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우스 엑스 마키나-162화 (162/235)

EP.162 너 때문이니까 책임져 (8)

시간이 제한되어 있다.

디오니소스는 처음에는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시간이라는 것은 어차피 흐르는 것이고, 영생을 사는 티탄에게는 별 의미가 없는 것이니.

두 시간은 아주 짧은 시간일 것이다.

아니, 오히려 긴 시간일 것이다.

그냥, 묻기만 하고 나가면 되니까.

어차피 어머니 세멜레는 죽은 영혼이고, 당장 환생을 하는 것도 아닌 만큼 두 시간이면 충분하다.

질문 하나를 하고, 대답을 들으면 끝난다.

그걸로 두 시간은 너무나도 충분한 시간이다.

어머니와의 해후?

친어머니와의 만남?

여러 가지 것들에 대한 질문?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일까.

디오니소스가 어머니를 만나러 온 건 어디까지나 자아를 찾기 위함이다.

다른 건, 다 필요 없다.

라고, 디오니소스는 생각했다.

"어머니…?"

"...네가 나의 아이구나."

검은 베일에 투명한 드레스를 두른 여인, 세멜레는 디오니소스를 다소곳이 맞이했다.

"보자마자 알겠어. 너는 내 아이가 맞구나."

하데스의 배려인지 둘은 좁은 방에서 탁자 하나를 두고 마주 앉게 되었고, 디오니소스는 세멜레와 마주 앉았다.

"제우스 님께서 나중에 명계로 오셔서 말씀해주셨지. 아이의 이름을 지어야 하는데, 내 수첩을 보고 디오니소스라는 이름을 정했다고."

둘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투명한 벽이 있었다.

벽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건, 디오니소스가 앞으로 손을 뻗었기 때문.

"아…."

디오니소스는 자신도 모르게 뻗은 손에 놀랐고, 세멜레는 그런 디오니소스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분을 무척이나 닮았구나."

"제가요…?"

"그분께서는 은근히 주변에 많은 호기심을 가지고 계셨지. 궁금한 게 있으면 직접 확인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분이셨어."

"아버지께서…."

째깍, 째각.

탁자 위에 올려진 모래시계는 아직도 한참 많이 남아있다.

"그래, 무슨 일이니?"

"어, 저는…."

디오니소스는 세멜레를 위아래로 훑으며, 명계로 내려오면서 하려던 말을 입 밖으로 꺼냈다.

"어, 어…."

그러나.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게, 그러니까. 저는 지금 이제 성인이 되어 저의 권능을 찾아야 하는…."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모르겠고, 세멜레를 눈앞에 두고 있으니 뭐라고 해야 할 지 몰랐다.

"어, 어라…?"

주룩.

세멜레의 눈에서 눈물이 주룩 흘러내렸다.

"이거…왜?"

왜 자신이 눈물을 흘리는지 이유는 알 수 없었고, 왜 자신이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목이…."

목이 멨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상태에,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생전 처음 가슴이 울렁거리고 속이 쓰린 상황에 디오니소스는 진심으로 당황했다.

"어라, 내, 내가 왜 이러지…?"

"미안하구나."

세멜레는 대뜸 사과를 먼저 했다.

"마음 같아서는 너를 안아주고 위로해주고 싶은데, 나는 죽은 자고 너는 산 자. 살아있는 너를 죽은 자인 내가 안으면 분명 좋지 않은 일을 겪게 되겠지."

"그건…."

"울고 싶을 때는 울렴. 그래야 속이 시원해지거든."

"......."

디오니소스는 세멜레의 눈을 예의주시했다.

"미안하구나. 한 번도 안아주지 못한 내가, 말로만 위로할 수 밖에 없어서."

자신도 모르게 흘린 눈물에 세멜레 또한 눈에 눈물이 고이는 듯했고, 디오니소스는 급히 소매로 자신의 눈가를 훔쳤다.

"...어머니, 라고 불러도 돼요?"

"나는 처음부터 네 어머니였단다, 아가."

"......."

아가.

다른 어머니들에게서 많이 들어본 말이었지만, 세멜레에게 듣는 느낌은 확연히 달랐다.

가슴 속에서 뭔가가 벅차오르는 듯한 감각은 분명 헛된 것이 아니었다.

"어머니…."

디오니소스는 지금 세멜레의 목소리에, 몸짓에, 행동에, 말투에, 세멜레의 모든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저, 그, 궁금한 게 있어서 내려왔어요."

"뭐니, 아가."

"...어머니께서는 왜 저를 낳으셨어요?"

"......."

원래 하려던 질문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은 아무리 티탄이라도 주워 담을 수 없는 법.

"...왜, 저를 낳으신 거죠?"

추궁하듯, 디오니소스는 자신의 목소리가 날 서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놀랐다.

"그건."

세멜레는 잠시 눈을 감았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아니?"

"알아요. 시간, 없으니까 빨리. 테베 공주님인 것도 알고, 할아버지 카드모스와 관련된 것도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출생의 비밀.

그 누구도 디오니소스에게 자신이 어쩌다 태어났는지, 왜 인간으로부터 태어났는지 말해주지 않았다.

"왜 저를 낳으려고 했는지. 말해주세요."

하지만 디오니소스도 마냥 바보처럼 산 건 아니다.

그녀는 세멜레가 테베 왕국의 공주였다는 것.

영웅 카드모스와의 약속으로 시집가지 않은 세멜레를 제우스가 안기로 한 것.

그리고 위대한 제우스 신의 힘에 견디지 못해, 아이를 낳고 결국 죽어버린 것을 알고 있었다.

조사했으니까.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한 여정을 나서기 전, 디오니소스는 최대한 주변에서 정보를 얻고 조합했다.

그래서 얻은 결론.

"저는, 그저 약속 때문에 태어난 아이였나요?"

"그렇지 않아."

"그럼요?"

"...죽었으니까 하는 말이지만. 아니, 여기서 불경을 저지르면 지옥에 떨어지겠지만, 이 말 만큼은 네게 분명히 해야겠구나."

세멜레의 목소리에 단호함이 서리기 시작했다.

"나의 아버지, 카드모스 국왕께서 제우스 신께 나를 거두어달라고 청하신 건 분명한 사실이란다. 하지만 그 약속 때문에 너를 임신한 건 아니야."

"그럼요?"

"제우스 신께서는 내게 먼저 의사를 물으셨다. 그 제우스 신께서, 한낱 인간인 내게 물어보셨어. 너를 취해도 되겠냐고."

"......."

아버지라면 확실히 그럴 수 있다.

제우스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인간에게 허락을 구하고 씨를 뿌렸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제우스니까.

제우스라는 존재는 원하는 것이 있으면 뭐든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존재이며, 인간은 제우스가 바라면 순순히 다리를 벌려야 한다.

디오니소스는 자신을 길러준 어머니와 이복 자매들로부터 그렇게 배웠다.

티탄으로서 배웠고, 티탄으로서 자랐다.

그런데 그런 티탄 중에서도 정점에 있는 제우스가 인간에게 허락을 구했다?

"너는 어려울 수도 있겠지. 이건 어른의 이야기니까."

"어른…."

"제우스께서는 나를 한 명의 여자로 봐주셨단다. 티탄, 님프, 인간에 구애되지 않고 한 명의 여인으로 대해주셨어."

"그건...주신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행위일 수 있겠지. 하지만 제우스 님께서는 나를 배려해주셨지."

세멜레는 투명한 벽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분께서는 내게 사랑을 주셨고, 나는 그분의 사랑에 응했어. 그분과 관계를 맺으며, 나는 사랑에 빠졌지."

"사랑…."

공허한 울림이다.

"믿을 수 없어요. 아버지 제우스를 이용하려고 하신 거 아닌가요?"

"......."

"티탄 신, 그것도 올림포스 주신의 아이를 낳은 인간으로 왕국의 번영을 가져오려고? 목적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닌가요?"

"내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세멜레는 한 손을 올리며 말을 이었다.

"스틱스강에 맹세코, 사사로운 목적을 가지고 너를 낳고자 한 건 아니었어."

"......."

스틱스강에 맹세를 하는 건 티탄 신의 권능이다.

감히 인간은 스틱스강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불경하지만, 그만큼 자신의 마음이 진실되었다는 걸 말하고자 할 때도 있다.

"나는 제우스 님과 사랑에 빠졌고, 제우스 님께서는 인간인 나조차도 사랑으로 대해주셨지. 너는, 나와 제우스 님이 사랑으로 낳은 아이야."

"사랑…."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겠지만…."

세멜레는 모래시계를 쓰다듬으며, 디오니소스를 향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엄마가, 아빠랑 어떻게 지냈는지...들어보겠니?"

* * *

"씁."

두 시간은 이제 거의 끝나가기 시작했다.

페르세포네는 복도에 홀로 선 채,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디오니소스.

이복동생이기는 하지만, 신들의 보살핌을 받고 자라 아직 철부지나 다름없는 존재.

"벌이 약해…."

하데스는 고작 두 시간이라는 시간을 제한했다.

만약 자신이 벌을 내리는 입장이었다면, 만날 수 있는 시간을 두 시간만 주는 게 아니라 지옥을 체험시켜줬을 것이다.

천방지축으로 돌아다니면서 제우스의 자식을 자처한다면, 이는 곧 제우스의 자식 전체에 대한 모욕이자 제우스에 대한 모욕이다.

제우스의 자식들이 이제는 거의 세 자릿수에 가까워지고 있지만, 그들 중 누가 큰 사고를 쳤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디오니소스가 처음으로 그런 사고를 치는 게 아닐까.

페르세포네는 진심으로 걱정되었다.

"만약 정신 차리지 못한다면…."

"디오니소스가 걱정되니?"

"...하데스 님. 그런 게 아닙니다."

"그런 것 치고는 많이 걱정하는 것 같은데."

"하, 누가…."

"이런 걸 보면 너도 오빠랑 판박이구나."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어떤 면에서 닮았다고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하데스의 말에 페르세포네는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다만.

"디오니소스가 정신을 못 차린다면, 그때는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제가 아버지께 말씀드려서…."

끼이익.

문이 열렸다.

눈시울이 한껏 붉어진 디오니소스는 복잡한 얼굴로 밖으로 나왔다.

"...끝났니?"

"네. 죄송했습니다, 명계의 주인이시여."

디오니소스의 바른 모습에 페르세포네는 당황했다.

"두 시간, 너무 짧았지?"

"저의 무례에 대한 벌이니, 저의 책임입니다."

아무리 어머니와 만났다고는 하지만, 순식간에 사람이 달라진 모습에 페르세포네는 무섭기까지 했다.

"그래, 길은 정했니?"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보이는 것 같아요."

뚝.

디오니소스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 슬픔을 잊을 수 있는 뭔가가, 잠깐이라도 이 슬픔을 씻어낼 수 있는 뭔가가 필요할 것 같아요. 앞으로 영영 어머니를 다시 못 볼 것 같다고 생각하니까…."

디오니소스는.

"...티탄들 조차도 모든 것을 잊고 기쁨에 젖을 수 있게, 여기를 울리는 걸 잊어버릴 수 있는 걸 만들고 싶어요."

자신이 하고자 하는 길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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