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13 인간체험 (4) 아르고스의 공주, 이오
인간!
여자!
미녀!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때 느낀 것은 '폭유'였다.
'어우야. 저게 가슴이야 수박이야.'
사람이 머리보다 더 큰 가슴을 들고 다닐 수 있다니. 그것도 두 개를 합친 크기가 아니라 각각의 가슴이 머리보다 컸다.
'저게 케르베로스인가?'
나는 가슴 크기하면 데메테르나 레아 정도면 충분히 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런 압도적인 크기의 가슴은 정말이지 충격적이었다.
가슴크기 대결을 벌인다면 티탄 여신을 상대로 감히 모욕이라고 할 만큼 컸다.
비록 가슴의 크기 덕분에 충분히 잘록한 허리나 골반이 도드라지지는 않았지만, 설령 그곳이 다소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워낙 가슴이 압도적이라 큰 상관이 없었다.
물론 그것과는 별개로, 저 여자가 내 샤워를 훔쳐보고 있다는 건 변하지 않는다. 나는 뭔가 가린다거나 하지 않고, 거리낌없이 밖으로 나섰다.
"무슨 일이오?"
"아, 아니, 그게…."
"언제까지 그렇게 보고 있을 생각이지?"
"......죄송해요."
여인은 그제서야 몸을 돌렸다. 하지만 자꾸만 뒤로 흘깃거리며 나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하긴, 신경이 쓰이겠지.
자기도 탈인간 사이즈의 가슴인데, 그에 걸맞는 탈인간 사이즈의 자지가 나타났으니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스륵, 스륵.
나는 대충 몸을 털어낸 뒤, 몸이 채 마르기도 전에 옷을 대충 둘러입었다.
"다 입었소. 이제 돌아봐도 좋소."
"......."
여인은 나를 계속 위아래로 훑어봤다. 뭔가 홀린 듯, 몽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게 살짝 진짜로 홀린 것 같았다.
"누구시오?"
"...저는 헤라 님을 모시는 무녀이자 이 나라, 아르고스의 공주. 이오라고 합니다."
"공...크흠."
나는 급히 한쪽 무릎을 꿇으며 예의를 갖췄다.
"송구합니다. 공주님께 무례를 끼쳤습니다."
"아, 아니에요. 제가 당신이 몸을 씻는데 함부로 본 게 잘못이죠. 그...누구세요?"
"저는 쥬피터라고 합니다. 방랑투사입니다."
"투사요?"
"예, 투사. 누군가는 저를 싸움꾼이라고 무시하지만, 저는 제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답니다."
나는 장식용으로 챙겨놓은 뿔을 하나 꺼냈다.
"저는 사람들을 위협하는 괴수들을 사냥하는 사냥꾼으로, 괴수들을 상대로 '싸우는 자'입니다. 이 땅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는 괴물을 처치하러 왔습니다."
"아, 설마 당신이 그…!"
"그?"
"평범한 사람들은 쓰러뜨릴 수 없다는 괴수들을 죽이고 다닌다는 그 사냥꾼들이군요!"
"...그렇습니다."
유피테르로서 곳곳에서 괴수 사냥을 다닌 게 다행히 먹혀드는 순간이었다.
괴수를 사냥하는 사람은 특정 개인이 아니었던만큼, 우리가 가는 곳마다 모습을 바꾸며 괴수를 쓰러뜨린 만큼, 다행히 방랑투사같은 말도 안 되는 말이 먹혀들었다.
'농사꾼이나 상인이라고 하는 것보다는 호감이지.'
이곳 그리스에서 남자가 먹히는 방법은 힘이다.
아무리 고대 왕정체제에 들어섰다고 하더라도 아직은 테스형도 태어나지 않은 시기인 만큼, 신들을 숭배하는 지금 이 시대는 근력과 생존력이 잘 먹히는 시대다.
이런 와중에 남들보다 체구가 더 크고 우람하고 피지컬 적으로 일단 3대 500은 기본으로 찍을 것 같은 외형인 내가 여성들의 호감을 사는 건 당연한 일.
이 시대에서 결혼하고 싶은 남자 1위를 따지는 요인은 피지컬이다. 내 몸은 그 피지컬의 정점에 있는 흑사자고.
"공주님, 혹시 무슨 일이라도?"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다만…."
이오 공주는 내 눈치를 보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그녀는 뭔가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자꾸 내 눈치를 보며 어필을 했다.
"그게, 실은…."
그리고 전생에 저런 인간 여자를 수도 없이 상대해본 나로서는 이오가 어떤 의도로 몸을 베베꼬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곤란한 일이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제가 힘이 닿는 한, 도와드리겠습니다."
호구등장!
저 여자의 맘마통을 빨 수만 있다면 호구짓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어디 마을에서 날뛰는 사자 하나를 죽이면 섹스해주겠다고 한다면, 이건 충분히 남는 장사다.
"정말인가요?"
"물론입니다. 이 쥬피터, 곤경에 처한 여인을 모른 척하고 넘어갈만큼 인정과 도리를 모르지 않습니다."
여인. 즉, 여자 한정이다.
"무엇이 고민입니까?"
"...실은 제 아버지께서는 강의 신이세요. 그분께서는 이 나라, 아르고스를 만들면서 제 남편감을 찾고자 하셨죠."
"혹시 강제로 결혼을 맺게 하려고 하는 겁니까?"
"네? 무슨 말씀이세요. 아버지가 결혼하라고 하는 대상과 결혼하는 건 당연한 일인 걸요."
"......."
이래도 되는 걸까, 그리스는.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 아버지께서는 강한 남자와 저를 결혼시키고 싶어하셔요. 그리스 최고의 남자를요. 그래서 남편으로 입후보한 자들끼리 서로 대결을 펼치게 만들었죠."
"음, 그렇습니까?"
이건 그리스에서 제법 흔한 이야기로 알고 있다.
왕국의 왕이 후계를 잇기 위해 공주를 강한 남자와 결혼시키는 것.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나중에는 이게 영웅과 자신의 공주를 결혼시키는 일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경쟁에서 우승하는 인간들은 대부분 '영웅'으로 분류되는 인간들이며, 이들은 대부분 조상 중에 티탄 신이 있기 마련이었다.
즉, 세대를 거치게 되며 희석된 피라도 신의 피가 왕가의 피에 섞이면서 왕권을 더욱 공고히 다질 수 있게 되는 셈.
-우리 왕가에는 위대한 제우스 님의 피가 흐르고 있다!
누가 감히 제우스 신의 피가 흐르는 왕가를 업신여길까!
"네. 그런데...저의 남편 후보로 입후보 한 남자들 중에 스모르페니우스라는 자가 있어요. 다른 이들보다 훨씬 더 싸움을 잘 하고, 우승자로 점쳐지는 남자죠."
"음, 그래서?"
"문제는 그 남자가…. 흑, 흐윽…!"
이오는 바닥에 주저앉으며 갑자기 흐느끼기 시작했다.
"왜, 왜 그러시오? 결혼 상대로 마음에 들지 않기라도 한 거요?"
"그 남자가, 흐끅, 제가 모시는 헤라 님의 신상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그 자리에 제우스 님의 신상을 세우려고 해요…!"
"......."
난감하다.
진짜로 난감하다.
헤라의 신상을 옮긴다는 건 분명 헤라를 상대로 불경한 짓이다.
하지만 그 자리에 제우스의 신상이 나타난다면? 헤라가 공식적으로는 스모르페니우스라는 자의 행동에 대해 불만을 드러낼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인간들의 행동이라고는 하지만, 자신보다 더 위대한 제우스의 신상을 놓겠다는데 대놓고 불만을 드러낼 수 있을까?
"하지만 그렇게 하면 헤라 님의 분노를 사게 될텐데?"
"맞아요. 그들은 신들께 불경한 행위라는 걸 전혀 몰라요. 아버지께도 말씀드렸지만, 그분은 마냥 좋게만 생각하고 계셔요. 설령 헤라 님께서 불쾌하게 생각하셔도, 제우스 님께서 좋아하실테니 상관 없을 거라고…."
"음…."
그건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헤라를 곤란하게 한 것에 대해서 제우스는 더 분노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럼 내가 그대의 남편이 되면 되는 것이오?"
"네?"
"그대가 바라는 것은 스모르페니우스를 막아달라는 것이 아니오? 하지만 나는 괴수를 죽이는 방법은 알아도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소. 그대가 바라는 대로 도와주려고 한다면 부득이 그를 쓰러뜨려야겠지."
"......."
나는 일부러 이오를 떠봤다.
이제 그녀가 어떤 선택을 내리는가에 따라 내 대응도 달라지게 될 터.
"...부디."
이오는 내게로 다가와 손을 맞잡았다.
"저를 도와주세요."
"물론."
야스.
"아, 그런데 중요한 게 있소."
"중요한 거요?"
"의뢰비는 선불이오."
"네? 꺄, 꺄읍…!!"
이제 이 젖통은 내 거다.
* * *
헤라님, 흐끅, 헤라님…!
"!!"
의자에 앉아 자고있는 제우스를 상대로 몰래 장난을 치고 있던 헤라는 자신을 부르는 신도의 간곡한 부름에 화들짝 놀랐다.
"이 소리는…?"
헤라는 지상을 향한 화로에 손을 뻗었다. 그러자 조금 어두운 숲에 한 금발의 여인이 알몸으로 헐떡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저게 미쳤나?"
헤라는 순수하게 궁금했다.
왜 저 아이는 가버리면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걸까.
"아르고스 왕국의 무녀였지. 음, 어째서? ...어우야. 세상에."
헤라는 나무에 가려진 남자를 드디어 발견했다. 구릿빛 피부를 가진 남자는 자신의 무녀 '이오'를 상대로 거칠게 자지를 쑤셔박고 있었다.
아니, 강간하고 있었다.
강제로 네 발로 엎드리게 만든 다음, 뒤에서 두 가슴을 움켜쥐며 개처럼 허리를 흔들고 있었다.
"가버리면서 나를 부르는 내 무녀랑 내 무녀를 상대로 강간하는 남자라니. 누구에게 벌을...아니, 잠깐."
헤라는 순간 등허리에 핏기가 가셨다.
"이 사람이?"
이오의 안으로 드나드는 자지의 형태는 너무나도 익숙한 형태였다. 멀리서 보더라도, 약간의 핏물과 거품에 가려져있다고 하더라도, 그 특유의 크기와 형태는 도저히 숨길래야 숨길 수 없었다.
사락!
헤라는 단숨에 지상으로 내려가 나무 뒤에 숨었다. 나무 너머에는 유노였던 자신과 비슷한 금발벽안의 이오가 자신과 거의 똑같은 자세로 범해지고 있었다.
"후우, 후우. 좋지? 응? 공주님. 안 그래?"
"아, 아니에요…! 이건, 흐끅, 헤라 님을 위해서…!"
이오는 왜 자신을 위해서 강간을 당하는 걸까. 그녀의 눈에는 강간을 당하는 것에 대한 수치심과 분노가 서려있었지만, 동시에 울분을 참는 듯 하기도 했다.
싫지만, 점점 좋아지고 있는 그런 기분.
"...감히."
헤라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자신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내 남편에게 따먹히는 주제에, 싫어한다고…?"
아무리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한들, 제우스는 제우스다.
"공주님, 슬슬 싸겠습니다. 스모르페니우스, 그 자를 쓰러뜨려 헤라의 여신상을 지켜주도록 하지요."
"흐, 흐읏, 하아윽…!"
"그 대가로, 보지를 마음껏 받아가겠습니다."
"아, 아응, 아앗…! 이, 이런 거 몰라…! 아읏, 처음 만난 남자에게 범해지는데, 왜 기분이…!"
푸슈우우웃!!!
"좋…."
털썩.
이오는 쓰러졌다.
한 차례 사정을 마친 쥬피터는 이오의 등 뒤에 쓰러지듯 얼굴을 묻었다.
"하아, 하아, 크하아…."
"......."
제우스에게는 볼 수 없던, 약한 모습.
그 제우스가 인간 여자를 상대로 질싸를 하고 지쳐서 거친 호흡을 내쉰다?
"......응기잇."
헤라는 눈앞이 하얗게 변하고 말았다.
그리고.
인간인 걸 알면서도.
인간인 걸 알고 있지만.
"......건방져."
보지로 제우스를 지치게 만든다.
그걸 성공해낸 이오라는 저 여자가, 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