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9화 〉 아라크네 (2)
* * *
용기있는 미친 인간에게 찬사를.
인간이 미친 짓을 하면 역겹기 그지없지만, 때로는 '얼마나 병신이면 이런 짓을 저지를까'라고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여자가 그렇다.
"진짜 제대로 정신이 나갔네. 어떻게 신을 모욕할 수가 있지?"
인간 따위가.
"고작 베 짜는 실력 하나가지고 신을 모욕하기에는 가진 능력이 일천한데. 사람들이 자기 실력 좀 추켜세워주니까 자기가 대단할 줄 아나보네."
미친 것 같다.
물론 눈앞의 두 사람이 변장을 했다고는 하지만, 신의 귀는 어디에도 있고 모든 것을 듣는다.
설령 신이 귀찮아서 듣지 못한 내용이 있다고 한들, 신들에게 님프들이 재잘거리며 소식을 전해주는 게 어디 한둘인가.
"미친 것에게는 매가 약이지."
어떻게 이 버르장머리를 고치면 좋을까.
아니, 애초에 이 버르장머리를 고칠 필요가 있을까?
"어쩌지, 미네르바."
"죽이실 건가요?"
"죽이긴 죽일 건데, 그냥 죽이기에는 너무 아까워."
아라크네가 아깝다는 게 아니다.
아라크네의 베 짜는 실력이 아깝다는 게 아니다.
"감히 신을 상대로 창녀니 뭐니 욕을 해놓고, 그냥 벼락을 던져서 죽이는 건 너무 아깝군."
그냥 죽이는 건 내 여신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내가 어지간하면 여자들은 함부로 대하지 않는데, 이 여자는 갱생의 여지가 없다. 죽여마땅해."
"어떻게 죽이시려고요?"
"음...."
생각 중이다.
어떻게 죽이면 가장 곱게 죽였다고 소문이 날까.
"...아니지."
이런 여자는 자존심을 꺾어야 한다.
신을 모욕했다고 해서 죽는다면, 신에게 살해당한 것에 자부심을 느낄 여자다.
신이 자신보다 못났다는 것을 인정했으니까 자신을 죽였다고 할 여자다.
고로.
"미네르바. 오랜만에 플레이야스 하나 꺼내야겠다. 너도, 나도."
"무슨 생각을 하시길래."
"그리스에서 가장 베 짜는 실력이 뛰어난 인간이라고? 그렇다면 예우를 최대한 해줘야지."
나는 기절한 아라크네를 가리켰다.
"아라크네의 모든 것을 빼앗을 것이다. 처녀도, 목숨도, 그리고 아라크네가 이곳 리디아 왕국에서 쌓아올린 모든 것을."
* * *
덜커덩.
아라크네는 뭔가 몸 전체가 욱씬거리는 감각에 오한이 들었다.
늦은 밤.
누군가가 연인처럼, 남매처럼, 혹은 부부처럼 보이는 남녀가 찾아왔던 건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원단을 신에게 바치고자 했고, 그러면 팔지 않겠다고 말했다.
진심이다.
아라크네는 원단이 신에게 바쳐지는 걸 바라지 않으니까.
신조차도 아라크네가 직접 베를 짠 원단을 사고 싶다면, 직접 와서 돈을 주든 뭔가를 주든 구매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신이라고 해봐야, 운 좋게 티탄으로 태어난 것 말고는 인간과 하등 차이가 없는 것 아닌가.
고작 힘이 조금 특별할 뿐.
어차피 제우스에게 박히면 혀를 내밀며 가버리는 건 똑같다.
제우스의 창녀들.
아라크네는 신들을 향해 존경심을 표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런 건 일단 차치하고.
"으윽...?!"
몸이 묶여있다.
손과 발은 움직일 수 없었고, 목 조차도 고개가 고정되어 있다.
마치 개처럼 엎드린 형태.
사자가 느긋하게 앉아있는 자세처럼, 아라크네는 마치 짐승과도 같은 모습으로 묶여있었다.
"이, 이거 뭐야...?!"
자신의 상태를 자각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전신이 구속되어있는 건 일단 차치하고, 구속구가 강철로 되어있다는 것도 차치하고, 구속구와 몸이 닿는 부분의 감촉 때문에 그녀는 자신의 상태를 깨닫게 되었다.
몸이 '알몸'이라는 것을.
누군가가 자신을 납치하여 감금한 뒤, 알몸으로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구에 묶어둔 것이다!
"누, 누구야?! 어떤 놈이야!"
눈앞에는 얇은 천 너머만 보일 뿐이다.
그리고 얇은 천 너머에는 한 여인의 실루엣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베를 짜고 있었다.
그것은.
"나...?"
아라크네가 베를 짜고 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발을 가볍게 구르며, 실을 길게 이어나가며 원단을 만들고 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자신은 여기 있는데.
아라크네라는 존재는 여기에 있는데, 천 사이로 미세하게 비치며 보이는 시야에는 아라크네가 있었다.
"이런...! 야! 너 누구야! 어떤 년이야!"
아라크네는 악을 쓰며 외쳤다.
원단 너머에서 자신의 자리를 빼앗은, 존재를 빼앗은 자에게 비명을 내질렀다.
"감히 나를 사칭, 히익?!"
물컹.
뒤에서 손길이 느껴진다.
"무슨 짓이야, 이 변태 새끼가! 거, 거기 너! 나! 나를 좀 도와줘!!"
우악스러운 손길은 남자의 손길이 분명했고, 아라크네는 아무렇지 않게 베를 짜는 아라크네를 향해 소리쳤다.
"누가 내 엉덩이를 만지고 있어! 이, 이 미친 강간마 새끼가!!"
뚝.
천 너머의 아라크네가 손을 멈췄다.
그리고는 천천히 아라크네에게 다가온 뒤, 천막을 걷었다.
"시끄럽네. 창녀주제에."
"뭐, 뭐라고...?"
"남자 자지에 박혀서 앙앙거리기나 하는 창녀주제에 무슨 개소리를."
눈앞의 여자는 아라크네의 목소리로, 아라크네의 눈으로 자신을 비웃었다.
"거기서 얌전히 있어. 확 죽여버리기 전에."
촤륵.
장막이 걷혔다.
"야, 야! 야 이 씨발년아!!"
소리는 장막 너머로 전해지지 않는 듯했고, 아라크네는 뒤에서 스멀스멀 움직이기 시작하는 끈적한 감각에 진심으로 혐오감이 들었다.
"아, 아아...?!"
찔컥.
너무나도 소중한 곳을 향해 그것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촉의 그것은 굵고, 크고, 우람하면서 동시에 몸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카학...!"
몸에 벼락이 치는 것처럼 감각이 요동친다.
고통이 먼저 느껴지기 이전에, 몸이 환희와 희열로 가득차오르기 시작했다.
"어, 어째서...?!!
묶인 채로 강제로 범해지고 있을 뿐인데, 아라크네의 몸은 민감하게 남자의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전신이 묶이고, 보이는 것이라고는 아라크네의 자리를 빼앗은 아라크네의 방 분이니, 절로 모든 감각이 뒤로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아, 카흑...!"
배를 강제로 들어올리는 듯한 묵직한 감각.
애초에 섹스와는 인연이 없던, 연을 끊고 살아온 아라크네에게 있어 예고도 없이 찾아온 강간은 너무나도 끔찍했다.
끔찍하고, 고통스러웠다.
그렇게 생각했다.
생각해야만 했다.
"아, 아학, 하악...!!"
아라크네는 손을 앞으로 뻗었다.
자신이 만들어낸, 자신이 짠 천을 손으로 꽉 움켜쥐며, 천을 어떻게든 입에 물고 참아야만 했다.
신음을.
쾌락을.
뒤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충격을.
찔컥.
"아흐읏...!!"
살면서 단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던, 손가락으로는 전혀 느낄 수 없었던, 인간으로 태어나 여자로서 자라면서 그 어떤 순간에도 느끼지 못했던 쾌락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아, 하악, 안 돼...! 이러면 나, 미쳐버려...! 아라크네가, 아니게 되어버렸...!!"
신에 대한 혐오와 증오를 품고 살아왔다.
베 짜는 실력만큼은 그 어떤 존재보다도, 신보다도 뛰어나다고 생각했던 여자다.
그런데.
이렇게 자신의 존재를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 빼앗긴 채, 베를 짜기는 커녕 좆물이나 짜는 삶만 살아야 한다고?
"아, 하읏, 그, 그럴 수는 없어...! 씨발, 여신이지! 그래, 이거, 신의 짓이야...!"
아라크네는 앞으로 손가락을 겨눴다.
"너, 너 이 씨발년!"
침대에 얌전히 누워 잠을 청하는 자신을 향해 쌍욕을 퍼부으며 눈에 핏발을 세웠다.
"너지! 네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지! 내가 평소에 신을 고깝게 여기는 걸 아니까, 나를 엿먹이려고 지금 나를 이렇게 만드는 거잖아!!"
범인은 저 여자다.
저 여신이다.
"제우스 전용 좆집이면 그냥 제우스한테 가서 다리나 벌릴 것이지, 왜 나한테 지랄인데! 어?!"
저 여신이 지금 자기를 제우스를 위한 창녀라고 욕을 한 걸 들어서 그런지
"너구나!"
아라크네는 깨달았다.
"남자랑 같이 온 그 년! 네가 그 년이야!"
남자의 이름이 무엇이었더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미남의 옆에 있던 여자는 분명 평범한 여자와는 다른 모습이었고, 자신이 신을 욕하는 것에 몹시 언짢아했다.
"내, 내가 자지 따위에 굴복할 것 같아?! 어디 두고보자고!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아라크네는 입술을 깨물며 소리쳤다.
"이, 이딴 자지에 굴복하지는 않...!"
푸슈으읏.
아라크네는 천을 꽉 붙잡으며 이를 악물었다.
구속구 전체가 부르르 떨릴 정도로 아라크네는 자신 스스로의 몸이 떨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안에 뭔가가 들어와서?
아니다.
그냥 지린 것이다.
남자가 그저 기계적으로 자지를 쑤셔박을 뿐인데.
"아, 아응, 하으읏...!"
인정하고 싶지 않다.
인정할 수 없다.
이대로 이 쾌락을 인정해버린다면, 자신이 고작 강간 따위에 굴복하는 그런 한심한 여자가 되어버리니까.
"나, 나는 고작 이런 자지에 굴복하는 게.... 아니야...!"
만약.
"강제로 마구 쑤셔박고, 흐끅, 이건 그냥, 인간이 자연스럽게 느낄, 느낄 뿐인 그런 감각일 뿐이라고...!"
다른 요인 때문이다.
아라크네가 지금 강간당하는 것에 쾌감을 느낀다면, 그건 뭔가 다른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자신의 뒤에서 박는 이 거근의 남자가 그 금발의 미청년이었다면.
근육이 탄탄하고 우악스러운 큰 손으로 자신의 엉덩이를 쥐어뜯으며 짐승처럼 자지를 박는 남자가.
만약 그 잘생긴 남자라면.
"아, 끄흑, 흐윽...!!"
아라크네는 그저 이 쾌락의 고통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며, 천을 찢어질 듯 붙잡았다.
설령.
"아, 하앗...!"
천 너머로 신음 섞인 숨결이 흘러나가며, 천이 자신의 한숨에 젖어들어간다고 한들.
"저, 절대로 굴복하지 않아...!!"
아라크네는 결코 자지 따위에게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일 년이 지났다.
* * *