤라의 모유를 먹일 것이다.

이유?

그런 게 있다.

파지지직.

나는 아스트라페의 힘을 이용해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헤르메스가 돌아올 때까지 잠시 휴식을 즐겼다.

잠시 뒤.

"하아, 하아, 하아...."

"...딸아?"

"아, 아버지...."

헤르메스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다리를 오므린 채 내게 검지를 들어올렸다.

"하, 한 번만 더 해주세요...."

"......."

진동벨의 이름은 '엑스터시'였다.

* * *

시간은 화살처럼 빨리 흘러갔다.

인간들은 나날이 번성하기 시작했고, 이제 좀 올림포스를 따라한 듯한 고대의 왕국처럼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델포이니, 스파르타니 뭐니 하나 둘 도시가 세워지기 시작했다.

한 가지 분명히 말하자면, 티탄들은 인간에 대해 딱히 좋은 시선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정확히는 짐승과 딱히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티탄들은 인간의 행보를 보며 생각을 바꿨다.

-위대하신 포세이돈 신이시여! 저의 공물을 바칩니다. 부디 제 자식이 바다 여행을 안전히 다녀올 수 있게 해주십시오.

-위대하신 하데스 신께 공물을 바칩니다. 돌아가신 제 아버지께서 부디 모진 고통을 받지 않게 선처하여 주십시오. 죄라고는 한 평생 바보같이 착하게 사신 죄밖에 없습니다.

-자애로운 땅의 여신, 데메테르시여! 부디 이번 농사는 풍년이 되게 해주십시오! 만약 그래주신다면 더 많은 공물을 바치겠습니다!

뇌물은 어디서든 통하더라.

인간들은 공물이라는 이름으로 신들에게 자신들이 가진 자산을 바쳤다. 공물이 직접 신들에게 오는 건 아니지만, 신들은 공물을 바탕으로 이전과는 다른 것을 얻을 수 있었다.

명예.

한낱 미물과도 같은 인간의 숭배를 받는다고 폄하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이게 인간들의 수가 너무 많아지고 대륙 곳곳에 왕국을 세우니 생각이 점점 변하게 된 것이다.

-인간들이 내 이름을 딴 도시를 만들었어! 세상에!

-흥, 고작 짐승들의 숭배를 받으니 기분 좋냐?

-인간들이 내 자식의 생일을 축하하는 축제를 만들었어! 세상에! 어떻게 인간들이 저런 생각을?!

-흐, 흥! 그래봤자 개미같은 녀석들이 하는 거야!

-인간들이 나와 제우스 님의 사랑에 대해 노래를 엮으셨어! 꺄악, 저기 잘 생긴 금발의 구릿빛 남자, 제우스 님의 변장 아니야?! 제우스 님이 노래를 들으셨나봐! 오늘 침소로 오래!

-뭐?! 씨발, 이건 아니지!!

신들은 이전부터 자신들이 믿는 곳에 신전을 만들게 하고 이들을 돌봤다. 그래서 이 신전 주위로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그 신을 숭배하기 시작햇다.

-나를 믿는 인간들이 무려 3천 명이 넘었지. 후후.

-그래? 나는 5천 명인데.

-본인은 1만.

신들은 자신을 숭배하는 인간의 수로 경쟁하기 시작했다. 이전 시대라면 서로 다투고 싸우겠지만, 그럴 놈들은 내가 타르타로스로 집어넣어서 경쟁할만한 거리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신자가 몇 명이나 되는가로 경쟁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명예의 경쟁으로, 이는 건전한 다툼이라 나도 딱히 건드리지 않았다.

신들마다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분야도 있고 인간들이 꺼리는 분야도 있지만, 신들에게 인간들의 삶을 또다른 '유희'가 된 게 분명했다.

긍정적인 일이었다.

신들이 갑자기 훼까닥 돌아서 인간들을 전부 죽여야한다고 날뛰기 시작하면 도무지 답이 없어지는 상황이라, 나는 인간들을 한 번 더 밀어버리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만약 인간 주제에 신을 우롱한다면?

만약 인간 주제에 자신이 신보다 더 뛰어나다고 한다면?

인간 중에서 신보다 더 뛰어난 이들은 반신 헤라클레스 뿐이다.

그 이외에는 그 어떤 자도 신보다 뛰어난 자들은 내 기억에 없던 것으로 기억한다.

인류의 번성은 기쁜 일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걱정스러운 일이 하나 있으니….

"경쟁이 과열되는군."

티탄 신들은 모두가 나만의 작은 도시를 가지고 싶어했다.

티탄 신들은 모두가 나만의 작은 신전을 가지고 싶어했다.

그렇게 하나 둘 가져나가기 시작하면 그 크기를 키우고 싶어했고, 많은 이들이 신도로 들어와 신전을 세우고 신을 추앙하기를 바랐다.

더 많은 공물.

더 많은 신도.

더 많은 신앙.

인간에게 친한 정도를 두고 내가 침소에 부르는 순서를 정하지도 않건만, 티탄 여신들은 내가 인간을 상당히 아끼고 사랑하자 이에 신경을 상당히 많이 썼다.

그리고 한 가지, 사고가 생겼다.

사고라고 하기에는 애매하고, 사건이라고 부르기에도 적당한 수준.

하나의 도시를 두고 여신들이 경쟁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해안가에 있는 이 도시는 제법 규모도 크고 사람들도 많아서 신이 신앙을 받기에는 정말 좋은 도시였다.

그런데 이 하나의 도시를 두고 두 신이 서로 자신이 주신이 되겠다고 나섰다.

"여긴 내가 다스리려고 했어."

"양보해주시겠어요, 넵튠?"

파지지직.

눈에서 불똥이 튄다.

나는 둘의 사이에서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어떻게 중재할 방법이 없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저 해안 도시를 지켜봐왔어."

"저기 있는 인간들에게 지혜를 전파한 건 저예요. 아주 오래전부터 도와줬고, 인간들 스스로 자신을 돌보는 여신이 누군지 깨닫게 해주려고 했단 말이에요!"

"그래? 그럼 잘 알겠네. 자기들이 물고기를 잡으러 다닐 때 바다를 진정시켜주는 여신이 누군지."

"...하아."

넵튠과 아테나.

둘은 하나의 도시를 두고 분쟁을 벌였다.

그리고 이들의 분쟁은 내게 큰 화를 불러일으키게 되니….

"좋아요! 침대에서 붙어봐요!"

"흥, 누가 질 줄 알고?! 오빠! '보지 겨루기'야!"

"......왜 내가 여신들 싸움의 중재를 섹스로 해야하는 거지."

나 제우스.

올림포스 대신들 사이의 싸움에 대해, 여전히 자지로 판결을 내리는 중이었다.

문제는.

'보지로 막상막하인데.'

침대 위에서 승부를 결정지을 수 없는 때가 있다.

이럴 때는....

"회의를 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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