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우스 엑스 마키나-161화 (161/235)

EP.161 너 때문이니까 책임져 (7)

'벌레 같은 놈.'

폴림노스를 죽였다.

나는 이에 대해 아무런 죄책감이 없었다.

"아직도 기어 나오다니. 그렇게 없애고 또 없애는데 기어이 나와서 나를 열 받게 하는구나."

바퀴벌레는 아무리 박멸해도 사라지지 않는다.

한 번 나온 바퀴벌레가 나온 이상, 주기적으로 바퀴벌레를 청소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한다.

약을 치는 것은 기본이고, 보이는 족족 잡아야 한다.

평소에 관리를 잘하면 되지 않냐고?

내가 아무리 집 안에서 잘 관리를 하더라도, 택배 상자에 붙어오는 바퀴벌레알까지 어떻게 해결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 폴림노스와 같은 존재도 마찬가지다.

"역겨운 호모 놈들...."

판도라를 통해 제거했던 고대 인류.

그러니까 고대 그리스, 남자와 남자 사이의 사랑을 최고의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호모 호모투스들의 존재는 아직 남아있다.

어째서?

내가 한 번 물로 쓸어버렸는데도 어떻게 지금도 이런 놈들이 살아있는 걸까.

나의 그리스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동성 간의 행위가 정녕 인간의 디폴트란 말인가?

그리스 여신들이 거친 남자에게 억지로 당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처럼?

남자는 동성애를 즐기고, 여자는 겁간당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세계.

호모가 판을 치는 세계.

이것이, 그리스의 '운명'이란 말인가?

'아니야.'

판도라에 의해 멸망했던 구 인류.

그들 중에는 생존자들이 분명히 존재했고, 생존자 중 일부가 가혹한 환경을 이겨내고 살아남아 기어이 현재의 인류가 되었다.

인류의 99.99%를 죽였는데, 그 남은 0.01% 사이에 기어이 호모가 남아있다.

'유전자도 아니고 셀 수도 없을 만큼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도 이게 뭐 하는 짓이야.'

그들 중에는 분명 판도라의 저주를 피해서 살아남았다거나, 그런 기질은 가지고 있었지만 한 번도 저지르지 않아 살아남은 뒤 후세에 그런 기질을 전한 자들이 있을 터.

고대 인류, 호모들의 유전자 속에는 청년막을 노리는 유전자가 있는 게 분명했다.

이 기원은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나는 이 호모의 기원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아냈다.

크로노스.

레아가 나를 낳고 난 뒤.

그가 고대 인류보다 더 이전, 지금의 '인간'과는 다른 훨씬 그 이전의 인간들을 강간하고 다녔다더라.

아마 거기서부터 시작된 뭔가 잘못된 것들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는 게 분명하다.

'미치겠네.'

호모의 기질이 있다고 하여,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다 태울 수는 없는 법.

지금 개미처럼 전 세계에 퍼진 인류를 모두 제거하고 새로운 인류로 다시 탈바꿈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이렇게 보이는 족족 제거를 하는 게 옳다.

아주 보이는 족족 뿌리를 뽑아버려야 하며, 이렇게 보일 때마다 그들이 정말 좋아하는 타르타로스에 처박아야 한다.

그러면 타르타로스 안에서 자기들끼리 기차놀이를 하든 뭐든 하겠지.

문제는....

"디오니소스가 충격을 받으면 안 될 텐데."

디오니소스는 순수한 아이다.

아직 그녀는 몸만 성인이 되었지,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아이와 마찬가지다.

아무리 레아와 가족들이 사랑으로 대해도, 결국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여정을 언젠가는 시작하게 될 터.

나는 그녀가 가출하기로 한 걸 진작에 눈치챘다.

-말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일단 놔둬 봐. 넘어져 봐야 아픈 걸 아는 법이야.

딸이 자아정체성을 찾으러 나서는 걸 가만히 막을 수는 없는 노릇.

여행을 통해서 분명 얻는 것이 있을 테고, 그녀는 여행을 통해 한 명의 주신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주신(主神)이 아니어도 좋다.

주신(酎神)이 아니어도 좋다.

건강하게 자라줬으면 좋겠고, 인간의 피가 반쯤 섞였다고 다른 티탄 신들과 달리 어느 순간 수명이 다하여 죽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헤르메스가 잘 봐줘야 할 텐데.'

나는 디오니소스의 뒤에 몰래 헤르메스를 붙였다.

헤르메스에게 맡겨둔 힘으로 나는 디오니소스가 어떻게 하는지 멀리서 지켜볼 수 있었고, 그녀가 올라오면 폴림노스인 척하면서 대충 소원을 말하고 떠나려고 했다.

그런데.

캉, 캉캉, 캉캉캉!

"...얘, 역시 좀 또라이 아닌가...?"

내 딸이지만, 그녀의 행동은 광기 그 자체였다.

"...헤르메스. 명계 안에 연락을 넣어다오. 입구에 미친 애가 나타났다고."

하데스가 수습해주기를 바랄 수밖에.

* * *

"안녕하세요!"

당차고 명랑한 목소리.

방글거리는 디오니소스의 모습에 하데스는 근엄한 얼굴을 유지하며 지팡이를 들었다.

"살아있는 티탄이 여기에는 무슨 일이더냐."

"앗, 투명뷰지 엄마가 근엄하게 계신다!"

"......."

하데스는 바로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주변에 미리 파수병이나 다른 자들을 물려놓아서 다행이었지, 아니었으면 큰 낭패를 겪을 뻔했다.

"정말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지난번에 침대에서 아버지랑 같이 뵌 이후로, 진짜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셨나요?"

"너...."

페르세포네는 눈앞의 존재가 여인이라는 걸 우선 눈치챘지만, 상당히 눈치가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아무리 눈치가 없다고 한들, 명계에서 감히 하데스를 욕보이다니.

이는 동격은 아니더라도 명계의 여왕 자리에 있는 페르세포네로서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다.

일단 그 전에.

"...이모님, 도대체 뭘 하고 다니시는 겁니까?"

"네 아버지랑 여기서 하던 거랑 같은 걸 했지."

"하아."

페르세포네는 진심으로 한숨이 나왔다.

중성적인 느낌이 드는 모습의 그녀는 페르세포네와 제법 비슷한 모습이었다.

그걸 느낀 건 디오니소스도 마찬가지.

"어라? 그쪽은 저랑 상당히 닮았네요?!"

"나 또한 아버지 제우스의 자식이니까."

"와!"

페르세포네가 남성적이라면, 디오니소스는 여성적인 외형을 가지고 있다.

둘의 차이는.

"언니는 가슴이 저보다 없네요!"

"......."

거의 없다.

페르세포네는 너무나도 안타까운 얼굴로 디오니소스를 훑었고, 하데스는 천장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일 뿐이었다.

"명계의 신이시여. 그냥, 빨리 처리하시는 게 옳을 듯합니다."

"그래. 더 이야기했다가는 내 머리가 폭발할 것 같구나. 명계에는 무슨 일이니."

"어머니를 만나러 왔어요!"

"...여기?"

페르세포네는 웃음을 참으며 하데스를 가리켰다.

"투명뷰지 엄마 말고요!"

"...여기서는 하데스 님이라고 부르거라. 예의를 갖춰."

"으음...."

디오니소스는 팔짱을 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지난번에는 분명 편하게 대하라고 하셨...."

"그건 거기서의 이야기고. 거기 밖에 나오면 당연히 예의를 가지고 행동해야 하지 않겠니. 너는 네 아버지를 불명예스럽게 할 생각이니?"

"앗."

디오니소스의 표정이 바로 바뀌었다.

"제 행동이...아버지께 폐가 되는 건가요?"

"그럼. 당연하지. 아무리 아는 사이라고 해도, 티탄과 티탄 사이라고 해도 상호 간에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절이라는 게 있는 법이란다."

"이쪽에서 첨언하자면, 네 행동에 대해 하데스 님께서 벌을 내리겠다고 하면 아버지 제우스께서도 뭐라고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저, 정말요?"

페르세포네의 첨언에 디오니소스는 금방 사색이 되었다.

"몰랐어요...."

"올림포스, 그리고 세계는 제우스 님께서 지배하는 곳이지만, 그걸 셋으로 나눈 이유가 단순히 동생이라서 그런 게 아니야. 포세이돈 님도 그렇고, 하데스 님도 그렇고 지배에 있어서 세 분은 동격의 존재시다."

엄격한 페르세포네의 말에 디오니소스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는 한쪽 무릎을 꿇으며, 더할 나위 없이 정중한 자세로 고개를 숙였다.

"위대한 명계의 지도자, 모든 영혼의 관리인,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어둠의 지배자이신 하데스 님을 뵙습니다."

"음...."

하데스는 디오니소스를 향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넘어갈 수는 없지. 네게는 명계에서 가장 위대한 자를 함부로 대한 죄로, 네게 벌을 내리겠다."

"벌이요...?"

"그래. 너는...."

하데스는 손을 들었다가 멈칫했다.

"...하아. 정말. 어쩔 수 없나...."

"하데스 님. 설마 그냥 넘어가실 생각입니까?"

페르세포네가 목소리를 굳히며 하데스를 노려봤다.

"아직은 어린아이의 행동일 뿐이다. 아이가 몰라서 저지른 행동은 타일러야지, 어찌 엄중한 벌을 내리겠느냐?"

"아이가 살인을 저질러도요?"

"나는 너와 저 아이가 지은 죄에 대해 경중을 논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다만...."

스르륵.

"벌은 내려야지. 디오니소스. 감히 명계에서 명계의 주인에게 함부로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해주겠다."

하데스가 손을 앞으로 뻗자, 디오니소스는 그대로 몸이 굳었다.

그녀의 손목에는 장미의 가시덩굴 같은 것이 새겨지기 시작했고, 점차 팔 위로 올라가 어깨에서 멈췄다.

"이건...?"

"네가 명계에 출입할 수 있는 시간은 단 두 시간. 네게 내리는 벌은 '시간'이다."

"시간이 벌이라고요?"

"그래. 너는 어머니를 만나러 왔다고 했지? 네 어머니, 세멜레는 여기에 있다. 잔인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너와 네 어머니가 만날 수 있는 건 고작 두 시간뿐이다."

"......."

디오니소스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벌에, 그녀는 두 무릎을 꿇으며 주저앉았다.

"그게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너에게 내리는 형벌이다."

하데스는 안타까운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지만,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네가 저지른 사소한 행동이라도, 너는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 그것이 어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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