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31 제우스, 당하다 (1)
제우스.
신 중의 신이라네.
"우오오오!"
몸 전체에 전격을 두른다.
그리고 두 다리에 모아, 단번에 티폰을 향해 달린다!
"제우, 쓰으으으으으!!"
노란색 전기쥐가 몸에 전격을 두르고 달려가 헤딩을 하듯, 나는 티폰을 향해 숄더 어택을 감행했다.
콰ㅡ앙!!
정통으로 들어갔다.
티폰은 채찍을 휘두르기도 전에 내 어깨빵을 맞았-
출렁.
"뭐…라고…."
"가슴이 그렇게 좋아?"
티폰은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의 뒤로 엄청난 충격파가 일어났고, 하수인처럼 데리고 있던 남자 노예들도 후폭풍에 휘말려 굴러떨어졌다.
그러나 티폰은 조금도 밀려나지 않고 제자리에 서 있었다.
나의 어깨는 정확히 그녀의 가슴에 안착했고, 티폰은 가슴으로 나를 받아냈다.
"놓치지 않아."
덥썩.
티폰은 내 허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나는 뭔가 잘못됐다는 직감으로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파지직!
번개처럼 움직여 티폰의 손길을 피했다.
하지만 내 하반신은 금방이라도 드러날 것처럼 넝마가 되었다.
"저 여자가…!"
"그 쪽이 벗지 않겠다면 이쪽에서 벗겨주겠어."
찰싹.
티폰은 채찍을 아래로 휘두르며 야릇하게 웃었다.
당장이라도 나를 상대로 SM 플레이를 하겠다는 듯, 채찍을 단단하게 당기며 위협했다.
"고작 이게 끝이야?"
"그럴 리가!"
나는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마른 하늘에서 날벼락이 떨어졌고, 전격은 내 손에 모여 하나의 멋진 둔기를 만들어냈다.
"이걸로 너를 타르타로스에 처박아주마!"
나의 주무기, 아스트라페.
"전력이다, 스퀴테!"
그리고 나의 보조무기, 스퀴테.
우라노스의 성기를 자르고, 크로노스의 힘이 깃든 무기를 나의 아스트라페와 하나로 만든다.
"우오오오!!"
이것이야말로, 나의 전력.
나, 제우스의 진정한 힘!
"티폰이여, 지금의 나는 메가 제우스다."
"그게 뭔지는 모르지만…."
티폰은 야릇하게 웃으며 나를 비웃었다.
"미안하지만 운명 앞에서 너는 무력한 존재야."
"뭐라고?"
"아무리 네가 강하다고 한들, 세계의 법칙을 이길 수는 없어."
"그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모이라이, 네 딸들에게 묻지도 않았나봐? 네가 오늘 이 자리에서 겪게 될 운명을."
운명.
필연.
내가 아까부터 신경이 거슬리던 불쾌한 단어.
"너는 내게 따먹힐 운명이야."
"말도 안 되는 소리. 내가 너한테? 웃기지 마라!"
"세계는 네가 나에게 따먹히기를 원하고 있어."
"그런 세계, 내가 부정해주겠어!"
나는 아스트라페-스퀴테를 높이 치켜들었다.
모든 '전력'을 아스트라페에 모으고, 그걸 스퀴테의 낫으로 흘려보낸다.
이 힘 앞에 무엇도 베지 못할 것이 없나니.
"세계여, 보라! 위대한 제우스의 영웅적인 사투를!"
"...미안하지만."
티폰은 마지막까지 나를 비웃었다.
"세계는, 그런 걸 바라지 않아. 네가 패배하고, 내게 따먹히는 걸 바랄 뿐."
티폰은 나를 향해 두 팔을 벌리며 광소했다.
"그것이, 운명이니까!"
* * *
"아버지께 말씀드릴 걸 그랬나?"
"뭘?"
"전기 타입은 땅 타입을 이길 수 없다고 했어."
"그건 무슨 이상한 말이야?"
"몰라. 그냥 어느날 '팟'하고 온 거야."
"타입이라는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전기가 땅을 이길 수 없다고 한다면…."
"아버지가 져."
"일단은, 그게 운명이니까."
* * *
우주.
두 강대한 신의 격돌에 우주에서 지상을 바라보고 있던 분홍빛 머리칼의 여인은 싱글벙글 웃기만 했다.
"잘 싸우네."
"그걸 그렇게 구경만 할 생각인가?"
분홍의 여인 옆으로 흑발의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만이야, 에레보스. 그리고 무슨 바람이 불어서 여자로 몸을 바꾼 거야? 닉스가 질투하겠는 걸?"
"입 닥쳐라, 에로스."
"그런 거친 언행, 마음에 들어."
에로스는 눈을 찡긋였다. 그에 에레보스는 진심으로 혐오스럽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에로스는 싱글벙글 웃기만 했다.
"제우스가 나타나고, 세계의 흐름은 조금씩 뒤틀리기 시작했다."
"응, 맞아."
"그리고 운명의 전환점은 여러 번 있었지. 지금도…그 단계다."
에레보스는 에로스를 향해 다가와 멱살을 붙잡았다.
"너는 어떻게 할 거지?"
"일단 놓고 이야기하지 않을래?"
"말하기 전에는 내려놓지 않겠다."
"하하, 엄청 화났네. 좋아. 알려줄게. 나는…."
사락.
에로스는 뒤로 물러났다. 에레보스의 손에 붙잡혀있던 에로스는 연기처럼 뒤로 빠져나가 다시 형체를 갖췄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
"뭐?"
"말했잖아.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라고. 지금 지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서 내가 관여할 이유도, 생각도, 필요도 없어. 왜냐하면…."
카앙!
"이건 사랑 싸움이니까."
제우스와 티폰은 격렬히 싸우기 시작했다.
티폰의 머리를 낫으로 베기 위해 제우스가 달려들 때마다, 티폰은 우아하게 제우스의 공격을 피하며 제우스를 향해 역공을 날리려고 했다.
서로의 공격을 피하고, 다시 그걸 노리고 공격하며, 또다시 이에 맞서기를 반복.
"티폰이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싸우는 거야. 사랑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그런데 내가 왜 개입을 해야하지?"
"너는…."
"만약, 이게 사랑 때문이 아니라 운명 때문이라고 한다면 내가 개입을 했겠지. 하지만 티폰을, 가이아를 봐봐. 제우스와 사랑을 하고 싶어하는 저 눈빛을."
에로스는 황홀한 얼굴로 가이아를 내려다봤다.
"이건, 찐사랑이야."
"미친 년."
"후후, 원래 사랑은 미치는 거야. 그리고 알잖아."
에로스는 별빛 속에서 반짝이는 제우스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제우스와 티폰의 싸움은 제우스가 한 번 패배하는 것이 운명이라는 것."
"...그 뒤는? 운명이 바뀐다면, 너는 그걸 감당할 수 있나?"
"음…."
에로스는 주먹으로 머리를 쥐어박았다.
"몰라!"
"......."
* * *
"앗, 운명의 실이 글자를 쓰기 시작했어."
"뭔데?"
"제우스가 몇날 며칠을 발버둥치든, 티폰에게 따먹히는 건 기정사실이다. 과정은 없다. 따먹힌다는 결과만이 존재한다…????"
"이게 운명이라고?"
운명이다.
제우스는 필사의 각오로 싸웠다.
티폰을 쓰러뜨리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는.
이제, 티폰에게 따먹힌다.
* * *
얼마나 싸웠을까.
얼마나 무기를 휘둘렀을까.
얼마나 많은 전격을 사방으로 뿌렸을까.
모르겠다.
전신에 가득하던 힘은 대부분 빠져나갔고, 더이상 신의 힘으로 전격을 만들려고 해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하아, 하아."
아스트라페와 스퀴테는 망가져서 바닥을 구른 지 오래.
내게 있는 거라고는 내 두 주먹 뿐이다.
"고생했어, 제우스. 누구도 네가 이렇게 열심히 싸웠는지 모를 거야."
티폰은 제우스를 비웃으며 다가왔다. 그녀의 몸에는 그 어떤 상처도 없었고, 지친 기색도 없었다.
옷은 비록 전투로 인해 모두 찢어졌으나, 그녀는 자신의 알몸에 전혀 부끄러움이 없었다.
"내가 기억할게. 내가 네 영웅적인 싸움을 잘 기억할게. 그리고 이제 나와 함께 하나가 되는 거야."
"닥쳐!"
나는 침을 뱉었다.
침을 뱉었다는 사실 자체가 내가 몰려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 같아 너무 억울하고 분했다.
"왜, 씨발, 도대체 왜 이길 수 없는 거지…?"
"그거야 이 몸에는 네 힘도 깃들어있으니까."
티폰은 자신의 머리칼을 들며 혀로 입술을 핥았다. 그게 마치 뱀파이어들이 처녀의 목덜미를 보고 하는 것 같아, 나는 진심으로 소름 돋았다.
"우라노스의 피. 크로노스의 피. 가이아의 피. 이런 건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어. 땅에는 이미 모든 것들이 스며들어있었으니까."
"거짓말! 고작 그걸 가지고 만든 걸로 나를 이길 수는 없다!"
"그래서 더 추가했지. 이 몸은 누구게?"
티폰은 자신의 머리를 가리켰다.
한쪽 뿔이 부러져있고, 다른 뿔은 내가 예전에 한 번 잡았던 기억이 있는 모양으로 휘어져있었다.
"아말테아의 육신, 이오의 몸속에 남아있던 신의 힘, 네가 저기 북쪽에 흘리고 다녔던 플레이야스의 정액. 그 모든 것을 하나로 어우러진 궁극의 플레이야스."
"너, 너…!"
"그래. 내가 아말테아를 죽였다. 아말테아의 영혼을 거두어 부서진 뿔에 가두고, 그녀의 육신에 티탄의 힘들을 모두 불어넣었지."
"이 개같은 년이!!"
뭔가, 행동을 하기도 전에 몸이 움직였다.
신속. 내 몸은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고.
간결. 어깨 뒤로 넘긴 주먹에 힘을 모아.
정확. 앞으로 뻗는다.
일격필살.
손끝에 모인 전격의 힘은 그 누구도 당해내지 못했으니.
그 강대한 힘은 지금까지 내 몸에 남아있던 모든 힘을 쥐어짜는 것이고, 티폰마저 놀라 뒷걸음질 친다.
"하하, 방심했구나!!"
지금까지의 굴욕은 이 한 방을 위한 것.
나는 정확히 티폰의 심장을 향해 날 세운 손끝을 겨눴다.
"뇌ㅈ-"
-유피테르 님?
"!!"
찌르기만 하면 되는데.
마음을 다잡고 앞으로 쭉 뻗기만 하면 되는데.
새애액!
내 손은, 그만 어깨 위를 빗겨나갔다.
나도 모르게 손이 옆으로 빠져나갔고, 내 손날은 그녀의 어깨를 잘랐다.
"아…."
"...위험했네."
티폰은 내 손목을 붙잡았다.
순식간에 그녀의 손에서 뻗어나온 흙덩어리가 내 손목을 휘감기 시작했다.
"찔렸으면, 진짜로 죽을 뻔 했어."
"......."
마지막 한 방.
한 방을 찌르지 못했다.
아니, 지금까지 했던 모든 공격도 생각해보면 진정으로 공격했던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아말테아.
내가 너를 어떻게 공격-
"심장이 아니라 자궁을 노렸어야지."
티폰은, 아말테아의 얼굴로 나를 비웃으며 손을 아래로 뻗었다.
찌걱.
"아, 안 돼…!!"
티폰은, 나의 자지를 붙잡아버렸다.
"잘 먹겠습니다."
마치, 그 날의 아말테아가 나를 처음 만졌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