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우스 엑스 마키나-128화 (128/235)

EP.128 거대한 위협 (1)

평화로운 크레타 섬.

아스테리오스 왕의 치하 하에 크레타 왕국은 번개같은 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가 왕국을 다스린지 이제 고작 20년이 지났을 뿐이지만, 크레타 왕국은 주변 섬으로 왕국의 영토를 외연확장해도 될 정도로 성장했다.

물론 왕은 그걸 바라지 않았다.

크레타라는 왕국을 누구도 침범할 수 없도록 강대한 국가로 만들었지만, 함부로 외국으로 침공하지 않도록 만들었다.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되, 그것을 함부로 휘두르지 않는다.

단, 왕국을 위험에 처하게 하는 존재에 대해서는 철저히 대응한다.

아스테리오스 왕은 나날이 인기가 높아졌다.

높아져야만 했다.

"아스테리오스 왕이시여, 저는 감히 왕에게 고발을 하고자 찾아왔습니다."

"저희도요."

"저희도 고발을 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국민들은 아스테리오스 왕을 향해 성난 얼굴로 무릎을 꿇었다.

그가 잘못한 것이 없는 건 알지만, 가슴 속 차오르는 울분을 도저히 삭힐 수 없었다.

"무엇 때문에 찾아온 건가?"

아스테리오스 왕은 피곤한 얼굴로 물었다.

그는 이미 이들이 찾아온 이유에 대해 정확하게 짐작하고 있었지만,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항상 슬픈 예감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

"왕자님들이."

"미안하네."

왕은 사과부터했다.

왕이 백성들을 향해 사과하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 아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나 왕은 사과를 했다.

"내가 그저 미안하네."

"아닙니다. 이게 다 왕자님들이 제우스 신의 피를 이어받아서 그런 거지요."

"...그대들은 나의 양자들, 왕자들을 고발하려고 온 거지?"

고발자들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왕은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시종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왕자들을 데려오라!"

잠시 뒤.

왕자들은 쭈뼛거리며 왕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전부 머리가 찰랑거리는 금발에 구릿빛 피부를 가진 이들로, 누구보다도 생명력이 넘치는 이들이었다.

"나의 아이들아. 너희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있느냐?"

"죄송합니다, 아버님."

"죄송하다고 하면 끝나냐?"

"아, 아닙니다."

"그래, 무엇을 잘못했지?"

"술에 취한 나머지…."

쾅!

왕은 옥좌를 강하게 주먹으로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술에 취해서 뭐!!!"

"...죄송합니다, 아버님!"

"나에게 죄송할 일이 아니다! 너는 너희들이 욕보인 여인들을 향해 사과해야 할 것이다!"

"죄송합니다."

왕자들은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왕자들의 진심어린 사과에도 백성들은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으나, 이내 씩씩거리며 주먹을 내렸다.

"죄송하면…. 후우. 아스테리오스 왕의 얼굴을 봐서 참겠소."

"하지만 다음에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투쟁할 것이오."

"국왕께서 정하신 율법의 지엄함에 기댈 뿐!"

백성들은 씩씩거리며 왕성을 떠났다.

왕은 골치아프다는 얼굴로 옥좌에 몸을 기대듯 누웠다.

"이 녀석들아, 어쩌자고 그런 참담한 짓을 저질렀어?"

"그, 그게."

"이, 일방적으로 한 건 아닙니다! 그, 함께 술을 마시다보니 서로 눈이 맞았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솔직히, 억울합니다! 저희가 강제로 범한 것도 아닌…."

쾅!

왕이 다시금 옥좌를 손으로 내려쳤다.

그 울림은 '영웅'이라고 인정을 받는 세 왕자조차 두려움에 벌벌 떨 정도였다.

"내가 언제 너희들이 화간을 한 것을 뭐라고 했느냐! 남녀가 잠시 눈이 맞은 것을 뭐라고 했느냔 말이다!"

"그, 그럼…?"

"한 명당 두 세명씩 임신을 시킨 게 말이나 돼!!"

왕의 절규에 가까운 호통에 세 왕자는 겸연쩍게 웃었다. 왕은 그 모습을 보며 가슴을 두드렸다.

"한 놈은 과부인 여인과 그 딸을 건드리지를 않나, 한 명은 쌍둥이 자매를 건드리지를 않나, 한 명은 함께 공부하는 여인 셋을 건드리지를 않나!"

"오해입니다! 저는 과부인 걸 몰랐습니다! 그도 그럴게, 본인은 그냥 언니라고 말했는 걸요!"

"저도 억울합니다! 둘은 비교도 안 될 만큼 똑같았단 말입니다! 직접 넣었을 때야 둘이 다르다는 걸 알았다고요!"

"진짜로 억울합니다. 셋 다 저 좋다면서 달려드는 걸 어떻게 합니까? 제가 만약 셋을 함께 안지 않았다면, 분명 누군가는 칼에 찔렸을 지도 모릅니다!"

세 왕자의 말에 왕은 뒷목을 잡으며 주저앉았다.

"크헉, 허어억…."

"아버님!!"

"이, 이…. 하아. 아니다. 그래. 차라리 이렇게 된 게 다행이지. 잘 들어라. 너희는 너희가 즐긴 쾌락에 대해 책임을 져야할 것이다."

왕은 힘든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중에 다음 왕을 정할 때, 너희들이 과연 좋은 남편과 아버지가 되었는지에 대해 중점을 두고 판단할 것이다."

"예? 그 말씀은…."

"너희들이 임신시킨 여자에 대해서는 너희가 책임지고 지아비 노릇을 하란 말이다!"

모녀를 임신시킨 장남.

쌍둥이 자매를 임신시킨 차남.

함께 공부하던 선배-동급생-후배 셋을 동시에 임신시킨 삼남.

그들은 모두 크레타의 왕자들이며, 금발벽안에 구릿빛 피부를 가진 근육질의 사내들이며, 모두 제우스 신의 피를 이어받은 이들이다.

"...하아."

왕의 한숨은 깊어졌다.

성난 군중이 왕에게 직접적으로 따지지 못한 것도, 왕자들에게 함부로 하지 못한 것도 모두 왕자들이 왕이 직접 낳은 아들들이 아닌 제우스의 아들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아들들아."

왕은 진심으로 왕자들을 아들로 대했다. 왕자들 또한 왕을 진심으로 아버지로서 대했다.

"나는 너희를 가슴으로 키웠다."

"아버지…!"

왕자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왕은 천천히 왕좌에서 일어나 왕좌 뒤, 크레타 섬의 전경이 보이는 절벽을 향해 몸을 돌렸다.

"제우스 신께서는 자신이 품은 여인, 너희들의 어머니를 책임지기 위해 내게 숙명을 맡기셨다. 위대하신 분이 감히 아버지를 위치로 당신과 나를 함께 서는 자로 만들어주셨어. 그분께서는 내게 힘을 주시고, 왕국을 지킬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셨지. 그래서 나는 제우스 신에게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너희들의 대부가 되고자 했지만…."

쏴아아.

파도가 절벽에 부딪혔다.

"나는 너희들을 키우며, 진정으로 나의 아들들로 생각했단다. 하지만 내가 너희들을 잘못 키운 것 같구나. 술에 취한 것? 그것은 전혀 문제가 아니다. 사내는 자신이 저지른 일에 책임을 져야 진정으로 사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보아라, 너희들은 너희의 행동에 책임을 지려고 하고 있느냐?"

"그건…."

"내가 너희를 아무 여자나 후리고 다니는 한량으로 길렀거늘, 어찌 제우스 신께 기도를 올리고 그분을 향해 신앙을 바칠 수 있겠느냐? 아아, 나의 잘못이다. 인간으로써 책임을 가르치지 않은 내 잘못이야."

"그렇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버님!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반드시 책임을 지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스스로를 탓하지 말아주십시오!"

왕자들은 고개를 조아리며 통곡했다.

왕은 절벽 끝에서 두 무릎을 꿇으며 마른 하늘을 향해 기도를 올렸다.

"아아, 위대한 존재시여! 드높은 천상에 계신 신들의 왕이시여. 저 아스테리오스가 간청합니다. 당신의 핏줄이 저지른 잘못은 부디 용서하여 주십시오. 부디 선처를 바랍니다…!"

"아버님!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제우스 신이시여! 저희의 잘못입니다! 아버님은 죄가 없습니다!"

"저희를 벌해주십시오!"

왕과 왕자들이 서로 다투는 가운데, 아스테리오스 왕을 향해 벼락이 떨어졌다.

"아버님!!"

"......나의 아들들은 들으라."

하늘에서 떨어진 벼락을 맞았건만, 아스테리오스 왕은 담담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몸을 돌렸다.

사아아.

아스테리오스 왕의 머리칼이 찬란한 금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그의 몸 주변에는 금빛의 전류가 반짝이기 시작했고, 푸르게 빛나는 눈가에는 푸른색의 번개가 흘러나왔다.

"미노스. 라다만토스. 사르페돈."

세 왕자의 이름을 부르는 아스테리오스 왕의 목소리에는 왕보다 더 근엄하고 지엄한 위엄이 서려있었다.

"나의 피를 이어받은 자들이여."

왕자들은 깨달았다.

아스테리오스 왕에게 누가 깃들었는지.

"신이시여…!"

"아스테리오스는 마음으로 너희들을 기른 자. 나보다도 더 너희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다. 어찌 그런 이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느냐?"

"아, 아아…!"

위대한 제우스조차 왕자들을 책망했다.

"너희들이 진정으로 나를 두려워하고 따른다면, 너희들의 아버지를 더욱 섬겨야 할 것이다. 아스테리오스를 나와 같이 생각하라. 너희들의 마음속에 품은 그 역심, 아스테리오스의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고 있으마."

콰과광!!

마른 하늘에 벼락이 떨어졌다.

아스테리오스 왕의 뒤로 떨어진 벼락에 세 왕자는 모두 이마가 땅에 닿을 정도로 엎드렸다.

"......."

파스스스.

아스테리오스 왕의 주변에 흐르던 전류가 사라졌다.

그는 가만히 선 채 눈을 감고 있었고, 왕자들은 조심스레 왕에게 다가갔다.

"선 채로...기절하셨어…!"

신을 잠시나마 받아들인 대가일까.

아스테리오스 왕은 땅에 두 발로 선 채 기절했다.

그런 그의 노력이 닿았을까.

제우스의 세 아들은 자신의 아랫도리로 저지른 행위에 대해 분명한 책임을 지기 위해 마음을 다잡았다.

"아들 키우기 힘들다."

"누구 닮아서 저런 걸까."

"그러게. 헤라 여신 닮아서 그런가?"

"눈 맞았다고 덜컥 임신시키는 게 제우스 신을 닮아서 그런 거 아닐까요?"

아스테리오스 왕과 에우로페 여왕은 침실에서 신성모독과 함께 왕자들의 행위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누구 닮았는지."

"당연히 오빠 닮았지."

"무슨 소리야? 나는 아무나 저렇게 안 해."

"그건 오빠 얘기고."

올림포스의 주신과 그의 아내도 언쟁이 끝나지를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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