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우스 엑스 마키나-173화 (173/235)

〈 173화 〉 (전)처녀신 아르테미스 ­ 악타이온 (1)

* * *

쿵.

멧돼지가 쓰러진다.

가만히 놔뒀으면 족히 인간 열 명은 거뜬히 잡아먹었을 멧돼지는 내가 쏜 화살에 맞아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재밌네."

사냥은 언제나 즐겁다.

인간을 사냥하는 것이 아니라 가이아의 마물을 사냥하는 일을 말하는 것이다.

그냥 평범한 동물은 놔둔다.

하지만 인간의 피를 맛들인 짐승은 이야기가 다르다.

"나는 한 명의 호랑이 사냥꾼. 그리스에서는 호랑이 대신 멧돼지를 사냥하는 자."

과거 조선시대, 조상님들이 한반도 땅에서 그렇게 호랑이들을 사냥했던 것처럼, 나는 지금 이 그리스 땅에서 가이아의 마물을 사냥하고 있다.

솔직히, 재미있다.

제우스로서 나서면 당연히 내게 겁을 먹고 덤비지 않지만, 아제우스로 나서면 만만한 줄 알고 덤비더라.

그리고 나는 그렇게 분수도 모르고 덤비는 놈들의 뚝배기를 깨놓는다.

"이거지."

나는 직접 사냥한 멧돼지의 엄니를 붙잡고 좀 더 깊은 숲, 공터로 향했다.

사락.

뒤에서 발소리가 들린다.

사람의 소리가 아닌, 짐승의 소리.

아마도 내가 사로잡은 멧돼지를 노리는 들짐승들일 터.

가이아의 마수라고는 하지만 거대화된 짐승에게 인간과도 같은 지성과 인간에 대한 분노가 심겨져있을 뿐, 그냥 평범한 멧돼지와 다를 바가 없다.

즉.

'구워먹으면 존맛이라는 이야기지.'

푸욱.

단숨에 내장을 제거하고 살점을 발라낸다.

수백 kg은 되어보이는 거구라 당연히 혼자서는 먹지 못할 양이지만, 이걸 전부 먹을 생각은 없다.

그냥 적당히 먹고 버리면 그만.

"야."

나는 멧돼지로부터 잘라낸 살덩이를 들고 옆으로 향했다.

"나는 이것만 먹으면 되니까, 나머지는 너희들이 알아서 해라."

태연하게 옆으로 자리를 옮긴다음, 불을 지핀다.

화르륵.

미리 준비한 쇠꼬챙이에 멧돼지 고기를 끼우고, 나무 지지대를 이용해 장작 위에 올린다.

수동이기는 하지만, 로티세리로 겉면이 장작 불에 익어가는 게 너무나도 먹음직스럽다.

크르르.

늑대들이 앞으로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놈들은 나와 멧돼지를 몇 번 번갈아보더니, 곧 내 눈치를 보며 죽은 멧돼지를 향해 다가갔다.

으적, 으적.

이렇게.

적당히 내가 맛만 볼 수 있는 적당량만 구워먹고, 나머지는 멧돼지에게 피해를 봤을 다른 짐승들에게 나눠준다.

놔두면 주변을 지나가던 짐승이나 인간들이 주워먹을 것이며, 나는 그냥 자리를 떠나면 되는 일이다.

팔아치우는 것도 생각을 해봤지만, 이런 거 팔아봐야 어차피 제대로 값을 쳐주지도 않는다.

'마수를 죽이는 것도 하루이틀이어야지.'

덩치가 너무 커서 푸줏간에서 팔지도 못하는 놈일 뿐.

거기까지 끌고 가는 것도 일이고, 그렇게 되면 너무 많은 이들의 이목을 끈다.

'아제우스의 삶은 그런 게 아니야.'

나는 지금 인간의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돈이 궁핍하지 않은 만큼, 원하는 대로 살고 있을 뿐이다.

제우스로서의 본체는 당연히 올림포스에 있다.

지금의 나는 아제우스, 그러니까 제우스의 분령(??)이 담긴 인간 비스무리 한 존재.

이른바, 분신이라고 해야 할까.

"아, 술 당긴다."

맥주 마시고 싶다.

이곳에는 아직 와인밖에 없어서, 맥을 발효시켜 톡 쏘게 만드는 맥주와 같은 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저 돼지의 다리를 잘라 족발로 만들고, 시원한 생맥주 한 잔에 잘 구워진 껍데기를 씹으며 하루를 보낸다.

신으로서 살아가면서 잊고 있었던 인간의 삶이 떠올라, 나는 아제우스로서의 삶에 너무나도 만족하고 있다.

다만.

아제우스의 앞에 붙는 이름은 다르다.

지금의 나는 '악타이온'.

이전에는 '멜레아그로스'라거나, '다프네'라거나 하는 그런 이름을 쓴 적도 있었다.

이 수많은 이름들을 어디서 가져왔는가?

그건 그냥 다른 이들의 이름을 훔쳤다.

'동명이인이 어디 한둘이야?'

인간의 이름을 훔쳤다.

내가 괜히 이름을 짓기 귀찮으니, 주변에 조금 유명하다 싶은 자들의 이름을 가져와 내 이름으로 쓰고있다.

어차피.

이름이라는 건 티탄신의 이름만 피하면 되는 일.

내가 성을 '아제우스'라는 식으로 쓰고 있기는 하지만, 그리스에 있는 사람들 누구도 성을 쓰지 않는다.

즉, 아제우스라는 건 내가 내 몸에 붙이는 별칭이다.

마치 거­언­다­암 이라고 해야 할까.

악타이온 아제우스.

그런 것이다.

"으아아! 수영이나 하자."

먹고 나니 배가 부르고, 적당히 누워있다보니 소화가 다 끝났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니 늑대들도 화들짝 놀라서 내 눈치를 보고, 나는 미련없이 짐을 챙겼다.

만약.

여기서 나를 노리는 놈이 있다면 가차없이 대가리를 깨버리겠지만, 다행히 늑대들은 눈치가 있었다.

거대멧돼지를 사냥한 인간.

그것도 평범한 인간이 아닌, 인간같지 않은 인간.

파지직.

인간의 몸이라도 배변활동까지 하도록 만들어두지 않은만큼, 위장에서 전격 에너지를 통해 모든 것을 전기분해하여 악타이온이 움직일 수 있는 활력으로 삼는다.

그리고 그 활력으로 하는 거?

"아, 섹스하고 싶다."

인간의 섹스.

신의 섹스와는 다르다.

인간의 섹스는 좀 더 폭력적이고, 야만적이고, 거칠고 끈적하기 짝이 없다.

­티탄섹스가 인간들의 섹스보다 훨씬 거칠기 짝이없는데?

라고 질문이 들어올 수 있다.

물론 나도 그렇게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지난 긴 시간 동안, 나의 K­제우스 프로젝트는 너무 깊게 올림포스에 뿌리를 내리고 말았다.

­네? 저보고 올라타라고요? 그, 그건 좀.... 그냥 저 못 일어나게 침대에 눕혀놓고 뒤에서 티탄섹스 해주시면....

주신 제우스를 상대로 기승위로 올라타서 자지를 쥐어짜는 섹스를 할 수 있는 이는 많지 않다.

그리고.

­오빠!

­왜.

­나도 해줘! 침대에 눕혀서 저녁부터 새벽까지 한 자세로 계속 자지 때려박는 거!

­너 어차피 한 시간도 못 버티잖아.

­해! 줘!!!!!

'슬슬 헤라가 압박이 되기 시작하고.'

가정의 여신, 헤라.

나의 아내, 헤라.

­왜 나는 안 해주는데?! 내 보지에 질린 거야?

­그런 건 아니지. 하지만 너 또 이번에 못 버티면 바로 다른 보지 찾으러 간다?

­그럴 줄 알고 미리 불렀지! 데메테르! 헤스티아! 내 옆으로 와!

그리고 질투의 화신, 헤라.

'제우스는 제우스군. 이건 어쩔 수 없어.'

내가 제우스이기 때문에, 헤라는 질투의 화신이 되었다.

무슨 말이냐.

­헤라 언니, 또 가버렸는데요.

­어쩔 수 없네. 우리가 대줄게.

­...얘는 아직도 이렇게 쉽게 가버리네. 슬슬 적응될 때도 되었는데.

섹스중독 헤라.

하지만 허접보지 헤라.

­그만큼 제우스가 좋다는 거지. 넣어도 금방 가버릴 만큼.

­그러니까 나도 뭐라고 말을 못하는 거 아냐. 하아.

그녀는 어려서부터 제우스의 자지를 감당해내지 못했고, 내가 몇 번 박아버리고 나니 쉽게 가버려서 좀처럼 버티지를 못했다.

자연히 나는 다른 여자를 안게 되고.

다른 여자를 안으면 헤라가 '자신과 다른 방법'으로 섹스를 한 것에 질투하고.

헤라는 또 그 방법으로 안아달라고 하고.

그렇게 박고나니 헤라는 제대로 하기도 전에 지쳐서 쓰러져버리고.

그러면 또다시 나는 새로운 여자를 찾고.

악순환 아닌 악순환의 반복은 수도 없이 반복되고 있고, 결국 나는 아제우스를 이용해 바람 아닌 바람을 피고 있다.

본체는 본체대로 헤라와 여신들과 섹스를 즐기고.

아제우스는 아제우스대로 다양한 자들과 섹스를 즐기고.

인간, 님프 가리지 않고 마구 섹스를 즐기고 있다.

마치 인간 시절, 스마트폰과 이빨 하나만 가지고 야부리를 털면서 원나잇을 즐기던 그 때의 나처럼.

"인간 만세."

신으로서는 누릴 수 없는 자유를.

그리고 자유에 따른 책임을­

질 수 없다.

지지 않는다.

왜냐?

이 몸은 고자니까.

정정.

고자가 아니라, 무정자증이니까.

아제우스를 만들 때, 나는 후손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빼고 아제우스를 제작했다.

당연히 섹스를 해도 정액은 뿜어져나오지만, 그건 실상 연유랑 다를 바 없는 정액이다.

왜 이렇게 하냐고?

'임신걱정 없이 질싸섹스 하고 싶다!'

제우스는 쌌다 하면 바로 임신이다.

임신 중에는 당연히 섹스도 조심해야 하는데, 문제는 이게 10개월 단위로 몇 번이고 반복되기 마련.

헤라는 사실상 일 년에 한 명씩 낳고 있고, 다른 여신들도 주기적으로 아이를 낳고 있다.

이제는 내 아이들의 이름을 외우는 것도, 인간의 머리로는 아마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많아졌다.

티탄신이니까 다 기억하고 있지.

'호메로스가 개고생을 하겠어.'

훗날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해 정리를 하는 자가 나타난다면 분명 욕할 것이다.

­아, 씨발! 제우스 새끼, 무슨 여왕벌이 알 낳듯이 좆나게 낳고 지랄이야!

그렇다면.

어차피 욕 먹을 거.

좆을 좆대로 놀릴 것이다.

어차피 좆되는 건 내가 아니라 일리아스나 오디세이아 같은 걸 쓰는 양반들이니까.

"그래. 좆 되는 건 그 양반들이지."

나는 인간의 삶을 살 것이다.

그리고.

적당히 걸어가니, 슬슬 샘이 보이기 시작했다.

"수영하기 딱 좋은 곳이네."

나는 바로 옷을 전부 벗어던진 뒤, 샘에 몸을 던졌다.

비록 물이 그렇게 까지 깊지는 않아 무릎까지 물에 잠길 정도였지만, 물에 떠다닐 정도는 충분했다.

그런데.

"......어?"

너무나도 아름다운.

알몸의 여인이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달빛에 비친 하얀 나신으로.

너무나도 어처구니 없다는 듯, 당황스러운 눈으로.

"......아르테미스?"

나는 강물에 보트처럼 떠다니며, 아르테미스를 만났다.

자지를 빨딱 세운 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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