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우스 엑스 마키나-144화 (144/235)

EP.144 겨울의 시작 (7)

엘레우시스는 인간들의 도시 중에서도 상당히 큰 규모를 가진 '왕국'이었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곳 같아.'

누군가가 자신의 신격을 뿌린 흔적이 없다.

즉, 이곳은 특정한 누군가를 숭배하지 않는다는 것.

도시의 규모만 생각하면 아테나가 한 도시를 다스리며 숭배받는 신으로 존재하는 아테네와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아직 엘레우시스에는 숭배받는 신은 특별히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 도시가 크게 성장하면 훗날 아테네와 함께 역사에 이름을 남길 도시가 될 터.

그러나 이제 엘레우시스에 남은 길은 둘 중 하나 뿐이다.

어떤 신을 숭배하든 말든 일단 도시가 살아남아 존속되거나.

아니면 데메테르 여신의 분노를 산 나머지 도시가 쑥대밭이 되어버리거나.

나와 헤라는 이 도시 안에 들어간 데메테르의 폭주를 막기 위해 도시에 방문했다.

"멈춰라. 우리의 도시에 무슨 일이지?"

"무슨 일이냐고 물으신다면…."

대답하는 게 인지상정!

도시의 존속을 위하여.

도시의 파괴를 막기 위하여.

...라고 말해봤자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 뻔했으므로, 나는 사실대로 말했다.

"마마랑 같이 왔어요!"

"크흡…."

내 손을 꼭 잡은 헤라는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게 꼭 울음을 삼키는 것처럼 떨리는 모습이라, 나는 괜히 경비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모자 연기 똑바로 안 해?'

나는 지금 헤라를 어머니로, 내가 아들로 변장하여 저 멀리서 엘레우시스라는 곳에 방문한 것으로 설정을 잡았다.

그런데 정작 헤라가 제대로 연기를 하지 못한다면, 나는 나 혼자서 이 도시를 방문했다는 설정으로 바꿔야할 지도 모른다.

만약 이대로 경비가 우리를 의심한다면….

"크윽…! 설마 재난으로 여기까지 피난을…!"

하지만 경비는 뭔가 감수성이 풍부해보이는 남자였다.

"추워지는 대지를 피해 여기까지 온 것이로군요. 남편 분은...아니, 묻지 않겠습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부인. 크흐흑…!"

감수성을 넘어 상상력도 풍부해보였다.

헤라는 지금 웃고 있지만, 경비는 내가 괜히 죄책감이 들 정도로 울먹거리고 있었다.

"그래, 꼬마야. 아저씨가 맛있는 거 줄까? 이 도시에 온 기념으로 아저씨가 선물을 주마."

"맛있는 거요?"

"그래, 이거 하나 가져가거라."

경비는 품에서 꼬깃꼬깃 감싼 종이 하나를 건넸다.

"입에 넣으면 입안이 달콤해지는 마법의 결정이란다. 삼키지 말고 천천히 침으로 녹여보렴. 그러면 사르르 녹아내려서 입안이 달아질 거야."

안에는 뭔가 부서진 보석 같은 것이 담겨있었고, 나는 그 정체를 알고 깜짝 놀랐다.

"이, 이게 뭐예요?"

"아아, 그것은 사탕이라고 하는 것이다. 공주님들이 개발한 특별한 간식이란다. 달콤해서 먹기 좋지만, 먹고난 뒤에는 반드시 입을 물로 헹구거라. 알겠지?"

"네! 감사합니다!"

꾸벅.

제우스 미니 모드, 통칭 젬민이 모드로서 나는 경비를 향해 꾸벅 인사했다.

"고맙습니다! 마마가 선물 받으면 꼭 인사하라고 하셨어요!"

"그래, 우리 왕국에 온 걸 환영한다…! 크흑…! 어린 나이에…! 통과ㅡㅡ!"

경비는 좌우로 물러났고, 나는 가만히 서있는 헤라의 손을 잡고 안으로 당기며 마구 신을 냈다.

"와아아! 여기가 우리 새 집이에요?!"

"크흐흑…!!"

경비가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하는 바람에 우리는 생각보다 쉽게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하아."

남들의 시선이 잠시 우리에게서 떨어진 사이, 나는 헤라에게 다가가 그녀의 허벅지를 꼬집었다.

"마마. 내가 그렇게 아이같아요?"

"다른 건 몰라도 내가 지금 미쳐버릴 것 같다는 건 알아두렴."

헤라는 붉어진 얼굴을 좀처럼 식힐 수 없는 듯 했다.

"나, 지금 참을 수 없어."

"......."

눈시울까지 붉어져 주변에 지나가는 이들이 전부 우리를 보고 딱한 표정을 지었고, 나는 이곳이 그래도 인심은 아직 남아있다는 생각에 안심이 들었다.

"아이고, 세상에. 남편잃고 여자 혼자서 온 것 봐. 고생이 얼마나 심했을까…?"

"엄마가 정말 힘들게 아이를 데려온 것 같네. 아이 얼굴에 근심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잖아."

"아까 들었어? 새 집이래. 분명 하얀 거짓말로 아들을 속인 걸 거야. 얼마나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플까…!"

"나중에 혹시 밥 한 끼 먹으러 오면 잘 대해주자고. 아니다, 구호소 가서 미리 알아볼까? 아니면 데려가주는 건 어때?"

"쉿…! 괜히 오지랖 부리지 말어! 도움을 청하면 그 때 모른 척 가서 도와줘야지, 지금 가면 괜한 오해를 산다고!"

그래.

'다 들린다, 이 착한 녀석들.'

아무리 좆간의 세계라고 하지만 이렇게 착한 인간들이 모여있는 곳 한 군데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아, 이것이 올림포스 희망편인가.'

판도라의 상자에도 절망과 공포, 혼돈이 가득했지만 그 끝에는 한 줌의 희망이 있었던 것처럼, 수많은 인간 왕국 중에도 이렇게 선한 사람의 비중이 높은 왕국 하나는 있어야 했다.

보라.

올림포스 전역을 가도 어린 아이에게 사탕을 쥐여주는 경비는 없다.

올림포스 전역을 가도 이방인을 대상으로 따스한 시선을 보내주는 시민들은 없다.

이 도시는 사탕 하나로 나의 환심을 샀다.

비록 먹지는 않을 것이며, 부서진 조각 상태라 먹기에도 상당히 곤란할 것이며, 무엇보다 땀내나는 아저씨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라 성의만 받을 거지만.

나는 이 도시가 제법,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원시적이지만 사탕을 개발할 만큼 부유한 도시야.'

단 것은 인간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사치품'이다.

현대 사회도 아니고 농경 사회에서 단 것은 귀족들이나 즐길 수 있는 사치품이며, 혀만 대도 꿀처럼 달콤함이 전해져오는 당 결정 조각이 경비의 주머니에서 어린 소년에게로 전해진다는 것 자체가 이 도시가 상당히 경제적으로 부유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역시 사람이 선을 베풀려면 일단 지갑이 든든해야 하기 마련.

TV에 누가 그러더라.

보통 돈 많은 사람들이 정이 많더라고.

가진 지갑이 풍족하지 않으면 남에게 베풀 수 없는 법이다.

'왕이 세금을 좀 적게 거두나보네.'

도시 전체가 이 정도로 베풀 수 있을만큼 풍족하다는 것은 이 왕국의 왕가가 그만큼 성실하게 백성들을 다스렸다는 의미기도 하다.

'나중에 왕의 얼굴이나 한 번 보고가야지.'

공주들이 사탕을 개발했다고 하니, 한 번 슬쩍 지나가다가 얼굴이나 익히고 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하악, 하악…."

인간들이 정상인 것에 대한 반대급부인지, 내가 데려온 여신이 지금 상당히 민폐라는 것.

'잠깐 테스트.'

"사탕 더 있는지 찾아볼까. 마마, 나 사탕 사줘."

"으, 응…?"

"사줘!"

"자, 잠깐만. 제미니, 여기서 이러면 곤란해…."

헤라는 몹시 곤란해했다.

허리를 살포시 숙이며 엉덩이를 빼는 모습에서 나는 그녀가 지금 제대로 발정났음을 깨달았고, 하는 수 없이 그녀를 골목으로 이끌었다.

"마마, 잠깐 여기로 좀 와봐!"

사락.

신의 힘으로 몰래 장막을 펼친 뒤, 나는 헤라를 벽으로 밀쳤다.

"지금 뭐하는 거야, 마마. 역할에 집중 못 해?"

나는 아래에서 헤라의 가슴을 주먹으로 툭툭 건드렸다.

"집중하라고. 너 나 지금 도와주려고 온 거냐, 아니면 싹다 망치려고 온 거냐?"

"어, 어떻게 집중하겠어…! 어린 시절의 오빠를 지금 바로 내 눈앞에서 보고 있는데!"

"미친. 너 지금의 내 모습을 상대로 발정하는 거냐?"

"그럼 안 하게 생겼어? 하아, 하데스가 괜히 납치한 게 아니구나…씁…."

아아.

"하아, 데메테르만 아니었으면 지금 내가 여기서 덮쳤을 거라고…!"

가이아의 핏줄은 어떻게 죄다 쇼타콘이란 말인가.

"좀 참지 못 해? 지금 저기 있는 사람들이 나를 철없는 아이로 보고 있잖아. 네 실체가 드러나면 저 인간들이 나를 지키려고 너를 나한테서 떼어놓을 거라니까?"

"어떻게 인간들이 그럴 수 있지?"

"네가 지금 나를 따먹으려고 드니까!!"

데메테르부터 내가 쇼타제우스 플레이를 하던 도중에 하데스가 나를 납치하더니, 이제는 헤라마저 아랫도리가 쑤신 듯 움찔거리고 있었다.

정말, 미칠 것 같다.

"도대체 이 몸뚱아리에서 뭐가 그렇게 자궁이 떨리는 건데?"

"마마라고 한 번만 해줘."

"...거기가 포인트야? 세상에."

"해줘."

해달라니까 어쩔 수 있나.

나는 K-제우스가 아주 어렸던 시절, 그래도 초딩으로 유-기-오 카드로 딱지치기를 하던 그 시절의 감성과 순수함을 그대로 살려 헤라의 배에 얼굴을 묻었다.

"마마!"

"...쓰으으읍."

헤라는 뭔가를 깊이 참는 듯 했다.

나는 그녀의 몸에 안겨 얼굴을 배에 부비부비했고, 그럴 때마다 헤라의 몸이 점차 떨리는 게 느껴졌다.

"됐냐?"

"자, 잠깐만…! 한 번만, 한 번만 더!"

"여기서부터는 추가 요금 붙는데."

"보석을 원하는 거야?"

아.

맛이 갔다.

지금 이 여자, 젬민이 제우스에게 푹 빠져서 지금 헤어나오지를 못하고 있다.

뿅!

"정신차려! 너는 올림포스의 안주인이자 모든 여신들의 우상이라고."

나는 헤라와 시선을 맞추며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지금 뭐해? 역할에 집중하자며? 당장 원래대로 안 돌아가?"

"야, 지금 이게 내 원래 모습이거든?"

"아니야. 오빠의 원래 모습은 유피테르야!"

"......."

헤라는 아무래도 쇼타 제우스를 보고 미쳐버린 것 같다.

"오빠. 당장 내 아들로 돌아가. 아니, 정자가 되어 내 자궁으로 들어올래? 내가 오빠 다시 태어나게 해줄게."

"제정신이 아니구만."

짝, 짝짝.

"헤라, 너는 내 아내야! 나는 네 남편이고! 정신 차려, 헤파이스토스랑 아레스 엄마! 다른 딸 애들까지 다 말해야 정신을 차릴래?!"

"오늘, 아니 며칠 만 좀 유피테르 마마 하면 안 돼?!"

"그러려면 최소한 길가에서 유피테르에게 발정하지나 말든가!!"

나는 헤라의 뺨대신 그녀의 가슴을 좌우로 쳤다.

스냅의 묘미를 살려 아프지 않게, 하지만 떨림은 크게 나도록 그녀의 정신이 바짝 들게 만들었다.

"데메테르도 하데스도 아까 그 모습에 홀려서 겨울이 찾아왔어. 너까지 이러면 나 이번 사태 해결 못한다. 잊었어? 데메테르를 낚으려면 내가 이 모습으로 돌아다녀야 한다고."

"그런다고 데메테르가 낚일 것 같아?"

"당연하지. 설령 내가 제우스고 네가 헤라인 걸 눈치채도 달려들 걸?"

페르세포네처럼 생겼기 때문이 아니다.

이번 작전은 데메테르의 질투심을 유발하기 위한 '마망플레이' 작전이다.

그걸 위해 나는 모든 자존심을 고이 접어두고 쇼타가 되었다.

사실상 이 모습이 지상에 겨울을 가져온 원흉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모습에 발정하는 여신들이 잘못이다.

"하아. 미치겠네. 왜 그렇게 젬민이에 집착하는 거야?"

"그거야 오빠 어린 시절이니까. 오빠 이 모습으로 가이아 앞에 서면 가이아가 바로 알몸으로 다리 벌릴 걸?"

"......."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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