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우스 엑스 마키나-115화 (115/235)

EP.115 인간체험 (6) 악인

"하! 내가 어처구니가 없어서!"

이오는 침실에 들어오자마자 외투를 바닥에 내던졌다. 스스로 머리를 쥐어 뜯으며 침대에 엎어진 그녀는 침대에 대고 머리를 쾅쾅 찧었다.

"아아아아악!!!!"

히스테리 가득한 그녀의 비명은 침대의 솜에 파묻혀 사그라들었다.

비명을 지르고, 주먹을 휘두르며, 애꿎은 침대는 이오의 모든 신경질을 다 받아주고 장렬히 아래로 훅 꺼졌다. 이오는 산발이 된 채 고개를 들어올렸다.

"정말 그 새끼랑 결혼을 해야해?"

불쾌하다.

여자를 상대로 냅다 범해버린 그 태도.

자신을 마치 좆이나 꼽고 마음대로 싸도 되는 양 쓰는 것도 불쾌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불쾌한 건, 그가 감히 헤라 여신을 상대로 자비를 시험한다는 것!

"으으, 헤라 여신님. 제발 그 새끼 꼬추 터지게 해주세요. 제발요. 당신의 신전에서 감히 노숙을 하는 저 불경한 자에게 저주를 내려주세요!"

이오는 헤라에게 기도했다.

헤라가 과연 들을 지 아닐 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헤라가 자신의 신전에서 일어나는 일을 안다면 그 화가 어디까지 미칠 지 아무도 몰랐다.

이나코스에게 말해서 이 불경한 자를 처단해달라고 할까?

안 된다.

이미 이오는 그 남자에게 '당했다'. 이런 상황에서 함부로 그 남자를 자극했다가는 자신 뿐만 아니라 부모까지 망신을 당할 수 있다.

자식 관리를 어떻게 했길래 이방에서 온 남자에게 범해지냐고.

그러고도 신이라고 할 수 있냐고.

억울함에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지만, 그의 힘은 진짜다.

-아버지, 정말 저 자가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는 걸까요? 사기는 아니겠죠?

-딸아. 저 자는 진짜다. 그가 가지고 있는 용력이 어느정도인지 나는 충분히 느낄 수 있어. 그가 걸치고 있는 건 누군가로부터 사들이거나 비겁하게 빼앗은 것이 아니다.

이나코스가 그의 힘을 인정했다. 이나코스 본인 조차 함부로 건드리기 어려워하는 땅의 괴물들을 상대로 이겼다.

-딸아, 나는 개인적으로 저 자가 네 반려가 되었으면 좋겠구나.

그가 가지고 있는 물건들은 전부 괴수들을 쓰러뜨리고 얻은 것이었으며, 그런 힘이 있기에 이나코스도 쥬피터를 긍정적으로 보게 되었다.

그리고 이오는 슬쩍 떠봤다.

-만약 저 자가 저를 상대로 함부로 한다면 어떻게 하죠?

-함부로? 딸아. 너는 내 딸이기 이전에 한 명의 여인이다. 강한 남자에게 시집을 가는 건 여인으로서 가진 최고의 영예야. 네가 모시는 헤라 님과 제우스 님의 사이를 봐도 그렇지!

-.......

-우수한 남자와 결혼하는 것은 너의 축복이란다. 강한 남자와 결혼하여 건강한 아이를 낳는 것! 너의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그것이 여자의 기쁨이라는 거지. 으핳핳!

-.......

이나코스가 이런 상황이니, 함부로 범해졌다고 이야기를 해도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아무도 내 이야기를 들어줄 수 없어. 으으으…!"

결국 이오는 혼자서 끙끙 앓을 수밖에 없었고, 홀로 결론을 지어야만 했다.

'어디 한 번 두고보자고.'

이오는 시종을 불렀다. 공주의 부름에 들어온 시종은 이오를 보며 흠칫 놀랐다.

"공주님, 무슨 일입니까?"

"...소문을 들었어. 오늘, 누가 나를 범하러 올 거라고."

"예?!?!"

시종들은 모두 화들짝 놀랐다.

누가 감히 공주를 범하려고 한단 말인가!

도대체 그런 소문이 어디서 나왔단 말인가!

이오의 머릿속에서 나온 거짓이다.

정확히는 이오가 혹시나 싶어서 생각한 망상이다.

쥬피터라는 자에게 밤에 찾아가지 않는다면, 그 자가 자신을 찾아오지 않을까?

"혹시 스모르페니우스, 그 자 입니까?!"

그런데 시종들은 도대체 왜 다른 자를 말할까. 이오는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누군지는 몰라. 그냥, 그런 소문을 들었어."

"공주님, 하아...."

시종들은 안도했다.

부마의 자리에 입후보한 자가 경쟁을 치르기도 전에 공주를 강제로 안는다?

당사자는 이나코스에게 갈기갈기 찢어질 것이고, 다른 부마들은 더럽혀진 이오를 향한 구애를 그만 둘 것이다.

"공주님께서 그런 이야기를 하신다는 건 뜬소문은 아니겠네요. 경비를 강화하라고 일러두겠습니다."

"...고마워."

"하여튼 스모르페니우스, 그 자는 정말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첫 날부터 공주님을 바라보는 눈빛이 이상했다니까요?"

"......."

스모르페니우스에게는 다소 미안하지만, 본인의 평소 행실이 그러하니 차마 옹호할 방법도 생각도 없었다.

'그런 행동만 안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이오는 스스로에게 되뇌였다.

언제 음흉한 눈으로 바라보는 자가 있다고 하여 그 자가 그런 행동을 저지르는가?

쥬피터, 그 자는 정말 무심한 눈으로 자신을 범했다.

치욕스러우나, 누구에게도 알릴 수 없는 노릇.

"국왕폐하께 말씀드려서 경비를 늘리겠습니다. 오늘, 그 누구도 감히 이오 님의 처소에 들어오지 못할 것입니다!"

시종들은 철통경비를 약속하며 떠났다. 곧 여러 사람의 인기척과 함께 이오의 침실 근처에 여러 사람들이 배치되기 시작했고, 이오는 안심하며 침대에 누웠다.

잠시라도.

잠깐이라도 안정을 가지고 싶었다.

"이렇게 된 이상...."

이오는 한 가지 계획을 세웠다.

"피할 수 없다면, 각오를 하면 돼."

자신을 강간할 자를 상대로 목숨을 걸고 자유를 쟁취한다. 자신은 한낱 성적 노리개가 아니라, 한 명의 여자라는 것을 분명히 밝힌다.

암컷 이오가 아니라, 아르고스의 공주 이오라는 것을 분명히 한다!

'일단 쥬피터를 이기게 해야 해.'

이미 한 남자와 살을 섞은 몸.

다른 남자와 살을 섞어 스스로를 부정하게 만들 수는 없다. 그건 헤라 여신에 대한 모욕이다.

'쥬피터를 남편으로 만들어야 해.'

그리고 쥬피터가 모든 구혼자들을 쓰러뜨리고 난 뒤, 모종의 사고로 떠나게 만든다.

그게 나라든, 아니면 이 세상이든.

"그래, 이대로는 안 돼. 만약에 그 남자가 내 남편이 된다면...."

두근.

이오는 가슴이 철렁내려앉았다. 마치 환상통을 겪기라도 하듯, 아랫배의 안쪽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으, 으으...."

공포. 두려움.

생전 처음이었다. 그렇게 떨리는 기분은.

그래서 더 무서웠다.

자신은 분명 쥬피터에게 범해졌는데, 범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바람에 평생 그에게 범해질까봐.

-그거 알아? 제우스 님에게 범해진 여신들은 하나같이 제우스 님에게 사랑에 빠졌다고 하더군.

-에이, 그게 무슨 미친 소리야?

-제우스 님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말이겠지.

그리고 혹시나, 만약 자신의 몸이 먼저 마음을 배신하게 된다면?

쥬피터에게 몸을 몇 번이고 허락하고 허락하다가 결국 닫으려고 했던 마음까지 열리고 만다면?

"아냐, 그럴 리가 없어! 그야, 그야, 나는 그 자에게 당했는 걸...."

이오는 우울해졌다.

"그래. 정신 차려, 이오야. 너는 그 남자에게 강간을 당한 거야. 강제로 범해진 거라고. 하지만 너는 아르고스의 공주이고, 위대한 이나코스의 딸이야. 내가 강간당한 걸 알리는 식으로 하면 안 돼. 그건 아버지와 아르고스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이야."

이오는 자기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듯 중얼거리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래. 그 남자를 우승시켜. 그리고 결혼한 다음, 독살로 처리하는 거야. 그러면 미망인이 되는 거잖아? 그리스 남자들이 처녀 다음으로 껌뻑 죽는다는 미망인. 그래, 그냥 비처녀가 될 바에는 과부가 되는 게 훨씬 좋아."

이오는 자신의 뺨을 다독이며 마음을 다잡았다.

어차피 강간당한 몸, 아르고스의 명예를 위해서는-

아아악!!

어디선가 비명이 들렸다. 이오는 무슨 일인가 싶어 급히 침대에서 일어났다.

"무슨 일이에요?!"

"공주님, 그...."

병사들은 몹시 난감한 얼굴로 누군가를 향해 창을 겨누고 있었다.

병사들보다 조금 큰 체구를 가진 남자는 간사하고 비릿한 얼굴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다.

"당신은...스모르페니우스?"

"크, 흐흐."

남자, 스모르페니우스는 혀로 입맛을 다시며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젠장, 하필 경비가 더 늘었을 줄이야...."

"공주님, 그게 실은...."

"......네?"

충격.

스모르페니우스는 이오가 생각했던 끔직한 짓을 진짜로 저지르려고 했다.

"씁, 아쉽군. 여차하면 따먹고 도망가려고 했는데 말이야."

"뭐라고요?"

"그 젖통을 보고 발기 안한 남자는 없을 걸? 흐흐, 진짜로 아쉽구나. 흔들리는 걸 직접 벗겨서 내가 이걸로 흔들리게 만들고 싶었거늘."

스모르페니우스는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앞뒤로 허리를 움직였다.

그 상스러운 움직임에 병사들은 눈을 부라리며 그에게 창을 강하게 겨눴으나, 그는 어깨만 으쓱이며 창을 붙잡았다.

"약해."

우지끈!

스모르페니우스는 비릿한 미소로 창을 부순 뒤, 그걸 병사들에게 집어던졌다. 이오의 옆으로 붉은 피가 튀었고, 이오는 핏기가 가셨다.

"이, 이 무슨…!"

"그 쥬피터라는 놈을 봤거든. 이야, 그 괴물 새끼. 이길 수 없겠더라고. 근데 그 새끼가 안 왔으면 네 젖통은 내 거라는 말이지? 그러니까 그냥 떠나면 아쉽잖아?"

스모르페니우스는 병사들을 옆으로 밀치며 이오에게로 다가왔다. 이오는 옆에 있던 물병을 집어던지며 그를 막으려고 했으나, 스모르페니우스는 물병을 팔로 막으며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소용없다. 나는 인간이지만 티탄 신의 피가 흐르고 있다 이거야. 흐흐."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몰라도 돼. 네가 알아야 하는 건 내 좆맛 뿐이니까."

스모르페니우스는 단숨에 이오를 향해 달려와 어깨를 밀쳤다. 이오는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졌고, 스모르페니우스는 옷을 여미며 자신의 자지를 꺼냈다.

"꺄아아! ...아아?"

"뭐, 뭐야. 왜 비명을 지르다 말어?"

"......."

이오의 시선은 스모르페니우스의 아래에 고정되어있었다. 스모르페니우스는 경악도 공포도 치욕스러움도 아닌,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의아함'이 가득한 이오의 모습에 손발이 굳었다.

"뭐, 뭐!"

"이게...자지?"

"그, 그럼! 당연히 자지지! 흐하하, 놀랐느냐!"

"......내 손가락보다, 작은 게 자지라고?"

이오는 혼란에 빠졌다.

그리고 스모르페니우스는 분노에 가득찼다.

"이 썩을! 감히 크로노스의 피가 흐르는 나의 자지를 두고 뭐라고?! 건방진 년! 너는 내 자지에 깔려-"

"매너가 없군."

콰ㅡㅡ앙!!

"여자에게 년이라니. 어디서 감히 그런 말을 하는가?"

스모르페니우스의 뒤통수를 후려갈기며 바닥에 얼굴을 처박게 만든 거한, 쥬피터는 차가운 얼굴로 스모르페니우스를 비웃었다.

"여자에게 그딴 말을 지껄이다니. 쓰레기 새끼."

"......."

너는 나를 강간했잖아.

이오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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