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우스 엑스 마키나-136화 (136/235)

EP.136 변화하는 올림포스 (1)

티폰을 완전히 보내버린 뒤.

나는 몸단장을 마치고 올림포스 정상으로 올라, 나를 도와준 인간 카드모스를 맞이했다.

"오너라, 나의 후손이여."

"그, 제, 제가...."

"괜찮다."

나는 카드모스에게 이리 오라고 손을 뻗었다.

그는 나의 유피테르 시절처럼 건장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으나, 나의 눈치를 보느라 좀처럼 가까이 다가오지 못했다.

"무엇이 너를 그렇게 두렵게 하느냐?"

"제가 감히 제우스 님의 것을 탐하려고 말한 것입니다."

"그렇지. 너는 감히 티폰의 앞에서 나의 여신들을 탐하겠노라고 했고, 티폰의 제안에 긍정하기도 했다."

"예."

"그럼 묻겠다."

나는 카드모스를 향해 번개의 창을 만들어 뻗었다.

"너는 정녕 진심으로 그것을 원했느냐?"

"...솔직하게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물론. 거짓말은 용서하지 않는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카드모스는 무릎을 꿇었다.

"잠시 혹했습니다. 그러나 티폰이 진실로 제 앞에 그분들을 데려온다고 한들, 저는 감히 그분들에게 손 하나 대지 못했을 것입니다."

"왜?"

"인간이 어찌 여신의 옥체를 만진단 말입니까."

"......."

인간과 티탄의 차이.

그것을 카드모스는 명확히 알고 있엇다.

"저는 비록 제우스 님의 피를 이어받은 자이나, 인간으로 태어난 자입니다. 그런 제게는 과분한 처사입니다."

"만약 티폰이 네 목숨과 네 나라를 걸고 협박했다면?"

"...제 목숨이라면 저는 자결을 했을 겁니다. 하지만 제 나라였다면...조금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감히?"

콰광!!

벼락이 번쩍였다.

나는 번개의 창을 바닥에 찍었고, 카드모스는 몸서리를 치며 다시 고개를 조아렸다.

"고개를 들라."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내 너에게 진실을 말하라고 했고, 너는 진실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내가 어찌 너를 함부로 대하겠느냐?"

아무리 내가 K-제우스의 길을 버렸다고 한들, 내 영혼에 남아있는 양심은 아직까지 말하고 있다.

-제우스라도 자기 구해준 생명의 은인에게 함부로 하기 있냐?

한낱 인간이라고 한들, 카드모스는 나를 구해준 존재다.

내가 '영웅'으로 그를 정해도 시원찮을 판에, 내가 그를 죽이거나 해를 입히면 앞으로 누가 우리 올림포스를 위해 나서주겠는가?

올림포스의 누구도 감히 이겨낼 수 없었던 티폰을 카드모스가 말로 속였다.

그가 노력해준 덕분에 올림포스는 다시 하나로 돌아갈 수 있을 터.

카드모스가 티폰의 꾐에 넘어간 척 한 건 어디까지나 '거짓말'이다.

나는 그의 심장박동을 들으며, 그의 진의를 다시금 깨달았다.

이 자는 좆간이 아니다.

이 자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다.

바로 이런 자를, 우리는 '영웅'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영웅은 영웅에게 맞는 대접을 해야하는 법.'

"좋다. 카드모스여, 올림포스를 구해준 너를 위해 소원을 한 가지 들어주마. 무엇이 소원이더냐?"

"...저는 누이를 찾고 싶습니다."

"네 누이가 누구더냐?"

"당신의 후손이자 지금은 납치당한 여인, 에우로페 입니다."

"......."

공교롭다면 공교롭게도, 에우로페는 당연히 내가 납치했다.

'역시 잘 한 짓이었어.'

내가 에우로페를 납치하지 않았다면 카드모스가 세상을 돌아다닐 일도 없었을 것이고, 덕분에 카드모스가 나나 다른 여인들이 고통을 받지 않고 올림포스를 구하기 위한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았다.

알려주기에는 껄끄럽지만, 나는 은혜를 모르는 짐승이 아니다.

"에우로페, 에우로페. 네 누이는 지금 크레타라는 곳에서 왕비가 되었다. 크레타 왕국의 왕비가 되었지."

"왕...비요?"

"그래. 여러 아이들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크레타의 왕 아스테리오스가 그녀를 맞이했지. 음, 설마 그 때 구한 여인이 네 누이일 줄이야...."

"예?!"

거짓말은, 나쁜 것이 아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세상을 떠돌다가 여인이 강간당하는 것을 목격하고 말았다. 나는 놈을 죽였고, 여인을 구했지. 옷이 찢겨지고 강제로 추행을 당하기 직전에 구해냈다. 하지만 그녀는 그래, 미약이라는 것에 당한 상태였어."

"미약...이요?"

"몸이 강제로 절정에 이르고, 성감이 높아져서 열이 오르게 하는 약이다."

"그런...!"

나와라, 무협지 클리셰!

K-제우스는 죽었을 지언정, 아직 내게는 K-제우스가 남기고 간 수많은 지식들이 있다.

"성교를 하지 않으면 몸에 열이 가득 차서 죽게 되는 약이지."

"아니, 세상에 그런 미친 약을...!"

"그래서 안았다."

"...예?"

카드모스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나는 겸연쩍은, 하지만 당당한 얼굴로 그에게 계속 말을 이었다.

"지나가는 이는 아무도 없었고, 근처에 있는 수컷은 늑대나 개, 소와 같은 짐승들 뿐이었다. 에우로페는 나를 인간으로 생각하여 제발 자신을 죽게 하지 말아달라고 간청했고, 나는 결국 그녀를 안았지."

"세상에...."

카드모스는 입을 떡 벌리더니....

"정말 고맙습니다, 위대하신 제우스 님!"

내 앞에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바닥에 처박았다.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제 여동생을 살려주셔서!"

"...아아, 그래."

그래, 거짓말은 나쁜 게 아니다.

마치 카드모스가 나를 구하기 위해 티탄 여신들을 범하겠다고 말한 것처럼, 결코 거짓말은 나쁜 게 아니다.

"인연이라는 것이 이렇게 스쳐지나가는 건가."

"예?"

"인연. 인간과 인간 사이의 연이라고 하지. 다른 이들은 이것을 운명이라고 부르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운명이라는 것보다는 우연이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그, 인간과 인간 사이라고 한다면...."

"우연과 우연이 겹치면 무엇이 되는지 아느냐? 필연이 된다."

"!!"

카드모스는 뭔가를 깨달은 얼굴로 입을 떡 벌렸다.

"네 동생의 소재를 알려준 것에 대해서는 신 제우스로서 소원을 들어준 것이었지. 하지만 이 땅에 살아가는 한 명의 존재로서, 나는 내 생명에 대한 은혜를 갚고자 한다."

"아니, 그게, 저는-"

"한낱 인간이라고, 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대는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크윽...!"

카드모스의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그저 인간...아니, 인간이라고 하는 것을 싫어하셨죠. 감사합니다, 정말."

"내 딸을 주마."

"......예?"

"아니, 딸을 준다는 표현은 조금 이상하지. 내 딸에게 구애할 수 있는 기회를 주마."

카드모스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언젠가 너를 찾아갈 여인이 있을 것이다. 너에 대한 이야기를 그 아이에게 해줄 것이야. 너는 진심을 다해 그녀의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편견없이 바라보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여신이기에 경배하라는 것이 아니다. 한 명의 여성으로서, 아내로서 사랑하라는 것이다."

이건 나의 마음 속 유교인이 떠드는 게 아니다.

딸 가진 자의 아버지로서 하는 말이다.

다른 남자에게 내 딸을 시집 보내는 것이 죽을만큼 싫지만, 그래도 카드모스는 인정이다.

"언젠가 여신과 인간이 서로 정식으로 혼인하는 날이 오게 된다면, 그 최초의 영광을 잡을 기회를 네게 선사하마."

"아...!"

카드모스의 눈에서 눈물이 주룩 흘러내렸다.

"감사, 감사합니다...!"

거짓말은 아니다.

나, 제우스.

목숨의 구원을 받았는데 은혜도 갚지 않는 사내가 아니다.

* * *

-티폰이 죽었어요! 모두들 돌아와요!!

나는 헤르메스를 전령으로 급히 그리스 전역에 보냈다.

아마 눈치 빠른 몇몇 신들은 올림포스 정상에서 쩌렁쩌렁 울리는 나의 번개를 보고 금방 눈치를 챘을 지도 모른다.

"낮이 되었도다."

나는 직접 태양마차를 끌고 하늘 위에 태양을 걸었다. 티폰에게 당해 팬티차림의 노예가 된 헬리오스가 아닌, 내가 직접 태양마차를 몰고 올림포스 주변을 달리며 태양의 빛을 사방으로 뿌렸다.

-알아서 잘 다녀와라.

-히힝-

태양마차를 모는 말들은 내 지시에 따라 하늘을 원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저들도 때로는 기수 없이 마음껏 달리고 싶을 때가 있는 법.

말들이 전하는 햇빛이 곧 올림포스에 아침이 밝았음을 널리 알려주리라.

"참으로 길면서도 짧은 고난이었군.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그렇습니다, 제우스 님."

어느새 연락을 마치고 돌아온 헤르메스가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카드모스는 떠났느냐?"

"네. 이 영광을 잊지 않을 것이라면서 올림포스를 떠났습니다."

"...정말, 영웅다운 행보로군."

카드모스는 명실상부한 영웅이었다.

"그런데 제우스 님, 뭔가 변하신 것 같아요?"

"변하긴 했지."

외형이 상당히 많이 변했다.

그간 티폰에게 당하면서 쌓인 스트레스로 금발이 백발에 가깝게 변했고, 수염이나 머리도 많이 길어 할아버지 같은 느낌이 되기도 했다.

얼굴은 여전히 미남이지만, 수염을 기른 영국계 신사 같다고 해야하나.

'이게 미중년 간지지.'

아무리봐도 잘 생겼다.

유피테르가 젊은 청년의 활력이 느껴진다면, 지금의 내 모습은 남자의 전성기를 구가하는 나이대가 아닐까.

"저는 수염 없는 쪽이 더 멋있을 것 같아요."

"...음?"

"그게, 수염이 그렇게 길면 키스할 때 불편하지 않겠어요?"

"......."

키스할 때, 불편해?

"그런가?"

"네. 더군다나 수염도 그렇게 길면 뭔가.... 옷을 벗고 어머님들과 사랑을 나눌 때, 수염이 아래로 떨어져서 가슴을 건드리면 뭔가 좀 뭔가 아닐까요?"

"음."

수염이 섹스의 흥을 깬다?

파지지직.

나는 번개를 이용해 수염을 다듬었다.

티폰에게 잡혀있는 동안 거칠게 자란 수염을 적당히 다듬고, 머리도 반듯하게 정돈했다.

'섹스하는데 방해가 되면 안 되지.'

이제 올림포스로 올 수많은 여신들과 섹스를 해야하는데 수염 때문에 흥을 깨면 안 되지 않겠는가!

"저기, 제우스 님."

"왜."

"저, 이번에 크게 활약했잖아요?"

"그렇지."

헤르메스가 카드모스에게 거짓말을 가르쳐주지 않았다면, 아마 카드모스는 나를 구하는데 실패했을 것이다.

"그래서 제가 부탁이 하나 있어요."

"무엇이냐?"

"저를 올림포스 12신에 넣어주시면 안 될까요...?"

"음."

헤르메스는 큰 공을 세웠다.

그리고 그녀를 12신의 자리에 넣으려면 한 명이 빠져야 하는 상황.

더이상 뺄 수는-

"...한 명 있기는 하군."

그녀, 아니 그.

"한 번 말해보마. 아니, 당사자보다는 어머니랑 이야기를 해봐야겠군."

마침 저기 가장 먼저 달려오고 있다.

나는 녹색 드레스를 입은 여인을 향해 두 팔 벌려 환영했다.

"제우스 오빠!"

"데메테르."

나는 가장 먼저 도착한 데메테르를 끌어안은 뒤.

"벗어."

"어?"

촤아악!!

드레스를 찢고, 그녀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이후.

나는 올림포스의 승전을 기념하고자, 여신 랜덤 디펜스를 펼쳤다.

물론, 내 승리였다.

헤라클레스를 뽑을 수 있을지 말지는 잘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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