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29 거대한 위협 (2)
늦은 밤.
나는 올림포스의 정상에서 밤하늘을 바라보며 감상에 젖었다.
"허전하군."
플레이야스로 활동하는 건 아들들이 보인 광란의 임신과 지상과 천상에서 연달아 이어진 부부싸움으로 잠시 자율활동으로 돌려두었다.
연결은 끊어뒀지만, 남겨둔 정신의 일부가 마치 AI가 활동하는 것처럼 행동할 것이다.
나는 잠시 나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섹스도 하지 않고, 홀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차가운 밤공기를 마시고 싶은 시간이 필요했다.
"좋군."
어두운 밤.
하늘에는 셀레네가 이끄는 달빛전차만이 하늘을 덩그러니 달릴 뿐이었다.
"...저건 언제 생길까."
그리고 하늘에는 응당 있어야 할 것들이 여전히 없었다.
언제 나타나지.
언제 생겨나지.
언제쯤 내가 알고 있던 그 모습이 다시 보일까.
그런 생각을 수도 없이 했지만, '그것'은 나타나지 않았다.
"밤하늘에 별자리가 없다니, 이건 너무 낭만적이지 못 해."
지금 내가 바라보는 하늘에는 별자리가 아무 것도 없었다.
별은 보인다.
하지만 별자리는 없다.
물론 밤하늘에 아무렇게나 반짝이는 별을 두고 무엇이 별자리인지 쉽게 구분하는 건 천문에 관심이 없는 나같은 이들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지금의 밤하늘은 별자리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게 분명했다.
그 증거 하나.
"북두칠성 하나 없는 게 말이나 되나."
나는 별자리에 대해 잘 모른다.
하지만 몇몇 특별한 별자리는 알고 있다.
북두칠성이나 카시오페아 자리 같은 것은 정확한 위치는 몰라도 대충 모양이 국자같다거나 W모양을 그린다거나 하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들을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거라고는 아슬아슬하게 보이는 별의 '형태.'
"저 별은 소보로빵처럼 생겼고, 저 별은 와플처럼 생겼군. 이야, 잘 보이네. 망원경이 따로 필요 없을 정도야."
오오, 위대한 티탄이여.
망원경 없이도 저 멀리 반짝이는 별을 바라볼 수 있구나!
이러다가 저기 멀리 있는 화성도 보이겠는 걸.
"이왜진."
화성이 보인다.
조금 눈에 힘을 더 주니, 마치 확대를 한 것 처럼 다른 덩어리들이 보였다.
아쉽게도 지구에서 내가 선 위치가 보이는 곳에 한정된 각도에서 보이는 행성이 전부였지만, 그래도 화성과 그 근처의 위성을 맨눈으로 볼 수 있어 정말 신기했다.
'더 낭만이 없네.'
인간의 눈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반짝이는 빛으로 보이는 별이 신의 눈으로 보면 그냥 돌 덩어리다.
스스로 빛을 내는 모습을 멀리서 보면 아름답겠지만, 내 눈에는 보인다.
자세히 보아야 아름답다고 했던가.
아무리 감수성 풍부한 시인이라도 찌그러진 감자 같은 별에게 느껴지는 감상이 아름다움이라고는 하지 않을 것 같다.
아니면 내가 감수성이 말라 있거나.
'없던 환 공포증도 생기겠어.'
실제로는 환 공포증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저런 걸 계속 바라보면 없던 병도 생길 것 같았다.
'그리고 눈 아파.'
눈에 힘을 주고 있으니 힘이 자꾸 빠져나간다.
나는 적당히 플레이야스의 시력 정도로 눈에 힘을 뺀 뒤, 밤하늘을 다시 올려다봤다.
"심심하네."
어둡기만 하고 아무것도 없으니 상당히 심심했다.
'생각해보니 별자리들은 대부분 그리스 신화에서 나왔다고 하던데.'
생각나는 별자리 신화는…없다.
전혀 없다.
별자리 점도 안 보는 내가 어떻게 별자리의 기원을 알까.
"...별을 만들 수 있을까?"
신은 과연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새삼 궁금증이 생겨났다.
지구에서 바위를 던져 밤하늘에 걸리게 만든다면?
'대충 적당한 덩어리 챙겨서 람쥐썬더로 대기권 밖으로 던지면 될 것 같기도?'
불가능할 것 같지 않다.
그냥 하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하늘로 빛나는 돌덩어리를 던지면 그게 지구의 영향을 벗어나 우주 공간을 떠돌게 될 것이고, 어떤 위치에서 멈춰 선 다음 빛날 것이다.
그걸 오랜 연습을 통해 원하는 곳에 던질 수 있게 실력을 쌓고, 짧은 시간 안에 최대한 한 곳에 모여 자리를 잡도록 위치를 맞추면 그게 별자리가 되겠지.
완벽한 계획이다.
'별자리마저도 만들어낸다. 내가 바로 세계의 중심인 건가.'
아틀라스는 하늘을 떠받치고 있고, 우리가 사는 땅이 곧 세상의 중심이다.
헬리오스와 셀레네가 태양과 달을 이동시키는 세상인데, 내가 어떻게 지동설을 주장할 수 있겠는가.
'코페르니쿠스가 알면 기함을 할 이론이군.'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도는가, 태양이 지구를 중심으로 도는가.
나의 천문학적 지식은 이 세계의 티탄 신적 법칙에 의해 망가진지 오래다.
만물은 태양이 아닌 제우스를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
그렇다.
좆동설이다.
나의 지시를 받은 헬리오스가 태양마차로 태양을 끌고다니고, 밤에는 셀레네가 달을 끌고 다닌다.
여기는 지구가 맞을까?
그런 복잡한 생각을 했다가는 머리가 깨질듯이 아파서, 나는 그냥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밤하늘에 별자리가 존재하지 않든.
하늘을 달리는 전차가 태양과 달을 이끌든.
밤과 낮이 두 신에 의해 교체가 되든.
'그래도 쥬지는 선다.'
올림포스의 역사는 나, 제우스로부터 시작되는 것.
'새벽이라서 그런가, 나도 센치해지는 것 같네.'
신이 가장 감수성이 풍부해지는 시기, 동이 틀 새벽.
'감상도 이제 끝이다.'
햇빛이 돌기 시작하고 새벽닭이 울기 시작하면, 그 때부터 나의 하루 일과가 시작된다.
오늘도 올림포스를 위해, 크레타 섬을 위해, 그리고 곳곳에서 위대한 제우스를 찾는 신도들을 위해.
"아자, 아자!"
하늘을 향해 일부러 기합을 내지르며 마음을 다잡는다.
센치해진 감성도 이제는 가라앉기 시작하고, 몸안에 끓는 피가 정열로 가득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슬슬 태양이 떠올라야하는....
"...응?"
태양이 떠오르지 않는다.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져야 할 태양이, 밤의 어두운 장막이 걷히고 새벽을 밝게 비춰야 할 여명이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칠흑같은 어둠과 별빛 아래 작게 반짝이는 불꽃의 빛 뿐.
"헬리오스, 이 녀석. 도대체 어디서 뭘 하는 거야? 파업인가? 이상하네."
일년 삼백육십오일 동안 일하라고 하는 건 분명 가혹한 일이다.
하지만 헬리오스는 우라노스로부터 태양을 이끄는 일을 명받은 뒤로 하루도 빠짐없이 태양을 옮기며 곳곳에 빛을 뿌렸다.
크로노스의 치세 이후 내가 헬리오스를 살려두고 굳이 아폴론을 2대 태양신으로 만든 것도 이 고된 노동을 헬리오스에게 시키고자 한 것이었고, 그에게 정신적 휴가를 주기 위해 굳이 남성용 플레이야스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설마 플레이야스에 집중하는 바람에 해가 늦게 뜬다거나, 아예 뜨지 않는다거나 하는 일은 없을 터.
"...없겠지?"
없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침 해가 떠야하는 시간임에도 해가 뜨지 않음에 만물이 공포에 빠질 것이다.
올림포스 신들이야 어두워도 상관없지만, 인간들은 어두운 밤에 공포에 질려 맹수들의 야습을 걱정할 것이다.
"...30분만 더 기다려본다."
원래 낮과 밤은 일정한 게 아니다.
여름은 낮이 길고 겨울은 낮이 짧다는 걸 생각하면, 왜 태양이 늦게 떴냐고 누가 뭐라고 하면 사계절을 도입해보겠다고 대충 말하면 된다.
그래서 30분을 기다렸는데….
"없네."
"제우스 님, 제우스 님!!"
하늘에서 급히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에오스? 셀레네? 거기에 아폴론과 아르테미스까지? 어떻게 된 일이냐? 헬리오스는 찾았나?"
"차, 찾긴 찾았는데…!"
"정말, 끔찍한 모습이 되고 말았어요…!"
달의 여신도, 새벽의 여신도, 2대 태양신도 모두 질색을 했다.
"구체적으로 말해봐라. 뭐가 어떻게 된 상황이야?"
"헬리오스 신이 누군가의 습격을 받아 태양전차를 빼앗겼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존재에게…."
"보시오, 아버지."
아르테미스가 내 앞에 달빛을 뿌렸다.
나는 일렁거리는 달빛 너머로 어떤 광경을 보게 되었다.
"맙소사."
찰싹!
알몸에 사타구니를 가리는 누더기 정도만 걸친 금발의 사내가 네 발로 땅을 기고 있었다.
그의 목에는 사슬이 휘감겨있었고, 머리에는 헬멧같은 구속구가 채워져 눈앞이 가려져 있었다.
"이게...헬리오스라고?"
"맞아요. 그리고 거기, 위를 보셔요."
"......!!"
헬리오스가 직접 몸으로 끌고 있는 태양전차의 위.
태양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고, 전차를 몰던 말들은 모두 사라졌으며, 전차의 위에는 은발의 여인이 도도한 얼굴로 앉아있었다.
"...아말테아?"
그녀는 정말이지, 그녀를 닮아있었다.
아말테아의 모습을 그대로 빼다박은 듯한, 나를 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성을 경험하게 해준 그녀를 닮아있었다.
"저건 누구야?"
"저희도 몰라요."
"하지만 중요한 건 아무리 봐도 저 자가 헬리오스 오빠를 저렇게 만들었다는 거예요."
"헬리오스 님은 객관적으로, 현 티탄 중에서도 싸움 실력으로는 열손가락 안에 꼽히는 분입니다. 그런 분이 저렇게 굴욕적으로 패배했다는 건…."
헬리오스의 힘은 나도 알고 있다.
태양전차를 매일 몰고 다니는 건 전차를 모는 말들이 헬리오스를 그만큼 믿고 따른다는 것.
자신보다 약한 존재가 모든 걸 용납할 리가 없다.
헬리오스는 고대의 티탄 중에서도 가장 강한 축에 속하는 존재였다.
그런 헬리오스가 여왕님에게 채찍 조교를 당하는 마조변태처럼 네 발로 기고 있다?
"...저 여자."
순간.
여자가 이쪽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녀의 활짝 웃는 미소에 전신에 오한이 들었다.
-거기 있구나, 제우스 신.
"...나를 노리는 건가?"
-지금. 너를.
할짝.
-따먹으러 간다.
"......쟤 뭐야?"
헬리오스를 제압한 존재는 건방지게도 나를 범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리고.
가장 신경쓰이는 것.
"한쪽...뿔이 부러져있어…?"
머리에 달린 뿔 같은 것이 하나만 있다는 것.
* * *
"하아아…."
여인은 신음과 같은 한숨을 내쉬며 다리를 꼬았다.
"기다리렴, 내가 갈게."
여인은 자신의 배를 만지작거리며 게슴츠레 웃었다.
"사랑하는 나의...유피테르."
할짝.
여인은 혀로 입술을 핥으며 고개를 들었다.
"나, 티폰이 금방 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