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우스 엑스 마키나-171화 (171/235)

EP.171 인생은 쓰고 (8)

쏴아아.

비가 내린다.

남자는 정처없이 걷다가 신전 앞에 도착했다.

"........"

가진 건 약간의 올리브와 구리 동전 뿐.

원래라면 이런 구리 동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많은 황금을 가지고 있어야했겠지만, 그는 현재 고향으로 돌아가는 고행의 여행을 하는 중이다.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기 얼마 남지 않은 시점.

남은 돈은 얼마 없지만, 그에게는 한 가지 바람이 있었다.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가기 전에 한 번이라도 여자를 안아봤으면 좋겠다.

정확히는 정말 이 여자와 섹스를 하다가 죽어도 괜찮을 정도로 예쁜 여자를 안아봤으면 좋겠다.

솔직히 말해서, 여신급으로 아름다운 여자와 한 번 해보고 싶다.

남자라면 누구나 다 가지고 있을 심정일 것이며, 남자는 어떤 소문이 진실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디오니소스 신전."

쾌락과 난교, 그리고 '술'의 신.

그녀가 개발한 술 덕분에 정말 세상은 많이 달라졌다.

술을 마시고 취해서 고백을 성공하는 이들도 있었고.

술을 마시고 취해서 평소에 안 하던 짓을 하다가 그만 죽어버린 이도 있었고.

술을 마시고 취해서 가장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저지르는 이들도 있었고.

술을 마시고 취해서 그리스에서 가장 위대한 신을 상대로 미친 짓을 저지르는 이들도 있었다.

술을 마셨다고 하여, 정신적으로 판단이 흐려졌다고 하여 용서는 없었다.

모든 것은 그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저질렀느냐 하는 것 뿐.

신들은 나름 건전하게 술을 마시는 것에 대해서는 딱히 뭐라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술을 권장하고, 곳곳에서 축제가 열리며 신들을 향해 공물을 바치기를 바라기도 한다.

술이라는 것이 생기면서 안 좋은 것들이 분명 하나둘 생기기는 했지만, 술로 인해 좋은 일이 생기는 경우가 인류에게는 더 많은 것 같기도 했다.

"...어으."

남자는 이미 술을 한 잔 걸치고 왔다.

딱히 취하려고 한 건 아니고, 용기를 가지려고 한 것도 아니다.

너무나도 추웠기 때문에.

한 겨울의 추위는 나약한 인간에게 있어 혹독했고, 혹한의 추위는 배를 술로 데우는 것으로 간신히 이겨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약간의 술 한 잔 덕분에, 남자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어서오십시오."

찰칵찰칵찰칵.

"디오니소스 님의 신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저는 디오니소스 님의 사도, 오르페우스라고 합니다."

"오르페우스...사도?"

"예. 디오니소스 님께서 저를 어여삐 여기시어, 이곳에서 술을 섞고 있습니다."

찰칵찰칵찰칵.

오르페우스의 손에는 쇠로 만들어진 컵이 두 개 들려있었다.

그는 두 개의 컵을 계속 흔들었고, 남자가 귀를 자세히 기울이니 안에는 액체가 흔들리고 있었다.

"그것은...."

"술이지요. 아주 특별한 술. 올림포스 최고의 신, 제우스 신께서는 이를 두고 '칵테일'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칵테일...?"

"저도 자세한 건 모릅니다. 넥타르나 암브로시아, 그와 비슷한 이름인지 아니면 제우스 신만이 알고 있는 이름이 있는 건지."

찰칵찰칵찰칵.

"무엇이든 사람을 기분 좋게 취하게 만드는 건 좋지요. 술 한 잔 하러 오셨으니, 한 잔 드리겠습니다."

"어, 나는 돈이...."

"이곳은 술을 마시러 오는 이들에게 돈을 받지 않습니다."

돈 없이 술을 마실 수 있다?

남자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공짜 술을 마실 수 있는데 왜 사람들이 없을까?

신전이라서?

"대신 새로운 칵테일을 만들 때마다 드셔야 합니다."

"...나를 두고 시험하려는 겁니까?"

"그런 셈이죠."

"음...."

남자는 턱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갸우거렸다.

여기서 잘못 먹으면 속이 뒤집어지거나 이대로 명계의 문을 열 수도 있겠지만, 도전하는 자가 아름답다고 하지 않는가.

"좋소. 마셔보겠소."

"여기있습니다."

쏴아아.

"...음."

과일주.

기본적으로 모든 술이 다 그렇듯 과일의 향이 들어가지만, 이 술은 조금 특별한 듯 했다.

"이건 무엇입니까?"

"피나 꼴리다. 제우스 신께서 직접 개발하신 칵테일입니다."

"오...?"

이건 흥미가 돈다.

흥미를 넘어, 마시지 않을 수 없다.

고향으로 돌아가 여행의 마지막, 디오니소스 신전에서 마신 게 무엇이냐고 묻는 이들의 질문에 당당히 말할 수 있게 된다.

제우스 신의 칵테일을 마셨다고.

"그런데 생각보다 더 달콤한 것 같기도 하고...."

"본래는 다른 걸 넣으려고 하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황금 사과를 쓰셨다고."

"오...."

황금 사과.

금빛으로 반짝이는 사과는 상당히 당도가 높아 고향에서도 많은 이들이 먹는 과일이었다.

"그런 걸로 술을 만들다니...."

"위대하신 제우스 신께 불가능한 건 없습니다."

"호오."

불가능한 건 없다.

한 마디를 하려고 하다가 참았다.

디오니소스 신은 제우스 신의 딸.

당연히 여기서 제우스 신을 두고 한 마디를 하는 건 제우스 신에 대한 모욕으로 이어질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남자 한 명만 망하는 게 아니라 남자와 더불어 남자의 나라가 망할 수 있다.

"불경한 생각을 품으셨군요."

"...무슨?"

"저는 반신입니다. 어느 분의 아들인지는 말씀드릴 수 없지만, 당신의 그 생각은 지극히 위험합니다."

"음.... 이제 나는 저승으로 가는 겁니까?"

"아뇨. 신에 대한 의구심을 품는 건 인간으로써 당연한 이치. 신들께서는 인간들에게 압도적인 권능을 보이는 것으로 자신을 증명하시기도 하죠."

"의심을 품어서 죄송합니다. 위대하신 제우스시여. 단지, 단지 저는...."

칵테일에 취해서 그런 걸까.

"...여신만큼 아름다운 여인과 질펀하게 섹스 한 번 해보고 싶을 뿐입니다."

속에 품고 있던 말이 기어이 밖으로 흘러나왔다.

말은 한 번 내뱉으면 주워담을 수 없고,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한 말에 입술을 깨물었다.

여신만큼 아름다운 여인.

이것은 해석하기에 따라, 여신에 대한 불경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해합니다. 남자라면 누구나 다 아름다운 미인과 섹스를 하고 싶죠."

"디오니소스 신께 빌면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그렇다면."

남자는 두 손을 모아 고개를 묻었다.

"위대하신 술의 신 디오니소스시여. 미천한 인간이 당신의 앞에 간절히 빕니다. 부디 제가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 섹스를 하게 해주십시오."

"음...."

오르페우스는 턱을 가볍게 쓸었다.

"제가 감히 이런 말을 하기는 그렇지만, 섹스보다는 '사랑'이라고 하는 건 어떻습니까?"

"사랑?"

"예. 섹스는 사랑입니다.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

남자는 멍하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르페우스는 또다른 칵테일을 제조하며 옅게 웃었다.

"섹스는 한 순간이지만 사랑은 영원합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여인과 평생을 살게 된다면, 섹스 또한 평생 이어지겠지요."

".......아아, 그렇군요. 섹스는 사랑이다...!!"

"그렇습니다. 사랑으로 섹스를 하는 겁니다."

남자는 홀린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곧 이내 자신이 이 신전에 들어온 이유를 깨달았다.

"그러나 저는 지금 당장 섹스를 하고 싶습니다."

"그렇군요. 그 또한 인간의 자연스러운 의지. 존중합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인간이 아닌 존재와도 섹스를 할 수 있습니까?"

"인간이 아닌 존재?"

"예. 인간이 아니지만 너무나도 아름다운 존재. 여신보다도 아름다울지도 모르는 미인."

"가, 가능합니다!"

남자는 절박해졌다.

"당장이라도 자지를 쑤셔박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걸 한잔 쭉 들이키고 안으로 들어가시길."

오르페우스가 건넨 술은 다소 영롱한 녹색빛을 띄고 있었지만, 남자는 단숨에 잔을 비웠다.

"크으, 허어어...."

남자는 타들어가는 속을 두드리며 오르페우스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비틀거리며 나아갔다.

조금 앞이 흔들리는 것 같기도 했고, 앞에 환영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여깁니다."

"아...!"

하지만 눈앞에 있는 여인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미의 여신 비너스가 여기에 있다면 아마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금발의 여인은 너무나도 매력적이고 육감적이었다.

"즐거운 시간 되시길."

끼이익.

오르페우스가 문을 닫자, 남자는 홀린 듯이 여인을 향해 다가가.

"쎅쓰."

여인을 덮쳤다.

* * *

"조금 미안하네."

나는 손을 쓸어 원래의 모습으로 변신했다.

적당히 아는 이름을 자칭했을 뿐, 오르페우스라는 존재는 나 제우스의 변신이었다.

"부럽군. 허상을 상대로도 저렇게 거칠게 허리를 흔들 수 있다는 게."

방 안으로 들어간 남자는 허공을 상대로 허리를 흔들고 있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너무나도 아름다운 가상의 여인을 상대로 열심히 허리를 흔들었고, 나는 그를 위해 술을 만들어줬다.

폭탄주.

술에 꽐라가 되어 자기가 뭐에 박는지도 모를 인사불성의 상태로 만들었다.

안에는 아프로디테가 만들어낸 향수와 비슷한 효과를 지닌 물건이 있어, 술과 시너지를 일으키면 마치 음몽을 꾸는 것처럼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실제로는 허공에 찍 싸는 거지만, 술에 취한 꿈속에서라도 즐기게 놔두면 어떨지.

"다음 사람을 위한 이야기나 준비해야겠군."

이제 이곳은 끝이다.

찾아오는 사람은 분명 있지만, 찾고자 하는 사람은 있지만.

이제는 다른 이야기를 준비할 차례.

술 한 잔 걸치면서 들을 이야기.

마치 동화 속 이야기처럼, 신화 속 이야기처럼.

한 잔을 기울이며, 하룻밤 천천히 나눌 이야기.

"무슨 이야기가 좋을까."

아라크네라는 여인이 아테나를 상대로 감히 건방을 떨었던 이야기?

신전에서 술에 취해 섹스를 하다가 벌을 받아 수인이 된 한 여인의 이야기?

너무나 금을 좋아하여 만지는 모든 것을 금으로 만들어달라고 하다가 섹스를 못하게 된 불쌍한 남자의 이야기?

모르겠다.

차곡차곡, 한 편 한 편 쌓이게 되면 언젠가 풀 날이 오겠지.

"그 때까지."

언젠가.

그 날이 올 때까지.

"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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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우스 엑스 마키나 2부 완결에 관해

제우스 엑스 마키나 완결되었습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 주제에 헤라클레스도 안 나오고 트로이 전쟁도 안 나오고, 본 작의 메인 빌런인 가이아도 처리하지 않고 완결이라니, 이게 무슨.

스토리 뇌절, 장기 휴재, 크로노스 처치로 인한 메인 빌런 상실 등등 다양한 요소가 겹치면서 이야기를 이끌어나갈 것들이 사라졌습니다.

장기 휴재 전에도 조짐이 보였지만, 여러 가지 악재가 겹치며 연재를 지속가능한 최소한의 수익이 무너졌습니다.

어느 정도냐면, 수익적인 이유로 계약이 해지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요.

매일매일 연재했다면 지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들지만,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장기 휴재의 영향이 큽니다.

정확히는 어쭙잖게 웹툰화를 통해 시기를 맞춰보겠다고 잔머리를 굴리다가 독자 여러분들께 희생을 강요했던 작가의 어리석은 생각이 가장 큰 원인입니다.

지금까지 일어주신 분들은 제엑마를 정말 재미있게 보셨을테고, 앞으로도 이 이야기를 보고 싶으실텐데, 작가의 역량 부족으로 제우스 엑스 마키나는 여기서 마무리를 지어야 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3부는 헤라클레스, 트로이 전쟁, 그리고 기간토마키아로 내용이 정리될 것 같습니다. 그 이외에 다양한 이야기는 한 편 한 편이 아니라, 하나의 옴니버스식 이야기가 기승전결을 갖추고 완전히 마무리 될 때마다 찾아오겠습니다.

언젠가 이 소재로 다시 쓰게 된다면, 염치불구하지만 그 때도 잘 봐주십사 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후기를 남깁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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