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40 겨울의 시작 (3)
남자는 누구든 사춘기를 겪는다.
인간은 누구든 사춘기를 겪는다고 표현하고 싶지만, 티탄 신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사춘기를 겪는다.
나는 경우가 달랐다.
나는 이미 정신적으로 성숙한 존재였기에, 육체의 변화와 발달을 장녀스럽게 받아들였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사춘기가 있기는 했다.
그리고 나는 그 사춘기의 정력을 모두 아말테아에게 쏟아부었다.
그래서 나는 건장한 청년으로 자랄 수 있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에너지와 끓어넘치는 활력을 적절히 해소했기에, 지금의 나로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건 일반적인 경우가 아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는 사춘기를 겪으며 부모와 갈등을 빚게 되고, 변화하는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혼란을 겪거나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게 된다.
"페르세포네, 인간들이 겪는 15살의 저주에 걸린 것 같아."
데메테르는 심각한 얼굴로 페르세포네의 증상을 짐작하기 시작했다.
"아니, 그거 그냥 사춘기라니까."
"사춘기라뇨, 오빠! 이건 아주 심각한 병이에요! 인간들이나 걸리는 사춘기를 페르세포네가 걸릴 리가 없잖아요?"
"그냥 쌓여있던 스트레스가 폭발한 거라니까."
"그럴 리가 없어요! 도대체 페르세포네가 정신적인 고통을 받을 일이 뭐가 있는데요?!"
"너."
데메테르는 사색이 되었다.
"태어난 지 벌써 엄청난 시간이 흘렀는데, 자기도 나름 신인데 마마보이 소리 듣고 싶지는 않겠지."
"마, 마마보이...?!"
"아니다. 대외적으로 보이는 아니까 걸이구나. 아무튼 남자라는 건 말이야, 엄마가 모두 챙겨주는 것에서부터 어느 순간 벗어나고 싶어지는 법이야."
사춘기가 늦게 온 셈이다.
평생 어머니 데메테르와 함께 지내며 남성성이 억압된 채로 살아왔으니, 이번에 그 굴레를 본격적으로 떨쳐내고자 일어선 것이다.
"나는 페르세포네를 지지해."
남자라면 누구나 다 독립을 하고 싶어하리라.
어느순간 어머니의 품이 그리워지는 시기가 있지만, 인간이든 티탄이든 스스로 독립하고 싶어지는 때가 생기는 게 바로 남자다.
"스스로 독립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그걸 도와줄 수 있는 사람도 있어. 비록 과정은 좋지 않았지만, 페르세포네는 이번 기회를 바탕으로 한 명의 '신'으로서 너를 마주하고 싶은 거야. 영원히 데메테르의 딸, 언젠가 알려질 데메테르의 아들이 아니라."
"그렇지만...."
"믿자. 부모로서 믿고 기다리는 게 우리가 할 일이야. 하데스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잖아? 분명 잘 해낼 거야. 직장이 지옥이라고 생각해. 알겠지?"
"......하지만."
데메테르는 손톱을 물어뜯었다.
"내가 옆에서 지켜주지 않으면 안 되는데.... 페르세포네는 아직 아가인데...."
"......."
내가 이래서 페르세포네 쪽으로 마음이 기울게 된 것이다.
데메테르는 전형적인 치맛바람 심한 어머니의 모습을 하고 있다.
레아가 아이들을 돌보지 못했던 것에 대한 심리적 부담감을 데메테르가 안고 태어난 건지, 아니면 내가 했던 K-유교식 가정교육에 의해 몬스터 맘이 된 건지는 몰라도, 데메테르는 전형적인 '맘'이 되어버렸다.
'쥬지로 보지를 때려서 정신을 차리게 할 수도 없고.'
잠깐은 효과적일 것이다.
하지만 그게 완벽한 해결책은 되지 않는다.
이 상황을 해결하려면 페르세포네가 완전히 잘 하거나 완전히 못하거나 그래야 한다.
잘 할 경우.
페르세포네는 지옥의 (여)왕으로서 엄청난 권위를 누릴 것이다.
못 할 경우.
페르세포네는 역시 어머니의 도움이 필요한 것으로 생각되어 다시 지상으로 불려올 것이다.
어정쩡하게 잘하거나 못한다면, 데메테르가 역시 페르세포네는 나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페르세포네에게 있어, 데메테르에게 있어, 그리고 올림포스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서라면 페르세포네가 '데메테르의 도움 없이도 완벽하게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할 수 있다, 페르세포네.'
너는, 나 제우스의 아들이니까.
"믿자, 데메테르."
나는 데메테르가 불안감을 떨쳐낼 수 있을 때까지, 계속 그녀를 안았다.
* * *
...라고는 했지만.
"아빠도 아빠 나름대로 걱정인가봐요?"
"시끄럽다."
나는 아테나와 몰래 지옥에 잠입했다.
하데스조차 눈치채지 못하게 에테르와 같은 정신만 지옥으로 보냈다.
"데메테르보고 맘이니 뭐니 말했지만, 아버지도 극성 파파잖아요."
"극성이라기보다는, 내 유일한 아들이니까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움직이는 거지."
모든 아버지는 자식이 잘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는 자신이 자식에게 좋은 아버지가 되기를 바란다.
자식이 많은 아버지로서 최대한 공평하게 사랑을 하는 것이 옳겠지만, 수많은 딸들 중에 유일한 아들이 있다면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다.
"요즘 데메테르가 히스테리 부린다고 땅을 마르게 하는 거 봤지?"
"네, 잘 알죠. 제발 해결해달라고 다들 난리가 아니라고요."
페르세포네가 지옥으로 내려간 바람에 데메테르는 불안감을 나와 섹스하거나 자위하거나 인간들을 괴롭히는 재미로 지내고 있다.
괴롭힌다고 해서 막 사지를 자르거나 찢고 죽이는 잔인한 짓은 아니지만, 인간들이 살아가는데 정말 좆같이 만드는 짓을 하며 히스테리를 부린다.
농사를 흉년으로 만든다.
대지의 온도를 차갑게 만들어 지옥과 비슷한 환경을 만든다.
마치 페르세포네가 지옥에 내려간 것이 따스한 봄날이 싫어서 내려간 것으로 착각한 것처럼, 그녀는 지옥과 같은 환경이면 집으로 돌아올까하며 땅을 지옥의 가장 추운 곳 마냥 만들고 있었다.
그래, 겨울의 시작이다.
'여름과 겨울이 설마 이렇게 생겨날 줄은.'
한 번 기후가 바뀌기 시작하면 아무리 신이라도 바로 잡을 수 없는 게 기후라는 것이다.
막대한 신의 힘을 쓰고 수십 년은 골골거려야 하겠지만, 대부분의 신은 그럴 생각 없이 그냥 겨울이 되어 대지가 얼어붙으면 그냥 '그런가보다'하고 넘어가기 마련이다.
티탄은 추위를 느끼지 않으니까.
좆같아진 대지에서 얼어죽는 건 힘없는 인간들 뿐이다.
"페르세포네가 잘 하고 있다는 걸 증명해야 돼. 그래야 데메테르가 겨울을 집어넣을 거야."
"그렇죠. 일년 내내 겨울이면 인간들이 다 얼어죽을테고, 그러면 우리도 받을 공물이 줄어드니까요."
겨울이 잠깐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12개월 동안 내내 겨울이라는 건 포스트 아포칼립스, 빙하기와 다를 바가 없다.
그러니 증명해야 한다.
페르세포네가 데메테르의 곁을 떠난 것은 지옥의 환경이 좋아서가 아니라 엄마 치마폭에서 떠나와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슬슬 움직이지.
-네, 유피테르.
나와 아테나는 지옥의 누구에게도 걸리지 않고 지옥 깊숙한 곳에 도착했다.
옥좌의 홀과도 같은 곳에는 두 개의 옥좌가 나란히 놓여있었다.
하데스.
그리고 페르세포네.
둘은 차가운 표정으로 정면으로 다가오는 죄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데스는 페르세포네를 위해 자신과 동등한 위치에 앉을 자리를 마련했다.
그녀가 페르세포네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
-응?
-왜 그러세요?
-지금 하데스가 페르세포네 눈치 보는 것 같지 않냐?
이상한 말이지만, 둘 다 정면을 응시하고 있지만, 정면만 바라보고 있는 페르세포네와는 달리 하데스는 명백히 옆을 흘끔거리고 있었다.
-조카라서 눈치보는 거 아닐까요?
-그럴 리가. 하데스가 누구냐. 크로노스를 상대로 뒤를 잡았을 정도로 강단이 있는 신이다. 이런 말 하기는 조금 그렇지만, 페르세포네 정도는 한 손가락으로 상대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지옥의 여신이야.
-그런데 왜 하데스가 페르세포네의 눈치를 본다는 거죠?
-그냥 느낌이 그래. 느낌이.
마치, 물리적인 힘으로는 거역할 수 없는 어떤 것을 두려워하고 경계하는 느낌이다.
페르세포네가 잘 하고 있는지 확인하러 지옥에 왔지만, 나는 갑작스럽게 생긴 의문에 진실을 확인해야 했다.
이윽고.
끼익, 끼익, 끼익.
지옥의 간수들이 쇠사슬로 죄인처럼 보이는 이를 데려왔다.
상반신이 아름다운 녹색머리 거유 여인에 하반신에 뱀처럼 생긴 괴물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이를 갈았다.
"이름."
하데스가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러자 페르세포네가 옆에 놓여있던 양피지를 들었다.
"라미아. 티폰과 같은 땅의 괴물로 추정되는 여인이며, 신들의 저주를 받은 흔적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올림포스의 적이군."
"닥쳐라, 이 찬탈자들!!"
라미아는 악을 쓰며 부르짖었다.
"티폰은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위대하신 가이아 님께서 다시 지상을 지배할 것이다!"
"지옥에 와서 외쳐봐야 공허하지. 저 자를 당장 지옥의 깊숙한 곳으로ㅡ"
"잠깐."
페르세포네가 손을 들었다.
그와 동시에 하데스의 표정이 창백해졌고, 나는 뭔가 감을 잡았다.
"그냥 지옥은 안 되죠. 땅으로부터 태어난 마물입니다. 다른 이들과 함께, '데스포이나'에 가둬야 합니다."
"그, 그런...."
하데스가 페르세포네의 결단에 눈치를 보고 있다.
페르세포네는 당연하다는 얼굴로 하데스의 결단을 요구했고, 하데스는 좀처럼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위대하신 가이아께서 올림포스를 점령하는 순간, 제우스의 자지는 가이아 님의 것이 될 것이다!"
"...건방진 년."
하데스는 금기를 건드린 라미아를 향해 엄지로 목을 그었고, 페르세포네는 손뼉을 가볍게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파지직!
"커, 커헉...?!"
라미아는 순식간에 몸이 굳었다.
간수들은 라미아를 구속하던 사슬을 내려놓고 자리를 떠났고, 페르세포네는 직접 사슬을 움켜쥐고 비릿한 미소와 함께 라미아를 질질 끌기 시작했다.
-따라가볼까?
-따라가죠.
우리는 하데스에게 들키지 않고 조심스레 페르세포네의 뒤를 따라갔다.
물리적인 영향력이 전혀 없는 에테르였음에도 우리는 숨을 죽이며 페르세포네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게, 페르세포네가 끌고 들어가는 지옥은 정말 '지옥 속의 또다른 감옥'과도 같은 곳이었으니까.
-아버지, 이거....
-올림포스의 지하와 비슷한...?
순간.
나는 페르세포네가 혹시나 반역이라도 저지를까 하는 생각에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지옥에 내려온 이유는 나를 배신하기 위해서?
하데스는 조카를 밀고하는 것을 걱정해서?
-이게....
-아, 뭐야.
아테나는 안도하면서도 질렸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유피테르 아들 확실하네요.
-......그렇군.
나의 걱정은 기우였다.
지옥, 데스포이나.
그곳은 페르세포네에 의해 붙잡힌 수많은 땅의 괴물-기가스 들이 갇혀있는 곳이었다.
그래, 굳이 표현하자면....
'몬무스 천국.'
온갖 몬무스들이 지옥사슬에 의해 구속되어 있었고, 그들은 페르세포네를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며....
"하악, 하악."
동시에, 거친 숨소리를 내며 기대하고 있었다.
"보아라, 가이아의 자식들이여. 네 아버지의 씨를 몰래 훔쳐 태어난 자들이여."
스륵.
페르세포네는 지옥 여왕의 드레스를 벗었다.
여리여리한 체구 아래, 펑퍼짐한 드레스로만 숨길 수 있었던 극태자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너희를 벌하겠다."
"어, 어떻게 남자...!"
"남자니까."
페르세포네는 라미아의 머리를 움켜쥐고 아래로 향하게 한 뒤.
"보지 딱 대라, 뱀 년아."
찰ㅡㅡ싹!
허리를 튕겨, 자지로 라미아의 뺨을 쳤다.
"지금부터 존나게 따먹어줄테니까."
히죽.
...페르세포네는 나, 제우스의 아들이 확실했다.
'저 새끼, 섹스하고 싶어서 독립했구나.'
그럼 인정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