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우스 엑스 마키나-158화 (158/235)

EP.158 너 때문이니까 책임져 (4) 자각

나는 디오니소스의 양육을 위해, 디오니소스를 레아에게 맡겼다.

비록 레아와의 관계는 조손지간이었지만, 레아는 물심양면으로 디오니소스를 보살폈다.

어렸을 때는 디오니소스에게 젖을 헤라가 대신 물려줬지만, 역시 티탄의 피를 물려받은 이 답게 금방 무럭무럭 자랐다.

1년 정도는 아니고, 한 5년 정도.

카드모스의 인간 피가 흘러온 탓인지, 디오니소스는 유년기를 다른 티탄보다 훨씬 늦게 보냈다.

하지만 그녀가 가진 신의 힘은 분명히 티탄이었고, 여신들의 모든 열망이 집약되어있던 하르모니아의 핏줄이라서 그런지 그녀는 생각보다 강한 힘을 가지게 되었다.

자연의 힘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힘을 대충 '신력'이라고 한다면, 디오니소스는 모든 신들을 통틀어 순위권안에 들어오는 힘을 가졌다.

올림포스 12신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면 10권 정도.

비록 전투에 관련된 분야는 아니지만, 디오니소스는 평범하게 자신의 힘을 길렀다.

어떤 힘이냐.

아직 모른다.

티탄으로서의 힘은 분명 가지고 있지만, 어떤 방면으로 재능이 있는지는 아직 누구도 모른다.

'영화 생각나네.'

저 멀리 북유럽에서 남매가 생사결을 하던 때, 남동생은 죽은 아버지신의 환영을 보고 자신이 무슨 신인지 각성하게 된다.

그럼 디오니소스를 위해 내가 죽어야 하는 건가?

그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디오니소스의 재능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

"난감하군."

티탄들은, 신들은 저마다 차지하고 있는 전문 분야갸 있다.

하늘, 바다, 지옥, 땅, 올림포스, 불.

당장 우리 레아의 여섯 남매만 하더라도 세상을 여섯으로 나누어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아래로 내려갈수록 좀 더 세분화 된 분야를 맡고 있다.

남아있는 고대 티탄들도 자식들을 낳고 그 자식들에게 자신들과 관련된 분야에서 일을 하게 하거나 완전히 다른 분야의 재능을 찾아 그 분야의 신이 된다.

신에게 있어서, 어떤 분야의 신이 된다는 건 몹시 중요한 일.

순결한 여인이 순결을 유지하는 동안에는 나보다 아르테미스 여신을 찾는 것처럼, 인간들의 신앙은 신들에게 쏠쏠한 신으로서의 권위와 힘을 부여한다.

인간들의 신앙이 티탄에게 힘이 된다는 것이 다소 어처구니가 없는 역설이지만, 이는 티탄신에게 정신적인 분야와 관련이 깊다.

자기만족감.

인간들이 주는 신앙에 신들은 그만 중독되어버린 것이다.

비교는 이상하지만, 개인적인 느낌은 이렇다.

어렸을 때 개미굴의 앞에 가서 멍하니 보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개미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오오, 위대한 존재 잼-민이시여.

-부디 저희를 죽이지 말아주십시오.

생긴 것도 징그럽고 크기가 나랑 똑같아지면 진심으로 내가 패배할 수도 있는 개미들이 나를 향해 뒷다리만 땅에 박은 채 네 발을 들고 나를 찬양한다?

-부디 그 분노를 거두어주시되, 한 가지 부탁을 드리자면 저기 저희가 빨아먹는 진딧물을 NTR하는 무당벌레들을 처리해주십시오.

무당벌레를 죽이는 것 정도야 쉬운 일.

그리고 내가 무당벌레를 죽이면, 개미들은 네 팔을 더 높이 치켜들며 나를 찬양한다.

-오오, 잼-민이께서 무당벌레를 죽이셨다!

-그는 신이야! 그는 신이야! 그는 신이야!

-미천한 것이지만 저희의 공물을 받아주십시오...!!

얼마나 웃길까.

하찮은 자들이 자신을 찬양하는 모습을 본다는 건.

티탄과 인간의 관계는 마치 인간과 개미의 관계와 같다.

이게 대부분의 티탄들이 가진 인식이었다.

그런 티탄들의 의식을 바꾸고자 나는 신들에게 'OO의 신'과 같은 직함과 책임, 권리를 부여했다.

이제 디오니소스가 책임질 분야를 찾아야 할 때.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내가 알기로는 얘 술의 신인데, 술은 어떻게 만드는 거지?"

디오니소스하면 포도.

포도하면 와인.

즉, 디오니소스는 술의 신이자 와인의 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그리스에 유일하게 존재하지 않는 '술'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내어야만 디오니소스는 진정한 올림포스의 신이 될 것이다.

티탄들도 와인 한 잔 깔끔하게 마시면 다들 술에 꼴아버릴 것이며, 앞으로 평생 술을 즐기게 될테니까.

"아, 술 땡긴다."

디오니소스가 술을 만들어낼 때까지 과연 기다릴 수 있을까.

나는 그녀가 장성하여 이제는 성인이 된 모습을 볼 때마다,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 포도를 찾지 못한다면 영영 술의 신은 커녕 아무런 무색무취가 되는 거 아닐까.

술이라는 업적이 없으면 결국 탄생이나 기타 능력을 바탕으로 신의 자리를 만들어줘야 하는데, 이러다가 '탈룰라 면역의 신'이 되어버리면 아버지로서 디오니소스와 세멜레에게 도저히 얼굴을 들 수 없다.

"아하하! 레아 언니, 이것 좀 보세요!"

"너무 멀리가지 마렴."

...디오니소스에게 레아 '언니'라고 듣는 레아는 일단 차치하고, 나는 디오니소스가 웃으며 머리에 화관을 쓰는 모습을 보며 그저 웃음만 나왔다.

저렇게 착한 아이에게 과연 어떤 신이 어울릴까.

내가 아는 대로 술의 신이 될지, 아니면 또다른 신이 될지.

그것은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일.

설령 미래가 최악의 결과를 가져온다고 해도, 나는 그녀가 자신의 재능과 권위, 자신이 이끌어나갈 전문 분야를 찾을 때까지 기다릴 것이다.

운명따위에 신의 재능을, 미래를 결정짓게 할 수 없으니.

'보시오, 가이아. 당신이 어미를 죽인 티탄이 어떻게 자라는지.'

반드시 가이아에게 증명하리라.

세멜레를 죽이게 만든 복수는, 디오니소스가 사랑과 평화로 대신 이루리라는 걸.

* * *

디오니소스.

라는 이름을 받은, 찰랑거리는 흑색 단발의 미소녀는 생각했다.

"가족이란 뭘까."

가족.

디오니소스에게는 아버지가 있다.

다른 이들은 모두 위대한 제우스라고 부르지만, 디오니소스에게 있어서 제우스는 누구보다도 상냥하고 자상한 신이다.

"보통 100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을 가족이라고 하지는 않는 것 같은데."

가족의 개념에 대해 물었을 때, 디오니소스는 가족이 함께 사는 구성원이라고 들었다.

서로 멀리 떨어져있는 이들도 포함한다는 개념은 조금 어려웠지만, 디오니소스는 가족이 무엇인가 차근차근 알게 되었다.

디오니소스와 제우스는 가족이다.

그리고 제우스와 제우스의 부인도 가족이다.

헤라, 데메테르, 헤스티아, 포세이돈, 하데스.

그녀가 지금까지 만나온 제우스의 아내들은 제우스의 아내인 동시에 여동생이었다.

즉, 여동생 또한 가족이다.

그리고 디오니소스를 길러준, 어머니의 역할을 대신 해준 '레아' 또한 가족이다.

가족으로서의 호칭은 '할머니'가 되겠지만, 레아는 그 호칭을 극구 사양하며 언니라고 부르게 했다.

그렇게 디오니소스는 레아의 품에서 자라며 가족의 관계를 넓혀나갔다.

그리고 제우스와 레아의 보살핌을 받으며, 가족의 행복이 무엇인지 알게되었다.

섹스.

부부지간에 섹스를 하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었다.

제우스는 아내들과 함께 사랑을 나눴고, 그 사랑의 표현으로 섹스를-질내사정을 했다.

응? 구체적인 가족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아냐고?

디오니소스는 그에 대해 잘 모른다.

제우스와 레아, 그리고 가족이라고 알고 있는 티탄 신들을 직접 만난 경우는 20명이 채 되지 않으니까.

그리고 제우스는 그들 모두와 섹스했다.

일부 제우스가 '너와 자매'라고 부른 이들은 제우스와 하지 않았지만, 자매-즉 딸이 아닌 여자들과는 디오니소스의 옆방에서 섹스하기도 했다.

아프로디테라는 여자가 제우스에게 분신을 여럿 만들어 윤간해달라고 했던 것도 봤고, 제우스가 두 아내를 동시에 겹쳐놓고 따먹는 것도 봤다.

그것이 가족이 사랑을 나누는 방법이었다.

그래서 디오니소스는 어떤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섹스는 여럿이서 하는 게 기본이구나!"

디오니소스가 지금까지 봐왔던 섹스는 여럿이서 함께 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항상 셋.

셋이 아니면 넷.

때로는 여덟 명이 한 자리에 모여 하는 것을 보기도 했다.

그래서 깨달았다.

아, 섹스는 여럿이 하는 것이 기본이구나.

때때로 혼자서 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여럿이 함께 하는구나.

또한, 디오니소스는 생각했다.

"아, 그래서 섹스를 가족끼리 하는 거구나!"

제우스의 아내는 헤라였다.

부부는 가족이다.

그리고 제우스의 또다른 아내로는 포세이돈, 하데스, 데메테르, 헤스티아, 그리고 레아가 있다.

응? 여동생이나 엄마가 아니냐고?

그렇게 부르는 것일 뿐일 것이다.

디오니소스는 그들이 제우스의 아내라고 알 뿐이다.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가족끼리 즐거운 시간을 보낼 리가 없다.

섹스는 가족과 함께 즐기는 것.

그러려면 우선 무엇이 되어야 할까?

"모두 가족을 만드는 거야!"

가족이다.

가족이 되기 위한 방법은 섹스이며, 섹스를 하면 모두가 기쁨을 느끼고 쾌락을 느끼게 된다.

"모두 가족으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

디오니소스는 생각했다.

"모두를 행복하게 하려면...역시 모두 함께 섹스를 하게 만들면 돼!"

가장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그녀가 성장하면서 봐온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가장 완벽한 해결책이었다.

"응, 맞아! 엄마들도 제우스 아빠랑 섹스하고 나면 화난 것도 다 풀어지고 그랬으니까!"

섹스는 모두가 화를 풀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 아버지 제우스의 이름에 먹칠을 하지 않도록, 세상에 아버지 제우스께서 보여주신 기쁨을 알리고 다니는 거야!"

누구를 대상으로?

"인간들...번식을 좋아하니까, 분명 섹스도 좋아하겠지?"

디오니소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가 섹스로 가족이 된다면 모두 행복해질 거야. 분명, 틀림없을 거야!

세간은 그것을 난교라고 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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