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우스 엑스 마키나-109화 (109/235)

EP.109 티탄과 인간의 시대 (3)

이름 없는 이 도시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보기 위해, 나는 '넵튠'과 '미네르바'를 데리고 해안도시로 향했다.

"거기, 청년. 가족이랑 같이 여행을 왔는가? 여동생들이 참으로 예쁘구만!"

"가족은 가족이죠."

"응? 여동생들이 아니야?"

"둘 다 제 아내입니다."

"오...."

마을에서 우리와 처음 만난 노인은 혀를 내둘렀다.

"역시 남자는 잘생기고 봐야지. 암. 남자가 여자 여럿과 함께 사는 건 흠결이 아니야. 다만 조심하시게."

"뭘요?"

"아내들한테 쥐여짜여서.... 으하하하!"

노인은 내 어깨를 팡팡 두드리며 사라졌다. 넵튠과 미네르바는 그런 노인을 보며 어처구니 없다는 듯 그를 노려봤다.

"죽일까요?"

"아무리 인간이라고 한들...!"

"놔둬라. 이래서 인간이 재미있는 법이니."

역시 인간은 재미있다.

모르니까 저런 행동을 할 수 있는 거지, 알고 있다면 진작에 바닥에 넙죽 엎드렸을 것이다.

'판타지 드래곤들이 왜 유희를 다니는 지 알겠어.'

헤으응.

주신 제우스가 인간에게 맞았다! 와!

주신 제우스가 인간에게 반말을 들었다! 와!

주신 제우스가 아내인 두 여신에게 쥐여짜여 복상사를 당할 것이라는 섹드립을 들었다! 와!

'신선하고 짜릿해.'

나중에 한 번 연구를 해봐야겠다.

한 1년 정도만 정체를 숨기고 인간으로 살아가기.

인간들의 실태를 느껴볼 수 있는 동시에, 인간들을 상대로....

"흐흐흐."

정자가 없는 상태의 분신을 만들어 인간 세상 속에서 놀아도 재미있을 것 같다.

"유피테르,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 거예요?"

"음란한 생각 같은데."

"크흠."

표정에서 드러나버린 걸까?

조금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주신이 음란한 생각을 한다고 욕먹을 일은 아니다.

"마을 돌아다니면서 구경 좀 하려고."

"말 돌리지 마요."

"말 돌리는 거 아닌데? 인간들의 마을에서 몰래 한 번 하고 가려는 건데?"

"......어디서요?"

"그러니까 그걸 찾아봐야지."

나는 넵튠과 미네르바를 데리고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구경을 했다.

넵튠과 마을의 중앙에 있는 우물을 정화하기도 하고, 미네르바와 함께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쳐주기도 하고, 둘과 함께 마을의 음식점과도 같은 곳에서 인간들의 요리를 먹으며 새로운 맛을 느껴보기도 했다.

처음에는 그걸 하기 위해서 장소를 찾아다녔지만, 중간부터 둘은 인간들의 생활 자체에 큰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역시 인간들은 재미있다.

한 번 좆간으로 멸망을 당하고 난 뒤의 상태라서 그런지 몰라도, 인간들은 생각보다 순하고 착하고 성실한 모습이었다.

마을을 나온 뒤.

우리는 마을이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산 위에 올라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러면 넵튠, 아테나. 너희는 이 마을에서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냐?"

직접 인간들의 삶을 돌아다니며 확인했다. 과연 이들이 인간들을 위해 무엇을 준비할 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냥 아무 생각없이 '이게 좋겠지'라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좋았다.

"저는 호수를 만들어줄래요. 바닷물은 농사에 적합하지 않으니까, 호수를 만들어서 그곳에서 편하게 몸을 씻을 수 있게 해주겠어요."

넵튠의, 포세이돈의 선택은 호수였다.

"왜 호수를 선택했는지 이유를 들어봐도 되겠니?"

"바다의 물고기들은 많이 먹을 수 있지만 민물고기들은 많이 먹지 못할테고, 또 바닷물을 짜잖아요. 인간들이 안전하게 물을 가져다 쓸 수 있게 호수를 만들어주고 싶어요."

"그거면 우물이어도 될텐데, 왜 하필 호수야? 응?"

"그야 호수는...."

넵튠은 끝까지 말하지 못했다.

"저한테...뜻 깊은 곳이니까...."

그를 통해 나는 그녀가 어떤 마음으로 호수를 선택했는지 알 것 같았다.

'나랑 처음 한 곳이 호수였으니까.'

올림포스의 호수.

자연경관이 너무 예뻐서 여신들이 멱을 감는 곳.

넵튠에게 호수란 자신의 예쁜 추억이 깃들어있는 곳이다.

"좋긴 좋겠어. 해수는 바로 앞에서 공급할 수 있으니, 담수가 있으면 그걸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을테니. 그럼 미네르바, 너는?"

"......."

미네르바는 한참동안 길 한가운데를 바라봤다. 좌우로 탁 트인 대로는 양옆으로 건물들이 길게 늘어서있었다.

"저는 그게 있었으면 좋겠어요. 올리브 나무."

"올리브 나무?"

"네. 올리브 열매로 인간들이 다양한 걸 할 수 있을테고, 또 대로에 가로수를 만들어서 사람들이 언제든지 쉴 수 있는 곳을 만들어줬으면 좋겠어요."

미네르바의 말에 나는 어떤 그림이 그려졌다.

대로에 펼쳐진 가로수에서 사람들은 올리브를 딸 것이고, 그걸로 온갖 요리를 만드는데 활용할 것이다.

"그리고 올리브 오일이 피부 미용에 좋거든요."

"앗."

"호수에서 물에 젖으면 잠깐은 윤택이 나더라도, 올리브 오일을 손에 잔뜩 발라서 몸에 바르면... 어때요?"

"음...."

넵튠은 입술을 깨물며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호수에서의 섹스는 해봤다.

하지만 아직 올리브 오일 마사지 섹스는 해본 적이 없다.

탁 트인 백사장에서 돗자리 하나를 깔고, 그 위에 눕혀놓은 다음 올리브 오일을 손에 묻혀 여기저기를 만지다가, 결국 올리브 오일과 함께 삽입을....

'게임 끝났네.'

검증된 호수에서의 섹스냐.

아니면 아직 검증되지 않은 오일 플레이냐.

"알겠다. 이제 이걸로 올림포스에 가서 논의를 해보도록 하지."

둘의 선물을 들은 순간, 나는 직감했다.

하늘에서 이 위치를 내려다봤을 때 들었던 기시감은 틀리지 않았다.

지형적으로나 위치적으로나 나는 이곳이 어떤 이름으로 정해질 지 깨닫고 말았다.

'여기가 올리브로 유명하기는 하지.'

아테네.

그리스의 수도.

미네르바, 아테나가 가지고자 한 땅은 훗날 그리스-인간들의 나라 수도가 될 곳이었다.

* * *

아테네 사건 이후.

올림포스 신들의 나만의 작은 도시 만들기는 유행처럼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그들은 내가 원하는 방향성대로 움직여줬다. 인간들의 도시를 상대로 '여기 앞으로 내 땅!'이라고 외치며 강제로 알박기를 하는 경우는 없어졌다.

대신 인간들에게 '앞으로 이곳은 내가 다스릴 것이니, 너희들에게 한 가지 선물을 주마'라는 식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티탄 신들은 깨달았다.

인간들은 기브-앤-테이크가 확실한 종족이라고.

티탄 신이 선물을 주면 인간은 이에 대하여 공물이든 신앙이든 뭘로든 화답을 한다.

단지 나는 신들에게 분명한 경고를 하나 남겼다.

- 좆간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말라.

호의가 계속되면 그것이 권리인 줄 안다고, 인간들에게 처음 주는 선물 이후에 더이상 주지 말라고 나는 분명히 경고했다.

선물을 하나 둘 주다보면 선물에 익숙해지고, 받는데 익숙해지고, 그러다가 결국에는 신이 고작 이 정도밖에 주지 못하냐고 생각하게 된다고 엄히 말했다.

하지만 대체로 경고란 직접 겪어보기 전에는 잔소리로 들리는 법이 아니겠는가?

"요즘 인간들의 도시를 멸망시켜도 되냐는 말이 자주 올라오는군."

나는 티탄 신들의 투서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더 좋은 도시를 얻기 위해서 신들은 인간들에게 '선물공세'라는 경쟁을 벌이기 시작했고, 인간들은 신들의 선물에 처음에는 미칠듯이 기뻐하다가 결국 좆간짓을 하고 말았다.

"A신은 이만큼 주시던데. B신은 이걸 더 많이 주시던데. 감히 인간 주제에 신의 선물을 비교하다니. 쯧."

"신들이 문제죠, 그건. 애초에 오빠가 그렇게 이야기를 했는데 안 따른 게."

"그렇지. 이게 다 티탄들이 인간들에 대한 인지가 부족해서 그래."

"후후, 오빠가 인간들을 애지중지 하는 걸 티탄들도 정확히 알아야 할텐데요. 오빠가 인간들을 멸망시킨 건 인간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걸."

헤라는 내 품에 안겨 다른 신들을 비웃었다.

"올림포스에서는 오빠 말만 들어도 자다가도 아기가 생기는데 말이에요."

"그건 무슨 말이냐? 자다가 아기가 왜 생겨?"

"그냥 그런 말이에요. 후후, 자다가 오빠가 몰래 침대에 들어와서 푹푹 슉슉하고 갈 수 있잖아요?"

"그런 아까운 짓을 왜 해? 나는 내 자지에 가버리는 여자를 보고싶어하지, 자면서 신음만 흘리는 여자를 보고 싶지는 않아."

"그래도 해보고 싶지는 않아요?"

"......."

면간이라.

해보고 싶기는 하다.

하지만 면간은 자고로 나보다 더 대단한 상대를 상대로 해야 스릴이 넘치는 법.

그리스에 그럴 만한 상대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안전지상주의인 내가 그런 위험 천만한 짓을 할 이유도 없고.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그래도 오빠, 한 번 해보는 건 어때요? 제가 옆에서 도와드릴게요."

"네가?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그런 생각이 든 거야?"

"그냥요. 재미있잖아요. ...농담이고, 오빠의 말을 듣지 않는 티탄 여신들을 상대로 아주 좋은 벌이 될 거예요. 아아, 제우스 님이 직접 자지를 넣어주셨는데 자고 있어서 느끼지 못했다니!"

"쾌락없는 책임이라 그거냐?"

"후후, 오빠는 책임없는 쾌락이구요. 어때요?"

"음...."

끌리는 단어다.

책임없는 쾌락이라니.

"하지만 티탄 여신의 안에 쌌는데 책임없는 쾌락이 이루어질까?"

"그러게요. 그건 생각하지 못한 문제네요. 아이가 생기면 책임이 생겨버리니까요."

"그러게. 음...."

진정한 책임없는 쾌락은 무엇일까.

"인간들의 도시에 선물도 안 줬는데 사람들이 나를 숭배한다."

"뭐라고요?"

"그게 진짜 책임없는 쾌락 아닐까? 내가 선물도 안 줬는데 지들이 멋대로 나를 숭배하고 그런다니 말이야."

"...그건 진짜로 책임없는 쾌락이네요. 아, 오빠. 이건 어때요?"

헤라는 야릇한 얼굴로 내 귀에 속삭였다.

"우리가 인간으로 변신해서 한 번 해보는 건?"

"뭐?"

"새나 양이나 다른 걸로도 변신할 수 있는데, 인간으로 변하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잖아요."

"그럴 바에는 그냥 지금 이 상태로.... 아!"

유레카.

"헤라야. 우리 하나 실험해볼까?"

"뭔데요?"

"간단해."

드래곤의 유희에서 얻은 아이디어다.

"화신(化神)."

아바타.

분신.

"우리가 조종할 수 있는 가짜인간을 만들어서 지상에 보내는 거야."

"그게 의미가 있어요?"

"당연히 있지. 생각해봐."

나는 헤라가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꺼냈다.

"동정인 나를 만들고, 처녀인 너를 만들어. 그리고 함께 만나서 사랑을 나누게 하는 거, 어때?"

"......."

올림포스 12주신 대회의가 소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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