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우스 엑스 마키나-149화 (149/235)

EP.149 마지막 올림포스 가디언 (2)

테베 국왕 카드모스가 아내 하르모니아와 함께 왕위에서 물러났다.

-아니, 뭐 사고 났소? 죽기라도 했소?

-신의 저주가 있었던 게야...!

-아니, 얼어붙은 대지의 저주도 우리를 빗겨갔고 신들에게 노여움을 살 일도 없었는데 무슨 저주?

-아무튼 신의 저주인 것이야!!

혹자는 그둘이 신의 저주를 받아 뱀으로 변하여 이 세상을 떠났다고 하지만, 만약 그랬다면 왕국 전체에 해당 신의 분노가 퍼졌을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상대로 음해를 펼치려는 자가 있다면 내 용서하지 않겠다!

카드모스의 장자, 폴리도로스는 왕위에 올라 백성들에게 엄포를 놓았다.

-나는 인류 최초의 영웅, 제우스께서 인정하신 카드모스의 장자이니라! 감히 어디서 테베 왕조를 모욕하는가!

-감히 나의 성기가 뱀에게 물려 불구가 되었다느니, 내 여동생들이 팔자가 기구해서 아들 딸이 전부 단명할 거라느니, 내 자손이 결국에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취할 것이라느니 하는 저주를 퍼뜨리는 자는 용서하지 않겠다!!

자신을 향한, 그리고 자신의 여동생들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불식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렇지만 카드모스, 아레스 신의 저주를 받았잖아.

건국왕 카드모스가 나라를 건국하는 과정에서 생긴 하나의 트러블.

테베 왕국의 샘에 기거하던 드래곤을 사냥한 일.

그 트러블로 인해 카드모스는 아레스 신으로부터 저주를 받았고, 이제 그 저주가 카드모스의 후손들-테베 왕가에 확산될 것이라는 소문이었다.

왕위를 굳건히 다져야 할 다음 대 국왕으로서는 당연히 백성들의 불안함을 억누르고 왕가의 위엄을 살려야 하는 상황.

-누이들, 부디 결혼하여 아이를 낳아주시오.

폴리도로스는 자신의 여동생들을 여러 사람들에게 시집보냈다.

테베 왕가의 공주라는 신분답게 화려한 마차를 태우고 결혼 예물로 왕가가 모은 보물을 짐수레에 싣고 시집을 보냈고, 그들은 각자 남편을 맞이하여 자식을 낳았다.

그러나 그들의 결혼 생활은 그다지 좋다고 할 수 없었다.

첫째, 아우토노에가 낳은 아들 중 한 명은 감히 아르테미스 여신의 목욕 장면을 훔쳐봤다는 이유로 아르테미스 신에게 맞아 죽었다.

둘째, 이노는 어떤 왕의 후처로 들어가 자식을 낳았으나 왕은 마치 자신이 제우스라도 되는 것처럼 여러 여인을 거느리고 살고자 하여 행복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게 되었다.

셋째, 아가우에가 그나마 카드모스가 나라를 건국하면서 사냥한 드래곤의 갑주로 무장한 용아병 에키온과 혼인을 했지만, 그 또한 드래곤의 저주를 받을까 매일같이 전전긍긍 하고 있다고 하더라.

그리고 넷째.

세멜레는 네 자매 중 가장 어머니 하르모니아를 닮았지만, 그녀는 아직 처녀였다.

첫째부터 셋째 언니와는 제법 나이 차이가 있던 세멜레는 카드모스와 하르모니아가 늦깍이로 낳은 자식이었고, 오빠와 언니들은 세멜레를 자식처럼 예뻐하고 아꼈다.

그래서 더욱 세멜레는 혼인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다.

언니들이 결혼을 하는 모습을 보며 그녀는 결혼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결혼해도 부모님처럼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아버지와 어머니가 보여준 행복한 결혼 생활은 전부 허상이었던 게 아닐까?

-부부관계가 좋다고 해도, 자식이 일찍 죽는다면 그 슬픔은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신이 점지해준 카드모스와 하르모니아, 두 부부의 금슬 좋은 모습은 세멜레를 비롯한 자매들에게 동경의 대상이었지만, 그리스의 남자들과 결혼을 하고나니 그 동경이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가히, 현실은 시궁창과 같다더라.

그래서 세멜레는 결혼을 하기가 너무 두려웠다.

누군가의 아내가 되어, 과연 부모가 그랬던 것처럼 행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고민이 깊을 때는 누구를 찾아가야 할까?

"위대하신 제우스 신이시여."

신이다.

세멜레는 왕성의 한켠에 자리잡은 신전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늦은 밤.

촛불조차 켜지지 않아 달빛에만 의존해야 하는 시간.

세멜레는 촛불 하나를 들고 조용히 제우스 신을 모시는 신전을 찾았다.

왕성의 건물 안, 방 하나가 통째로 제우스 신만을 모시기 위해 만들어진 작은 신전에는 위대한 제우스 신의 석상이 있었고, 세멜레는 제우스 상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테베의 공주였던 자, 카드모스와 하르모니아의 딸 세멜레가 감히 도움을 청합니다. 저는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신상은 천장을 향해 삼지창을 높이 치켜들고 있을 뿐,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부디 저를 굽어살피시어, 제게 답을 주소서."

"답을 원하느냐?"

세멜레는 갑작스러운 말에 화들짝 놀랐다.

곧 그녀는 석상의 뒤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슨...?"

"너에게 고통과 고뇌가 보이는 구나.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인간의 근본적인 고뇌가 보여."

"당신은...."

"나다."

신전에 나타는 로브의 남자는 후드를 벗었다.

세멜레는 제우스 신상과 너무나 흡사한, 아니 석상의 모습과 별반 다를 바가 없는 남자의 등장에 화들짝 놀랐다.

"제, 제우스 님...?"

"그래. 내가 제우스다. 비록 너를 직접 마주하게 됨에 있어서 신의 몸으로 올 수 없어, 인간의 몸으로 오게 되었노라."

중후한 목소리가 울릴 때마다 세멜레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긋나긋하고 상냥한 목소리는 다른 그리스 남자들과는 사뭇 달랐고, 오직 자신만을 향하는 듯한 상냥한 눈빛에 세멜레는 입안에 군침이 돌았다.

"지, 진정으로 제우스 신이십니까?"

"의심하지말라. 나는 올림포스의 주인이며, 모든 신들의 아버지이다. 감히 나를 사칭하는 자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그."

세멜레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세간에, 간혹 제우스 님께 강간을 당했다고 하는 여인들이...."

"그에 관한 건 언젠가 알게 되겠지만, 나는 인간 여인들을 함부로 범하지 않는다. 내가 사칭하도록 말한 거지만...좋다. 내가 제우스라는 증거를 보여주도록 하지."

딱.

제우스를 자칭하는 남자는 옷을 들었다.

그러자 그의 아래에 있던 거대한 또다른 제우스가 모습을 보였다.

뿌우우ㅡㅡㅡㅡ!

"아버지보다 더 커...!"

"내가 제우스다."

"제, 제우스 님이 맞으시군요."

인간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크기와 형태.

한낱 인간이라면 남성기를 보이는 성희롱에 역겨움과 분노가 치솟아야하겠지만, 세멜레는 제우스의 자지를 보고 '경외심'이 들었다.

저 제우스는 진짜 제우스다.

자지에서 느껴지는 신성함은 제우스 이외에 그 누구라고 생각할 수 없다.

"나는 네 아버지, 카드모스의 부탁으로 이곳에 왔다."

"아버지께서...?"

"그래. 카드모스는 결혼하지 못한 딸을 위해, 나 제우스가 직접 행복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알려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세멜레는 가슴이 철렁내려앉았다.

신의 은총을 받고 신들의 선물을 받아 그 힘을 바탕으로 국왕이 된 아버지였으나, 그는 한낱 인간에 불과했다.

그런 그가 제우스에게 부탁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이 새삼 놀라웠고, 제우스 또한 카드모스의 부탁을 들어주러 왔다는 것에 한 번 더 놀랐다.

"네가 생각하는 행복이란 무엇이냐?"

"...죄송합니다만, 생각할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얼마든지. 나는 지금 이 순간, 너를 위해 이 땅에 내려왔다. 나의 시간은 무한하지만...."

제우스는 발기한 자신의 자지를 가리켰다.

"나의 자지는 인내심이 그리 길지 않아. 이 발기가 풀리기 전에 답을 내어놓아야 할 것이다."

"제우스 님의 발기는 무한하지 않습니까?"

"...그렇기는 하지만, 일단 비유적인 표현이라고 해두지. 그래서 네 행복은 무엇이냐?"

세멜레는 쉽게 입을 열 수 없었다.

과연 자신이 바라는 행복이 무엇인가?

서로 아껴주고 사랑하는 부모의 모습이 정녕 자신이 바라는 행복이었을까?

"저는...."

"네가 바라는 행복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느냐?"

"...잘 모르겠습니다. 알려주십시오."

"나도 모른다!"

"...네?"

이게 무슨 소리?

전지전능한 신이 모른다면 자신은 어디서 행복을 찾아야 한단 말인가?

"세멜레여. 너는 뭔가를 해본 적이 있느냐? 무언가로부터 성취감이나 만족감을 얻어본 적이 있느냐?"

"...없는, 것 같습니다."

세멜레는 공주였다.

공주로서의 삶에 익숙해져있었고, 그 이외에는 뭔가 해본 적이 없었다.

개인이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일을 사람들은 직업으로 고르거나 취미로 두고 행복을 찾지만, 세멜레는 그런 게 지금까지 없었다.

"없다면, 지금부터 함께 찾아보면 되겠군."

제우스는 세멜레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내가 알려줄 수 있는 행복은 하나 뿐이다. 먼저 그것부터 알아보겠느냐?"

"무엇입니까?"

"여인의 행복."

"아...."

세멜레는 단숨에 얼굴이 붉어졌다.

제우스가 알려주는 여인의 행복?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모든 님프와 여신들이 제우스의 은총 한 번을 받아보려고 그렇게 아우성을 친다더라.

그러나 자신은 인간이다.

인간이 신의 은총을 받아도 되는 걸까?

"저는...."

"물론 바라지 않는다면 넘어가마. 나는 너를 강제로 안을 생각이 없다."

"...네?"

"왜?"

제우스는 눈을 끔뻑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세멜레는 그 모습이 자신도 모르게 '귀엽다'고 느꼈지만, 신의 말은 자신이 아는 것과 조금-아니 많이 상이했다.

"제게 여인의 행복을 알려주시겠다는 건...남녀관계를 맺겠다는 것 아닌가요?"

"그렇지."

"그런데 왜 제가 바라지 않는데 넘어간다고 하시는 거죠?"

"...응?"

"그도 그럴게...."

세멜레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여자의 의지와는 관계 없이 남자는 그 여자를 임신시키고 싶으면 범한다. 그게 상식이잖아요?"

"...뭐라?"

"물론 여인도 저항하지만, 세상에는 그렇게 여인들이 저항하는 걸 좋아하는 남자들도 있다고 들었어요. 그, 과거에 헬리오스 님께서 그러하신 것처럼...."

"하, 하하."

제우스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아니다. 나는 강제로 범하는 것에 관심이 없고, 오직 카드모스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온 것일 뿐이다."

"아버지와의 약속은...."

"아직 결혼을 하지 못한 네게 나의 은총을 내려달라는 부탁이었지."

"아."

세멜레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아버지 카드모스가 하르모니아와 사랑을 나누던 과정에서 단 한 번도 화를 내거나 슬퍼했던 적이 없었음을.

"그...."

세멜레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섹스는, 행복한 가요...?"

"무조건 행복하지."

제우스는 세멜레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이것이 행복이니라."

"......."

그 날.

세멜레는 행복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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