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우스 엑스 마키나-160화 (160/235)

EP.160 너 때문이니까 책임져 (6)

명계의 뱃사공, 카론은 눈앞에 나타난 이 당돌한 여성 티탄의 존재에 진심으로 당혹스러웠다.

"그러니까 저승으로 가는 길에 당신을 태워달라고?"

"네!"

"......."

카론은 눈앞의 여인, 스스로를 디오니소스라고 밝힌 이의 부탁에 진심으로 한숨이 나왔다.

"내가 자선사업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은 못 보내주지."

"왜요?"

"나는 뱃사공이니까."

카론은 명계의 강을 가리켰다.

"이곳은 죽은 자들이 강 아래에 한 가득 있는 곳이야. 이 강 안에 있으면 살갗이 찢어지는 고통을 겪게 되지. 그런데도 이들은 강을 헤엄쳐가면서 아래로 내려가려고 하고 있어. 왜 그런지 아는가?"

"왜 그런데요?"

"강을 건너 내려가서 하데스 님의 심판을 받아야 다음 생으로 태어날 수 있기 때문이야!"

"오."

디오니소스는 진심으로 놀란 눈으로 손뼉을 쳤다.

"그렇군요!"

"그렇군요가 아니야. 자네, 혹시 죽은 자를 묻어줄 때 동전 몇 푼 쥐여주는 게 왜 그런지 아는가?"

"몰라요."

"그걸 나한테 뱃삯으로 내라고 주는 걸세. 명계로 가는 길, 편하게 가라고 말이야."

"그러면 그건 돈 많은 사람은 후하게 가는 거 아닌가요?"

"동전 한 푼 무덤에 넣어주지 못한다면 일단 고통스럽게 가겠지. 응? 생면부지의 사람이 죽어있어도 지나가다가 인간들은 불쌍해서 구리 동전 하나라도 넣어준다고. 내가 그거 안 받는 것도 아니고. 근데 자네에게는 돈이 있나?"

"돈이요?"

"그래, 돈."

"없는데요!"

"그러니까 하는 소리 아니야."

카론은 진심으로 한탄했다.

"돈을 내는 자만 내 배를 탈 수 있다. 이건 내가 정한 게 아니야. 하데스 신께서 나를 이곳의 책임자로 지명하면서 정한 규칙이라고."

"하지만 그건 저한테 적용되는 규칙은 아닌데요!"

"아오, 진짜...."

한 대 때려버릴까.

다른 이들을 그냥 이 구역의 티탄인 줄 알지만, 사실 아케론은 상당한 힘을 가진 티탄이다.

태초의 존재들, 가이아의 동격이라고 할 수 있는 닉스와 에레보스 사이에서 태어난 티탄.

지금은 후배 신들에게 자신의 자리를 은근슬쩍 넘겨주고 알콩달콩 사랑을 나누고 있는 고대 티탄 아이테르, 헤메라의 형제로서, 굳이 배분을 따지자면 주신인 제우스보다 더 높은 격에 속한다.

그런 그가 어째서 하데스의 휘하로서 아케론 강을 오다니는 명계의 뱃사공이 되었는가.

그건 본인만 알 뿐이다.

중요한 건 그는 하데스의 명계에서 엄연한 규칙을 가지고 있고, 디오니소스를 함부로 태워줄 수 없다는 것.

"당신이 어느 티탄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돈이 없는 건 차치하고, 살아있는 존재를 저승으로 들일 수는 없소."

"음...."

"죽은 어머니를 찾는다고? 어머니가 인간인데 딸이 신이라고? 하, 어느 미친 신이 인간을 임신시켰는지 몰라도, 나는...."

"앗."

디오니소스는 카론의 말에 손뼉을 치며 웃었다.

"아저씨. 방금 저희 아버지 욕한 거예요?"

"응?"

"인간 여자를 임신시킨 미친 신이라고 하셨잖아요."

"그, 그렇긴 하지...."

카론은 싱글벙글 웃는 디오니소스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뭐, 뭐! 뻔하지! 네 아버지, 분명 헬리오스렸다! 헬리오스가 인간 여자들 강간하고 다니면서 임신시킨 경우가 한 둘 인줄 아느냐! 나는 말이지ㅡ"

"저 제우스 딸임."

"......."

카론은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눈을 깜빡이며, 입을 벌렸다 닫으며 이를 갈았다.

"으으으!!"

뭔가 말하고 싶은데 말할 수 없는, 주먹을 쥐락펴락하며 짜증을 애써 참는 듯한 모습에 디오니소스는 그저 싱글벙글 웃기만 했다.

"...크흠."

카론은 몸을 돌렸다.

그러더니 뭔가가 바닥에 슥 떨어졌고, 디오니소스를 향해 굴러왔다.

"어라? 여기 금화가 있네요!"

디오니소스는 자신이 주운 금화를 들고 활짝 웃었다.

"카론 아저씨, 여기 뱃삯이요!"

"어? 허어, 운이 좋군. 이전에 타고 간 이들이 잃어버린 금화를 찾아내다니 말이야."

"어, 그러면 돌려드려야 하는 거 아닌가요?"

"자네가 주웠으니 자네 금화가 아닌가?"

"아저씨 배에 있던 거니까 아저씨가 주인 아닐까요?"

"끙...."

카론은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는 디오니소스를 향해 이를 갈았다.

"주운 사람이 임자지. 좋아, 저승으로 안내하겠네."

"저승으로는 산 사람은 갈 수 없다면서요?"

"...티탄은 예외야."

"아하, 그렇구나."

쏴아아.

카론은 조용히 아케론 강의 흐름에 따라 노를 저었다.

배는 빠르게 명계의 지하로 향했고, 드디어 명계의 입구-정확히는 하데스가 심판을 내리는 궁에 도착했다.

"저거 뭐야?"

"살아있는 사람 아냐?"

"뭐야, 저거?"

대기표를 받고 기다리던 이들이 디오니소스의 등장에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고마워요, 아저씨!"

"어, 그, 그래. 그런데...."

카론은 디오니소스를 내려주며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그, 아까 위에서 있었던 일은...."

"무슨 일 있었나요?"

"......좋군."

카론은 엄지를 척 들어 올리며 떠나려 했ㅡ

"스틱스 강에 맹세코."

디오니소스는 카론에게 다가와...

"카론 아저씨가 저희 아버지를 여자 인간이나 임신시킨 미친 놈이라고 아버지께 제가 말하는 일은 없을 거랍니다!"

"......."

"안녕, 아저씨! 여기까지 태워줘서 고마웠어요. 다음에 또 만나요!"

카론은 입을 떡 벌리며 굳었다.

이미 배는 아케론 강의 흐름에 따라 아래로 떠내려가는 중이었고, 디오니소스는 카론을 향해 손을 흔들다가 지옥의 입구로 향했다.

"흥, 흐흥, 흥~ 어느 엄마한테 말할까~ 아버지한테만 말 안 하면 되는 거니까...흐흥. 아이, 좋아라."

보통 존재가 아니다.

디오니소스의 행보에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침을 삼켰고, 곧 디오니소스가 가는 방향을 보며 기겁을 했다.

"아니, 거긴!!"

크르르.

머리 세 개 달린 지옥견, 케르베로스가 이를 갈며 디오니소스를 위협했다.

감히 정해진 시간도 아닌데 감히 명계의 입구를 지나가려는 이 건방진 여인을....

"크르르."

크르르?

"왈, 왈왈, 크와앙!!"

디오니소스는 케르베로스를 향해, 짖기 시작했다.

세 개의 머리는 자신을 향해 짖는 이 정체불명의 여인을 그냥 씹어삼키거나 쫓아내려고 했지만....

뭔가.

자존심이.

긁혔다.

캉, 캉캉, 크오앙!! 프루흐릇, 키아악!

"크르르르, 크으으어, 카륵, 칵! 크르르르 카아악!!"

지옥의 입구.

진정한, 지옥이 시작되었다.

* * *

"흐흐, 흐흐흐."

폴림노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크흐, 크하학! 카하학, 흐읏, 하아, 크하아...."

너무나 웃음을 과하게 터뜨리는 바람에 허리가 나가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그는 곧 배를 부여잡으며 엎어져 웃기 시작했다.

"크하하, 순진한 새끼! 알아서 저승으로 기어들어가는 꼴이란!"

폴림노스는 명계로 들어간 디오니소스를 비웃었다.

호수가 명계의 입구는 맞다.

하지만 산 사람은 함부로 명계에 들어갈 수 없다.

이곳은 아케론 강으로 통하는 물길.

산 사람이 들어가는 곳이 아니라 죽은 자가 들어가는 곳.

"크흠, 안 되지. 물에 젖은 디오니소스 군을 맞이하려면 침착해야지. 흐흐."

폴림노스는 입맛을 다시며 디오니소스의 몸을 상상했다.

"흐흐, 남자답지는 못하지만...그래도 괜찮아. 암컷은 아니지만 자지는 달려있으니."

"이보시오."

뒤에서 들려오는 나지막한 목소리.

폴림노스는 가슴을 떨리게 만드는 중후한 목소리에 몸을 돌렸다.

"누, 누구시오?"

"말씀을 좀 묻겠소."

"......."

상대는 자신보다 더 체격이 좋은 금발의 사냥꾼이었다.

옷 너머의 근육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고, 우락부락한 체격에 폴림노스는 싸우면 분명 질 것 같았다.

그러나.

"이곳에 저승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다고 들었는데."

"...이쪽이오."

"호수밖에 없는데?"

"이 호수의 가장 깊은 곳에 명계로 가는 입구가 있지."

저런 자들도 결국 물을 과하게 먹으면 기절하게 된다.

곧 디오니소스가 올라오겠지만, 그가 올라온다고 해도 대충 둘러대면 된다.

"까딱 잘못하면 물을 먹고 익사할 수도 있소. 그러면 진짜로 명계로 가는 거지. 괜찮겠소?"

"상관없소. 어차피 명계로 가는 건...."

콰득.

사냥꾼은 몸 뒤로 들고 있던 몽둥이를 꺼냈다.

"네놈이니까."

"!!"

적이다.

폴림노스는 급히 허벅지에 차고 있던 단검을 뽑아 남자에게 던졌다.

"어딜."

파삭!

단검은 힘없이 몽둥이에 꽂혔고, 폴림노스는 남자를 피해 급히 도망쳤다.

"어딜 도망가?"

그러나 남자는 빛과 같은 속도로 폴림노스를 쫓아와 뒤통수를 때렸다.

폴림노스는 바로 바닥에 구르며 쓰러졌고, 무릎을 꿇으며 바짝 조아렸다.

"사, 살려주십시오!"

"내가 왜?"

"왜,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왜 저를 죽이려고 하시는 겁니까?"

"명계의 입구인지 아닌지 확인해야 할 거 아니야."

남자의 말에 폴림노스는 속으로 쌍욕을 내뱉었다.

이 남자, 미친 놈이다.

"네가 죽고 난 뒤에 정말로 명계의 문이 열리는지 한 번 확인해봐야겠는데?"

"자,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이곳은 진짜 명계입니다! 아케론 강으로 통하는 물이 여기로 뻗어나온 거라고요!"

"흐음."

남자는 수염을 손으로 쓸며 몽둥이를 내려놓았다.

"정말인가?"

"예! 그럼요! 물론이죠!"

"그렇군. 알았다."

남자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뒤.

"람쥐썬더!"

하늘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콰광ㅡㅡㅡ!!

천둥과 함께,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폴림노스를 덮쳤다.

"죽어라, 폴림노스 게이야."

"커, 커헉...."

폴림노스는 하늘에서 떨어진 벼락에 눈을 까뒤집었다.

"어떻게, 알았...."

풀썩.

"아무리 내 딸이 미인이라고는 하지만, 남장을 했는데 걔를 상대로 발기해?"

폴림노스는 죽었다.

"죽어마땅하지."

마치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며 멸망했던 고대의 인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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